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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님의 [겁쟁이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렸다. ] 에 관련된 글.
사실은 간단하게 댓글을 달았던 것 뿐인데 졸지에 자본가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 처음엔 어이없고 나중엔 얼굴이 달아올라 그냥 대꾸 안 하기엔 머시기한 것이 되어 부렀다. -_-;;
그저 댓글로 쓰다 보니 너무나 길어져 괜스레 무화과님 블로그에 실례를 범할 듯 하여 댓글 쓰던 걸 걍 내 블로그로 가져와 버렸다.
참고로 어젯 밤에 쓰던 건데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진보넷 블로그 안 들어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 광화문은 열라 싸우고 있었다. -_-;;
아, 어쨌든 간만에 블질 적응 안 된다. -_-;;
============
조커//
위의 제 댓글은 자본가에 대항한 투쟁에서 물리력(폭력적 수단)은 불가피하게 동원될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올린 것인데 너무 간단하게 쓴 나머지 자본가가 부럽다고 읽혔다면 그건 머 저의 탓이겠죠. -_-;;
함에도 저의 글에서(제가 보기엔 그렇게 읽힐 소지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ㅠ) 자본가가 부럽다는 맥락을 '추측'하시다니 님의 추측이 저는 다소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어쨌든 비폭력을 대안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님은 폭력 그 자체는 이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폭력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물리력은 투쟁에 불가피한 요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구요.
여기서 후자의 폭력은 자본가정권의 손에 들려 있는 폭력적 수단(모든 영역에서의 법과 그 집행체계 등)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항하는 우리의 모든 수단, 즉 선전과 선동 그리고 조직의 영역을 포함하는 가운데 ‘일부’를 말하겠지요.
그것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압축하는 것은 범주가 좀 맞지 않은 듯 합니다.
함에도 저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폭력의 개념은 누가 그 수단을 틀어쥐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님에 대한 댓글이라기 보다 제가 생각하는 폭력을 다시 이야기하면 뭐 이렇습니다.
촛불집회가 두달이 다 되도록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일단 가진 놈들의 정권이 일방적으로(전 이걸 “폭력적으로”으로 쓰고 싶습니다만) 정책(쇠고기,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을 입안/결정(혹은 시도)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가 이번 한 번뿐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0년 전 노동법 날치기도 그랬고, 그 여파로 닥친 대규모 구조조정도 그랬고, 온갖 FTA체결도 그랬고, 모두 다 가진 자들의 법으로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과 정책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취업 걱정에 어깨 쳐진 20대와 실업자들, 망해가는 중산층들은 거의 태반이 넘는 지경에까지 와 있죠.
전 이러한 것이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가진 자들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에 어떻게 무슨 대응을 했나 등의 문제는 일단 논외로 칩시다요)
그들의 폭력은 반드시 합법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틀어 쥐고 있는 자들은 결코 폭력과 합법을 혼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마음껏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에 하나, 합법적이라 우겨댔던 것이 불법이라 판정이 된다 한들, 그 법은 결코 가지지 못한 자들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 이 곳의 법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법적이라는 말은 투쟁에서 불필요합니다.
제가 노랫말(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 불법으로 투쟁하리라~)을 적었던 것은 우리의 싸움이 아무리 저들이 노래하는 합법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더라도 그들을 그것을 결코 우리 싸움을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므로 우리가 합법을 운운하며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합법적 영역의 투쟁이 그렇지 않지만 합법의 영역에 굳이 우리를 가둔다면 투쟁은 체제 내에 갇혀 버릴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그건 결국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이라기 보다 지배계급과 협조하는 수준에서 마감되는 싸움이 될 여지가 커지게 됩니다.
하기에 저는 일상에서 자행되는 우리에 대한 그들의 폭력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그래서, 합법은 투쟁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저항은 '적'들에겐 언제나 불법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폭력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 문제가 남을 테지요.
