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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월호][Focus]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시작됐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6/24 17:34
  • 수정일
    2011/06/24 17:3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 85크레인과 희망버스가 만나 만들어낸 특이하고 특별한 연대
 


[편집자주] 기고글은 본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성웅 (현중사내하청지회 부지회장)
 

 

 

출처 : 울산노동뉴스


미친등록금과 85크레인과 박종길 열사의 절규는 평면 위에 하나로 연결된 사건이자 현시기 계급투쟁의 낡은 것과 생성되고 있는 것의 대립과 투쟁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정세지도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박종길 열사의 절규를 서둘러 매장하고 산업평화를 선언하는 노동조합관료제의 공고함과 반동성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식물성 투쟁의지”로 요약되는 진정성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 조직노동자들과 미조직노동자들의 협력과 직접행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계급투쟁”이다.

“해방구에서 느낄 수 있는 감격을 맛봤다”, “그렇다 우리는 아름다운 불법이다”, “사람들이 담을 넘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기죽었던 조합원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 “오늘 투쟁의 역동성을 봤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어울리면서 기쁨을 만끽하고 승리의 환희를 느꼈다”, “진정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해방공간을 만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진조합원들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내듯 감정이 북받쳤다”, “오늘 85크레인 아래에서의 시공간은 운동의 진정성이 만들어낸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한 이야기들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고 슬프고 그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탄압의 늪지를 통과하고 있는 동지들이 “해방구에서 느낄 수 있는 감격을 맛봤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원하고 있는 세상”이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확실히 85크레인과 희망버스가 만나 만들어낸 특이하고 특별한 연대는 하나의 사건이었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개화를 예고하고 있다.

 

고립된 섬에서의 구조신호


희망버스의 출발지는 한진중공업 85크레인이었다. “폐절된 공간에서 퇴화를 지연시키는 유일한 도구가 트위터였다.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나는 세상을 향해 맹렬히 구조신호를 보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난파선의 필사적인 깃발을 용케 알아본 사람이 김여진”이었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였다.

이 땅의 모든 생산지가 내전상태이고 모두가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답답할 정도로, 목숨을 통해 호소해도 연대는 잘 조직되지 않고 노동조합관료제는 현장의 체념과 절망을 토대로 공고화되고 있다.

한진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한진중공업지회는 “쌍용차 꼴 나서는 안된다”는 두려움 앞에 “여론을 잡아야 한다”는 기조 하에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비판과 토론을 억압했다. “분열주의자들을 엄단하겠다”는 쟁대위 지침은 평조합원들의 말문을 막았고 그들을 동원대상, 지침에 단순히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켰다. 지도부의 투쟁의지를 보지 못했던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나가고 살아남은 조합원들도 농성장을 떠나갔다. 떠나는 조합원들의 뒷모습을 훤히 내려다봤던 김진숙 동지의 심정은 어떠하였겠는가?

고립된 섬, 85크레인 위에서 김진숙 동지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하고 차갑고 딱딱한 그 강철 위에서 텃밭을 만들고 상추와 치커리와 방울토마토와 딸기의 씨를 뿌렸다. 전망을 찾지 못하고 떠나는 조합원들의 처진 어깨를 보며 눈물 흘리고 그 눈물을 거름 삼아 식물들을 키웠다. 그녀는 종파적인 심리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았고 상처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위계 없이 어깨 걸고 자라는 어린뿌리들의 합창에 보폭을 맞췄다. 규정하고 단죄하고 처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실천을 통해 대화를 생산하고 마음을 두드려 움직이게 하고 반대자들의 칼끝조차 품어 적대를 누그러뜨렸다. 심지어 김진숙 동지는 고립된 섬에서 분열주의자라고 참주선동하는 지회 지도부를 향해 수확한 치커리와 방울토마토와 딸기를 내려보냈다. 김진숙 동지는 비난과 참주선동에 대해 식물성 투쟁의지로 화답했다.

내전의 한복판에서 김진숙 동지가 보낸 구조신호는 새로운 언어였다. 내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소박한 것이었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필수적인 광합성 작용, 식물성 언어였다. 비난과 분열, 절망과 체념을 넉넉하게 품었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자극하는 따뜻한 언어였다.

