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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국제]리비아 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 노엄 촘스키 인터뷰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1/05/05 17:44
  • 수정일
    2011/05/05 17:4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아랍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던 세계의 진보진영은 리비아에 와서 입장이 갈렸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격렬한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권좌에서 내려올 것을 거부했다. 반대시위는 내전 형태로 발전했고, 리비아 동부 주요도시인 벵가지가 반란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러나 전황은 카다피 군에 유리하게 반전되었고, 벵가지가 카다피 군에 함락되어 대학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등하는 국제여론 속에서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는 것을 포함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프랑스·영국·미국이 주도하는 군사개입이 시작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국의 진보진영과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은 마치 남한에서 80년대 벌어진 NL과 PD 진영의 논쟁처럼 제국주의 반대가 우선인가 카다피 반대가 우선인가를 놓고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서구 강대국들의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의 목적이 결코 인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아마도 리비아 대중 대다수에게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제국주의 반대를 전면에 세우거나, 그러한 입장의 연장선으로서 일부 국내외 논자들처럼 반란세력 자체를 서구 음모의 산물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멀리 떨어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섣부른 판단보다 투쟁하고 있는 리비아 대중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다. 사노신은 리비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지난 3월29일 노엄 촘스키와 미국의 진보적 온라인 신문 Znet의 인터뷰를 축약해서 번역 게재한다. [편집자주]

 

 

가장 넓은 의미로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동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대상지역이 어디든 미국이 취하는 정책적 선택을 항상 파악할 수 있는 포괄적인 동기와 테마는 무엇인가? 중동과 아랍세계에서 미국이 취하는 정책을 규정하는, 좀 더 구체적이지만 여전히 포괄적인 동기와 테마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리비아의 현 상황에서 미국정책의 보다 구체적인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바마 스스로도 3월28일 대통령 연설에서 리비아 군사개입의 인도주의적 동기에 대해 말한 내용을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공언하는 고귀한 의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과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1)”을 주장하는 쪽이 과연 자신이나 우방들이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06년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이 확실한 구실 없이 레바논을 살인적이고 파괴적으로 침공하는 동안 오바마가 비행금지구역을 요구했었는가? 오히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이 그 침공을 지지하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이란과 시리아에 대해 응징을 요구하는 상원 결의안을 공동발의 했다고 자랑하지 않았었나?
답은 명확하다. 실제로 인도주의적 개입과 보호권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말과 글들은 이 간단하고 적절한 시험을 배겨내지 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짜 동기가 무엇인가는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어느 국가든지 그 진짜 동기를 캐내기 위해서는 문서적·역사적 기록을 보아야만 한다. 미국의 동기는 무엇일까? 아주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2차대전 동안 수행된 고위급 정책 연구(high-level planning studies) 이래로 많이 변한 것 같지 않다. 전시정책 입안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미국이 “군사·경제적 지배권”을 가진 “광대한 지역(Grand Area)”을 유지하며 그런 세계구상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의 “주권행사를 제약”할 수 있음을 보장받는 “묻지마 권력(unquestioned power)”의 확립을 요구했다. 이 <광대한 지역>은 서반구2), 극동, (중동의 에너지 매장지역을 포함한) 옛 대영제국 식민지와 유라시아 대륙의 가능한 많은 부분, 아니면 적어도 서유럽에 있는 그 산업적·상업적 중심지를 포함했다. 존경받는 영국 외교사가 제프리 워너의 정확한 평가대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전후 미국의 패권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은 문서기록을 볼 때 명확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 후 몇 년 간의 기밀문서에서 읽고 현실에서 목격한 것처럼 전시에 주의 깊게 세워진 계획들이 실제로 수행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변하고 그에 따라 전술적 조정이 있었지만 기본 원칙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중동 — 아이젠하워의 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 — 에 관련한 주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 묻힌 막대한 에너지 자원에 있다. 이 지역에 대한 통제는 영향력 있었던 로스벨트 대통령의 자유주의적인 보좌관 A.A 베를리가 일찍이 지적한한 대로 “세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러한 관심사가 이 지역에 관련한 일들의 배경에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미국이 실패했다는 것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듣기 좋은 수사는 정책목표에 대한 정직한 선언으로 변했다. 2007년 11월 백악관은 이라크가 미군에게 무한정한 접근권한을 허용해야 하며 미국인 투자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칙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을 발표했다. 두 달 뒤,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미군의 영구적인 체류, 혹은 “이라크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통제”애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법령은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회에 통고했다.
석유에 대한 통제가 중동정책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상당히 훌륭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에서 믿을 만한 독재자에게는 사실상 자유로운 지배가 허용된다. 예를 들어, 최근 사우디의 독재정권이 저항의 조짐을 원천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사용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쿠웨이트의 소규모 시위들이 즉각 분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레인에서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 교도를 억압하는 정책에 대한 개혁 요구가 일어나 소수의 수니파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우디군 병력이 개입했을 때, 정부군은 진주광장 — 바레인의 타흐리르 광장3) — 의 천막들을 짓밟았을 뿐 아니라 바레인의 상징이며 시위참가자들이 점유하고 있었던 진주조형물까지 파괴해 버렸다.

