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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현자인터뷰1]노동자로서 눈을 떴을 때 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06
  • 수정일
    2011/03/02 15:4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노동자로서 눈을 떴을 때  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_시트사업부 김응효 대표

 

사용자 삽입 이미지점거해제 이후 상황은 어떠한가
비정규직이 25일 동안 공장잡고 점거한다는 게 보면 힘든 일인데 자부심은 대단히 많이 갖고 있다. 다만 농성해제하고 내려오기 전에 몇 가지 안건들, 사측과 교섭을 하는 차원이 아니고, 몇 가지 조항들은 마무리 짓고 나서 내려왔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들을 조합원들이 얘기했다.  우리가 25일 동안 하면서 사측이 무서워서 겁먹었던 게 아니고, 그것보다 더 큰 벽이 있어서, 실질적인 압박들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25일 (농성)하고 내려와서 교섭을 하게 되면서  처음엔 교섭을 일주일에 두 번 하기로 했다가 그 다음에 일주일에 한 번, 2주에 한 번 하는 행태들이 벌어졌고, 통장가압류라든가 손배·고소고발 이런 것들이 계속적으로 자행되면서 조합원들끼리 2차투쟁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해야 된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힘들게 잡은 교섭인데 지켜봐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들도 있어서 지금까지 교섭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2공장 해고자들과 (동성기업) 미복귀자들은 교섭내용에서 실질적으로 확실하게 나온 안건이 없다. 4대의제 중에 들어간 것은 농성해제 하면서 전원 다 복귀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우리 23명이 지금 미복귀를 한 상태고, 2공장 해고자 동지들 얘기는 전혀 어떤 얘기도 나오지 않고. 그래서 (2차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처음 취지가 아닌, 그걸 왜곡한 내용들만 의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취지의 내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그런 교섭으로 접어들고 있더라. 처음 8대 요구안에서 요구안으로 축소됐는데, 4대 요구안마저도 더 축소가 돼서 손배가압류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자, 그런 내용의 교섭으로 줄어드는 형태가 돼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그렇다면 집회신고 투쟁은 동성기업과 2공장 동지들이 주축이 되어 계획했나
그렇다. 우리가 양재동을 올라가겠다, 집회신고를 하겠다, 이런 제안을 했다. 2차 투쟁의 첫 시발점을 만들자는 의지가 있어서 ‘집회신고 투쟁을 해 보자’ 이렇게 제안을 했다. 근데 잠시 기다려보자 이런 의견이 있었다. 그러다 쟁대위에서 결정을 내렸다. ‘좋다, 양재동 필요하다 올라가라’ 그런 결정이 났는데, 그 시기가 언제냐로 고민을 했다.
근데 또 지부에서 ‘간담회를 한 번 하자’고 했다. 그래서 2공장 동지들이 간담회를 한 번 가졌는데, 거기서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좀 잡았다가 그 다음날 또 말을 바꾸는 그런 과정들이 있었다. 2공장 동지들이 ‘교섭이 좋게 바뀔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래도 한 번 들어보자’고 의견을 내서 (지부의 의견을) 들어봤는데 역시나 또 전혀 좋은 얘기들이 안 나오더라. 말을 계속 바꿔버리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상경투쟁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밀리다가 간담회를 듣고 나서도 기존과 똑같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회사랑 지부에서는 우리가 양재동 올라오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한다. 어떻게 보면 조금 안 올라왔으면 하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사탕발림을 해서 잡아보자’ 이런 게 좀 많았다. 저번에도 그렇게 간담회를 얘기했었고. 우리가 그래도 한번 더들어보자 했었는데, 별반 내용이 다르지 않았다.

 

집회신고로 확보된 시간이 2월25일부터 3월1일까지인가
그렇다. 5일 동안을 확보했다. 그리고 서초서 여기도 집회신고가 나 있다. 여기 이제  뒤에 보시다시피 용역들이 되게 많은데 오늘도 시비가 있었다. 그건 회사에서 지시를 내려서 이렇게 얘기를 하라 한 것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하루밖에 (신고를) 못한다. 이쪽이 밀집지역, 경쟁 집회장소, 삼성하고 현대하고 포함해서 세 군데가 이쪽에서밖에 못 낸다고 하더라 원래 인원접수 하는 곳도 안에 있었는데 옛날 동희오토 동지들의 사이 있어서 바깥으로 뺐다고 하더라. 회사 측에서 좀 당황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양재동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는데 우리가 어제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의 시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해고자나 미복귀자들과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 공장별 사업부별로 안에 있는 동지들과 접촉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있나
우리가 밖에 나와 있다 보니까 우리 시트사업부 내에서도 동지들하고 소통이 좀 안 됐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있고, 공장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래서 소통이 잘 안됐었는데 요번에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추스르면서 간부회의를 소집을 해서 안과 밖이 소통을 하면서 계획의 수위를 높여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를 했고, 조합원들한테까지 그 얘기들이 다 전달돼서 안과 밖이 자주 만나서 이런 것들을 논의하자, 우리 사업부는 그렇게 일단 회의를 했다.
그리고 그 동안 쟁대위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회사에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많아서. 또 수요일 집회를 매번 한다. 매주 계속 끊임없이. 처음에 우리가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파업기간 이후에 계속적으로 수요일 집회를 통해서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 안과 밖이 만나는 것은 공장, 사업부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아마 사업부별로 그런 것들을 잡아나갈 것이다. 사업부 특성이 좀 있기 때문에 전체 사업부별로 조합원들이 다 만나서 얘기할 기회는 수요일밖에 없지만 우리 사업부 문제도 있고 각 공장별로 또 고민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조합원이 주로 1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2·3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나
지회에서 1차만 노조활동을 해야 된다 이런 관점은 아니다. 우리 자동차 일 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다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것이 어떤 시각의 면은 아니고. 탄압이 1차는 더 심하다. 3차 같은 경우는 인원이 되게 멀리 떨어져 있다. 한 명 한 명 떨어져 있어서 실질적으로 그들이 고민하고 있다. 가입을 해도 탄압이 왔을 때 어디다 얘기를 하기가 벅찬 거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입한다고 해서 가입하지마라 안 된다 이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 왜냐, 같은 동지이기 때문에. 근데 그들이, 우리 동지들이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것이다.

