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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섭과 조카

사회 교섭과 조카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지난 설, 고향으로 가는 길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인천에 사는 조카는 집에 어려운 사정이 생겼는데도 맏이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인지, ‘휴가가 하루밖에 없다’는 둥, ‘차가 많이 막힐 거라’는 둥 핑계를 대면서 안 가려고 하기에, ‘그래도 명절인데 안가면 엄마가 얼마나 섭섭해 하겠냐, 너 안가면 나도 안 갈란다’하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주안 역에서 만나 차를 타자마자 조카가 묻습니다. “이모, 그게 모야?”“이거? 김 세트. 니네 엄마 줄려구”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꾸러미를 궁금해 하는 줄 알고, 한진 동지들이 마련해준 선물을 자랑스럽게 치켜들었습니다.
"아~니. 저번에 내 친구가 테레비 보구 말해 주던데 민노총이 막 싸웠대매? 한쪽에선 뭘 하자 그러구, 한쪽에선 하지말자구 신나두 뿌리구 그랬대매. 그게 모냐구" ‘망할 년. 하구 많은 말 다 놔두고 오랜만에 만나서 가장 아픈데부터 찌르다니...’저는 마음이 있는 대로 꼬여서는,“야, 너는 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라구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냐?”하고 괜한 트집을 잡습니다. "암튼. 그게 모냐구? 모때매 그랬는데?" "사회 교섭" "엉? 그게 몬데?"

사회 교섭이 뭔지도 모르는 제 조카는 비정규직 노동잡니다. 그러니까 “니가 용역이야?”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했다가,“야, 그런 건 파견이지”그러면 또 그런 줄 아는, 한마디로 지가 뭔지도 모르는 한심한 아이입니다.
커다란 마트에서 일하는데, 얘는 그 마트 직원이 아닙니다. 라면파트에서 온종일 라면에 치여 살면서도 얘는 그 라면회사 직원도 아닙니다. 그 마트 작업복을 입고 거기서 일하고 밥 먹고 똥 싸면서 하루 열 시간이 넘게 일 하는데, 사실은 사장이 누군지, 자기가 일하는 파견업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마트는 얘한테 일 시킬 거 다 시키고, 물건 정리하는 것이 조금만 늦어도 땍땍거리고, 늦게 밥 먹으러 가서 1분만 늦게 와도 주임이 시계를 보면서 지키고 서 있으면서도, 얘가 조그만 요구라도 할라치면 ‘니네 회사 가서 알아보라’고 말하는, 편리하기가 짝이 없는 구조입니다.

조카는 월급명세표도 없는 월급 8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돈이 줄어서 나오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있는 휴식시간에 주임한테‘명세표를 좀 볼 수 없냐’고 물었더니, ‘니네 사장한테 받으라’는 쫑코를 주더랍니다. 다음부터 이 아이는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묻지도 않는답니다. 그리고 제 딴에는 그래도 고참이라고 같이 일하는 아이들이 뭘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주임이 그 말을 한 다음부터는 지들끼리 그런답니다. “야, 저 언니 우리 회사 직원 아니래”그 다음부터 이 아이의 꿈은 정규직도 아니고, 주 40시간도 아니고 다만 그 회사 계약직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거랍니다. 월급이 줄어든 것은 법이 바뀌어서 월차도 없어지고 생리수당도 없어져서 그렇다는 걸 나중에 다른 친구를 통해서 들었답니다.

이 아이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한답니다. 추석 때도 일하느라 추석 다음 날 잠깐 집에 다녀왔고, 이번 설에는 9일을 쉬는 회사가 있다고 언론에선 떠들어댑디다만, 그나마 1년이 넘은 짬밥 덕택에 고작 설날 하루가 휴가였습니다. 주5일제를 누리는 세상에서, 이 아이는 토요일 일요일이 더 바쁩니다. 지 동생이 장가를 가서 얘한테도 첫 조카가 생겼는데, 어깨가 아파서 조카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설날에도 밥만 먹고는 온종일 퍼 자다가 내일 출근 땜에 부스스 하게 부은 채로 밤에 갔습니다. 조카를 안지도 못하는 어깨로 박스를 들어 나르는 일을 하러... 이 아이 사는 걸 보면 시계가 70년대 평화시장 어디쯤으로 되돌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온종일 박스를 들어 나르고 물건을 정리하는 게 일이라, 손가락이 퉁퉁 붓고 어깨가 아파 팔을 들지도 못하면서 산재 신청도 못하는 제 조카는 병신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조도 못 만드는 제 조카는 쪼다입니다. 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간 다니던 직장이 망하자, 서른 살이 넘은 여자를 받아주는 데가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 하면서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고 사는 제 조카는 바보입니다.