 

바레인 진주광장의 시위대

바레인의 경우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인 미국 제5함대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가 왕국 최대의 석유매장지인 동시에 바레인과 마찬가지로 시아파 다수 지역이기 때문에 특히 민감한 문제이다. 기묘한 지리·역사적 우연으로 인해 세계 최대의 탄화수소 매장지역들은 대개 시아파 지역에 속하는 페르시아 만 북부를 둘러싸고 있다. 시아파 동맹이 맺어질 가능성은 오랫동안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악몽으로 다가왔다. 탄화수소 매장량이 부족한 주요 국가들에게 그들이 선호하는 독재자가 곤란에 빠질 때 전술은 한 가지 원칙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그것은 “가능한 오래 그를 지지하라, 그렇게 할 수 없게 됐을 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사랑을 표명하기 시작하라, 그리고 가능한 한 기존 체제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지루할 정도로 익숙하다. 마르코스, 뒤발리에, 전두환, 차우셰수쿠, 모부투, 수하르토 등등. 그리고 근래 들어 튀니지와 이집트까지. 시리아 체제는 견고해서 붕괴하기 어려울 뿐더러 미국의 목적을 지지할 명확한 대안이 없다. 예멘은 직접적인 개입이 아마도 워싱턴에 더 큰 문제를 불러올 늪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 곳에서 자행되는 정부의 폭력은 단지 위선적인 선언들만 난무하게 만들 뿐이다.
리비아는 그와 다르다. 그곳에는 풍부한 석유가 있고 미국과 영국이 최근까지 잔인한 독재자에게 상당한 지지를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다피는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자이다. 그들은 더욱 순종적인 친구를 선호한다. 더욱이 리비아의 넓은 영토 대부분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석유 전문가들은 더 의존적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 서구가 개발할 수 있는 풍부한 미개발 자원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비폭력 시위가 시작되자 카다피는 그것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반란이 일어나서 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벵가지가 해방되고 이는 서부에 있는 카다피의 근거지로 확대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다피의 군사력은 상황을 반전시켜 오히려 벵가지 코앞까지 진출했다. 벵가지에서 학살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오바마의 중동정책 보좌관 데니스 로스가 지적한 대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비난할 것”이다. 이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고 카다피의 군사적 승리는 그의 권력과 독립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미국은 비행금지구역을 요구하는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3호4)에 동참했다. 비행금지구역은 프랑스·영국·미국에 의해 실행되고, 미국은 거기서 보조 역할을 맡았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행위에 제한을 두거나, 심지어 결의안 1973호에 대한 확대해석을 억제하려는 노력도 전혀 없었다.
프랑스·영국·미국의 제국주의 삼총사는 UN 결의안을 즉각 직접 참전에 대한 승인으로 해석했다. 반란군이 아니라 카다피 군에 무력으로 휴전이 강요되었다. 반군은 서부로 진군하면서 군사지원을 받고, 곧 리비아의 주요한 석유생산지들을 확보하고 진군 태세를 갖추었다. UN 결의안 1973호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사안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언론의 문제제기를 불러왔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즈>의 카림 파힘과 데이비드 커크패트릭(3월 29일)은 “만일 카다피 군이 수르트[카다피 출신 부족의 중심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고 시민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고 있지 않다면, 다국적군은 어떻게 수르트 주변의 카다피 군에 대한 공습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또 다른 기술적 난점은 UN안보리 결의안 1973호가 “리비아 전역에 적용되는 무기금수 조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반군에 대한 외부에서의 무기 지원이 비밀리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카다피 정권 아래서 서구 기업들의 석유에 대한 접근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석유는 개입의 동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주장이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의 이라크에 대해서나, 이란과 쿠바에 대해서 통용될 수 있었다. 워싱턴이 추구하는 것은 부시의 공언대로 지배하거나 최소한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우방을 심어 놓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내부문서들은 중동 뿐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민족주의의 바이러스”가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민족주의적 정권들은 <광대한 지역> 원칙에 어긋나는 지나친 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정권들은 나세르가 그러했듯이 자국민의 욕구에 따라 자국의 자원을 직접 지배하려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런 유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대개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이라는 전통적인 세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두 강국인 터키와 이집트는 비행금지구역을 강제할 능력이 있겠지만, 세 나라의 군사작전을 미온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페르시아 만의 독재정권들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리비아 독재자가 제거된다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오일달러들을 되찾고 복종을 확보하기 위해 쏟아 부은) 선진 군사장비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참여는 명목상의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맹방 르완다를 제외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UN안보리 결의안 1973호를 지지하면서도 대개의 경우, 몇몇 나라들은 특히 강하게 3국이 결의안을 해석하는 방식에 반대하고 있다. 그 외에는 결의안 1973호를 지지한 나라가 거의 없다. 러시아·중국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은 전면적인 휴전과 대화를 요구하며 기권했다. 제안된 수단이 “이미 어려운 리비아 국민의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인도 역시 기권했다. 