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이 한 세미나에서 미국을 두고 “세계에서 전쟁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즉각 외교 경로를 통해 해명을 요구했고, 그를 ‘반미 인사’라 비난하면서 외교장관 기용을 막으려 압력을 가하기까지 했다. 비록 그의 발언이 맥락을 자른 왜곡 보도의 결과물이었다 해도, 미국과 전쟁의 문제를 정면으로 연결하는 것 자체가 당대의 금기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문제 제기는 미국의 대외 행태를 꿰뚫는 진실이었다.

데이비드 바인의 저서 『전쟁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War)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체계적으로 증명한다. 미국의 전쟁은 9·11 테러 이후의 일시적인 탈선이 아니라 콜럼버스 이래 지속된 팽창과 정복, 해외 기지 건설과 군사 개입이라는 긴 구조적 흐름 속에 있다. 미국은 가끔 전쟁에 휘말리는 나라가 아니라 전쟁을 반복적으로 생산해내는 국가다. 특히 전 세계에 퍼진 해외 기지는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전쟁을 가능케 하고, 그 전쟁이 다시 더 많은 기지를 낳는 자기증식의 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군사 행동은 미국의 체제적 습성이 된 셈이다.

그 구조적 모순이 대형 파열음을 냈던 첫 사례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미국은 압도적 무력으로 전장을 지배했으나, 정작 지키려 했던 남베트남의 정치적 정당성과 국가적 자생력은 세우지 못했다. 미 국무부 내부에서조차 대규모 파병이 내전의 성격을 변질시키고 승리를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으나 무시되었다. 미국은 수차례 전술적 우위를 점하고도 결국 전략적 패배를 안았다. 강대국이 무력으로 전장을 누빌 수는 있어도 현지 사회의 정통성까지 대신 창출할 수는 없다는 명백한 교훈을 얻었지만, 미국은 이를 끝내 소화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는 그 재연이었다. 9·11 테러의 충격에서 시작된 전쟁은 어느새 테러 응징을 넘어 국가 재건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떠받친 정부는 부패했고 선거는 신뢰를 잃었으며 정권은 국민과 괴리된 채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만 머물렀다. 부패와 약한 정통성이 내부를 잠식하는 사이 미국이 쏟아 부은 막대한 예산과 군 훈련은 정치적 기반 없이는 무용지물이었다. 카불의 허망한 함락은 돌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20년에 걸친 구조적 실패가 응축된 결말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그 오만함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대량살상무기라는 허술한 명분 아래 정권 교체의 속도만 믿고 기존 국가 체제를 해체해버린 전형적인 실책이었다. 바트당 체계와 군 조직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뒤 그 빈터에 민주주의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종파 갈등과 테러,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채워졌다.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비싼 대가를 치르며 경험한 전쟁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전은 형식이 조금 다르다. 대규모 점령전이 아니라 공습과 전략 시설 파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국은 당초에 미사일 능력 해체와 핵무장 저지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그 목표는 계속 흔들렸다. 전쟁은 이미 충분히 장기화되었고 미국은 추가 화력 투입과 전비 부담,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은 4월 2일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대로 화풀이 마지막 폭격을 가하고 있지만 미국의 조건대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제로다. 앞으로 절묘한 정치적 해결 없이 군사력에만 의존해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을 떠안게 된다면 이 전쟁 역시 ‘장대한 분노’는커녕 ‘장대한 실패’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과거의 전쟁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사실 자명하다. 첫째, 전쟁은 무력으로 시작되나 결국 정치 질서의 문제로 끝난다는 점이다. 둘째, 현지의 정당성을 외부 군사력이 대신할 수는 없다. 셋째, 기지와 정밀 타격이 점령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 해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워싱턴의 정치 일정과 현지의 시간표는 다르며, 선거와 여론에 묶여 서둘러 끝내려는 전쟁일수록 현지에서는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또 놓친다면 이란전 또한 베트남과 아프간의 뒤를 잇는 이름만 바뀐 패배가 될 것이다.

이란전이 미국의 패배로 끝난다 해도 미국이 곧바로 몰락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다른 국가로 변모할 것이 분명하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의 권위와 정권의 정당성이 타격을 입고, 중간선거의 참패 후 미국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 성사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불신하게 되고, 미국은 이전보다 더 거래적인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패배 후의 미국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조급하게 동맹에 부담을 떠넘기려 할 것이다. 유럽은 독자 생존을 꾀하고, 중동은 불안해지며,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위협이 커질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미국의 또 다른 전쟁을 관망하는 일이 아니라 국제 질서 회복을 위한 연대다. 힘의 우위가 곧 법의 우위라고 착각하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한국 역시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의 동맹이지만 미국의 전쟁 충동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하청 국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쟁 반대와 국제법 존중, 위기관리와 다자주의 복원을 위해 더욱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의 무력에 기대어 안보를 맡긴다는 이유로 그들의 무도한 전쟁을 비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종속일 뿐이다. 세계가 미국을 멈춰 세우고 한국이 그 연대의 한 축을 담당할 때 비로소 국제 질서 회복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20년 전 송실장의 그 한마디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를 목도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침묵할 것인가. 동맹은 범죄의 공범이 아니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