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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삼양목장의 풍력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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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삼양목장의 풍력발전기

구염둥이|2014-12-17|조회 345

 
 
 

 

 

대관령 삼양목장 정상에 풍력발전기가 장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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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정명석 목사님의 설교말씀 올려봅니다... 만족한 삶

jms[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만족한 삶

2014-12-17|조회 1072

 

 

 
 

 

 

 
 

 

[말 씀] 정명석 목사

 



사람은 누구든지 만족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면 그 날 일은 그날에 충성스럽게 잘 해야 됩니다.

그것이 성공하는 비법 중에 하나입니다. 
일도 나름이겠지만 모두 충성스럽게 열심히 그날 일을 그 날 해나갈 때

인생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일을 그 날에 하기가 참 힘듭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날의 일을 하려면 괴로움이 옵니다. 
모두 하게 되면 괴로움이 오지만,

막상 그 괴로움을 밀고 나가면 역시 그날 일을 다 할 수 있는 날이 됩니다.


그날에 만족한 하루가 되면 보람을 느끼며

한 겨울이 지나도록 하늘 앞에 감격하고, 보람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날 일을 다 할 때 만족한 삶을 살 수 있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날의 일이 있습니다. 그 날의 일은 그 날 해야 되고,

게을리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일이란 것은 서둘러야 됩니다.

 

결국적으로 보면 마지막에 종지부를 찍을 때, 항상 보면 시간에 쫓겨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은 서두르고 볼 것입니다.

서두르되, 초근초근하게 침착성 있게 해야 합니다. 

일이라는 것은 손에 잡혔을 때 해야 됩니다. 
그날 일을 그날 하라는 것은 닥쳤을 때, 시간적인 여유,

시간적인 기회, 찬스, 카이로스, 그 순간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은 할 때 해야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은 그때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부딪혔을 때, 그 순간, 그때, 그 찰나가 기회이고 찬스(chance)입니다. 

모두 이 말씀에 따라서 반드시 그날 일을 그날 꼭 할 수 있는 처세를 가져

주님 안에서 늘 만족하는 삶 살기를 축복합니다.

 

 


*크로노스 – 헬라어(물리적 시간)
헬라어(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개가 있다.

그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이다.

크로노스는 그리스의 철학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 이름 자체가 시간이라는 뜻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 (太初神) 중의 하나이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며,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시간 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카이로스 – 헬라어(논리적 시간)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 불리었다.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어떤 사람이 느끼는 24시간의 속도와

다른 사람이 느끼는 24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 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이의 한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든,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그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순간,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되는 것이다 .

 

끊임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관리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만남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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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의 고집 - 푸세식과 수세식

 

 

 

우리 외갓집은 좀 사는 집이었다. 
엄마 말로는 보릿고개에도 아궁이에 연기가 보이는 것은 외갓집뿐이었다고 한다. 
사랑방 다락에 올라가면 자루마다 천원 지폐가 가득하였다고 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초가집을 헐고 판잣집으로 바꾼 것도 외갓집이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10년 전에도 외갓집은 엄마가 태어났을 무렵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변 이웃들이 양옥을 올리고 인터넷을 설치할 때도 말이다.
지붕을 신식 기와로 꾸미고 흙벽을 헐어 시멘트 벽돌로 채웠다고 해도, 
집 구조는 초가집 구조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안방에서 건넛방으로 가려면 개방된 마루를 지나가야 했다. 
여름이면 산에서 내려온 모기떼에 뜯기고 겨울에는 얼음 바람에 살이 뜯겼다. 
부엌도 실외에 있어 상에 음식을 가득 차리고 문턱을 몇 번이나 넘어가야 하는지 모른다. 
사랑방과 집 사이에 외양간이 있는데 제때 똥을 치우지 않으면 냄새가 온 집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외갓집 화장실은 사랑방과 외양간 사이 안쪽에 깊이 숨어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간신히 놓인 나무판자 두 개, 쇠 깡통 위에 쭈그러져 박혀 있는 때 묻은 두루마리 휴지,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
밤에는 발이 빠질까 봐 걱정이었고, 낮엔 두 눈을 뜨고 모든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이었다. 사실, 밤보다 낮이 더 두려웠다. 

이 모든 불편함은 외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이었다. 
화장실을 집 안에 들일 수 없다는 그 고집,
서울에 사는 아들, 딸집에서 분명 수세식 화장실을 쓰면서 아셨을 텐데도
그 집은 그 집, 내 집은 내 집이었다. 
마을에서 제일 잘사는 데도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에서 사는 셈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제 사람 살만한 집이 되려나 했더니, 
5년이 지나서야 집안에 거실이 나고 다시 3년이 지나서야 화장실이 집 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만큼이나 기존 생활에 익숙했던 외삼촌의 고집이었으리라.
아마도 외숙모와 사촌 형제들이 달달 볶지 않았다면 더 늦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마루에서 잠옷 차림으로 누워 잠을 주무시고
볼일이 생기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집안 내 화장실을 잘 쓰시고 계신다.  

푸세식 화장실에 만족하는 자는 수세식 화장실을 얻을 수 없고,
초가집에 만족하는 자는 양옥집을 얻을 수가 없다.

나는 어디에 만족하고 있을까?
나야말로 옛 습관, 옛 고집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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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중에서...- 자기에게 보화다.

자기에게 보화이다.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 축복이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원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원하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원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고로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 복이요,,, 보화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나의 것을 돌아보자.

복인지, 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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