인도 역시 군사력보다는 정치적 수단을 요구했다. 독일조차 기권했다. 이탈리아도 머뭇거렸다. 아마 부분적으로는 그 나라가 카다피와 석유 계약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의 자결권을 믿는 제국주의 반대자들과 민중들이 UN이나 특정 국가들에 의한 개입을 지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고려할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째 UN의 개입, 둘째 UN승인이 없는 개입. 우리가 현대세계에서 (전형적으로 극단적인 폭력에 의해) 확립된 형태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다른 고려지점보다 우월한 권리를 가진 국가의 신성불가침성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면,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해답은 두 경우 모두에 동일하다. 나는 그런 (국가주의적) 신념에 대해 논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 문제는 넘어가겠다.
첫 번째 경우에 관해서라면 UN 헌장과 이후의 결의들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개입에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에 관련해서 보장되어 왔다. 이는 물론 “민족자결을 믿는 제국주의 반대자”가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결의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개별 상황에 대해 다른 고려지점들이 개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는데 현존하는 국가들에게 신성한 불가침성이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한 그 물음에 대해 원칙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이 가능하다.
두 번째의 경우 — UN결의안 1973호에 대한 프랑스·영국·미국의 해석과 관련해 나타난 예와 다른 많은 예들 — 에 관련해서도 대답은 다시 적어도 UN헌장과 협정들에 확정된 형태로 전 세계의 국가 체제가 가진 신성불가침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물론 군사개입 혹은 무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늘 무거운 입증의 책임5)이 있다. 그 책임은 적어도 국제법을 준수하겠다고 공언하는 국가들이 UN헌장을 위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두 번째 경우에 특히 높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패권국가(global hegemon)가 그런 입장을 거부하고 UN과 OSA 헌장 및 다른 국제협약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46년 (미국의 주도 하에) 국제사법재판소가 창설되었을 때 그 재판권을 용인하면서, 워싱턴은 국제협약 위반에 대한 고발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시켰고, 이후 유사한 유보조항들을 가지고 제노사이드 협약 — 국제 재판소들이 지지한 모든 입장들 — 을 비준했다. 왜냐하면 그 절차는 재판권의 승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관례적으로 그것이 비준하는 국제협약에 자신을 효과적으로 제외시키는 중요한 유보조항들을 덧붙이고 있다.
입증의 책임을 충족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법적 권리가 주어져야 할 몇 가지 현실 사례들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비록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것으로 정당화 되지는 못했지만 마땅히 지지받아야 했을 두 건의 군사개입이 있었다. 그것은 1971년 인도의 동파키스탄 침공과 1978년 11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었는데, 두 경우 모두 대량학살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이 예들은 잘못된 지배자의 오류로부터 고통 받고 있었다는 이유로 흔히 서구국가들에게 부여되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 개입들이 서구국가들이 수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철저하게 이 개입들에 반대했고, 오늘날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들을 종식시켰으며, 폴 포트의 학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폴 포트를 캄보디아에서 몰아낸 국가들을 강력하게 응징했다. 베트남은 지독한 비난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이 지원한 중국의 침공과 미국-영국 군대와 태국의 기지들에서 캄보디아를 공격한 크메르루즈에 대한 외교적 지원에 의해 응징 당했다.
이 사례들에서는 입증의 책임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예들을 생각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리비아에서 UN결의안 1973호를 위반하고 있는 제국주의 3강에 의한 개입의 경우, 그 나라들이 보인 소름끼치는 이력들을 보았을 때, 입증의 책임이 특히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우리가 현재 형태의 국민국가들을 본질적으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 입증의 책임이 원칙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다. 동기가 뭐라고 생각하든 벵가지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학살을 방지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의 반체제 세력들이 살아남아서 자결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학살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염려하는 사람이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런 학살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타당할 경우가 있겠는가?
논쟁을 위해, 그런 의도가 진실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그것이 내가 앞에 언급한 간단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이라 해도,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거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상황에 달려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군사 개입이 더 심한 학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면 반대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지도자들이 정말 순수하고 정직하게 1956년 헝가리 학살을 막을 목적으로 모스크바를 폭격했더라면, 혹은 크레믈린이 정말 순수하고 정직하게 1980년대 엘살바도르 학살을 막을 목적으로 미국을 폭격했더라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들로 볼 때, 우리 모두는 그런 터무니없는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코소보에 전쟁에 파견된 NATO군

