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노동자평의회]3부 적 - 민족주의

 

 

 

[노동자평의회] 3부 적 - 민족주의

 

 4.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본질적 신념(creed)이다. 부르주아지가 분리된 인간객체보다 상위에 두는 것은, 약간의 의미가 있지만, 민족, 인민, 조국 또는 국가라는 상이한 이름들로 지시되고 있는 공동체이이다.

  민족과 민족의식은 부르주아지와 함께 출현하고 발전해왔다. 원래 농민들의 삶은 단지 마을과 거대 종족이나 지역(country), 주(canton)라는 공동체만을 알뿐이었다. 부상하던 시민에게 도시는 그들의 공동체였다. 그들의 공통이익은 이러한 작은 영역들을 넘어서지 않았다. 언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달랐으며, 어떤 제한된 지역에서 언어가 유사할 경우 이는 한 왕의 지배하에 결속되는 것을 용이하게 하였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 지배는, 정복과 상속에 의하여 전적으로 다른 언어를 가진 다른 나라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농민들에게 어떤 왕이 어떤 먼 지역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느냐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상업의 성장과 함께 변화하였고, 산업자본의 성장에 의해 더욱 변화되었다. 광범위한 나라들과 바다에서의 상인 무역은 그것을 보호해 주고, 자신들의 경쟁자와 싸우고, 후진 부족들을 정복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다. 만약 강력한 권력이 부재할 경우에는 그들 스스로 도시 동맹을 구축했다. 산업가들은 노정에서의 안전, 통일된 법(unity of law), 도시보다 막강한 권력에 의한 보호를 필요로 했다. 영국은 고립된 섬나라로써 왕에 의하여 정복당한 프랑스처럼, 광범위한 지역들이 결합되었으며, 이 통합된 광범위한 지역은 단지 내부로부터 공고화되고 강화될 필요가 있었다. 이탈리아나 독일 같은 다른 경우에는 강력한 국가가 전쟁과 혁명,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적 정서의 힘을 통해 근대에 건설되어져야만 했다.

  이는 국가와 민족이 동일하거나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강제와 억압의 물리적 수단을 가진 권력 구조이다. 반면 민족은 내재적 힘에 의해 결합된 공동체이다. 따라서 국가는 민족과 일치하게 될 때 가장 강력한 내적 견고성을 가진다. 하지만 국가는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비록 다른 민족에 속할지라도, 가능한 한 많은 지역과 사람들을 포함하려고 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이따금씩 이민을 통해 수행되었다. 그래서 덴마크는 이전부터 독일인을 받아들였고, 그 후 독일은 덴마크인과  폴란드인을, 헝가리는 루마니아인, 슬로베니아인, 독일인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루마니아가 헝가리인과 독일인을 받아들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일곱 개의 상이한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결코 하나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근대적 부르주아지의 성장에 수반되어 나타났던 민족의식의 성장은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피우메1)(Fiume)나 단찌히2)(Dantzig)처럼 상이한 인종과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항구 도시들의 경우에는 경제적 이해 당사자들이 요구했던 정치적 통합은 민족적 반목에 의해 손상되었다.

