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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하늘을 덮다>에 다녀와서
지난 9월 6일 저녁 7시,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북콘서트, 하늘을 덮다>가 진행되었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북콘서트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운동 사회 내에서 백서가 단행본 형식으로 정식출간된 것도 드물다. 지금까지 접해온 사건들 중에는 대책위원이나 피해자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이 소진되면서 백서발간이 유야무야되는 일도 상당수 있었다. 원 사건이 ‘터지고’,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가해자 옹호와 피해자 비난, 사건진위에 대한 의심이 줄줄이 이어져왔다. 그것들을 2차 가해로 명명하고, 항의하면서 일정정도 ‘처리’ 혹은 ‘해결’과정을 통과한 이후에는 다들 사건을 다시 되짚어볼 여력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민주노총 김00사건의 백서 역시 완성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백서책을 북콘서트에 가기 전에서야, 찬찬히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보니 그 전보다 더욱 무게감이 느껴졌다. 북콘서트를 앞두고 다시 마주한, 피해생존자 선생님이 쓰신 그날의 일들은 글로만 읽어도 버거웠다.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 피해자지지모임’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지지하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을 함께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과 그 이후 일련의 일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멈출 수 없던 이야기들
이번 북콘서트는 크게 2부로 진행되었다. 제 1부는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에 촛점이 맞춰졌고, 제 2부에서는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일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제 1부에서는 민주노총 김00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구성원들이 10개의 키워드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까지 5년째 이어져왔던 투쟁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빨간 코트라는 키워드는 지지모임이 결성 전부터 당시 전교조 집행부의 사건 무마 시도에 맞서 1인 시위를 했던 이향원 선생님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비례대표라는 키워드에서는 2012년 유달리 비가 많이 오던 봄의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그때 신림동에 있던 이정희 사무소 앞에서 매일같이 1인시위를 했던 전교조 조합원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목소리를 높이던 희망광장 동지들, 잡년행동의 여러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키워드 중 하나는 ‘김변(호사)’라는 키워드였다. 사건 초기의 일이라 잘 알지 못하던 일이었는데, 이번 북콘서트를 통해서 가해자의 변호사였던 ‘김변(호사)’가 가해자를 옹호한 논리와 합의를 시도한 경과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열 개의 키워드를 둘러싼 이야기는 주어진 시간을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짧게 끝내달라고 눈치를 줘도 소용이 없었다. 각 키워드에 담긴 내용들은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엮이기도 반복되기도 하면서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희망과 의지를 전했다.
또다른피해자모임(2차 가해자)의 천막농성, 천막의 문구는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이
운동의 분열로 여겨지고 배척되어왔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운동사회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기
2부에서는 대리인, 대책위, 진상조사위 등을 통해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1부가 길어지는 바람에 2부에서는 쟁점에 대해 토론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2부 발언자의 발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운동사회의 성격과 성폭력 사건해결 과정에서의 특수성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발언자에 따르면 운동사회는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내부를 동질적이라고 가정하는데, 성폭력 사건 제기는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행위로 운동사회에서 배척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문제제기 과정에서 피해자는 많은 경우 그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상실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을 되돌아보아도, 발언자가 지적한대로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기존의 관계에서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하는 경우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고, 민주노총 김00사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비교적 짧은 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2부에서는 통합진보당 이00, 충남대련 김00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소개와 공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획단계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날 제기한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에 대한 내용은 이 사건이 당면한 문제에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특히 이 사건은 2차 가해자들의 적극적인 반발이 두드러졌다. 이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2차 가해로 매도당해 명예가 실추되고 인권이 유린되었다며 ‘또다른 피해자 모임’을 꾸려 민주노총 충남본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선전을 진행했다. 이 사건을 들으며 마음이 착잡했다. 단지 충남에서만 벌어지는 일 같지 않았다. 최근 들어 명예훼손을 이유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제소하는 일들이 자주 들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피해자가 고소를 하면 ‘어떻게 부르주아의 사법기관을 믿느냐’며 반발했던 소위 운동세력들이 이제는 ‘부르주아 사법기관’에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막아달라고 제소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콘서트 자리는 단순히 민주노총 김00성폭력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공유되는 장이 되었다.
어설프고 투박했을지라도...
<북콘서트, 하늘을 덮다>의 진행은 매끄럽거나 세련되지는 못했다. 행사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고, 무대에서의 발언 역시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계획된 주제를 벗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발언자들의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에 다 담아내려 한 기획 자체가 욕심일지 모른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발언자들이 성폭력 사건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분노와 의지, 회의 등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번 북콘서트는 단순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에 한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사회 성폭력에 저항해 온 목소리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열었다.
특히 운동사회 내에서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는 와중에 마련된 자리라서 더욱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러한 역풍에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고,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의 북콘서트는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논쟁과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후에도 다양한 주체들이 고민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이어졌으면 한다. 각자의 머리 한 구석에 박혀있는 다양한 경험들이 공유되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성폭력과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응하는 방식들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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