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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소시엄 -<뉴욕타임스>가 일종의 고백을 하다

로버트 패리(Robert Parry)

‘독립언론 연합’ (Consortium for Independent Journalism) 1997년

 

<뉴욕타임스>의 중앙정보국(CIA) 지원 역사입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유명 신문은 기사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 신중하게 평가를 내려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신문이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보면 '유죄'라고 표현한다. 혐의자가 적이라고 여겨지면 표현을 명확하게 하고, 동지라면 문장은 모호해진다. 그래서 종종 누가 뭘 했는지를 불명확하게 하는 수동태를 쓰기 일쑤다.

 

언론 비평가 에드워드 에스 허먼은 <제트매거진> 97년 6월치에 실린 "말 속임수와 선전"이라는 글에서 "말들은 보통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 뒤바뀐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6월7일치에서 이런 기술을 새로운 경지에 올려놨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지면에는 똑같은 사건을 다룬 두 개의 기사가 실렸는데 서로 11페이지나 떨어져 있다. 이 사건은 가학적인 과테말라 군대가 5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살해한 것이다. 이 군대는 지난 54년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민주 정부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뒤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두 기사는 당연히 관련 기사지만 '관련기사 몇면' 식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하나는 (미국 정부나 중앙정보국에 대한 언급은 없이) 쿠데타의 피비린내 나는 결과를 다루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학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뉴욕타임스가 어떻게 미국중앙정보국을 도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1면에 실린 기사는 과테말라인들이 농촌 곳곳에 있는 수백개의 공동묘지를 힘겹게 발굴하는 것에 대해 소름끼치게 소개하고 있다. 대량 학살에 군대가 무슨 책임이 있는지는 명확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수동태를 선택했다. 레리 로터 특파원이 쓴 이 기사는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과테말라의 36년동안 지속된 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밖에 4만명이 실종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표현했다.

 

군대의 잔인함은 가족 전체를 쓸어버릴 정도로 무분별했다. 리오네그로에서는 한 묘지에서 어린이 100명과 여성 80명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생 안드레스 사하카바하의 16세기 교회 건물에서는 군대에 희생된 이들이 발견됐는데, 군 장비와 음화가 그려진 카드도 함께 있었다.

 

생 마르틴 힐로테페케 외곽에서는 군인들이 깊은 우물에 희생자들을 집어넣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80년대 초반부터 악취가 종종 나는 이 우물을 의심했지만 인구가 1050만명인 이 나라의 다른 수천명과 마찬가지로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 로터는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군대의 괴기스런 행위도 기술하고 있다. 군인들이 희생자들의 목에 밧줄을 맨 뒤 스스로 목매달아 죽도록 한 이야기, 군인들이 겁을 주는 수법으로 부모 눈 앞에서 어린 여성들을 강간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로사 모레노는 81년 12월12일 군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아버지를 때렸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저항하자 항복할 때까지 군인들은 10살된 딸(모레노의 여동생)을 성폭행했다. 아버지를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그 뒤 아버지를 다시 못봤다.

 

뉴욕타임스의 이 공동묘지 기사는 지난 40년 이상 과테말라를 휩쓴 공포에 관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었지만, 지난 54년 야코보아르벤츠 정부를 축출하고 군대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미국중앙정보국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빼버렸다. 민중 봉기를 막기 위한 정부군의 테러가 이 나라의 농촌 지역을 파괴하던 80년대 초반 레이건 대통령이 과테말라군을 다시 지원한 것에 대한 언급도 없다.

 

게다가 뉴욕타임스 편집진은 1면 기사의 관련기사 표시까지 빼버려 사태를 더욱 분리시켰다. 종교 소식과 전국 요약 소식 바로 다음면인 11면 끝에는 중앙정보국이 뉴욕타임스 발행인 아더 헤이스 슐츠버거의 도움을 받아 54년 쿠데타를 지휘한 것을 설명하는 1단짜리 기사가 있다. 휴일인 토요일 아침 꼼꼼히 신문을 살핀 독자만 이 기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공놀이

팀 와이너가 쓴 이 11면 기사는 지난 35년부터 61년까지 발행인을 맡은 슐츠버거가 비밀 공작을 다루지 말라는 중앙정보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중앙정보국장 앨런 덜레스는 라틴아메리카 특파원 시드니 그루슨이 이 사건을 다루지 못하게 하도록 뉴욕타임스에 요구했다.