“어 내가 보고 싶은 분, 거기 괜찮은가요?” 그렇게 김여진과 첫 접선이 이뤄졌고 희망버스가 기획되기 시작했다.

 

 

츨처 : 울산노동뉴스


진정성이 있는 사람들,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들의 만남

희망버스는 비정규직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면 누구나 모이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처음 발의됐고 기륭전자, 용산, 쌍용차 투쟁에 함께 했던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 판화가들이 결합하고 김진숙을 사랑한 노동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추진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송경동 시인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가자는 글을 언론에 기고하고 배우 김여진과 홍세화, 문정현 신부가 함께 가자고 제안하면서 참가자들은 처음 서너대에서 17대의 버스로 늘어나게 됐다.

이 버스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자, 주부, 시인, 소설가, 화가, 판화가, 노령의 운동가, 교수, 전교조 선생님, 작은책 글쓰기 모임 회원들, 날라리 외부세력, 학생, 인터넷 보고 무작정 온 직장인, 영화작가, 고등학생, 대학생, 전문MC, 사진작가, 무엇보다도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탔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한 몸이 됐다.

날라리 외부세력은 말한다 “날라리들은 놀러 갑니다. 심각한 곳도 일단 놀면서 분위기를 살리고 놀면서 진숙 누님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그녀를 지켜주고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다. 자기들의 방식대로 마음을 담아 연대를 조직한 것이다. 진숙누님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은 정부와 자본의 무장한 사병들의 폭력을 통과하는 전투 자체였다. 그 전투를 그토록 즐겁게 해치울 수 있다니!

“진정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은 10%에 속해 있는 조직노동자들이거나 10% 밖에 존재하는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이거나 노동자들의 자식들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은 투쟁을 조직하고 확대하기 이전에 먼저 자본의 지불능력을 고려하거나 국회의석 자리를 먼저 계산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오늘도 자본으로부터 억압받고 탄압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분노보다 눈물에 더 익숙하고 소심함에 더욱 가까워서 김진숙 동지처럼 고공농성을 할 자신도 없고 투사가 될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약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제도화되지 않는 실천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투쟁해왔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으며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전통을 사수하고 있는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들과 가장 빠르게 손을 잡았다. 참 잘 어울리는 커플들이다.

진정성이 있는 이 다양한 사람들은 민주노총, 혹은 개량정당에 조직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새로운 소통 수단을 통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눈물로 빚어진 따뜻한 연대에 참가하고 그 힘으로 무장한 공권력이 생산하는 두려움을 너끈하게 뛰어넘은 사람들이며 85크레인 그 죽음의 시공간에서 집단적인 놀이와 율동을 통해 살림의 시간을 생산해내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적당한 타협과 뒷거래를 뛰어넘는 직접행동과 집회민주주의


희망버스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어왔다. 촛불행진을 불허하고 전원연행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도를 통해 행진하는 것은 어떠냐고 회유책을 제안했지만 경찰과 타협할 책임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희망버스는 평면 위의 협력이었지 위계를 갖는 수직적 구조가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책임자였다.

정문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민주노총과 민주당, 민주노동당과 경찰은 국회의원들의 항의방문과 정문 앞 촛불문화제의 컨셉을 잡아놓은 상황이었다.

진정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공장 앞에 도착하자 곧바로 사다리가 내려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촛불을 들고 공장 담벼락을 넘기 시작했다. 칠순의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 10대의 고등학생까지 사다리를 타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허둥지둥 경찰들이 와 사다리를 빼앗으려 했지만 희망버스의 직접행동을 막지는 못했다.