 

2·3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상황 때문에 노조가입이 어렵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우리 동지들, 소송하고 있는 동지들만의 문제로 풀어가진 않고 있다. 우리가 목표했던 것은 현대자동차에 있는 모든 동지들을 정규직화 시켜라, 시켜야 한다 이런 얘기이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의무가 있고, 의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의 목표와 기조는 똑같다. 똑같은 비정규직, 거기서 마저도 우리 스스로들이 갈라놓는다면, 1차다, 3차다 하는데 그건 우리가 얘기한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1차라고 얘기 안 한다, 비정규직이라고 얘기하지. 1차다 2차다 3차다 이런 얘기들은 회사에서 얘기하는 거지 우리 스스로는 동지라고 얘기를 하고 같은 비정규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같이 가는 게 맞고 당연히 맞는 거다. 그렇게 하면 1차는 왼쪽 문 달고, 2차는 오른쪽 문 달고 똑같은 상황이다.
지금 2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면에 2차 조직화사업을 한다는 큰 목표, 기조가 잡혀 있다. 단지 2차소송이 1차에 안 했던 동지들과 나중에 노조에 가입한 동지들 때문에 2차소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겠지만 회사에도 사측의 바지 사장들과 연관돼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친인척, 자기 고모부나 누가 정규직 관리자다 이런 것들이 있어서 2차 조직화 사업을 하는 게 힘드나, 어쨌든 나 같은 경우 사업부에 (2차 조직화해야 한다고) 얘기를 했고 다른 데도 마찬가지다. 다 돌아다니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거다. 그래서 2월10일날 판결이 되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판결을 보고나서 아직 가입 안 하고 있는 우리 동지들이 더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2차준비는 2차 조직화사업도 같이, 더 큰 뜻으로 조직화사업이 같이 담겨져 있다.

 

2005년 불파투쟁에 참여했나 
동참하지 못했다. 현장에 그런 분위기들이 많이 올라왔었다. 우리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관심이 되게 많았고, 공장 안에서 일을 하면서도 다른 공장에 있는 우리 동지들은 (투쟁) 하고 있는데 우린 일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많이 그랬다. 그러면서 아, 뭐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리 동지들이 저렇게 맞고 있고 끌려나가는데 우리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분위기들이 한참 고조됐었다.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지회에서 노조가입원서를 갖고 올라왔는데 출입구에서 제재를 당했다. 그 때 당시에 바지 사장들의 협박도 있었고 한 명이라도 가입하면 가입하는 사람 잘라버리겠다 이런 협박도 있어가지고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 때는 겁을 많이 먹었다.
그 때 허비한 시간이 지금 돌이켜보면 (아깝다.) 근데 그러고 조용히 시간을 흘려서 보내고 있다가 몇 년에 걸쳐 탄압당하는 것을 많이 보면서 같이 옆에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나가는 것을 많이 봤다. 많이 참고 견뎌왔었는데 마침 7월22일날 대법원 판결이 났고, 우리가 늦었지만 지금 아니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 시트사업부도 조직을 더 가열차게 했고, 늦게 한 만큼 더 열심히 하자고 해서 좀 빠르게 진행을 했다. 그래서 신생이면서도 건방지게 깝치는 그런 것들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늦게 시작한 만큼 늦게 시작한 마음들을 갖고 더 힘차게 했던 것 같다.
내가 노동자로 눈을 안 떴을 때는 이 싸움이 끝났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노조활동을 못하고 있었던 그 시간이 아마 포기를 하고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 근데 노동자로서 눈을 떴을 때 ‘아, 이 싸움이 시작이구나, 끝이 아니구나’ 이걸 알고 나니까 그 전에 했던 우리 조합원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를 알게 되고 반성하게 되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말씀하실 때 투쟁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싸우는 것도 힘들지만 좀 더 큰 벽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은 정규직지부를 말하는 것인가
사측과 싸우는 것은 충분히 싸울 수가 있다. 힘차게 싸웠고.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그날그날 (일과를) 찍어서 비지회 게시판에 올렸다. 분통터지는 것도 많았는데.
그렇게 투쟁하면서 진짜 힘들었던 것은 지부의 중재적인 역할이었다. 민감한 얘긴데, 지부에서 처음에 압박을 많이 했다. 금속(본조)도 그랬고. 금속에서도 처음엔 같이 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태도로 얘기했었는데 이경훈 지부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금속도 나중에는 말을 바꿔서 얘기를 했다.
벽이라는 게 밖에서 연대를 안 해줘서 힘들었던 게 아니고 그보다 더 가까운 내부의 벽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지 못해서 힘들었다. 처음부터 정규직 동지들의 연대를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나 어쨌든 파업을 하면서 압박들, 벽들을 넘지 못했다. 1차파업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더 확고하게 강력하게 했으면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2차투쟁을 다시 결의해서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그래도 2차투쟁을 계획하고 있고, 2차투쟁을 다시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의지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리고 2차투쟁은 더 강력하게 할 계획이다. 아마 이번 2차투쟁을 한다고 하면 지부의 벽도 넘어설 각오를 하고 하지 않을까.