  이해 수단으로서 공통 언어는 사람들을 하나의 국가와 민족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이는 민족들이 단지 언어 공동체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다수가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과는 다른 분리된 민족이다. 영국과 미국의 민족은 같은 언어를 쓴다. 스위스 사람은 5세기 동안 이미 여타의 독일어 사용자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길을 걸었다. 예컨대 그들은 자유로운 농민들로 살아가면서 기본적 직접민주주의라는 특수한 제도로 스스로를 통치하면서 살아갔다. 반면 독일인은 수백의 작은 압제자들의 멍에 하에서 시달리면서 살아갔다. 스위스인 모두는 그들의 정신을 같은 방식으로 만든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경험하였다. 스위스인은 지속적인 현실적, 정신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신들의 조상과는 달리 유사한 성격과 사상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했다. 단지 그런 식으로 획득된 수동적 특성뿐만 아니라, 같은 생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상호 소속감이라는 적극적인 의지가 인류를 더욱 민족들로 결합시키거나 분리하거나 하는 것이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영국과 미국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들 각각은 상이한 대륙에서 자신들 고유의 운명을 개척해갔고 때로는 자본가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적대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상이한 역사를 가졌는데, 결국 그들을 다른 민족들로 만들었다. 각각의 민족 내부의 운명공동체, 동일한 역사적 영향들을 겪은 사실 등은 모든 이에게 공통된 각인을 남겼다. 공동이익과 공동의 해방을 위한 공동투쟁은 그들을 하나의 공고한 단일체로 뭉치게 했다. 그것은 민족문화를 구성하는 문학, 예술, 일간신문들로 체현되고, 확장된 단일한 사상 공동체를 생산해냈고, 사상 공동체 그 자체는 민족성의 감각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 민족 내에서의 계급간의 처절한 투쟁조차도 상호 투쟁의 성쇠의 공동경험의 공동배경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민족은 국가 공동체가 아니며, 언어 공동체인 것도 아니라 (그들의 공통된 사회경제적 실천으로부터 연유된) 운명 공동체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이한 공동체 형태들은 강한 상호의존성을 가진다. 예컨대 언어는 민족을 구축해내는 강력한 담지물이다. 민족성은 국가를 구축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또한 그 역으로 정치적 국가권력은 사람들을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키거나 또는 운명공동체(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를 구축하거나 파괴하면서 민족을 만들어 내거나 만들어내지 않는 작용도 한다. 중세 시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언어 차이만큼이나 언어 차이가 컸던 프랑스 남부와 북부는 정복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었다. 부르주아지가 부상하는 동안 그들은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고, 이후 그들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혁명을 경험했다. 동시에 스위스의 산악지대와 마찬가지로 지대가 낮은 국가들은 바다를 경계선으로 삼음으로써 거대한 독일의 영토로부터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구분시켰다. 수십 개의 부유한 상업 도시들은 지역 동맹을 맺음으로써 내륙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했고, 네덜란드의 방언을 자신들 고유의 문학과 문화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독립된 국가를 이루었다. 그들의 특수한 역사는 분리된 민족이 되게 하였다. 플랑드르(Flemish)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으로서 같은 언어를 사용했더라도 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상이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같은 민족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반면 그들이 왈롱(Wallons)가와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일은 언어의 차이 때문에 방해되었다. 경제적 이해에 의하여 규정되는 정치적 조치들은 점차적으로 스코틀랜드를 영국으로 통합시켜 한 민족이 되게 했다. 반면 같은 정치적 조치에 의해서 아일랜드사람들은 영국과 적대적이며 분리된 존재라는 의식을 갖게 했다.

  결국 민족은 역사의 산물이다.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들, 공통적인 경험, 결정적인 특성, 감정, 문화가 민족성이라는 형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민족성은 과거가 살아 있는 힘으로서 관통된 결과이며, 응고된 역사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적 특징, 더욱이 민족의식은 사회로부터 자생적으로 성장하며, 민족국가의 내재적 힘을 구성한다. 그것들은 부르주아지에 의해 요구되며, 애국심이라고 칭찬되고, 특수한 조치들에 의해 더욱 깊어진다. 일정한 경계 안에서 차이들은 가능한 한 제거되는 반면, 외부 세계와의 차이들은 강조되고 강화된다. 교제하는데 필수적인 단일한 공통 언어는 모든 영역에서 교육되고, 오래된 방언들과 심지어는 웨일스 게일어(Gaelic)나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어 같은 다수의 사람들이 쓰는 소수언어들은 억압되어 골동품(curiosities)이 되거나 오지 마을에만 남게 된다. 그리고 공통 언어로 쓴 방대한 문학이, 어릴 적부터, 동일한 사상들과 동일한 감정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하도록 작용한다. 의도적인 선동이 이러한 상호 감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용되고, 모든 이국적인 것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의식적으로 만든다. 민족 공동체에 분할 선을 긋는 계급투쟁이라는 교리는 위험한 것으로 비난받고, 심지어는 민족적 통일성을 헤치는 범죄로 박해받는다. 민족주의는 사회의 자생적인 살아 있는 산물이기에 사회 그 자체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영원한 본성적인 것이자 의무로서 선언된다.