한진중공업 박성호 조합원은 “공장 담을 타고 넘어오는 모습들을 보면서 한진 조합원들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내듯 감정이 북받쳤다. 기죽었던 조합원들이 그렇게 좋아했다”며 “쌍용차 이후에 공권력이 무서워 대응조차 못하고 비폭력 비무장 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고 위축돼 있었다. 희망버스가 공장을 넘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조합원들은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장에 진입한 촛불은 무장한 용역들의 폭력을 집단적인 협력과 직접행동을 통해 몰아냈다. 이명박 정부와 한진자본은 공권력과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쌍용차의 뼈아픈 기억을 연출하려 했지만 “실천촛불”은 자본가들을 비웃듯 보란 듯이 ‘불법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공장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공권력과 용역깡패들의 일상적인 폭력을 견디며 투쟁해왔던 재능, 현대차, GM대우,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쌍용차 꼴 나서는 안된다”는 한진중공업지회 지도부의 통제와 억압에 짓눌려 있었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해방구에서 느끼는 감격을 안겨주었다.
촛불의 직접행동에 통제선은 없었다. 김진숙을 만나겠다는 충만한 의지, 어떻게든 85크레인 아래로 가서 힘을 주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에겐 무장한 사병들의 폭력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원연행 방침도 그들을 동요시킬 수 없었다. 그들에겐 만남에 대한 설래임, 애뜻함, 열정이 있었고 자본에 대한 분노와 긴장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공동행동에 참가했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졌다.

 

 

출처 : 울산노동뉴스


촛불의 직접행동은 공장 안에 집회민주주의를 도입했다. 희망버스를 막기 위한 컨테이너는 집회 연단이 됐다. 누구나 연단에 올라 발언할 수 있었고 대화를 생산해냈다. 집회에서의 자발적인 발언은 세대를 넘어, 성별을 넘어, 신분제도의 차이를 넘어 동지적인 일체감을 갖도록 했고 집단적인 협력이 만들어 낸 이 해방구를 사수하겠다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민주노총 집회는 누구도 허락 없이 연단에 올라갈 수 없다. 조합원들은 배제되고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앙의 방침은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전투적 행동은 통제된다. 뻔한 연사의 뻔한 이야기는 폴리스라인을 따라 배치된다. 긴장도, 열정도, 분노도 없다.

자본가계급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선언이 이뤄지는 장소가 민주노총의 집회라면 촛불의 직접행동이 공장에 도입한 것은“계급투쟁”이었다. 바로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노동자 대중운동의 방식이 집회민주주의, 노동자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공장과 사회가 만나 신분제도의 차이를 뛰어넘는 공동체를 구성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너무 오래동안 공장 안에 갇혀 있었다. 임금과 고용에 매달려 있었고 조합주의적 전망에 갇혀 꿈도 희망도 빼앗겨 버렸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당했다. 100만 촛불을 가로 막고 선 바리케이트가 바로 민주노총이었고 10%의 조직노동자 운동이었다.

그런데 산업평화(?)가 유지되던 공장에 느닷없이 침입자가 들어왔다.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하나의 비판처럼, 대안처럼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쌍용차의 어두운 그늘에서 비무장, 비폭력 무대응으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노동자들이 무장을 하지 않고서도 오직 집단적 협력만으로도 무장한 사병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다.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자신을 드러냈던 순간이었다.

이날은 세상과 담 쌓은 조합주의적 공장 담벼락이 무너진 날이다. 자본의 신분제도를 허용하고 오히려 이 신분제도로 자신을 둘러쌌던 부르주아의 성체, 노동조합관료제의 튼튼한 담벼락이 무너진 날이다.
공장 담벼락이 무너진 자리에는 공장과 사회가 만나 새로운 실천적 감각과 따뜻한 감성으로 무장한 공동체가 세워졌다. 자본가들이 도입한 신분제도의 다양한 위치에 속한 사람들이 그 차이 속에서도 먼저 손을 내밀고 따뜻한 웃음을 소통수단으로 교감하면서 즐거운 대화가 싹트고 집단적인 율동 속에서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건설했다.

공장과 사회가 만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만났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고 해고자와 현장노동자가 만나고 노동자와 학생이 만났다. 그들은 가장 깊은 어둠에서 여명까지, 여명에서 정오의 태양까지 발언하고 귀기울이고 노래하고 합창하며 손을 잡고 춤을 추며 하나가 됐다. 수직적 위계와 제도화된 차이와 비판을 억압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넘어서기 힘들다고 체념했던 자본의 신분제도는 믿지 못할 속도로, 그것도 한꺼번에 허물어져 내렸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85크레인 고공농성은 비정규직 우선해고, 사실상의 정리해고인 희망퇴직을 허용하고 상층 밀실교섭과 직권조인으로 마무리하려 했던 한진중공업지회 지도부의 노사협조주의에 맞선 투쟁이었다. “분열주의자들은 엄단하겠다”는 한진중공업지회 쟁대위 방침, 비판과 토론을 억압하는 관료주의에 맞선 투쟁이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지회 지도부도, 금속노조도, 10%의 조직노동자운동은 85크레인의 호소를 배제하고 고립시켰다. 실천적인 계급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오히려 생산지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통제하고 수습하고 해체하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미 부르주아 지배질서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자본의 유연화공세에 맞선 비타협적인 투쟁, 85크레인 고공농성의 호소에 대한 실천적인 화답이 희망버스였고 투쟁사업장 조직노동자들과 조직노동자운동 밖의 미조직노동자들이었다.
 

