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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생산/재생산'의 전환을 고민하는 연속 간담회 세 번째 자리_“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시간변경)

 
 
 
참여 신청  http://me2.do/GDdwwZlT
문의 02-593-5910 glocal.activism@gmail.com Facebook.com/NGASF Twitter @NGASF
 
 
‘노동'과 '생산/재생산'의 전환을 고민하는 연속 간담회 <무슨 일 하세요?>
세 번째 자리_“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 
 

지금까지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노동 구조에서 어떤 위계화와 배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함께 경험과 문제의식을 나누고 이성애 가족중심, 성별이분법, 정상성의 기준이 어떻게 생산과 재생산의 가치 위계를 나누고, 재생산의 주체들을 위계화하거나 통제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 번째 간담회 <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 ‘정상성’의 기준에 따른 ‘몸의 위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어떤 몸이 정상적인 몸으로, 또 어떤 몸이 비정상적인 몸으로 구획되고 있는지, 비정상으로 규정된 몸들에 어떤 자리가 주어지는지 ― 혹은 그 몸들에게 어떤 자리가 금지되는지 ― 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장애인권운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겪는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환경의 문제가 아닌 신체적 결핍의 문제로 이야기됩니다. 한국에서 나이는 하나의 권력이지만, 동시에 늙음은 몸이, 그리고 노동을 비롯한 그 몸의 활동이 쓸모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묘사됩니다. 성별이분법/성별규범을 벗어나는 몸들 또한 '문제적 몸'들입니다.

이 몸들에 대해 질문해 보고자 합니다. 결핍된 몸, 고장난 몸으로서만 인식되는 장애인의 몸은 어떤 위치에 있나요? 노년의 몸과 트랜스젠더/섹슈얼의 몸은 질병 혹은 장애를 가진 몸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요? 이성애 규범과 성별 이분법 기준에서 어긋나는 몸들, 나이가 들어가는 몸은 노동, 생산의 구조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나요? 이 몸들에게 허용되고 금지되는 노동들, 그 노동들이 전체 노동/생산에서 갖는 의미와 위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야기꺼리들] 

-장애 여부, 성(섹스/젠더/섹슈얼리티), 연령에 따른 몸의 위계화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노동과 노동현장은 어떻게 성별화되고 있는가?

-어떤 몸에게 어떤 노동이 허용되는가?

-몸의 위계화에 따른 노동의 위계화, 노동의 위계화에 따른 몸의 위계화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노동현장이 요구하는 몸은 어떤 몸인가?

-노동현장의 구성과 몸들의 위계화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임금노동/임신/출산/양육 등의 과정을 수행해 온 노년기 여성이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는 임금노동/가사노동/양육은 어떻게 (비)가치화되고 있는가?

 

○ 일시 : 11월 6일 (금) 저녁 7시 반 * 시간이 변경되었습니다.
   장소 :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 사회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패널

나영정 (SOGI 법정책연구회, 장애여성공감)

루인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향후 간담회 진행 일정] 
 
네 번째 주제_여성 노동 : 여성-노동자의 생산과 노동, 현장과 쟁점 
다섯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재구성과 성/노동
여섯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재구성과 청소년
일곱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재구성과 노동운동
여덟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지구지역적 이동과 국경
아홉 번째 주제_생태/환경 운동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노동, 생산/재생산
열 번째 주제_종합토론 : 노동, 생산/재생산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이 연속간담회에 대해]
 
노동, 생산/재생산의 개념과 경계를 다시 고민해보는 자리
 
'노동'과 '생산/재생산'은 지금까지 가치와 위계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를 잡아 왔습니다. 
 
우리는 ‘노동’과 ‘생산/재생산’에 절대적인 가치가 부여되고, 이를 잘 수행하는 이들만이 시민으로서의 권리, 주체될 권리를 가진다고 전제되는 사회, 엄연히 사회적인 ‘노동’과 ‘생산/재생산’을 하고 있음에도 누군가의 그 일들은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않거나 그저 자연스럽고 부차적인 일, 또는 일종의 당연한 의무나 도리로만 여겨지는 사회, ‘노동’이나 ‘생산/재생산’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전제된 선을 그어놓고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는 사회, 그리고 그것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왜 ‘해고는 살인’인가요? 지금, 해고를 살인으로 만들고 있는 조건들은 무엇인가요? 사회적 관계나 성적 관계, 출산과 돌봄, 가사 노동 등에 기술이 개입하고 자본이 적극적으로 이를 상품의 영역으로 만들어 가는 동안, 우리의 몸과 노동, 생산/재생산이 또 다시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구획되어 가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차별은 과연 개인적 권리의 영역일 뿐일까요? 우리 각자는 지금 자신의 운동 영역에서 현재의 노동, 생산/재생산 개념들에 어떠한 부분에서 부딪히고 있고, 쟁점을 고민하고 있나요?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노동, 여성, 생태/환경, 장애, 이주, LGBT/퀴어, 청소년 운동 등 
다양한 운동 영역을 가로질러 공동의 전망을 찾기 위한 자리
 
지난 시간 동안 노동, 여성, 생태/환경, 장애, 이주, LGBT/퀴어, 청소년 운동 등 다양한 운동 영역의 주체들이 연대하고 만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를 진짜 움직이게 하는 깊은 문제의식들은 서로 정말 만났을까요?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고민과 생태 운동의 고민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나 장애인,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과 생산, 재생산은 여전히 잘 드러나지 않는 의제이며, 학습노동, 출산노동과 같은 말은 아직 생소합니다. 결혼이나 출산, 이성애적 가족 구성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이 모두에게 당연한 듯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다 본격적으로 각자의 고민을 나누기 시작한다면, 사실은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쟁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딪힘 속에서 서로의 문제의식을 진짜로 이해하는 한편,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함께해야 할 의제들을 찾아낼 수 있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의제가 우리 각자를 변하게 할 때, 공동의 인식과 전망으로 우리가 함께 움직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적녹보라 네트워크’를 고민하며
 
다양한 운동을 가로지르는 공동의 전망을 가지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적녹보라 네트워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적녹보라 네트워크’는 각각의 정체성과 운동 영역을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계급/노동, 생태/환경, 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고민해온 이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전망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자율적인 네트워크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앞으로의 연속 간담회 자리를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공동의 의제와 쟁점, 전망들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셔서 함께 풍성한 이야기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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