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메가트니의 언덕위의바보는 비틀즈의 노래로 들으면 한없이 슬프고 상대적으로 세르지오멘데스앤 브라질66의 노래로 들으면 가볍다. 노래를 만든이는 아마도 세상에 대한 무시와 참담함을 기조로 어떤 선각자적인 우월감을 안고 노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노래안엔 겸손함보다는 자만감이 숨겨져있고 그래서 바보라 불려져도 무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세르지오맨데스의 노래는 상대적으로 경쾌하고 명랑하다. 1970년대말에서 1980년대초 더 슬픈 나라에서 더 나약한 생존속에서 왜 상대적으로 경쾌한가?
존재의 철학이 한걸음 앞서서 다가온다. 그는 언덕위에서 외로울까? 아니면 철저한 소외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행복할까?
처절히.. 수없이 마음속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일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미안하다는말을 해보지 않았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처럼 비겁한 말이 없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할 일이 없게끔 행동하려 했고 그래서 미안하단 말에 너무도 익숙치못했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가슴속으로부터 치어올려야할 초라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고뇌와 자각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성찰 양심의 실천적 노력 모두가 하루아침에 거짓이 되고 비참하게 깨어져버렸습니다. 만나지도 보지도못한 사람들 내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않고 피해도 입히지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눈물삼키며 얘기하지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의 구슬픈 모습을 바라보며 겉으론 한마디 말도 못하였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수만번 속으로 되뇌여야했습니다. 알라이꿈 살람. 그대에게 평화를... 그리고 치유받지못할 용서를 빌며.. 그 죄스러움으로 인해 더더욱 사랑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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