그래도 이 아이, 저한테는 참 애틋한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쌍둥이로 태어났을 때, 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 아이 엄마인 제 큰 언니가 벌어먹고 살았는데, 쌍둥이 둘을 매달고는 길바닥에서 장사를 할 수가 없으니까 둘 중 큰 아이인 이 애는 저희 집에서 컸습니다. 제 엄마가 아픈 날이 많았는데, 아예 일어나시지도 못하는 날은 이 아이를 제가 업고 학교에 가야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는 아기를 매는 띠도 없을 때라 기저귀로 이 아이를 업고나면 왜 그렇게 흘러내리는지, 엉덩이에 치렁치렁 매달고 학교에 가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다른 애들 다 등교한 학교에 맨 나중에 가서는 정문 옆 철봉에 업고 간 기저귀로 이 아이 묶어놓고 교실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저는 창문 밖 철봉만 내다 봤지요.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애들 눈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수업시간에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쫒아 가보면, 그래도 지네 식구 왔다고 엉덩이를 짓까불며 입안에 모래를 가득 담고 벌쭉 벌쭉 웃던 그런 아이입니다. 똥을 도대체 몇 번이나 쌌던지 온몸에 똥으로 매대기를 쳐놓고도 울지 않던 그런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커서 중학교에 다닐 때, 수배중인 이모 잡는다고 짭새가 이 아이 다니는 학교까지 와서 이것저것 묻고 따라다닐 때도, 우리 이모는 나쁜 짓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는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사실을 20여년이 지난 작년에야 얘기를 했던 그런 아이입니다. 자장면 한 그릇 못 사준 이모한테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명절에는 노자 하라고 용돈도 주는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저 때문에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98년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질 때, 제가 온몸으로 반대를 안 해서 이 아이가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민주노총이 들어간 노사정위에서 파견법이 합의될 때 제가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내지를 못해서, 이 아이가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개털인 파견노동자가 됐습니다. 그땐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그 합의가 이런 엄청난 사태를 몰고 올 줄은... ‘우리 조합원들은 노조가 있고, 그래서 단결된 힘으로 단체협상에서 막아내면 되지 않을까’하는 이기심이 솔직히 있었던 거지요.

제 조카는 전노투도 아니고 좌파도 아닙니다. 이모 때문에 노조라면 공포심부터 느끼는 찌질이입니다. 민주노총이 어떤 합의를 하면,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그 내용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일 뿐입니다. 또다시 사회적 교섭을 말하기 전에, 98년 합의에 대한 참회가 우선 아닐까요? 정말로 민주노총이 천만 노동자의 대표라고 한다면,'우리 조합원'보다 비정규직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요일도 없고 재고 조사하는 날은 밤도 없는 조카 앞에서, 저는 이모가 열심히 싸워서 ‘우리 조합원’들은 주 40시간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여금도 없고 체력단련비도 없고 효도수당도 없고 하다못해 월차도 없는 제 조카의 천만 원도 안 되는 연봉 앞에서,‘우리조합원들은 열심히 싸워서 성과금이 너의 1년 연봉을 넘는다’는 자랑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민주노총이란 게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운동한답시고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면서도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까지 안기부에 경찰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면서도, 그까짓 상처쯤이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지 잘난 맛에 살았던 그 잘나빠진 이모가 조카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세상. 그 비정규직들에게 ‘우리조합원’들이 동지애는커녕 관리자로 군림하는 세상. 이주 노동자들에게 ‘우리조합원들’이 계급적 연대는커녕 백인으로 우쭐거리는 세상.

사회교섭이, 갈등 당사자인 노사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거라고 제 딴에는 열심히 설명을 하고 나니,조카가 묻습디다.
"대화가 돼? 대화루 해두 되는데 근데 이모, 그 아저씬 왜 크레인까지 올라가서 죽었어?"


펌 : 천주교 부산교구 노동사목 소식지 바자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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