  민족성은 응고된 역사이다. 하지만 역사는 계속되고, 지속적으로 이전에 퇴적된 것에 추가된다. 새로운 경제발전, 자본의 성장, 전쟁과 정복은 새로운 이해를 산출하고, 국경을 바꾸며, 의지와 의식의 새로운 방향을 일깨우며, 사람들을 조합하거나 분리하고 오래된 공동체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발생시키거나 한다. 따라서 민족성은 그 심층에서 솟아오르는 힘들과 함께 그 외연과 내용에서 동요하며, 다양한 측면들을 드러낸다.

  거대 자본주의에서도 소규모 교역이 남아 있는 것처럼, 과거의 풍습과 사상과 같은 지방색이 여전히 유지되며, 때때로 그것은 국경을 넘어 확장되기도 한다. 자유무역이 전 세계에 보급되어 자본주의가 상승하던 때, 모든 인류의 국제적 형제애라는 사해동포주의 감정은 부르주아지에서 그 토대를 발견했다. 하지만 경쟁이 보다 격해지고, 뒤이어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주의를 더욱 공고화했고, 사해동포주의는 유아기적 환상으로 조롱되고 억압되었다. 자본주의가 단지 이제 막 걸음마 상태에 있고, 원시 경제를 일소하고 낡아빠진 전제정치를 뒤엎기 시작했던 세계의 부분에서 우리는 생성과정에 있는 민족을 보았다. 이윤에 굶주린 사업가들 이외에, 투기적 모험가들, 외국 자본의 대행자와 탐욕스러운 정치가들은 부르주아지의 출발점을 이루었고, 이들은 주로 유럽의 과학과 사상들을 교육받은 지식인들로 이 후 민족주의의 대변자로 나선 사람들이었다. 발칸에서 전쟁은 가끔씩 같은 방언을 쓰는 인접한 계곡들이 세르비아나 불가리아 민족으로 복속되도록 하는 우연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정신적으로 이미 오래된 문화에 의해 통합되어 있던 상인 및 지주계급들은 서구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의 도움으로 점차 현대적 부르주아지로 발전해갔고, 성장하는 민족주의 정신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인도에서는 본토의 자본주의적 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라도 민족주의의 성장은 진부한 종교들의 다양함으로 인해 심각하게 저해되었다. 아직 부르주아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모든 식민지에서 민족주의는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소집단에 의해 선전되었고, 외국의 착취에 대항한 저항의 첫 번째 이론적 형태였다. 다른 한편으로, 수 백 만의 인구가 여러 방언을 쓰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는 곳에서, 지식인의 소망이나 변덕으로 민족주의가 제기될 때, 민족주의는 더 큰 단위로의 통합을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현대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민족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발전에 따라 상이한 형태들을 취해왔다. 시민들이 처음 성장부터 자신들의 도시와 영역의 주인으로 부상했을 때, 그들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자유였다. 시민들은 귀족의 권력과 그 영역에 대한 토지 소유권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협하는 외세를 물리쳐야만 하였다.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것은 외국의 봉건적, 절대적, 이전의 지배적인 자본가권력에 대항한 전쟁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한 전쟁들은 해방전쟁이었고, 일종의 혁명이었다. 모든 열정주의, 그리고 고도화된 생산체제의 확립으로부터 발생한 헌신은 민족적 열정으로 나타나며, 민족주의를 고상한 이상으로 고양시킨다. 이와 같이, 16세기에 네덜란드가 스페인 왕으로부터 해방되고, 같은 때 영국이 스페인과 세계 패권을 놓고 싸우고,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고, 영국이 주도하는 유럽에 대항해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19세기에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와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1870년에 독일이 프랑스에 대항해 일어난 보불전쟁 전쟁 역시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독립국을 설립하고 권력을 구축하려 했던 이러한 해방과 통합을 위한 전쟁은 훗날 부르주아지에 의해 민족 역사의 숭고한 정점으로 고양되었다.