그것은 결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지 못함은 누구라도 부정하지 못할 터.
현재의 촛불집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저로서는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여지껏 그런 폭력들에 노출되어 왔던 개인들의 불만이 ‘쇠고기’라는 사안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쇠고기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여러 가지 현안의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말입니다.
잠깐 개인적 경험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촛불집회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평화롭고 자유로운, 축제 분위기의 집회가 "합법적 영역에서" 정권의 일방적 정책에 제동을 걸고 전면 재협상의 성과를 얻어 온다면 그야 말로 “즐거고 기쁜 승리”겠다라고.
하지만 저에게 고민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것’만으로’ 가능할까 였고 동시에 가진 자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싸움의 성과가 모든 영역에서 어떤 형태로 남을 지 말입니다.
제가 폭력적 수단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첫번째 고민으로부터 였습니다.
싸움의 과정에서 비폭력이냐 폭력이냐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논리가 아니라, 여러가지 싸움의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지요.
저는 도로를 점거하고 전경차를 끄집어 내고 청와대에 진출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폭력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가진 자들은 그것을 불법을 거론하며 폭력이라고 명명하지요.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폭력적입니다.”
여대생의 머리가 군홧발에 짓이겨지고 殺수차에 부상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끝까지 비폭력을 외쳐야 할까, 분노하는 사람들 앞에서 분노하지 말고 참자라고 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이런 것이죠. 일방적 구조조정에 나와 나의 동료가 해고되고 노조활동을 할라치면, 혹은 확대될라치면 식칼테러에 집단구타, 방화는 기본에 온갖 참주선동을 일삼는 살인적 테러 앞에 “저들의 폭력에 휘둘리지 말고 비폭력 저항을 조직하자”라고 전, 절대! 말 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똑같이 우리도 식칼 테러하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가진 자들의 권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따라서 그들의 목줄을 죄는 모든 투쟁의 방법과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항상 “진격~앞으로!”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 때에 따라 후퇴하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겠지요.
그러나 불붙은 싸움 앞에 싸움을 자제하자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아~조커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그냥 저의 썰을 풀고 있을 뿐. ㅠ)
혹여, 아직 싸움이 불붙지 않았다고 해서 폭력적 수단(공장점거와 라인중단, 파업을 포함한 모두)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려, 그것이 곧 대중투쟁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전 싸움은 곧 물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물리력은 말 그래도 물리적 힘의 행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선전과 선동, 조직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것을 말합니다.
저항을 만들 때 우리의 '적'들은 그것이 하나의 집단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시 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의 집단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집단의 성격을 협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집단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협조적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교육과 선전/선동(회사에 충성을 다하게 하기 위한)을 아끼지 않죠.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우리의 교육과 선전/선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영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항을 위한 조직과 계획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고 집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저항할 수 있습니다."
저의 미천한 경험에 근거하면 가진 자들은 개인의 불만을 문제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불만이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론을 동원해 진실을 왜곡한 이데올로기를 유표하기도 하고 합법이라는 미명 하에 폭력적수단으로 싸움을 개박살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불만을 넘어설 수 없을 때, 불만의 응집체로서의 조직과 그 모든 양식들을 자신의 날개 밑으로 포섭하기에 급급해 합니다.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은, 곧 계급적 자각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은 바로 자본가 계급, 가진 자들과 그 정권이지요.
전 최근까지 대한민국에서(대한민국을 넘어 자본주의에서) 가장 계급적인 부대는 바로 자본가 계급이라고 말해오곤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부러워서가 절대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목도할 때 우리가 그만큼 계급적이지도 원칙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비꼬아 말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겨누는 화살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 우리의 행동방침은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이구요.
전, 그런 가운데 폭력적 수단을 우리의 싸움에서 미리 배제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열라 졸립니다. ㅠ
두번째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써야 겠습니다.
너무 두서없이 늘어놓은 듯 합니다. 지금 정신도 제 정신이 아닌데 말입니다요.
