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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노스케의 단편집(1)
    맑은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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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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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노스케의 단편집

 류노스케의 단편집(라생문, 코, 두자춘, 밀차, 덤불속아쿠타가와 , 지옥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지음/ 진웅기 옮김

출판사 : 범우사

2009년 1월 27일 00시 35분


설 연휴를 맞아 두 권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한권은 강신준 교수의 자본의 이해와 한권은 원숭이는 왜 철학 교사가 될 수 없을까라는 제목의 청소년 용 철학 교양 서적이다. 연휴의 첫날인 금요일부터 욕심을 내어 강신준 교수의 자본의 이해를 읽었다. 자본의 이해는 일요일 까지 욕심으로 다 읽었다. 그러나 외부 손님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설에 철학 책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휴대가 불편하다. 오랜 만에 들른 집에서 범우 문고의 작은 문고판 책을 발견했다. 라생문은 익히 어느 강연에서 죽음에 대한 짧은 단편임을 알고 있었으며 도서관에서 단편으로 읽은 기억이 있었으나 그 나생문을 쓴 작가의 단편을 모은 문고 판이 색이 바래 집에 있다니 참으로 이놈의 눈이라는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이 문고판 작은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왔다. 누나가 아주 오래전에 사놓은 책이다.

어찌 되었든 라생문은 건너뛰고 수 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들은 하나씩 읽어 갔다.

설날 큰집엘 가면 장가도 안 간 노총각에 대한 눈총이 예삿일이 아니다. 그럴라 치면 어느 곳에서 어떤 포즈로 있어야 할 지 안절부절 해진다. 큰집 작은방 한 구석에 둥지를 틀고 손바닥 만 한 문고판을 펼쳐들고 라생문을 건너뛰고 코라는 단편 소설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 큰 코를 가진 스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드러낸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조카들에게 둘러싸여 피식 피식 웃으며 책을 넘긴다.

두자춘, 밀차, 덤불속을 읽으면서 이외수가 생각났다. 그래도 이외수는 상상력이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지만 류노스케의 소설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딪고 있다. 간결한 문체와 속도 있는 이야기 전개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 번이나 부자로 살았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귀농한 두자춘 그리고 이를 일깨운 모성의 이야기, 밀차를 타고 싶은 소년의 호기심과 낯선 곳을 향하는 두려움을 생생하게 그린 밀차, 덤불속 죽음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각자의 다채로운 진술이 황당한 덤불속, 그리고 마지막, 지옥 병풍을 그리는 화가 요시히데의 이야기인 지옥변,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다.


36세의 나이로 신경쇠약에 빠져 자살을 한 작가 류노스케~

지옥병풍을 그리라는 영주의 명을 받은 요시히데는 지옥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괴상망측한 일을 다한다. 자기가 직접 보고서야 그릴 수 있다며 지옥을 현실에 연출한다. 온갖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마 요시히데의 악몽이 류노스케에게도 보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지옥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수레 위에서 불에 타 죽은 여인의 모습을 그려야 하지만 그리지 못하고 영주에게 부탁을 한다. 그리고 영주는 그 화가의 딸을 수레에 실어 불을 지른 다음 화가의 눈앞에서 화가에게 지옥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고 이틀 후 자기의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지옥 그대로의 모습이다.


얼마 전 있었던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이 떠오른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류노스케는 현실의 생지옥을 본 것일까? 궁금해졌다. 자살이라는 그의 이력이 요시히데의 자살과 일치하는 듯 하다. 작은 한권의 책이 26일 설날 하루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새 배를 하면서도 음식을 먹으면서도 나는 류노스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였다.

오랜만에 본 소설~ 이런 단편은 정말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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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세계사1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1


저자: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이영주 옮김

출판사:랜덤하우스중앙

날짜:2009.1.6(화)


요즘 태희랑 세계사 연표를 방 벽 한 켠에 그리고 있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를 읽고서 연표를 그린다. 46억 년 전 탄생한 지구. 세계사를 읽으면서 정말 화가 났다. 전쟁의 역사, 야만의 역사이다. 인간은 인류가 저지른 만행들을 곧이곧대로 직면하기 싫어서 민족이라는 가면과 종교라는 아편이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민족은 인류의 야만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하고 신앙은 인간이 처참한 인류사를 보고 부끄러워 자멸하지 않도록 맹목에서 벗어나 윤리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셈계의 헤브라이인은 기원전 20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했다. 헤브라이은 ‘강의 저쪽에서 온자’라는 뜻이고 팔레스타인은 ‘필리스티아인의 토지’라는 의미이다. 당시라도 서로 잘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바빌론 유수를 통하여 헤브라이인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그 고난 속에 유대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2009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계속하고 있다. 어떻게 인간을 합리적 이성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도 야만의 세계사 속에 존재할 곳이 없다.