  하지만 그 후 점차 이미지는 변화했다. 자본주의는 착취이고, 지배계급에 의한 착취계급의 지배인 것이다. 스스로를 지주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부르주아지는 새로운 억압을 확립하였다. 외세에 의한 억압으로부터 멍에를 벗어던진 후, 그들 주변에 있는 또는 식민지에 있는 더 약한 사람들에게 그 멍에를 씌웠다. 특히 이러한 상황은 거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확대되었다. 그리고 항상 민족주의라는 슬로건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민족주의는 다른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즉 해방이 아니라 민족의 위대함이 그 슬로건이 된 것이다. 민족주의는 이제 조력자, 부하, 대변인, 군대관료와 공무원으로서 부르주아지에 복무하고, 부르주아지의 권력에 참여하는 모든 다른 계급들의 자긍심, 권력본능에 호소한다. 오늘날에는 자신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서 힘과 미덕에 있어서 우월하고, “위대한 민족”이고 “주인민족”(Herrenvolk)이며 “전 인류 중 가장 우등한 인종”이며 다른 민족들을 이끌고 지배할 운명을 가진 자들로 선언된다.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으로서 세계 주도권을 놓고 자본가계급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고, 민족주의는 열병처럼 번져갔으며, 빈번하게 전체 사람들을 생존을 위한 공동투쟁으로 내몰았다. 

  민족주의는 단순히 지배자들에 의해 대중들에게 부과된 인위적 교리가 아니었다. 모든 사유와 감정체계들처럼, 민족주의는 사회의 심층으로부터 솟아나며 경제적 현실과 필요성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에게 민족은 그들의 번영과 불행이 묶여 있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모든 오래된 공동체 의식의 본능은 자신들의 복무를 다하며 이상주의의 막강한 힘들로 발전한다. 어른들보다는 아직 이기적 이익 추구 정신에 감염되지 않은 젊은이들이 공동체의 요청에 열광적으로 반응하기가 쉽다. 부르주아지에 대항해 싸울 가능성과 힘이 없는 한, 노동 대중들에게는 부르주아지를 추종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 주인 계급에 대해 정신적으로 의존하면, 노동계급은 주인 계급의 사상과 목적들을 어느 정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이러한 영향들은 본능적 자발성의 영역에서 정신적 힘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본능적 자발성에 덧붙여, 인위적 수단들에 의해 자생적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필사적인 노력이 추가된다. 학교의 모든 교육과 문학 및 신문의 선전활동은 민족주의 정신을 기르고 고양시키도록 지도된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 수단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자본의 이윤과 연관은 은폐된다. 착취 계급의 모든 이데올로기에서처럼, 이러한 연관의 명확한 의식은 부재했고, 민족주의와 자본의 이윤간의 연관은 착취당하는 대중들로부터 주의 깊게 억제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다른 원천들, 이전의 사회적 조건들에 기반한 현재 존재하는 전통들로부터 대부분 끌어낸 기만적인 주장들이 찾아져야 했다. 요람이 놓여있었던, 우리의 고향에 대한 사랑, 우리의 유년기의 세상, 마을 또는 도시 구역, 소규모 농민 및 장인들의 생활 공동체들에 대한 회상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외국 권력과 싸우는 민족주의적 국가권력에 대한 집착을 고착시키는데 이용되어야 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엄격한 객관적 진실들을, 젊은이들에게 강력한 공통성에 대한 의식, 열광, 자긍심과 찬양심, 젊은이들의 마음을 고무하고, 긴장시키고, 경쟁심을 추동시킴으로써, 결국 민족공동체의 내적 강인함을 공고화시키는데 적합한 민족의 삶에서 화려했던 한 측면의 이미지만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과장되고 조작된다.

