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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 - 피의 비

* 미갱님의 [혈의 누] 에 관련된 글.

몇일 전에 아주 싼 값으로 영화를 봤다.

단돈 3000원, 둘이서 6000원가지고 봤다. 영화보기 전에 먹은 아이스크림 가격과 같다. ^^

울산에 멀티플랙스가 새로 생기면서 가격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본 영화

요근래 그리 잼난 영화들이 없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몇 가지

 

1. 한국 영화 시장이 정말 커졌구나

 

'혈의 누'는 아주 장르적인 영화다.

미스터리물, 시대극, 그리고 양식화된 영상

시대극이지만 현대적인 미스터리물의 잡종교배 장르라고 보이는데,

장르의 잡종교배가 가능하다는 것은 기존 장르영화에 대한 관객의 인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영화의 장르에 대한 관객의 인식이 없으면(장르라는 구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안 하고와는 무관하게) 잡종교배영화가 상업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다.

이는 관객이 기간 상업영화에 대한 무단한 훈련(엄청난 영화의 양)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울산에서 멀티플랙스가 자꾸 생겨나서 가격 경쟁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멀티플랙스가 없었다면, 그 막대한 영화의 양을 감당할 수 있었겠어..

한국영화(시장)의 중흥기가 맞기는 하구나

 

2. 끝까지 밀어부치는 감독의 뚝심

 

'번지점프를 하다'의 감독이란다.(이름이 뭐 더라)

이 영화개봉할 때 시나리오에 대한 평이 워낙 좋아서,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에 비하여 비교적 스폿을 적게 받았었다. 근데 그 작가가 다음 영화는 대략 낭패였다.(제목도 기억 안남)

'혈의 누'를 보니까 '번지점프를 하다'가 다시 보이더라.

'번지점프..'가 시나리오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의 강약조절은 한 것은 감독이다. 평이하지 않은 소재(환생과 우회한 동성애 '코드')로 관객에게 보편적 감성을 주는 것은 (세심한 극 설정도 한 몫하지만) 최종적으로 요리하는 감독의 뚝심에 달려있다. 감독의 뚝심이 부족하면 영화는 혼란스럽거나, 종반에 가서 맥빠져 버린다 . 감독의 일관된 뚝심이 있었기에 '번지점프..'에서 시나리오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혈의 누'는 시나리오보다는 연출의 힘이 눈에 뛰는 영화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찬찬히 되씹어 보면,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치에서 맴도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설정이 무엇인지 싱겁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영화의 팽팽한 긴장감과 등장인물의 심리에 따라 관객에게 속임수(?)를 던질만큼 연출의 힘이 충만했다. 만약 기술과 능력은 있지만 뚝심이 부족한 감독이었다면, 영화 중반까지 어느 정도 먹어줬더라도 종반에는 김빠졌을게다.

 

특히나 그 잔인한 장면을 볼거리로 그치지 않고, 극 전개속에 녹여내는 힘은 대단했다. 대게 선정적인 볼거리가 있을 때, 그 볼거리에 영화가 끌려가거나, 그 볼거리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상업영화에서는 일반적이다. 특히 아직 장르적 토양이 완성되지 않은 한국영화에서 선정적 볼거리의 유혹을 떨쳐내고, 연출의 강약을 조절하는 힘은 감독의 뚝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감독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군

 

3. 캐스팅이 적절했다.

물론 '지성'의 말도 안되는 연기, 2% 부족한 차승원(그러나 극에 잘 맞춘 연기를 해냈다)

고러케만 보면 적절한 캐스팅이 아닐 수 있으나

 

이건 상업영화다.

즉 배우의 상업성과 이미지의 힘을 빼고 캐스팅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한 설정이 아니란 것

 

일단 차승원

영화에서 잡종교배 장르의 영화 느낌을 준 것은 차승원의 공로가 크다.

물론 2%정도 부족한 연기일 수 있으나, 기존에 그가 가졌던 (우끼고 한량같은)이미지가 전복되면서 영화에 긴장감을 더 해주었고, 연기자체가 영화를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상업배우로서 훌륭했다.

시대극이기는 현대적 장르인 미스테리 영화에서 차승원의 마스크는 충돌의 이미지에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봉건시대와 자본주의를 넘어가는 시대의 간극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데, 차승원의 현대적 마스크와 몸 그리고 어투를 활용한 그의 연기는 시대적 간극을 표현하는데 적절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는 흥행보증수표 배우아닌가

 

지성

연기에 대해서는 그에게 말해서 무엇하랴 -_- ;;

그러나 그의 이름값이 있기에, 별로 한 것도 없이 갸가 어디에서던 사고를 칠 것이라는 예상을 관객에게 던져주었다. 그 정도면 자기 역활은 한게다. 그리고 화면빨 받자너, 힘이 없어서 그러제.

 

박용우

그레이트!!! 05년 배우의 재발견!!!

 

4. 상업영화  대안영화

 

혈의 누는 상업영화다.

그리고 대빵 잼나게 봤다.

요새 잼나게 본 영화가 뭔가 생각해 보니, 반지의 제왕 시리즈, 올드 보이, 그리고 여자 정혜정도

여자 정혜는 대규모 상업영화가 아니어서 제외하고

잼난 영화들이 다 상업영화라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상업영화들이 영화 형식적 실험을 하고, 새로운 발상을 하고 그러는데

대안영화(독립영화, 예술영화, 소규모 다큐 등 자의적 구분 -_-)에서 새로운 힘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거다. 내가 대안영화를 보는 것에 태만하는 것도 있지만,(서울에서 울산으로 오다보니 상업영화 아니면 보기가 어려운 현실적 제약도 있고) 그 동안 본 대안영화들이 다 고만고만했다. 다들 재미있으면 머리를 '탁' 치는 뭔가가 없고, 뭔가 있는 것같으면 재미가 별로 없고, 그 수준에서 왔다갔다한다.

 

비록 소수의 대중일지라도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이 상업영화가 아니라 대안영화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상업영화는 주류이기에 영화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상업영화의 역활과 위치를 부정지는 않지만,  영화를 바꾼 것은 대안영화들이었지 상업영화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쉽다. 마치 주류질서에 편입된 운동은 현실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주류질서를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업영화의 (질적, 양적, 인적)강세를 보면서, 운동의 다른 현실을 보는 것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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