46억년 지구의 나이 중 빙하기 이후 농업혁명이 일어나 1만년 전 부터가 인간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 속에서 유심히 살펴본 것은 화폐의 역사이다. 화폐 전쟁이라는 책이 있다. 거액의 화폐를 쥐고 세계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배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에도 그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1837~1901년 빅토리아 시대

공업력으로 세계를 압도적으로 선도한 영국은 대불활을 기회로 ‘금융대국’으로 전환하였다.

영국은 종래의 무역 수선의 발상에서 전환하여 대외투자로 이익을 확보하는 ‘금융 대국’의 길을 추구하였다....특히 수상인 디즈레이리는 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고 유대인 금융가인 로스차일드 상회로부터 400만 파운드를 빌려 1875년 재정난에 빠진 이집트이 태수가 프랑스에 매각하려고 하던 수에즈 운하 주식(총 40만 주 가운데 17만7,000주)을 매수하였다. 222p~223p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 전쟁에서 승리하여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를 모두 빼앗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7년 전쟁으로 영국 본국의 채무가 배로 늘어 북미 식민지를 경영하는 비용을 식민지에 대한 본국 수준의 과세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241p


영국은 전쟁 비용 염출에 유대인 금융자본의 협력이 필요하자 1917년 외무장관 벨푸어는 아랍인 거주지인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했다. 320p

위의 예제는 영국의 경우이다. 이 밖에도 무수한 전쟁 비용에 의해 각 국의 국가 채무는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세계화는 어쩌면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카드 돌려막기의 세계적 모습일 것이다. 사람들은 막기가 힘들면 카드를 하나 더 만들면 되지 뭐 하겠지만 도대체 카드는 누가 만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관심이 없다.


경제 불황이라는 시대에 부채 문제는 국제적 연대를 통하여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한국의 국가부채도 2009년 310조 가량 될 것이라고 한다. 부채 탕감 혹은 부당한 국가 부채에 대한 지불 불이행 운동은 금융 제국에 저항하는 중요한 국제 연대의 고리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컴퓨터 옆에 붙어있는 세계사 연표를 흘긋 흘긋 쳐다보며......

세월 앞에 조급해 하지 않으며 그저 내 갈 길을 뚜벅 뚜벅 가리라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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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 season 3 : 2~3 쳅터

 

지식e season 3 : 2~3 쳅터


no11 버튼을 누르지 않은 이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갈할 수 있겠습니까?(예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그럴 수 없다 92%


그러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35%만이 300v의 단계에서 주최측의 명령을 거부했다.


피실험자들이 실험자가 내리는 명령에 저항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뿐이었다.


pd 수첩 수사를 담당했던 부장 검사가 사표를 냈다. 이용철 변호사는 양심선언을 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처참히 학살한다. 소수의 탈락자를 제외하고 그렇게 인류의 야만은 계속된다.


no12 동아일보 해직기자


사람들은 이길 것 같아서 싸우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리의 전망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양심선언과 실천이 아닐까?


경향 일보에 대한 이력이 새롭다. 1964년 창간, 1959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 패간, 복간 후 군사 정권 기관지 노릇, 1990년 한화그룹 지분 참여로 재벌언론의 위상, 1998년 한화그룹과 분리 100% 사원주주방식(편집국장 직선), 명실상부한 재2의 창간 성공


no13

석유가 20세기 블루골드라면 물은 21세기 블루골드다. 물 사유화 저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no14 마을 이름 우토로

거기 마을 하나가 있다. 일본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우토로’

그들에게는 그저 조그마한 땅이 필요할 뿐인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국적이 필요하도록 만든다.


no16/17 1968/ 올림픽, 정신

일본의 천왕주의자 미시마 유키오 그가 전공투에서 느낀 것은 무엇인가?