   민족 이데올로기에 더 큰 연대성을 제공하기 위해, 그것은 때때로 물질적, 물리적 토대, 혈족과 인종에 기반한다. 인류의 인종들은 선사시대의 수천 년에 형성되었다. 우리는 역사의 벽두에, 그리고 주변의 야만국들과 대륙들에서 그 후에 같은 특성을 지닌 집단들이 인종으로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종들은 이주와 정복, 멸종 그리고 원시적 집단들의 혼합을 통해 형성되었고, 더욱 평화로운 시기나 고립된 지역들에서 이 혼합은 특수한 유형으로 진행되었다. 생활공간과 삶의 근원의 점유를 위한 투쟁은 그 후 문명의 역사에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생산 형태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공간과 삶의 근원을 위한 투쟁은 국가들 및 민족들 사이의 투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그 둘은 모두 운명공동체(공통의 운명을 가진)이고 “사람”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표시되지만, 원초적 인종들과 이후 시대의 민족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종들은 피와 혈족에 의해 결합된 집단이다. 상품 생산의 시대에 형성된 민족들은 공통된 의식, 사상, 경험과 문화라는 정신적 결속에 의해 결합된 집단들이다.

  그 이후 시대의 역사로 기록된 거대한 이주는 현대인들과 민족들의 거의 대부분 상이한 인종들의 혼합을 통해 형성되었는가를 입증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혼합의 과정은 현대적 산업 조건들에서 비록 조용한 형태 일지라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궁핍한 농업지역으로부터 외국의 산업 도시와 산업지역으로 이주해간다. 예컨대 아일랜드사람들은 영국의 도시들로, 체코인들은 비엔나로, 폴란드인들은 라인지방으로, 유럽인은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대체로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환경에서 언어와 습관뿐만 아니라 사상을 습득하며 그럼으로써 민족공동체로 용해되고 동화된다. 이주민들이 보다 큰 대중들의 한 부분으로 포함될 때, 특히 불같은 민족적 투쟁의 의식에 의해 이미 감화되었을 때 그 동화는 멈추게 된다.