 

출처 : 울산노동뉴스

민주노총 사업계획 밖에서 공장으로 범람한 촛불의 “역습”은 노동조합관료제(관료화된 민주노총운동과 개량주의 진보정당운동의 결합)에 대한 실천적 비판이었다. 공장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어 촛불이 공장에 도입한 것은 바로 노동자민주주의였고 대중파업 속에서 등장했던 민주노조운동의 유년기에 느꼈던 해방구에서의 기쁨과 감동을 표현하고 있었다. 계급투쟁이 해체되고 있는 공장에 계급투쟁을 도입한 것이다.

공장에 도입된 촛불은 무엇보다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투쟁의 주체적 힘을 회복하도록 자극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더 이상 지도부의 지침에 무기력하게 따르는 수동화 된 개인이 아니었다. 지도부의 지침이 없이도 대화와 협력을 생산해내고 규율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 촛불의 경험이 새로운 지도력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지만 노동자민주주의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진중공업에 도입된 촛불은 다른 사업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쌍용차 정문 앞에서 출근 투쟁을 하는 해고자들이 웃기 시작했다. 촛불에 함께 했던 그들, 소풍오듯이 왔다 가지 말고 이틀이고 한달이고 85크레인을 지키자고 호소했던 그들, 죽음을 견뎌낸 사람들의 웃음은 남다른 것이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있는 것들이 빚어낸 새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85크레인과 희망버스가 만나 만들어낸 특이하고 특별한 연대, 공장에 도입된 촛불은 부르주아 지배질서의 필수불가결한 구성부분인 노동조합관료제를 그 한 복판에서 파괴할 수 있는 발견된 무기이다. 촛불의 경험은 위계화된 수직적 질서에 맞서 마당처럼 평등한 동지적 관계를, 제도화된 차이에 맞서 수평적 협력을, 관료적 명령에 맞서 집단적 율동이 빚어내는 비판과 토론을 생산해냈다. 공장에 도입된 촛불은 반복되고 확대재생산과정을 거치며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돼야 한다. 촛불이 생산해낸 이 특이하고 특별한 연대야말로 관료화된 10%의 조직노동자운동을 대체하고 뛰어넘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이며 이 운동의 거대한 출발이기 때문이다.

촛불은 아직 미약하다. 노동조합관료제를 넘어설 수 있는 전망과 조직적 힘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조직되지 않은 무작위 대중들의 행동”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하기 이전에 이들이 생산해내고 있는 혁명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 운동으로부터 배우며 이 운동을 공장으로 도입해야 한다. 조합주의적 선동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공장 담벼락을 허물어 사회적 이슈에 능동적으로 참가하도록 이끌고 이 이슈가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중적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장에 도입된 촛불운동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갖출 수 있는 프로그램, 노동조합관료제를 역류하는 현장으로부터의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호소는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전체 계급의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슬로건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재동 노숙농성을 할 때 지나가는 한 늙은 청소노동자가 “당신들이 희망이다”고 지지했고 이 지지는 청소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연결됐다. 바로 이것이다. 촛불을 공장으로 도입해 현장으로부터의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이 계급투쟁은 촛불을 자극하고 촛불의 지지를 이끌며 촛불에 자극받은 미조직노동자들이 자신의 공장과 직장에서 단결과 투쟁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이 결합되는 우리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것이다.

비극의 정점에서 이미 이 땅의 다수자들은 새로운 감각과 감성적 연대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전진하고 있다 이 걸음에 보폭을 맞추면서 다만 한 걸음 앞서서 있을 수도 있는 약점을 보안하고 운동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갖추게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지금 혁명적 주체는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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