여기서 줄여야겠습니다. 졸립니다. ㅠ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올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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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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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전히 폭력으로 연결되는 논리가 부재합니다. 푸념을 더한다고 해서 폭력이 동원돼야 할 근거가 확고해지는 건 아닙니다. 푸념이 불가피함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죠.특히 "대중 투쟁의 기폭제"라는 것은 현실과는 정반대에 놓인 이야기입니다. 정부의 폭력이 거셌을 때 촛불 집회에 대한 대중 지지도와 참여도가 상승했고, 촛불 집회가 폭력적 양상을 띈 이후 대중 지지도와 참여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장군, 엥겔스도 바리케이트를 이용한 전투에 대해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바램과 상상을 넘어선 현실 분석과 대응입니다.
폭력에 대한 개념이 글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파업이 폭력인가요? 만약 파업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폭력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제가 폭력과 불법의 구분을 언급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물리력은 명백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선전, 선동으로 확대하셨는데, 이건 아니죠. 폭력이란 개념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치더라도 물리력은 너무 명백한 걸 너무 확장하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평범한 소통이 불가능해집니다.
"X는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라는 명제는 그 자체로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만약 별도의 근거 없이 이 명제를 수용하게 되면, 뇌물도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고, 인질극도, 사기극도, 거짓말도, 독재도, 파시즘도, 광기도, 글에서 부정하신 식칼 테러도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도 자본가가 되면 되는데 그건 왜 미리 배제하셨나요? 우리에겐 분명히 X와 Y를 가르는 기준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데, 폭력에 대해서 논할 때는 갑자기 그런 기준을 무시하는 게 너무 어색합니다.
"싸움", 즉 "싸운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 기량을 겨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패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겨룰 때 승리를 취하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에게 유리한 룰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게임 방식을 결정하는 거죠. 폭력이란 불리한 방식으로는 우리의 가능성이 철저히 봉쇄됩니다.
폭력을 어떤 당위에 따라 미리 배제하는 게 아닙니다. 폭력은 대단히 비효과적이며 자기 파괴적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폭력으로 거둔 성과가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보고 싶습니다. 최근 촛불 집회에서 보여준 비폭력 투쟁을 넘어서는 성과가 있었나요?
비폭력은 분노를 참으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휘두르는 폭력에 몸을 내어주자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비폭력은 대안적 힘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벽을 주먹으로 때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단세포적인 반응을 넘어서 실질적 효과를 끌어내자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실질적 효과를 냈습니다.
적을 강조하는 것은 그저 폭력에 대한 논의를 무마하려는 시도일뿐 아무 것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연민을 파괴한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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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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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푸념인지 말해주시겠습니까?전 님의 그 태도가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에게 투정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
괜한 감정적 발언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저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다음 아고라에 옮겨 보세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거긴 정말 촛불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많자나요? ^^
그리고 대중적 참여가 떨어진 것은 정부가 재협상을 여지에 두는 듯 하며 제스처를 취한 후 부터였습니다.
촛불집회 나가보셨다면 아시지 않나요? ^^
폭력적 시위로부터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떨어진 것이 “절대” 아니었죠.
외려 고시가 강행된 이후 27일, 28일 집회가 다시 불붙은 것이었습니다.
고시 강행이 대중의 분노를 추켜세운 것이었고 분노가 외화된 것이 28일 투쟁이었습니다.
대중적 분노가 극에 달하고 그것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때 경찰은 자신의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요? ^^
뭐, 뒤통수 치는 대책위도 간부랍시고 구속/수배하지 않나, 80년대식 진압을 고려중이다,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겠다, 형광액을 섞어서 주동자를 색출하겠다, 망발을 늘어놓지 않나, 정권과 경찰의 행태는 이미 겪을 대로 겪어서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전 님이 폭력과 물리력이라는 개념을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평화로운 시기’에 폭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평화라는 것은 누가 누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죠. 평화와 자유, 질서는 누가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갑자기 왜 폭력을 말하다고 이 말을 하느냐구요?