미국 국적의 흑인 2명은 올림픽 200미터 달리기에서 1,3위를 했고 시상식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로 미국에게 메달을 압수당했다. 그들은 복권되었을까? 올림픽과 정치~ 전체주의적 스포츠는 광기이다.


no18 그리바비차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은 문명의 탄생부터 전쟁의 역사이다. 이 지역은 유목민과 도시 사회로 형성되어 끊임없이 전쟁 있어왔다.


“민족, ‘상상의 공동체’가 연출한 비극의 서막

그렇다.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사태, 복잡한 민족과 종교..... 인간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 민족과 종교...............영화 <그르바비차>를 봐야 겠다.

지옥에 발 듣고 천국을 노래한 에밀 쿠스트리차와 고란 브레고비치도 잊지 말자.


no19 현대 국가

미얀마는 50년 이상 군부 국가이다. 미얀마의 광주로 불리는 8888항쟁에 총 1,500명이 체포되고 적게는 2천, 많게는 2만이 사망했다고 한다. 가택연금 상태의 아웅산 수지.

미얀마의 자원과 군부의 돈을 노리는 초국적 기업들. 그들의 군부독재는 어디서 모델을 배웠을까? 박정희가 떠오른다. 한국이 여러 저개발 국가들의 모델이 되었고 현재도 연구중이라는데 정말 부끄럽다.


no20 떡볶이 아저씨

우리 집 앞 노점하는 분들은 하루에 한 번씩 천막을 치고 걷고를 한다. 그분들의 소원은 작은 가게라도 갖는 것이겠지?


no22 두바이의 꿈

하루 일단 오천원, 4일에 1명 꼴로 자살하고 하루 평균 2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한다. 숙소는 빨리 퇴근한 사람만이 침대를 차지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생지옥이 바로 두바이다.


no25 그녀들의 탈출

성매매방지법 이후에 다시 집결지로 온 여성은 30.2%, 사회 자체가 감옥이다. 과연 어디로 탈출 할 수 있는가?


no26 내 얘기 웃기지예

판옵티콘 : 모두(pan)+본다(optic)

현대 사회의 권력은 어디에 있지 않고 어디에나 있으며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미셀 푸코가 정의한 권력의 미시화 현상이다. 근대 이전의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았지만, 근대 이후 규율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한다.

cctv, 핸드폰 등 등


no28 그들의 맨손

서해안이 위험하다. 6개월동안 120만명의 자원봉사~ 위대하다.


no29~30 조영래와 이종욱

변호사와 who 사무총장 “백신의 황제”

에필로그

남태평양 아름다운 섬나라 투발루

미국은 2001년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고

지금껏 물고기를 잡으며 농사를 짓던 투발루는 2001년에 국토포기선언을 했다.

 

다읽고 나서 1,2권이 무척 궁금해졌당~~ 다음은 무조건 1,2권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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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 : season3 - 1

지식e : season3

 

도서관 신간도서란 쇼핑은 언제나 즐겁다.

어제 누군가 지식e 2권을 읽고 있었는데 tv를 보지 않는 나로써는 낯설었다.

지식 e 채널의 광우병 이야기는 촛불 행사때 외울 정도로 봤지만 지식 e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신간도서란에 지식e가 있어 호기심에 펼쳤다.

아하~~ 이책은 이런 책이구나~

이미지와 압축된 문장과 설명~ 광우병이야기를 떠올리며 책을 빌렸다.

 

"1999년 환경부가 자원재활용과 비용절감을 이유로 산업폐기물을 시멘트 원료 및 제조연료로 허용하면서 중금속에 대한 제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토피 피부염 환자와 새집증후군이 급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멘트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은 25%로 삼성전자(8%)의 3배나 도니다. 환경부를 내년 이그노벨상 경제학상 후보로 추천할까 한다" 문화일보 이동윤 논설위원의 말....

 

첫번째 이그노벨상에 해설에 쓰여진 것이다. 너무 재미나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이그노벨상에 대한 소개에 한국 환경부의 한심한 처사가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기발한 진도구들....

