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2006/01/24 00:27 Tags »

나는야 폴짝

 

줄이 돌아간다 줄 돌리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잘도 도는 줄이 허공을 휘가르며 양배추의 뻑뻑한 살결을 잘도 썰어댄다 나 혼자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두 살 먹은 내가 개똥 주워 먹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다섯 살 먹은 내가 아빠 밥그릇에다 보리차 같은 오줌 질질 싸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아홉 살 먹은 내가 팬티 벗긴 손모가지 꽉 물어 뜯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세 살 먹은 내가 빨아줘 빨아주라 제 자지를 꺼내 흔드는 복순이 할아버지한테 침 퉤 뱉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여섯 살 먹은 내가 본드 빨고 토악질해대는 친구의 뜨끈뜨끈한 녹색 위액 교복 치마로 닦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아홉 살 먹은 내가 국어선생이 두 주먹에 날려버린 금 씌운 어금니 두 대 찾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두 살 먹은 내가 두 번째 애 떼러 간 동생 대신 산부인과에서 다리 벌리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네 살 먹은 내가 나를 걷어찬 애인과 그 애인의 애인과 셋이서 나란히 엘리베이터 타 오르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여덟 살 먹은 나 혼자 폴짝 넘고 있었는데 줄 돌리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잘도 도는 줄이 돌고 돌수록 썰면 썰수록 풍성해지는 양배추처럼 도마 위로 넘쳐나는 쭈글쭈글한 내 그림자들이 겹겹이 엉킨 발로 폴 짝 폴 짝 줄 넘어가며 입 속의 혀 쭉쭉 뽑아 길고 더 길게 줄을 잇대나간다

 

- 김민정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2005.5, 열림원

 

 

시집에는 '폴짝'에 윗 강조점이 붙어있다(여기서 붙일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ㅅ;)

어느 신문에선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마치 돌풍을 일으키는 것처럼 몇 권을 소개했길래, 지나던 서점에 들어가 즉석에서 구입했다

저 시인, 76년생에다가 얼굴도 예쁜데(무슨 상관?) 시는 심하게 엽기적이다

 

 블로그도 찾아냈다~ 냐하하~ 초미녀시다

 

조금 인용해 보자면,

 

가나안 정육점 앞에서 외팔이 소년은 제 한 팔을 갈아먹은 고기 써는 기계에 내 한다리를 쑤셔넣고는.... 불어난 소매 끝에 갈고리를 끼워 내 목둘레를 둘러 긋기 시작하며...덜렁덜렁해진 모가지에서 빨간 물감에 절인 빗물 같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선생님은 내 교복블라우스 앞가슴 새에 입술을 부벼 넣더니 단추 하나를 먹어버린다 단추를 다 먹어치운 선생님이 내 젖꼭지를 꼬집어 뜯더니 동글동글 반죽하기 시작한다...대머리 물미역 장수는 제 성기에 물미역을 둘둘 감아 내 입 속에 밀어 넣는다...연필을 꺼내 물미역 장수의 성기를 꾸욱 하고...구멍난 성기를 면도칼로 짤라 신주머니에 넣으며...

(엄마, 학교다녀오겠습니다 - 나는 안 닮고 나를 닮은 검은 나나들3)

 

롤케이크에 박힌 바닐라맛 생크림처럼 내 뼈가 노골노골해지고 있었던걸료 맛볼 수 있었어요 거무튀튀한 토사물 속에서꼬물거리던 애벌레들 건져 씹어보면 비앙카향 피죤 냄새가 났던걸요 항문을 뚫고 들어온 쇠꼭지 달린 팽이가 지금 막 내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중이니까요....목말라 목말라 피 좀 줘 바싹 졸은 오줌보로 딸기잼 같은 내 생리혈 받아 입 축이던 간밤의 일도....내가 잡히면 휴대용 낫으로 난소 두 개를 캐내 꿀이 흐르는 당신 젖퉁이로 선물할게요

(아멘!)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를 국자로 떠와 차례차례 변기에 담근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잠옷을 벗기고 속옷을 벗기고 바리깡으로 몸에 난 모든 털을 깎는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를 깨끗이 물에 헹구고 탈수기에 넣어 탈탈 말린다 이미죽은내가 쇠도끼로 엄마아빠의 머리뼈와 종지뼈를 쳐내 그걸 고아 프림색 국물을 우려낸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살을 조근조근 손톱깎이로 뜯어 홈을 판다 (중략) 납작납작 주물러서 국솥에 떨어뜨린다 이미죽은내가 깎아놓은 털에 말간 뇌수액을 붓고 끈적끈적한 혈장을 버무려 양념장을 만든다(기분이 살짝 나빠지려고 해서 후략)

(살수제비 끓이는 아이)

 

 

베끼느라 힘들었다 어찌나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은지 그만...

엽기 코드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남들은 이 시집을 보다가 토악질을 한다고 하더라만, 흥분도 불쾌감도 못 느끼는 나는 이제 늙은거야???

어떻게 저 시인의 머릿속에 그렇게나 많은 끔찍한 이미지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저렇게나 무심하게 쏟아낼수 있는지 신기했을 따름.

 

저토록 미친듯이 난도질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건 대체 뭘까?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볼때 대체 저런 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고?(난 단순히 시에 대해 모자란 것일지도...OTL)

해석을 덧붙인 해설자에 따르면(역시 시인), "그녀는 우리들 누구나의 이야기를 몰고 두구둑 두구둑 입으로 말을 달려와 우리들 잠든 심장의 세탁기를 찔러대"고 "말도로르의 노래를 크라잉넛의 창법으로 소화"하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펑키적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운 화법으로 노래함으로써 오히려 황량한 내면의 풍경을 당차게 횡단한다"고 하시니, 알쏭달쏭하지만 그런가보다, 할 밖에.

 

게다가 한 지인이 저 시집을 몇 장 들쳐보더니, "이거, '귀여니'같은 종류야?"라고...

완전히 맘 상했음

역시 시는 안되겠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1/24 00:27 2006/01/24 00:27

Trackback » https://blog.jinbo.net/narmi/trackback/12

  1. 나름 2006/01/24 00:4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곳저곳 검색해보니, 나름대로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온 시집이었던 듯. 정호승 시인이 탄식하며 "이렇게까지 써야 하겠냐"고 했다고 하니, 삽시간에 호감지수 상승

  2. fsevx 2007/01/07 12:5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하하- 거참 강한 포스가 느껴지는 시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