사실 비폭력 주의자들이 평화를 많이 사랑하더라구요.
그러나 저는 평화와 질서라는 개념을 너무나도 싫어합니다.
그 어느 것도 정치적으로--자본가들의 입장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이 없거든요.
그런 개념은 누구보다도 자본가들--지배계급이 퍼뜨리고 싶어하는 개념이거든요. ^^
폭력은 누가 수단을 틀어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발 개념에만 연연해 마시고 그 개념을 사용하는 주체를 먼저 돌아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전 촛불집회에서 참 여러가지 감정이 드는데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투쟁이 가장 격렬해지는 시기 끝까지 깃발을 지킬 부대가 누구일지입니다.
그것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싸움에서 승리를 확보하겠다는 원칙을 지켜내는 문제입니다.
그 와중에 폭력이 자기 파괴적이라고 말하면서 비폭력만을 주장하는 것 또한 또다른 편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맑스 아저씨는 프랑스 혁명 이전에 혁명에 대해 부정이었다죠.
하지만 근로 인민이 들고 일어서는 순간 그것에 대해 무조건 헌신할 것을 주문했다죠.
레닌 아저씨도 그랬죠.
혁명에 대해, 혹은 투쟁에 대해 이러저러한 행동방침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대중의 창발성과 자발성을 미리 행동방침으로 묶어둘 필요가 없다고.
(뭐, 읽은지 오래 되어서리 문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ㅋ)
아무래도 폭력이라는 주제로서는 님과 저에게 합의의 지점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현실로서 존재했던 폭력과 그로서 자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폭력에 대한 개념은 님이 비폭력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뭐,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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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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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이라고 생각되는 문장을 하나씩 옮기다가 말았습니다. 어짜피 푸념을 하는 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근거를 계속 제시하지 않으면서 푸념을 근거인 것처럼 사용하는 게 중간 고리 없이 논리적 비약을 만들어내는 걸 지적하는 거였으니까요.아고라 운운하는 건 좀 웃깁니다. 언제부터 아고라가 판단 근거가 됐죠? 아고라에서도 충분히 폭력/비폭력 논쟁 있습니다. 혹시 아고라 안 가보시나요? 마치 아고라가 통일된 하나의 주장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고 계시군요. 게다가 아고라로 자발적 참여자를 말하시는 건, 시위대의 구성을 너무 편향적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대중 지지도에 대한 것은 설문조사라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있는데 그 결과를 무시하고 믿고 싶은 부분으로 파악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왜 변질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겠습니까? 몇몇 언론이 후려치는 게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오고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제 시국미사는 굉장한 전환점 중 하나죠.)
집회 현장에서 보이는 것은 계속적으로 전위 그룹을 만들려는 시도였지,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시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단적으로 몇 가지 징후가 있습니다. 자유발언 등이 말라간다거나, 이명박 정부를 타격하는 대신 경찰과 말싸움이나 하고 있거나, 김밥부대 등의 시민 연대 활동이 단절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김밥부대가 시위대로부터 외면받은 후 다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6월 27일보다는 6월 25일이 큰 기점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27, 28일은 고시의 영향보다는 25일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죠. 특히 28일은 시위대를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뜨렸습니다. 혹시 28일 시위가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29일 아침에 집회가 어떤 식으로 종료됐는지 기억하시나요?
오히려 주목해야 할 날은 29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ush님의 말씀대로라면 계속해서 불타올라야 할 분노의 외화가 왜 이 날엔 다르게 나타났을까요? 집회 현장에 쭉 있었다면 아시겠지만, 27일, 28일과 29일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촛불 집회 초기의 형태와 최근 형태가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났죠. 게릴라성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죠.