  근대 민족이 순수한 하나의 기원을 가진 순수한 인종의 후손이라고 주장될 때, 어떻게 이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보통은 불확실하지만, 역사적 증거는 근대민족은 인종들이 매우 심하게 혼합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준다. 언어 공동체가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농민 공동체들은 다른 지배적인 언어들에 의해 자신들의 삶과 일이 영향 받지 않는 한 집요하게 그들의 언어에 집착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혼합될 때 승리자들의 언어가 정복자에 의해 채택되는 경우와 더욱 문명화된 주민들의 언어가 보다 덜 문명화된 침입자들에 의해 채택되는 경우 중 어느 경우가 더 많은가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어공동체는 이후에 민족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이 된다. 하지만 언어공동체는 민족이 같은 혈통 공동체(community of descent)라는 점을 확증해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유럽인, 몽골인, 흑인 등의 주요한 집단들 사이에는 피부색, 머리카락 같은 신체적 차이, 신체적 구조와 두개골 형태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 집단의 하위 집단들 사이에서는 그 차이가 작다.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신체적 특성은 다양성을 보이며,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 만든다. 특히 독일에 있는 인종학자들은 튜턴족은 중앙 유럽에 사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두상을 가진 “알프스” 인종과는 달리 긴 두상에, 금발 머리, 파란 눈을 가진 “노르딕” 인종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유럽에서 긴 두상을 가진 사람들은 노르웨이, 북서부 독일, 네덜란드, 영국에서 지배적인 반면 독일인의 대다수는 짧은 두상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적이며 이는 다음 세기에는 더욱 증가될 것이다. 미국의 인종학자 딕슨(Dixon)은 기존의 오스트리아 제국의 주민들의 신체적 특성과 두개골의 형태와 관련해서 말해보면 거의 동질적이지만, 그들은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7개의 민족들로 나뉘어져있고, 많은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이한 고대의 방랑자들과 모험가들이 뭉친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프랑스인들은 신체적으로 볼 때는 가장 상이한 인종적 특성들이 혼합되어 이루어져 있지만, 그들은 하나의 공고하게 동질화된 민족처럼 느끼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민족성의 토대로서 인종공동체는 단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안되고 선전된 공상적 이론일 뿐이다. 독일 민족주의의 힘은 고대 튜턴족의 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민족주의는 경제, 생산 양식에 그 강력한 실제적 토대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는 상이한 계급마다 차이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민족주의는 결코 노동계급을 장악할 수 없었다. 민족주의가 생성된 소시민과 농민계급에서 민족의식은 커다란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본에 의해 자신들이 착취당한다는 사실은 공동체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다른 사고경향을 띠게 했다. 노동계급은 민족주의를 착취자들의 이데올로기이며, 때로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위선의 한 형식으로 인지하였다. 실업으로 방랑하게 될 때, 노동계급은 다른 나라에서 자신들처럼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 동료들을 발견한다. 실제적으로 노동계급의 투쟁에 의해, 그런 다음에 이론적으로 그들의 의식에서, 그들은 민족을 가르는 분리선을 긋는다. 또 다른 운명공동체인 계급공동체가 노동계급의 감각과 사고를 결정하고 그것은 전 세계로 확장된다. 계급의 분리선은 민족을 가로지른다.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적 선전활동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는 언급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현실을 부정한다. 사회주의 선전활동은 국제주의가 노동계급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하지만 의식적 사고와 공언된 교리들 밑바닥에는, 노동자들의 잠재의식에 여전히, 세계 전쟁의 발발로 밝혀지게 되는 확실한 민족의식이 존재한다. 실제적으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의 규칙을 동의해야 하였으며, 그들의 부하이었다. 실제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자본주의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만을 확인해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상적으로 완벽한 독자성을 획득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부르주아지를 추종할 때, 노동자들은 중간계급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로 남는 것이다. 영국에서 노동계급은 세계 무역, 산업적 독점과 식민지 착취가 부르주아지에게 수여하는 이윤에 참여한다. 독일에서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부르주아지의 에너지는 산업적 권력과 산업적 번영이 노동자들의 이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민족주의는 개혁주의자들의 동반자였다. 민족주의는 영국에서 보수적인 전통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작용했고, 독일에서는 격렬한 경제적 팽창에 의해 추동된 충동적 본능으로 기능했다. 노동계급의 민족주의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부르주아지의 것과는 반대로 항상 평화주의적이었고 소시민적 환상의 전통에 뿌리박고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혁명적 투쟁에 나설 때, 민족주의는 철저하게 추락할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들의 생산 조직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에서 적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의 모든 국경에 무관하게 모든 나라들로 확대될 것이다. 사회의 재건설에서 투쟁은 단지 자본가계급에 대항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할 것이다. 이 투쟁에서 전 세계의 노동자들은 전우로서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한다. 전 세계노동자들은 하나의 군대에 속한다. 확실히 그들은 서로 상이한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들은 단지 그들의 사고의 외적 표현들하고만 관계될 것이다. 전 세계노동자들의 본질적 내용, 사상, 감정, 문화는 가장 주요한 생활경험으로서 동일한 계급투쟁, 공동투쟁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고, 운명은 동일하다. 이전의 역사에서 상이한 민족적 영향들에 종속되어 있기에, 수동적 성격과 문화의 차이가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능동적 성격과 의지의 방향에서 그들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룰 것이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사유 상태는 국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고 평등한 민족들의 평화로운 협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민족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은 전 세계 인류의 통합, 생산, 삶, 문화의 공동체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민족성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신체적 특성과 자연적 환경의 모든 차이, 지방언어와 전통적 습관의 차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운명공동체로서 전 인류의 상호접속을 확장시키게 될 것이다. 결국 민족주의는 그것을 만들어낸 계급과 함께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는 미래의 일이다. 현재 민족주의는 이 길을 방해하는 강력한 힘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모든 민족주의적 전통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상을 피하기 위해 적대계급에 있는 민족주의의 강력함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민족주의는 지나간 시대의 전통으로서 현대의 조건 속에서 점차로 사라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투쟁의 한가운데, 적군의 깃발에 서서 비옥한 경제적 토양으로부터 계속해서 자신의 힘을 갱신하는 살아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지난 25년 동안 독일의 역사는 그들의 국가권력이 파괴된 이후에 어떻게 부르주아지가 정신적 힘을 이용해, 즉 민족주의를 통해 부활하여 더욱 강력한 새로운 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1914년의 세계전쟁의 발발은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운동에게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모든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으뜸가는 모범이 된다고 여겨지던 독일의 당과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은 조직의 모든 권력과 언론 그리고 도덕적 권위를 정부의 손에 넘겨주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는 모든 자랑스러운 계급투쟁과 국제주의 강령과 슬로건의 붕괴였다. 노동자들은 모든 신뢰와 믿음을 당과 조직에 받쳤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군사력과 당 기구의 압력과 결합된 민족주의 선전활동에 대항하기에는 무력해졌다.