 

많은 사람들이 1999년 코소보 군사개입과 현재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이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두 사안에 있어 중대한 유사성을, 그 다음으로 주요한 차이 지점들을 설명해줄 수 있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서구 선전 시스템의 가공할 위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유사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코소보 군사개입의 배경은 보기 드물게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기록들 중에는 두 개의 자세한 국무부 편찬물, 코소보감독기구의 (서구)요원들이 현장에서 작성한 광범위한 보고서들, 나토와 UN의 풍부한 자료들, 영국의회 조사와 그 밖의 많은 기록들이 있다. 보고서들과 연구서들은 사실과 잘 부합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습 전 몇 달 사이에 현장에서 중대한 변화는 없었다. 세르비아 군과 주로 이웃의 알바니아에서 공격을 감행하던 코소보해방군 게릴라 양측 모두 잔혹행위를 저질렀다. 영국의 고위 기관에 따르면 (영국은 동맹국 중 가장 강경파였다.) 적어도 후자의 잔혹 행위는 적어도 관련 기간 동안에는 벌어졌다. 코소보에서 심각한 잔혹행위는 나토가 세르비아를 폭격한 이유가 아니었다. 반대로 심각한 잔혹행위는 나토 공습의 결과로 벌어졌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폭격 몇 주 전에 나토가 사령관 웨슬리 클락 장군은 폭격이 지상에서 세르비아군의 잔혹한 보복을 유발할 것이라고 백악관에 통지했다. 그리고 폭격이 시작되자 언론은 그러한 반응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UN이 처음으로 코소보 밖의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폭격이 시작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폭격 중에 이루어진 밀로셰비치에 대한 기소는 많은 부분 미국과 영국의 정보에 기초해 이루어졌다. 기소는 예외적으로 공습 이후의 범죄만으로 국한되었으며, 당시 더 악질적 범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던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이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외교적 해결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실제로 공습 78일 후에 부과된 UN 결의안은 세르비아와 나토 사이에 상당한 입장의 타협을 이루고 있었다.
서구의 자료를 포함하여 이 모든 내용은 내 책 『세 새대가 선을 긋다 (A New Generation Draws the Line)』에서 자세히 검토되고 있다. 확인적 정보(corroborating information)는 그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다이애너 존스턴6)은, 공습이 발표된 3월 20일 임무가 철회되기 전까지 코소보 상황을 파악하기 매우 좋은 위치에 있었던 코소보감독기구의 유럽측 책임자 디트마르 하르트비히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쓴 2007년 10월 26일자 편지를 보고한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98년 11월부터 개전 전날 그 지역을 소개할 때까지 받아본 어떤 보고서에서도 세르비아인들이 알바니아인들에 대해 중대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없다. 또한 대량학살이나 대량학살류의 사건, 범죄와 관련된 단 하나의 사안도 없다. 반대로 내가 받은 보고서에는 항상 점차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코소보해방군의 세르비아 행정부에 대한 공격을 고려해볼 때, 세르비아의 공권력은 상당히 자제와 절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세르비아 정부의 분명하고도 자주 언급되는 목표는 (1998년 10월) 밀로셰비치-홀부르크 합의의 문구 그대로 지키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개입할 구실을 주지 않으려 했다. … 코소보감독기구가 각국의 정부에 보고한 내용과 각국 정부가 이후에 언론과 대중에 유포한 것 사이에는 커다란 ‘관점의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는 유고슬라비아와 전쟁을 위한 장기간의 준비요소 중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내가 코소보를 떠나기 전까지, 언론과 정치인들이 언론에 못지않은 기세로 쉬지 않고 주장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1999년 3월 20일까지는 이후 국제사회가 불법적인 조치를 취하게 만든 군사개입을 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EU 회원국이 전쟁 발발 전후로 보여준 집단적인 행동은 심각한 우려를 불러왔다. 이는 진실은 파묻혔고 EU는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양자물리학이 아니며 언제나 충분히 의심할만한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사안만큼 결론이 확고히 뒷받침되는 것은 드물다. 매우 명백하게도 모든 것이 완전히 부당한 것이었다. 지배적인 교리는 어디까지나 나토가 인종청소를 멈추기 위해 개입했다는 것이다. 풍부한 사실 증거들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공습지지자라면 그것이 잠재적인 학살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지지를 정당화시키지만 말이다. 이는, 그러므로 우리는 폭격하지 않으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대량학살을 중지시키기 위해 대량학살을 불러오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 이보다 더 충격적인 정당화들도 있다.