"'진도구'란 실용성과 상품성은 전혀 없는 것으로 오로지 한 가지 문제만을 해결하거나 하나의 기능만을 가진 창의적 물건을 뜻한다." 라면을 식히기 위해 선풍기 달린 젓가락 등....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로 오로지 그 댓가를 위한 투쟁만이 진보적 행위가 되어버린 세상에 진도구를 통한 감성적 실천으로서의 노동은 재밌거리와 기발성을 넘는 문제제기가 아닐까?

 

두번째 이야기 탱고 "아스토르 피아졸라라는 탱고 아티스트를 잊지 말자!"

미천한 음악~ 탱고는 서양의 혹평속에 아르헨트나 귀족들에게 다시 돌아온다.

권력~ 통조림 공장 이민자들이 춤을 추면 미천한 것이지만 프랑스 등 서구에서 유행하면 예술이 되어버리는 씁쓸함. 어디 탱고 뿐이랴~~

 

세번째 이야기 멸종하는 언어 "에스페란토를 배워볼까?

 

다섯번째와 여섯 번째 이야기 대부분이 우울했던 소년과 은하철도의 밤 "자아를 찾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은 아름답다. 진정한 내면의 자기와 충분히 만나는 것은 위대하다"

 

일곱번째 이야기 오일러의 왼쪽 눈 "나는 아직도 오일러의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이미지 파이을 jepg 화일로 전환하는데 오일러 함수가 쓰인다고? 와우 대단하다.

 

여덟번째 이야기 콜라와 햄버거, 그리고 '미국의 정신'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미국의 정신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골고루 지우지는 것이 바로 미국의 정신입니다." 부시행정부의 '상속세 폐지' 추진에 반대입장을 밝히며 2006.6.25

위렌 버핏이 한 말이란다.

 

아홉번째 이야기 프리다

프랑스의 어는 화가가 프리다를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에 프리다는 "내 그림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다. 나는 꿈이 아니라 내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이것이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세계이다.

 

낙타~ 너도 30년 이상을 사는 구나! 그래도 수명을 채우며 살아가는 짐승은 축복받으리라~

낙타와 비슷한 수명을 가진 소는 대부분 20개월 전에 도축당하며 길어봐야 50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사막에 낙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낙타는 어떻게 될까?

 

2008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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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마르크스

 HOW TO READ 마르크스


저자 : 피터 오스본  옮긴이 : 고병권, 조원광

날짜 : 2008. 12. 21

출판사 : 웅진 지식하우스


요즘 태희와 함께 아트앤스터디 강의 중 맑스의 초기 저작 읽기를 듣고 있다. 강의에서 강사가 마르크스 입문서로 소개한 책이 “하우투리드마르크스”이다. 완산도서관에서 검색을 했는데 서신도서관에 책이 있음을 확인했다. 서신동이면 너무 멀다. 아무튼 읽고 싶은 책을 빌리지 못하고 또 도서관을 나섰다. 일주일 후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와우투리드마르크스”가 책장에 있지 않은가? 태희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 것이다. 태희는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을 손에 넣고 책장을 넘겼다.


책은 200페이지가 약간 안 되는 분량으로 10개의 쳅터로 구성이 되어있다. 상품, 실천, 역사, 소외, 철학의 가면들, 코뮤니즘, 자본주의의 파괴성, 산노동과 죽은노동, 본원적축적,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스가 이 책을 구성하는 테그들이다. 이러한 주제를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어떻게 다루었는지 원서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 저자인 오스본이 그에 대해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쓰여 진 책이다. 각 쳅터마다 주석이 다린 주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이 날카롭다. 정말 마르크스의 그 위대한 사유 앞에 주눅이 들정도이다.


내가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건 언제나 마르크스주의 뒤에 다른 것이 붙어 다니는 그런 것들이었다. 교조주의, 수정주의, 구조주의, 무정부주의 등등....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소개한 책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어떤 거리를 두고 읽는다. 마르크스조차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던가? 고병권은 후기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그에 대한 생산적 독자였으며 마르크스의 사유를 계속 진행 중인 탐구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사유는 완성되지 못한 사유가 아니라 완성에 저항하는 사유다”라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자기 충족적으로 체계화되는 사유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해나갔다.”


동영상 강의와 책을 통해서 나는 다시 마르크스와 만났고 마르크스를 읽는다. 사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난 후 마르크스는 죽은 개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공황이 가시화되자 마르크스는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비롯되는가? 또한 이러한 시대에 다시 마르크스를 읽는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니체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대신 “무엇을 진리라고 하는가?”를 파헤쳐야 한다고 했다. 지금 마르크스를 읽는 다는 것은 어떤 새로운 진리의 확보가 아니라 진리로 여긴 것들에 대한 비판과 분석이 아닐까?