 

방금 말씀하셨던 내용이 동지뿐만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다 같이 얘기가 된 것인가
그렇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다른 동지들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판단에서는 그런 것 같다. 2차투쟁을 하면 전체 우리 조합원들 중 반 이상은 할 거다. 우리 조합원 수가 7월22일 이후에 1900명, 2천명 가까이 육박했었는데 실질적으로 파업에 돌입했을 때는 많이 떨어져 나갔었다. 그리고 파업하는 과정 속에서도 많이 떨어져나갔고. 투쟁에 돌입을 했을 때 얼마만큼 참가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3분의2정도는 될 것이다. 지회 싸이트를 통해서 댓글 다는 걸 보면 조합원들이 무슨 교섭이냐 교섭해서 아무 내용도 없고 한데 (투쟁) 하자 이런 댓글들이 많다. 그런 정서를 봐서도, 수요일 집회 때 나오는 인원들은 2차투쟁을 했을 때 다 동참을 하지 않을까.

 

2005년에 자동차 비정규직노조들이 생기고, 투쟁력을 갖게 되면서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게 정규직 운동질서에 의해 통제를 당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결정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정규직지부한테 방해를 받는다고 할까. 그런 과정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내 생각인데, 지부에서 들으면 상당히 껄끄러운 얘기일 것 같은데 2차투쟁에 있어서는 우리 독자적으로 할 것 같다. 왜냐하면 1차 투쟁하면서 지부의 간섭이라고나 할까, 회유 이런 게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부의 힘을 빌어서 파업을 했던 것을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2차투쟁에 있어서는 아마 그런 결단을 하고 2차투쟁을 할 거다. 2차투쟁을 하는 것도 지부에서는 되게 싫어한다. 그래서 설 이전에 모든 걸 마무리하고 그렇게 할 계획을 잡고 있다. 지부에서 가지 말라고 했다, 여기 우리 올라올 때도. 근데 올라와서 집회신고 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2차투쟁에서는 지부를 배제하고 우리 독자적으로 끝장을 낼 거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한다. 그러나 점거 파업 때 밖에서 보기에는 비정규직지회 쟁대위가 정규직지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쟁대위 자체에 그런 압박이 있다. 왜냐하면 쟁대위 자체가 지금 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있는 상태고 공장안에서만 신변보장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규직 대의원들이 와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할 거다. 가깝게 공장 안에 있기 때문에 와서 이렇게 하자, 해봐라 저렇게 해 봐라, 질질 끌고 가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 올라온 것도 쟁대위에서 결정은 내렸지만 어쨌든 우리가 올라가겠다는 요구를 많이 했었다. 조합원들이 한다고 하는데 쟁대위에서 굳이 막는다면 그들이 파업파괴행위를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한다고 했을 때 쟁대위에서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에 지도부가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면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집행부 똑바로 해라 하는 목소리를 내는 조합원들이 아직까지 있다. 비록 지도부가 마치 교섭이라는 국면에 접어들어서 이것을 잘 풀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그것을 가만히 놔두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우려를 하지 않는다.

 

지회 쟁대위에서 2차투쟁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있나
극비사항이 많아서 자세하게는 말씀 못 드리지만 2차투쟁에 대한 모든 내용을 쟁대위에서 다 결정한다고 보면 되는 게 아니다. 대의원자체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내서 대표로써 전달하는 차원이다. 조합원들이 대표한테 얘기를 하면 대표들은 대표들끼리 모여서 조합원들의 정서가 이렇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조합원들이 이렇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다, 쟁대위 자체도 조합원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고, 조합원들이 쟁대위, 그리고 집행부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쟁대위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리 │김재영 (hedwig@jinbo.net)
이서윤 (cdbb@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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