이러한 만장일치적인 동의와 열정의 이유는 명백하다. 김일성조차 부러워했을 법한 미친듯한 자기찬양과 힘의 과시 이후에 공습이 개시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다른 곳에서 검토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성사에 있어 주목할 만한 시기는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쇼가 벌어진 뒤에는 영광스러운 대단원만 있으면 되었다. 고귀한 코소보 개입이 그러한 대단원을 장식했다. 그리고 이런 환상은 강력하게 유지되어야 했다.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두 개입 모두 숭고한 목적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각색된 아전인수격 서술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현실 세계의 모습은 두 사례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은 진행 중인 이라크 무력개입과 현재 리비아 개입 사이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이 사안에 대해서도 유사한 지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이 사안에 대해서도 같은 나라 둘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빼면 의미 있는 유사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의 경우, 개입의 목적들은 명확히 인정된 것들이었다. 리비아의 경우 그 목적은 적어도 하나의 측면에서만 유사한 것 같다. 그것은 앞에서 지적한대로 믿을만한 우방의 정부체제가 지금 수준을 훨씬 넘어서 서구 국가들이 바라는 것들을 지지하고 서구 투자자들에게 리비아의 풍부한 석유자원 접근에 특혜를 주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리비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가? 그 맥락에서 미국에서 미국의 정책과 관련하여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과 반전 운동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당연하게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현재(3월29일)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석유가 풍부하며 서구 제국주의 권력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 동쪽 지역과 지위가 약화되는 잔혹한 독재자 하에서 황폐화된 서쪽 지역으로 리비아가 나뉘는 것, 또는 서구 국가들이 지원하는 세력의 승리 중 하나일 것 같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프랑스·영국·미국 삼국은 문제를 덜 일으키고 더 의존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런던에 근거지를 둔 아랍 언론 <알 콰즈 알 아라비(al-Quds al-Arabi)> 3월 28일자에 가능한 이후 결과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잡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리비아를 “반정부 세력이 주도하는 석유자원이 풍부한 동쪽지역과 카다피가 이끄는 가난에 찌든 서쪽 지역, 이렇게 두개의 국가로” 분할하고 “… 유전이 안전하다는 점으로 볼 때, 우리는 인구밀도가 낮고, 서구의 보호를 받는 새로운 리비아 석유 토후국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이는 페르시아 만의 토후국들과 매우 비슷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아니면 서구의 지원을 받는 시위대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독재자를 제거하는 데까지 나아갈지도 모른다.
평화와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외부권력의 강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려고 하는 리비아 사람들을 돕고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추구할 방향과 관련하여 희망사항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그들의 손에 있어야 한다.

 

번역│이정인 (wjddls@jinbo.net)
정지원 (jeewon@jinbo.net)

 

각주----------
1)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인권유린 등의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을 때 국제사회가 개입해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2005년 9월 UN 세계정상회의에서 정해졌다.
2) 서반구(西半球)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서쪽의 반구를 가리키며, 대체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의미한다.
3)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광장,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4) 카다피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강화되자 UN안보리가 3월17일 통과시킨 대 리비아 결의안. 주요한 내용은 리비아와 일체의 무기거래 금지,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리비아 자산의 동결 등이다. 이를 집행하기 위한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군기지 공습은 이 결의안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비판이 있다.
5)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
6) 유럽과 서구의 외교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좌파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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