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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민노당-민주노총, 영국모델과 유사

   

대기업 노동조합을 위한 '변명'
당내선거 맞은 민주노동당, 노동조합과의 관계 제대로 풀어야

민주노동당 내부가 어수선하다. 당대표를 비롯해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당내 선거가 진행 중이라 그렇다. 2005년 4월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뒤 임기를 시작한 최고위원회가 자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해 이뤄지는 당내 경선이라 ‘축제’ 분위기가 되지 못하는 게 어수선함의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물론 그 바탕에는 지난 총선 이후 (혹은 그 이전부터) 점차 물과 기름처럼 되어가는 민주노동당과 보통 당원 사이,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국민 대중 사이의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민노당, ‘이슈’가 문제인가 ‘행태’가 문제인가

'통합형' 대표를 선출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 당내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내부 권력을 나누고 있는 NL과 PD라는 양대 정파가 각자의 대표 후보를 냈다. 여기에 한 정파가 미는 대표 후보와 80년대 이후 상당 기간 같은 정파에 속했던 분이 ‘정파로부터의 독립’을 내세우며 대표 후보로 나섰다. 당 지도부의 미숙과 지도력 부재, 기간 활동가들의 경험과 역량 부족, 지지율의 지속적인 하락, 울산 북구 보선 패배, 지도부 사퇴 등으로 이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파들이 통합 지도부를 내지 못하고, 당권을 놓고 다툼에 들어간 게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도력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고, 조직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며, 실무자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역량이 풍부한 조건에서도 당권을 둘러싼 지나친 경쟁은 당 조직의 발전에 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작금의 상황을 생각할 때 당내 경선의 ‘열기’가 더해갈수록 민주노동당의 앞길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권 경쟁이 80년대 중반에 형성된 한물간 이데올로기의 유산에 서있다면야 더더욱 그러하다.

21세기로 접어든 지 6년째를 맞이하는 데도 80년대 중반에 형성됐던 NL과 PD라는 낡은 대립구도가 ‘운동 세계’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실 변화에 눈감고 보통 사람의 정서와 유리된 NL과 PD라는 정파 간 대립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는 대학 학생회 선거판을 좌우하면서 학생운동을 ‘정리’하더니, 90년대에는 노동조합 선거판을 문란케 하면서 얼마 전 내셔널센터의 대의원대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했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드디어 (당분간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도가 될 수도 있는) 진보정당의 선거판까지 어지럽히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당대표를 NL이 잡든 PD가 잡든, (지도부와 실무자 모두 경험과 역량이 크게 부족하고 당조직 일선기관과 활동가들의 상태가 일하는 사람들의 정서와는 크게 유리되어 있는) 민주노동당의 행보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이 이슈가 됐든, 비정규직이 이슈가 됐든, 부유세가 이슈가 됐든지 간에 엄동설한에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하는 ‘철야농성’ 방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 행태는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과 노조의 관계 설정 문제

최근 일간지를 통해 이번 당대표 경선에 나선 “세 후보가 당의 최대지지 기반인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당 대의원·중앙위원 안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노총의 비중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는 전언이다.
사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재정립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민주노총 내부에서 먼저 제기됐는데, 그때는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2000년과 2004년 총선 사이다. 이 시기에 지금은 한국 정치사의 에피소드로 전락해버린 개혁당을 지지했던 소수세력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이른바 ‘범좌파’를 지지했던 일부 세력 역시 똑같은 주장을 했었다.

이 논란이 잦아든 때는 2002년 대선에 즈음해서였고, 확실하게 정리된 때는 2004년 1월 민주노총에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창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민주노동당의 조기 궤도 안착과 2004년 총선 성공의 숨은 공로자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금의 관계 재설정 문제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노조 간부와 민주노총 임원의 비리사건으로 당 지지율이 타격을 입었다는 판단이 직접적인 원인인 듯하나, 현 시기(!)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둘러싼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노총) 내부 정파들의 이해관계도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작년초까지만 해도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전체 당원의 40%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설명이 당 정체성의 근거였으나, 불과 한해 사이에 민주노총의 존재는 떼어내야 할 혹처럼 다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런 분위기는 당 부설연구기관인 진보정치연구소가 “대기업노조를 한국 사회 위기 10대 주범의 하나”로 지목한 데서 절정에 이르렀다.

영국노동당의 노동조합 ‘입김 빼기’ 경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당이 노동조합(노총)을 만든 스웨덴 모델보다는 노동조합이 당을 만든 영국 모델에 가깝다. 영국 모델의 경우 노동조합이 당을 만들다 보니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엄청났고, 결과적으로 당이 급격히 ‘우경화’ 하는 것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김을 약화시키길 원하는 그룹이 생겨났다(그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 일류대학인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변호사인 토니 블레어 현 영국 총리다). 역사적으로 이들 그룹은 노동조합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1993년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당헌규정으로 보장되던 노동조합의 블록투표제를 폐지해버렸다.

블록투표제는 전당대회의 안건에 대해 특정 노조 안에서 찬성 600표, 반대 400표가 나오더라도, 노조 위원장은 전당대회에서 노조원 전체의 표(즉 투표에 참가한 1,000표+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노조원)를 찬성표로 던지게 되는 제도를 말한다. 1993년 전당대회의 결정으로 전당대회에서 노동조합 내부의 찬반 투표수는 그대로 계산되고, 노동조합이 전당대회에서 차지하는 투표권을 당원의 규모와 관계없이 70%로 제한하게 되었다(영국 노동당 당원에서 노조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도 영국 노동당은 노동조합의 정치헌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과 당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원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개인당원을 증가시키고 당비를 기업인과 독지가의 기부금, 개인당원의 당비 등으로 다양하게 조달하는 사업을 벌여 왔다. 그 결과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조합의 입김은 많이 빠졌고, 영국 노동당은 ‘대중적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당 지도부의 권한은 크게 강화되었다.

‘자주’와 ‘평등’, ‘고립’과 ‘평균’?

정당은 정파조직일지 모르나,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다. 만약 정당이 노동자들에 기반한 계급적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 노동조합은 그 당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기업노조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사업장이 많은 한국노총보다 민주노총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이 짧은 시기 안에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기업노조가 가진 풍부한 자원과 인력이 자리잡고 있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에 소속된 산별조직이나 대기업노조는 사회경험이 없는 20대나 30대가 다수인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이 갖고 있지 않은 인적 풀(pool)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 직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로, 또 가정을 가진 보통의 가장으로, 대중의 바다에서 대중과 더불어 살아 왔다. 다만 이들이 접촉하는 상당수의 대중이 대기업노동자들일 뿐이다.

민주노총에 거리를 두는 대신에 민주노동당의 당대표 후보로 나선 세 명의 후보 모두 비정규노동자를 당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비정규센터’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찬란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주노총조차 제대로 끌어안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을 민주노동당이 끌어안을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솔직히 말해 활동가들의 수준·경험·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운동의 성과조차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재 실력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다.

현재의 조건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이 아닌 ‘노동당’을 지향한다면, 노동조합을 잘 알고 관련 경험을 많이 가진 이들이 지도부에 많이 당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당대표 경선에 나선 어느 후보는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올바른 말이다. 여기에 이런 말을 보탰다면 더 올바른 말이 됐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어머니 품을 떠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약하다”고.

아름다운 가치인 ‘자주’와 ‘평등’을 ‘고립’과 ‘평균’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선 민주노동당이 치러야 할 비용은 아직은 많은 게 분명해 보인다.
윤효원 본지 국제담당 객원기자 
2006-01-12 오후 1:30:59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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