  그리고 독일의 군사력이 붕괴된 1918년이 도래했다. 선원들의 폭동, 주요한 도시들에서 파업과 시위, 노동자평의회와 군인 평의회의 성립은 사회주의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단지 노동계급을 감시하고, 노동계급이 진실한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들로서, 노동자들이 장군과 자본가만큼이나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노동대중들은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노동대중들은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노동대중들은 다시 당과 자신들의 지도자들에 믿음을 걸었고, 소규모 혁명적 투쟁가들과 대변인들로 이루어진 전위 집단들이 사회주의자로 자칭하는 지배자들의 명령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별 수 없이 지켜봐야 했다. 노동대중들은 줄곧 당이 자신들을 사회주의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날 당은 지배자가 되었고 지도자들은 관리가 되었다. 이제 사회주의가 도래하여야 하였다.

  하지만 노동대중들이 얻은 것은 자본주의였다.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적 소유, 심지어는 귀적들의 토지소유에 대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국민회의를 소집함으로써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즉시 의회를 부활시켰고, 의회는 항상 그들 삶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는 조직된 권력의 관료적 중심체를 얻게 되었다. 사회주의자와 민주적 정치가들이 상층을 장악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권력의 환상을 조장해 대중들을 속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후 사회주의자와 민주적 정치가들은 점차로 쫓겨나고, 자유주의적, 반동적 인물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자본주의는 평상시처럼 작용했다. 즉 대중들을 착취했고, 중간계급들을 수용했으며, 생산수단을 무계획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경제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으며,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었고, 사회를 실업이라는 새로운 위기에 빠뜨렸다. 그리고 모든 불만족과 분노는 새로운 공화국과 의회의 지도자들에게 돌려졌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는 아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자신들 전투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조건들에 의해 낙담하고 시달리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 예컨대 승리와 미래의 위대함이라는 높은 희망으로부터 좌절한 중간계급 청년들, 철저히 구태의연한 관념들 속에서 살아가는 패배해 좌절하고 해임된 군 장교들, 한때는 자신들의 독무대였던 정부 관료들의 자리가 이제는 경멸스러운 사회주의자들과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절망하고 있던 젊은 지식인들, 화폐가치의 하락에 의해 가난해진 모든 사람들, 자신들의 국가가 굴욕 했다는 치욕스러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 다시 한번 세계 패권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호전적 의지에 추동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결합시켜주는 힘은 불타오르는 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는 평화 상태들을 경멸하며, 외국의 승전국들에 대한 반감보다도, 자신들의 유순한 지배자들의 게으른 민족성에 대한 증오로 더욱 꿈틀거리는 극도의 긴장상태(white heat)로 폭발했다. 그들은 숭고한 민족적 관념들의 잉태자로서 서게 되는 반면, 그들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보잘 것 없는 공화국의 가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나 볼셰비키당의 혁명적 감언이설에 대해 만족하는 것에 불과한 자들로 치부된다. 그래서 성장하고 있는 청년들 중에서 가장 활동적인 인자들은 투쟁단체에 결합했고, 불타오르는 민족주의적 교육에 의해 고무되었다. 거대 자본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선전을 위한 수단들을 제공했다. 1930년 세계 공황이 일어날 때까지 그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성장했다. 불구가 된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저항을 위해 노동자들을 무장하도록 주장할 모험을 하지 못했다. “세계-해방”을 기치로 내세운 사회민주주의는 해충 취급당하면서 불명예스럽게 몰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민족주의는 쉽사리 의회제 공화국을 일소시켜버렸고, 민족의 모든 힘을 세계 패권을 위한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조직하기 시작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