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을 보면 20-40년에 걸친 지독한 독재국가입니다. 일제시대와 거의 비슷하지요. 오랜 억압 속에서 내면화된 두려움과 굴종을 벗어나는 것은 투쟁의 출발이지요. 지금까지 4,000여명의 비무장 시위대가 권력의 개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도 중요하지만 굴종과 두려움을 버리고 싸우자라는 슬로건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입니다. 이번 아랍항쟁에서 유행한 구호가 ‘고개를 들라!’ 였습니다. 민중의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왜 맑스주의자들의 구호가 되면 안될까요? 당면한 반독재 투쟁에서 소유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더 쌩뚱맞고 민중의 바람과 먼 얘기 아닐까요? 님의 주장은 대중노선의 기초에서 벗어난 듯합니다.
너무 일방적이고 야비한 글이다. 핵심은 현시기 투쟁에서 부르조아정치세력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인데, 레닌의 인용글은 그 시점에서의 얘기일 뿐 논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또 무슨 수사협조가 사노련의 약점이라고 씹는 것도 문제지만, 투쟁에 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공격하면서 사안과 관련없는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거론하는 것은 너무 야비하다. 종파란 신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조직 혹은 세력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집단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 의미에서 다함께가 종파적인 경우는 많았지만 사노련이 종파적인 것은 없다. 견해가 다르면 종파라고 씹는 자세도 기본이 안되어 잇다. 나도 사노련과 많은 관점을 달리하지만 이런 식의 비판은 결코 올바른게 아니다.
다수의 활동가들이 지금 적들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중앙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것일까요? 지도부의 오류와 무능력에 대한 대중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수반되는것, 전체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 됩니다. 오늘의 쌍용차 노동자들은 대중과 패배했고 적들은 관료와 승리했습니다.
관심 갖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비물질노동이 노동시간과 삶의 시간의 구분의 흐려진다'는 네그리의 주장 즉 생산과정 혹은 노동과정속의 가치에 대해 노동가치론의 포기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생산과정의 밖에서 자본이 얻는 이익의 성격은 별론할 문제지요.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의 폐기가 필요조건인 것은 동의하시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왜냐면 이글은 폐기의 대전제하에 충분조건이 뭔가에 대하여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이후의 온갖 지적 성과들이 잡다하게 망라됏다며'<-이건 님이 지어낸 표현일뿐이고, 이글은 네그리의 원칙에 대한 부정에 대해 밝히고 있는 것이니까, 그 다음의 지양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사이비적 논쟁이라고 얘기하시면 너무 앞서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글은 네그리의 두 저서가 3류소설에 불과하다는 점을 네그리의 주된 주장에 대한 반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생산적이지 않다면서 왜 더 나아가지 않느냐고 하실 필요는 없을 듯...
노동가치론을 '폐기'하자는 건 가치론 일반의 폐기라기보단, 가치화 과정 혹은 교환가치(내지 잉여)의 발생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좀더 들여다보잔 쪽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는데.. 자본주의적 가치화/잉여발생(결국 착취)가 19세기와 달리 지금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혹은 교란!)중이며, 이게 어째서 자본에게 승리의 찬가는커녕 구조적 위기의 '징후'로 나타나는 건지 들여다 보잔 겁니다.(일테면 자본 특유의 생태적 착취와 그로 인한 삶의 위기가 노동가치론으로 설명될 수 있냐, 없다면 가치론에 대한 이론적 재구성은 어케 돼야 하냔 식이겠죠. 적어도 자본주의가 그 '발전'을 멸할 때까진 말이져. 굳이 안 그래도 다 된다고, 심지어 그리 되게 돼 있다고 하는 건 아마 맑스 할배조차 인정 안 할 '이론적 억지'일 겁니다.) 그런 위기 징후가 나타난 건 물론, 역사적 반체제 운동/투쟁들의 변증법(내지 '거듭남')이 빚어낸 결과이자 그렇게 해서 달라진 현 세계의 사회적 조건이란 걸 테구요.
이렇게 보면, 나름대로 실천적인 시사점들이 꽤나 보일 만도 한데.. 모, 보이는 것만 보려 하거나, 안 보이거나 (새로운 이론화 작업이다 보니) 낯선 건 일단 적대로 치환하고 보는 우를 범하시는 건 아닌지 몰겠네요. (특정한 이론화의 창을 통해) 줄창 보이는 것만 보려는 건, 달라진 조건과 정세에 조응하는 '비판의 무기'를 부단히 벼려야 한다는 역사적 유물론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위상에 비춰 봐도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하구요.
글구, '사적 소유'의 폐지 자체를 마치 해법인 양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정말 폐지가 곧 해법인가요? 글쎄요, 폐지는 형성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듯한데. 부정의 부정, 즉 '지양'을 통한 (주체)형성이 없이 폐지를 해결과 곧바로 등치해버리는 건, 하나의 '론'으로선 선명장쾌할지 모르나, 실천적으론 무척이나 공허하고 무력하리란 생각입니다만.
폐지면 오케이가 아니라, 사적/부르주아적 소유 너머의 소유(일테면 맑스가 사적 소유와 대비해 언급한 '개인적 소유'를 충족할 사회적 관계)란 어떤 것이며, 이 소유가 대안적인 현실로 육화되려면 이론적, 정세적으로 어떤 실천들이 필요할지에 대해선 아직 '정답'이 안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게 하난지 여럿인지도 불명확하구요. 아, 행여 '사회주의'가 엄연히 있잖냐고 하진 말아 주십셔.ㅋ 반체제적 실천들을 묶는 '공통적인 것'일 수야 있겠지만, 아직으로선 텅 빈 기호에 가까운 듯싶고요, 그 말이 육화된 현실로서 제대로된 힘을 발휘하려면 '어떤 사회주의'냐를 놓고서 앞으로 두터운 논의와 성찰, 소통이 있어야겠단 쪽여서요.
모, '원칙(!)'에 따라 기각하려고만 들지, 정작 그걸 '변증법적으로 어떻게 지양'할지는 "좌파"라시면서도 별 고민이 없으신 모양임다. 네그리에 '열광'하진 않지만 그래도 음미할 만은 하잖냐고 봐서 그런지, 20세기 이후의 온갖 지적 성과들이 잡다하게 망라됏다며 빈정거리는 김광석님의 접근 방식은 열이 받는다기보단, 좀 슬프네요. 그러기로 치면 맑스의 텍스트도 당대의 온갖 문헌들을 망라해 가독성을 현저히 떨구고 있따는 식 혐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몰겠습니다. 아닌 건 분명 아니더라도, 제대로된 논쟁을 거셨으면 참 좋겟달까요. 왜글케들 논쟁용(혹은 사이비) 논쟁만 벌이려 드는지, 답답하고, 좀 지겹습니다 솔직히 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