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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④
 
연재를 마치며

촛불이 던져준 화두 중하나가 “민주주의가 무엇이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선 글에서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 즉, 현실에서 대의제와 선거 제도가 과연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자본의 이동이 세계적으로 자유로워져 전 세계 민중들을 펀드와 주식 투자의 투전판으로 몰아가고 있는 마당에 민주주의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결론이 다분히 추상적이라면 제 문제제기가 하소연 이상이 되지 않을 것 같고 구체적으로 쓰기에는 내용이 박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연재 이후에 토론이나 좌담회 등으로 제 연재 글에 다양한 댓글로 반응을 보여준 안티이명박전북까페 회원들과 나누기로 하고 어찌되었든 연재를 마감하는 결론을 내보기로 하겠습니다.

연재 글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민주주의는 민중이라는 말과 힘, 통치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민중의 힘, 민중의 통치 등으로 표현될 수 있겠습니다.

힘을 번역하는 영어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파워(power)이고 하나는 포스(force)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파워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하는 힘 즉, 권력을 말합니다. 다른 의미의 포스는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의지나 능력을 말합니다.
- 파워[power] [명사] 1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힘’, ‘권력’으로 순화.2 같은 말: 힘
-  포스[force][명사] 1 사람이나 동물이 몸에 갖추고 있으면서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 작용.2 일이나 활동에 도움이나 의지가 되는 것.3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역량.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것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하는 힘에 맞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역사 속에서 파워와 포스, 격돌하는 두 힘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명박의 힘은 파워로서 권력이고 국민의 힘은 포스로서 역능들의 합입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경쟁과 효율이라는 명분에 위협을 받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는 지배자의 무자비한 권력 행사에 치를 떨며 동일한 방식의 권력 행사를 꿈꾸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부의 공권력 앞에 가큼 강력하고 통일되고 기민한 군대와 같은 조직을 꿈꾸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조직이 필요한 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우리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긴장감 등으로 우리 안에 민주주의를 살피지 못하게 됩니다.

역능들의 합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변화합니다. 자발성이 책임감이 되고 민주주의는 멀어지게 됩니다.

사회주의 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하고 나서 관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어버렸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반대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민주주의 혹은 국민주권이 포스로서 역능들의 합이라면 이러한 힘은 평등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힘과 주권을 구성하는 국민들의 네트워크적인 권력은 상호 이해와 소통이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촛불 이전부터 위기에 처한 운동 단체들(노동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농민운동 등)은 여전히 수직적 위계구조를 형식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2008년 촛불 당시에도 중앙집중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강력한 산별노조는 권한의 중앙 위임으로 권력은 강화되었을지라도 역능 즉, 현장의 역동성은 무너졌다는 것이 다수의 평가입니다. 지침이 하달되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지역의 중요성,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장을 이야기 하지만 실천은 빈곤합니다. 여전히 정치와 투쟁은 의회와 촛불 광장으로 집중돼 있습니다. 삶이 배제된 정치와 투쟁은 모래성입니다.

촛불에서도 창조적 자발성이 돋보였던 조직들도 작은 풀뿌리 조직들입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준비하여 그것을 촛불문화제에서 발휘합니다. 그 힘들의 합이 새로운 시위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삶의 지름길은 죽음입니다. 민주주의의 지름길도 마찬가지로 독재입니다. 빨리 가고자 할수록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입니다. 그것은 누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입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의회나 특정 장소에 가두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까페에서, 소수의 모임 안에서, 그리고 지역과 생활 공간에서, 어떤 무거운 당위와 책임감에 짓눌린 피곤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능력들이 고르게 발휘되고 이것이 힘이 되는 유쾌하고 즐거운 민주주의입니다.

촛불 시즌 2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지역과 현장에서 확장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앙의 촛불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촛불~ 광장의 촛불만 바라보는 맹목적인 촛불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생동하는 촛불이 되고 그것이 본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힘이 되기를 희망하며 연재를 마칩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주]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진행형인 촛불 시위를 두고 제 2의 민주항쟁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민주항쟁” 사람들은 무엇을 두고 제 2의 민주항쟁이라 말하는가? 촛불을 든 민중들의 민주적 요구들은 무엇이며 어떤 요구들이 억압되었기에 이토록 장시간 끈질기게 분출되고 있는가? 저는 “촛불은 무엇이다”라고 규정하고자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미 규정된 것으로 촛불을 규정하기보다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우리가 한계로 느끼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상상력이 보이지 않을까하는 바램에서 이 연재를 합니다. 저 조차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았으며 현재 진행형입니다. 연재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할 예정이고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연재글 순서
①이명박vs아고라
②선거와 민주주의
③세계화시대 민주주의는 있는가?
④민주주의의 대안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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