여담이지만, 27일을 기점으로 비폭력 행동도 더욱 강화됩니다. 28일부터 더욱 강화된 비폭력 캠페인이 시작되고, 30일 시국미사 때는 아예 판도를 바꿀 정도가 됐죠.
폭력과 물리력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엄밀하게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개념들을 무차별적으로 확장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개념이 되고 맙니다. 심지어 대항 폭력으로 흡수하는 순간에 폭력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이 돼 언급할 가치가 없어지는 거죠. 우리가 호흡이라는 것에 대해 심도있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겠죠.
왜 선전, 선동이라는 멀쩡한 말을 놔두고 그걸 모두 물리력에 포함시킵니까? 이런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강제로 지문날인하게 하는 것, 이거 폭력이죠? 청년들을 강제로 군인으로 만드는 것, 이거 폭력이죠? 폭력이나 물리력은 명백히 쓸 수 있는 곳에만 사용하면 되는 겁니다. 굳이 다른데 적용 안 해도 됩니다.
저는, 아니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저해하는 정권과 싸우고 있는 겁니다. 평화를 자본가들이 퍼뜨린다구요? 대체 어느 자본가가 평화를 말하고 실천합니까? 이건희가 평화를 말하나요? 조갑제 같은 애들이 평화 이야기하는 거 봤습니까? 이명박이 평화를 주장합니까? 명백히 아닌 것은 아닌 겁니다. 어느 지배계급이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 사례를 보고 싶습니다.
폭력이란 개념이 마치 지배계급에 의해 정의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건 가상에 불과합니다. A가 B를 때린다. 이게 폭력인지 아닌지가 지배계급에 의해 결정됩니까? 명백한 것에서 눈을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폭력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주체는 지배계급이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심지어 폭력 투쟁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실 때 그 폭력이란 건 누가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것조차도 지배계급이 사사한 겁니까?
이 싸움을 끝까지 지켜낼 사람들은 시민입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건 시민입니다. 시민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승리해야 하는 겁니까? 폭력을 휘두르는 애들만 끝까지 남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폭력이 승리 조건일 것 같습니까? 그랬던 사례가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습니다. 간단합니다. 정말로 괜찮은 폭력 사례가 있다면 그것을 제시하면 됩니다.
맑스 이야기는 프랑스 대혁명이 아니라 파리 꼬뮌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맑스가 파리 꼬뮌에서 폭력에 주목했던가요? 맑스가 주목한 것은 정부와 다른 개념의 꼬뮌 정치였죠. 이게 바로 공산당선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 아닙니까. 맑스는 폭력을 옹호하는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레닌은 맑스를 대단히 잘못 읽은 케이스로 보기 때문에 별로...
비폭력 행동은 폭력이란 단선적 행동으로부터 다양한 대안을 찾는 활동입니다. 폭력에 몰두하면 "투쟁이 가장 격렬해지는 시기 끝까지"라는 단 하나의 상황만 그려내게 되죠. 비폭력은 일상이며, 일상은 제한함이 없습니다. 어떤 행동방침과는 거리가 멀죠.
기본적으로 논쟁의 룰을 하나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논쟁은 합의를 찾는 게 아닙니다. 만약 합의를 찾으려고 한다면 왜 100분 토론 같은 걸 합니까? 거기서 합의점이 나오던가요?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합의를 하던가요? 그냥 거기에서 오간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입장을 정하죠?
논쟁은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활동입니다. 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주장들이 드러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활동이죠.
흔들리던지 안 흔들리던지 사실 그런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논리적 비약을 메꿀 수 있는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 제시하시길 기다릴 뿐입니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관념적 이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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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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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지금은 제가 출근해야 하는지라 참세상 기사 하나 읽어보시고.참세상 기사도 완전 동의는 아니지만 얼추 저의 문제의식과 비슷해서요.
퇴근 후 댓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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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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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님 GG치시죠. 사고력과 깊이에서 딸리시는 듯.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