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문제를 두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대법관 공석 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법관 장기 공백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만큼 양쪽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예상을 벗어난 작심 발언으로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 온 문서를 꺼내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장의 제청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
대법원장은 제청으로써 모든 헌법상의 권한과 의무가 끝났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법원장이 최대한 신속하게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주길 바란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8월18일 조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한 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조 대법원장의 거부→여권의 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라는 흐름이 50일가량 ‘무한 반복’ 중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 이튿날인 7일 조 대법원장을 향해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김민석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재판받을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면서 위헌을 운운하는 궁색함에 처하기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떳떳함의 상징이어야 하는 대법원장의 마지막 도리”라고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탄핵’ 요구도 나왔다.
이성윤 최고위원은 “국민과 헌법을 무시하는 조 대법원장에게 남은 길은 사퇴와 탄핵의 길뿐”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박균택 의원도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성숙 국무총리도 세종시에서 기자들에게 “제청대로 임명하면 (대통령의) 임명권은 있는 건가”라며 조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민주당 모두 조 대법원장 탄핵이나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청구에는 선을 긋고 있다.
탄핵 카드의 경우 조 대법원장의 ‘명백한 위법 행위’를 찾기 어렵고, 권한쟁의 심판 청구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두 경우 모두 상당한 부정적 여론을 감수해야 한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사법부 수장을 탄핵한다는 것에 대한 여론 부담이 있고, 실제 탄핵이 되면 (대법원장) 직무가 중지되는데, 직무대행이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며 “국면을 타개할 (다른) 묘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이 뻔뻔하게 재제청 거부를 들이미니까 당장 첫 단추부터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자리는 이날로 219일째 비어 있다. 역대 최장 대법관 공백이다. 이대로라면 공백이 조 대법원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 6월까지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내년 5월 퇴임하는 천대엽 대법관의 후임 인선도 쉽지 않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대법관 공석은 단순히 법관 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은 사건 심리와 선고를 비롯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만큼 대법관 장기 공석은 재판 운영은 물론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해가 미친다.
대법관 1명이 공석이어도 대법원 소부와 전원합의체 심리·선고는 가능하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1명이 대법관 12명 몫의 심리를 맡아야 해 물리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대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1인 공백이 고정값이 된 상태에서 국외 일정으로 대법관이 1∼2주씩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가 더해지면 과부하가 걸린다. 1인 공백이 길어지는 건 상고심에 미치는 타격이 생각보다 크다”고 말했다.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과 조 대법원장이 타협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전직 고위 법관은 현재 상황에 대해 “(조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해서 추천 절차를 밟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며 “그런데 그걸 안 하겠다고 하면 조 대법원장 퇴임까지 이 상태로 갈 것 같다. 대법관 공백이 이렇게 길었던 적이 없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청와대와 대법원이 잘 협의를 해야 한다”며 “조 대법원장을 강하게 압박할수록 부담은 청와대와 여당이 더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청와대가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이 기사와 관련된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