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12/26 00:31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의료대통령?

 

이번 대선시기 가장 짜증나는 일은 의협으로부터 거의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문자메시지를 받는 것이었다. 반드시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라는 문자는 마치 나에게는 투표를 거부할 권리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고, “오냐, 니들이 최고로 싫어할 사람에게 기어이 투표하고 말겠다.”는 엉뚱한 오기까지 발동되게 만들었다. 예상했던 결과대로 대선은 너무 싱겁게 끝났고 연일 매스컴에서는 이명박의 ‘실용정부’에 대한 각종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선이 확정된 후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이명박의 당선에 대해서 축하의 말을 건네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경제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의료대통령’이 되어달라고 주문을 하면서 의약분업에 대해 다시 평가하자고 했다. 그 동안 사회주의 의료로 너무 고통스러웠으니 자율성에 맡겨달라고 하였고 이명박 당선자는 ‘의료인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며 ‘작은’ 정부를 외치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보건복지공약

 

이명박 정부의 보건복지분야 핵심 공약은 ‘생애 희망 프로젝트’로 대변된다. 무주택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공급을 늘리고, 노인들의 3대 고통인 질병·빈곤·고독을 없애고, 취약계층이 대학 시험을 보거나 공공기관 등에 취업할 때 가산점을 주는 등 생애주기에 맞는 보건·복지 혜택을 주겠다는 공약을 한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본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안전망기금을 만들어 중증질환자에 대해서는 의료비를 완전히 보장해 주는 제도를 도입하며 기초생활보장의 지원 범위를 늘려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하였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예방형 보건복지 서비스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한편,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며 해마다 7%의 경제성장률로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보건의료분야를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 의료산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들을 과감히 철폐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는 한편,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현재 있는 공공보건 시스템도 전면적으로 검토해서 지역의 암센터를 민간의료기관으로 이전하는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어찌 이리 상충되는 공약들이 버젓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무조건 국민들의 삶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는 노동빈곤(working poor)을 증가시킬 뿐이고 노동자들은 삶의 불안정성으로 고통 받게 된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빅히트를 하는 이유를 정녕 모르는 것일까?

 

또한 보건의료분야는 대표적으로 ‘시장’의 룰이 적용이 돼서는 안 되는 분야이다.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도 보건의료는 대표적인 ‘시장실패’의 사례로 이야기가 된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병원과 의사)의 권한이 너무 절대적이어서 공급자 스스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고(예를 들어 의사가 권하는 약이나 검사를 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의 서비스에 대한 선택의 폭은 매우 좁기 때문에 시장 상품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의료를 ‘시장’에 완전히 내어주겠다는 것이다.

 

열려라~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 세상?

 

이명박 정부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환자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지금은 우리가 병원에 갈 때 반드시 의료보험증을 챙겨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의료비는 비싸진다. 하지만 민간의료보험이 있으니 이런 비싼 의료비도 지원이 될 것이고, 병원은 이제 공식적으로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니 병원 크게 지어서 돈 많이 낼 수 있는 환자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귀찮게 세금내야 하고, 까다롭게 심사 받아서 건강보험공단에서 구차하게 돈을 받을 필요 없이 환자에게 또는 보험회사에게 직접 돈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잉진료니 뭐니 하는 논쟁도 없어지고 정말로 병원은 환자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 돈을 긁어모으는 알짜배기 산업이 될 것이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설 좋은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다. 뭐, 지금도 1,000만 원짜리 CEO 종합 검진이 예약이 꽉 차서 못 받을 지경이라는데 그까짓 거 몇 만 원짜리 건강보험공단 성인병검진 환자 포기하고 돈 많은 놈 한 놈을 잡는 게 병원 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근데 참 이상하다. 복지 공약이라며 생애주기별 맞춤형 예방형 보건복지를 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은 언론에도 많이 나왔는데 의료산업화 하겠다는 공약은 언론을 별로 타지 않았다. 그리고 보건정책이 전공이 아닌 내 짧은 생각에도 이건 뭔가 앞뒤가 안 맞다.

 

‘생애 희망 프로젝트’라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 공약을 현실화 하는 데는 약 11조원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도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공약은 전혀 없다.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들의 세금부담은 줄여주겠다면서 어떻게 돈을 마련하겠다는 걸까? 전 국민이 모두 담배를 많이 피우게 하고 술을 많이 먹게 해서 부족한 세금을 마련하겠다는 걸까?

 

또한 이명박 정부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노동자들의 건강을 담보하는 많은 법 조항들은 모두 규제라는 빨간딱지가 붙여져 역사속의 산물로 사라질 판이다. IMF 이후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이미 많은 안전보건상의 법적 조치들을 무력화 시켰고, 이후에도 경총 등의 사용자 단체는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요구를 해왔고 상당수는 관철되었다. 이들이 ‘좌파정부’라고 비판하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규제완화’는 ‘실용정부’라는 이명박 정부를 만나 활개를 치고 만개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속에 노동자들의 건강은 어디로 가는 걸까?

 

국민에게는 립서비스, 자본에게는 무한 혜택

 

국민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보건복지공약은 예산 확보 방안도 마련되지 않고, 그저 숫자를 늘리면 된다는 단순한 공약에 불구하다. 전체적인 공약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의료를 첨단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은 참으로 구체적이고 다른 경제 분야 공약과도 아귀가 딱딱 맞는다.

 

이명박은 분명하다. 국민들의 표가 중요한 시기 그는 적극적으로 립서비스를 했다. 그리고 실제 내용은 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무한 혜택을 마련해 놓았다. 보건의료의 기본개념도 무시하고 재원조달에 대한 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경제가 좋아지면 복지는 따라서 저절로 좋아진다고 선전했다. 이미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고, 그토록 욕하던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장율은 5%에 달했고, 국민소득은 기어이 2만불이 넘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뭐 좋아진게 있나? 도대체 경제가 좋아지면 복지가 좋아진다는 것은 어떤 논리냔 말이다.

 

오늘 이명박은 2012년까지 한반도 대운하를 완성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비책이라는데 나는 경제가 살아나는 게 상상이 안 된다. 경제를 쥐뿔도 몰라서인지 나는 규제완화로 각종 건설 공사에서 안전관련 조치들이 완화되면서 대운하를 뚫는 수년간 떨어지고, 미끄러지고, 깔려서 죽어나갈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연 몇 명이 죽고 다친 후에 그 운하가 만들어질까? 그리고 그 운하가 만들어진 후 또 얼마나 많은 생태계의 생물들이 죽음을 맞이할까?

 

그저 아는 거라고는 보건의료분야 약간 밖에 없는 나로서는 사실 이명박의 공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공약이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경제의 목표는 서민을 위한 거라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서민은커녕, 중산층을 위한 공약도 안 보이니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공약인지 내 눈에는 도저히 서민을 위한 공약이 도대체 안보인단 말이다. 립 서비스는 정도껏 할 때 립 서비스다. 정도가 지나친 립 서비스는 사기이다. 이제 이명박은 대국민 사기극을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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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6 00:31 2007/12/2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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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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