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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Focus]진보정당 통합논의,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6/10 14:23
  • 수정일
    2011/06/10 15:1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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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 간 통합논의가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6월1일, 6차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서는 '오는 9월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이 가까스로 도출되었다. 그러나 합의문 도출과정에 대한 후폭풍으로 각 당 내부 사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지난 5월2일 3차 연석회의 합의문 도출 과정에서는 진보신당 한석호 사무총장이 일부 당원들의 문제제기로 인해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3차 연석회의 합의문이 진보신당 당원들과의 논의 없이 몇몇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관철되었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이번 6차 연석회의 합의문 도출과정도 줄다리기 진통 끝에 사회당이 배제된 채 진보신당 지도부와 민주노동당 지도부만의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당원들과의 토론과 소통을 무시한 채 합의문을 도출한 진보신당 지도부와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직권조인을 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진보정당 간 통합논의 초기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큰 틀의 대결구도는 민주노동당 대 비(非)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 사회당을 포함하여 세 정당이 단일정당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노회찬 등 진보신당 내에서 이른바 ‘통합파’라고 불리는 구 지도부 역시 국회의원 의석수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는, 어떻게든 의회제도 내로 진입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반면에 진보신당 구 지도부를 제외한, 소위 ‘독자파’라고 불리는 진보신당 당원들과 사회당은 무조건적인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반대했다. 이들은 북한의 권력 세습 문제, 2012년 총선, 대선 방침, 민주노동당 내 패권주의에 관한 입장차이가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북한 권력 세습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실질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통합을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구 지도부가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단지 통합만을 위한 통합에 반대하는 실질적 이유는 2012년 총선에서의 야권연대전략,  더 나아가 대선에서의 ‘연립정부론’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연립정부론은 사실상 2012년 대선에서 국민참여당과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들과 손을 잡고 이들의 힘을 빌려 어떻게든 입각해보겠다는 전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은 진보정당의 통합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지도부들에 의해 묵살되고 있다.

 

반복되는 논쟁

 

진보진영이 무조건적으로 통합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 국민참여당과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이번에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진보신당의 경우,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진보신당 당원들과의 합의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었을 때 당 내 갈등과 반발이 정점에 치달으며 진보신당 구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가 최초로 불거지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좌우를 막론하고 진보진영의 총단결, 자유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개 진보진영이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의 단일한 정당으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신당 구 지도부와 민주노동당 인사들이 모여 연석회의 합의문이 나오기도 전에 만들어 버린 ‘진보의 합창’ 같은 조직 역시 같은 맥락 하에 있다. 이들은 선거에서 이겨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늘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보진영을 하나로 합친 뒤 자유주의 세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 서로에게 좋고, 장기적으로 필요한 윈윈전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얼마 전부터 이 같은 진보정당 통합논의의 흐름을 타고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합법화와 민주노동당 건설을 거치면서 형성된 현재의 노동운동질서를 앞으로 한 단계 더 비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진보진영의 통합을 주장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고 이야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계급이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도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남한의 노동운동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던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87년 이후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기찬 투쟁 끝에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이 남한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민주노총 기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로써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의 바통은 민주노동당이 넘겨받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전체 노동자 중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비율은 6~7% 이상을 넘지 못했으며, 민주노동당 지지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보진영의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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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성장은 왜 여기서 멈추었는가? 그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건설되기 시작한 90년대 후반에 이미 전체 노동자계급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존 노동운동에서 배제되었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뒤로 한 채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은 노동운동, 진보진영 내에서 주류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특정 정파 중심의 패권주의, 경직된 조직질서 등이 횡행했다. 결국 자기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은 남한 노동자 전체의 이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혹은 의회제도가 대중들의 참여를 배제한 채 어떻게 낙후되어가고 있는지 등 급격하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정치적 흐름들을 전혀 포착해내지 못한 채 그저 명분 없이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정당성만을 외치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통합만을 강조하며 진보진영이 여전히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속내는 무엇인가? 이들의 속내는 기존의 노동운동질서에서 배제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새로운 전략,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것이 아니다. 원래 가던 길 그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기존의 노동운동, 진보정당 지도부의 입지를 제도권 정치 질서 속으로 더욱더 확고하게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진보신당 구 지도부와 민주노동당의 몇몇 명망가들을 다음 정권에 입각시켜 장관 자리 하나쯤 꿰차게 하려는, 혹은 좀 더 많은 수의 국회의원이 배출되길 바라는 심산인 것이다. 지금의 진보정당 통합논의는 기존 노동운동 진영 내 구 지도부의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출세 욕심에 따른 이합집산일 뿐이다.

 

무조건적인 통합은 몸집 불리기 일 뿐

미조직, 비정규직 대중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명분과는 별 상관없이 진행된 진보정당 통합 논의는 노쇠한 몇몇 상층 지도부 중심의 논의로 흘러가버렸다. 통합 논의에 있어서 쟁점이 되거나 합의되지 않은 문제들이 진보신당, 사회당 당원들 사이에서 제대로 토론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합의에 기반하지 않은 현재 논의의 수준은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분리되어 나오던 2007년의 수준, 사실상 '도로 민주노동당'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직 통합만을 위한 민주노동당의 압박과 진보신당의 줄다리기만이 난무했을 뿐 생산적인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도 수년 간 특별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틀로 조직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들의 이해를 대변해야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신당의 당원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된 계기가 2008년 촛불이었고,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앞서 10여 년 간의 투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듯 아무런 계기 없이 당과 노동조합이 확대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무조건 진보정당이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로는 지금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정치세력화를 뛰어넘기 위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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