 

아르벤츠처럼, 그루슨도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 54년 5월말 과테말라 현지의 중앙정보국 관리 알버트 해니 대령은 그루슨의 약점을 찾아내려고 중앙정보국 기록을 뒤졌다. 최근에 비밀문서 지정이 풀려 공개된 과테말라 쿠데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해니는 이 보다 2년 앞서 "그루슨이 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이 참석한 멕시코시티의 파티에 여러번 갔었다."고 썼다. 이 정보는 슐츠버거에게 전달됐다.

 

쿠데타 전에 덜레스는 개인적으로 슐츠버거에게 중앙정보국을 따르도록 요청했다. 슐츠버거는 자신이 구술한 메모에서 "나는 앨런 덜레스에게 전화해 그루슨을 멕시코시티에 묶어두라는 그들의 요구를 따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이 발행인은 54년 7월3일에 덜레스에게 전화를 했다. 슐츠버거의 결정으로 중앙정보국의 선동가들은 쿠데타 성공의 열쇠가 되는 거짓 정보와 혼란을 과테말라에 마음놓고 퍼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슐츠버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그는 그루슨의 이후 기사를 "보통 때보다 훨씬 주의를 기울여" 검열하는 데 동의했다. 이 발행인은 그루슨을 멕시코시티에 머물도록 명령한 뉴욕타임스의 내부 기록 사본을 중앙정보국에 보냈다.

 

11면의 기사는 그루슨 사건에 대한 타임스의 이전 묘사가 불완전하며 방향이 잘못된 것임도 밝혔다. 뉴욕타임스북스가 출판한 책 <한쪽에 치우침 없이>에서 오랫동안 뉴욕타임스의 특파원을 한 해리슨 살스버리는 슐츠버거의 항복(중앙정보국에 협조한 것: 번역자)이 마지못해 한 것처럼 묘사했다. 이 책에는 슐츠버거가 직접 덜레스에게 전화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루슨을 감시하겠다는 뜻도 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11면 기사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슐츠버거의 행위가 언론 정신에 위배된다는 명시적인 비판 또한 없다.

 

11면 기사를 처리한 뉴욕타임스의 방식은, 중앙정보국이 지원한 니카라과 반군의 마약 거래를 다룬 <산호세 머큐리뉴스>의 96년 연재기사에 대한 거친 비판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난 가을 타임스는 다른 주요 신문들과 합세해 이 기사의 과장된 혐의를 비난하는 기사를 써댔다. 그리고는 머큐리뉴스의 편집인 제리 세포스가 압력에 굴복해 이 기사에서 발을 빼자, 이 사실을 97년 5월13일 1면에 크게 보도했다. 14일에는 "머큐리뉴스 자백하다"는 제목의 거친 사설이 뒤를 이었다. 43년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죄는 없이...

 

친 중앙정보국이냐 반 중앙정보국이냐

친 중앙정보국이냐 반 중앙정보국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뉴욕타임스의 불공정한 보도는 최근 몇주동안 다시 나타나고 있다. 중앙정보국이 58명의 핵심 과테말라 지도자를 암살자 명단에 올려놓은 사실을 기록한 서류를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하자,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를 5월28일치 5면에 쳐박았다. 이 기사는, 실제로 암살하지는 않았다는 중앙정보국의 주장을 의심하는 기미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19면에 중앙정보국이 53년 이란 쿠데타에 대한 기록 대부분을 없애버렸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쿠데타로 샤 모하메드 레자팔레비가 선거로 당선된 총리 모하메드 모사데를 몰아냈다.) 지금까지 중앙정보국 관리들은 자신들이 쿠데타의 막후에서 활동한 것에 대해 부인하면서 내부 문서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의 기록이 60년대에 없어진 것이다.(뉴욕타임스 97년 5월29일)

 

이런 기사 처리가 큰 일 같지 않지만, 이 결정은 워싱턴과 다른 언론매체 내부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머큐리뉴스가 물러선 것을 뉴욕타임스가 1면에 보도하자, 다른 신문은 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이 사건이 쟁점이 됐다. 대조적으로 슐츠버거가 중앙정보국에 협조한 것을 안쪽 면에 배치한 것은 그 반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 텔레비전의 박학다식한 이들과 프로듀서들은 1면 기사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에, 이 기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슐츠버거 이야기를 숨김으로써, 뉴욕타임스는 자신들이 과테말라에서 수십만명이 숨진 것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숨겼다. 미국을 기록하는 신문은 완전히 참회하고 고백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번역: 신기섭

2004/07/15 18:57 2004/07/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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