마르크스의 책 “자본”에서 처럼 “하우투리드마르크스” 1장은 상품이다. 상품 분석을 통해 마르크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상품은 그것이 가지는 감각적 특성을 뛰어넘어 초감각적 특성이 되는가? 어떻게 인간의 다양한 욕구가 상품이 가지는 초감각적인 특성인 교환가치에 종속되어버리는가? 어떻게 노동력의 가치는 상품 속에서 은폐되는가? 모든 것을 상품으로 생산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본이며 그것이 무엇을 야기할지 마르크스는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인류학적 가치가 하나의 체제에 포섭되어버리고 모든 질들이 양으로 환원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끔찍한 운동을 마르크스는 예견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마르크스는 파국만을 예견한 것이 아니라 파국을 끝내고 일자(一者)로부터 인간의 욕구를 해방시킬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그것은 역사의 필연이 아니라 구성해 내야할 절박함이 아닐까?


책은 마르크스 입문서라기 보다는 마르크스 원서와 함께 읽어나가는 안내서 정도가 좋을 듯 싶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묻는 것은 "당신은 마르크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마르크스는 “무슨 말을 했나”가 아니라 내가 마르크스를 어떻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읽을 것인가이다. 이런 물음은 내가 마르크스를 어떻게 읽어왔는가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즉, 내가 마르크스를 읽어오는 방법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에 대해 스스로가 생산적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식이라는 것 혹은 이론이라는 것을 “자기 충족적 체계화”라는 것으로 읽어왔다. 그것은 진리와 변혁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르시즘”이다. 도대체 나는 마르크스를 왜 읽는가? 바로 이것이 다시 “하우투리드마르크스”가 내게 던진 화두다. 자기 충족적 체계화가 아니라 철학은 프롤레타리아의 머리교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의 심장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이론은 심장을 가져야 한다. 나의 심장은 뛰고 있는가?


이 책이 현 시기 다시 마르크스를 읽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째찍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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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한국 철학

 한권으로 읽는 한국 철학


황광욱, 정성식, 임선영 지음

동녘출판사


2008년 12월 6일


시립도서관에 목요일 날 반납했어야 하는데 반납하지 못했다. 김교빈 교수의 한국철학 특강을 들으며 한국 철학에세이를 빌려보려고 했는데 그 옆에 한권으로 읽는 한국 철학이 더 마임에 끌려 빌려오게 되었다.


크게 3부로 구성되어있는 책이다. 1부 정신, 2부 진리, 3부 변혁이라는 주제로 단군, 최치원, 정몽주, 송시열, 최제우, 원효, 지눌, 서경덕, 이황, 장제두, 왕건, 정도전, 조광조, 이지함, 홍대용, 정약용을 소개하고 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나고 중국에서 갈려졌으며 한국에서 통합되었다는 다소 거친 해석이 있는데 여러 가지로 수긍이 가는 말이다. 원효의 사상은 꼭 한번 살펴봐야겠다. 대중들과 함께 대중들 속에서 깨달음을 실천하는 멋진 사람이다. 산속에서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하더니 그것이 무릇 대중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빛을 내는 것이 깨달음이 아닐까? 화담 서경덕 또한 멋지다. 그의 기이론도 꼭 공부하고 싶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서 정몽주의 단심가는 참으로 멋진 응수이다. 오늘날 비꼼과 비판만이 난무하는 응수의 시대에 귀감이 될만 하다.


기회가 된다면 서경덕,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실학적 전통과 철학도 읽어보고 싶다.


민족정신


현재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물으면 사람들이 무엇이라 이야기 할까? 아마 한(限)이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에 묘사된 한민족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이렇다 한다.


동방을 이라고 한다. 이는 만물이 근거하여 나오는 것이다. 동방의 사람은 성품이 어질어서 만물을 살리기를 좋아한다.(중략)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겨한다.


부여는 현토의 북쪽 천리에 있다. (중략)함께 어울려 예절로서 술 자리를 베풀고, 사냥하는 달에는 하늘에 제사지내고는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큰 모임이 연일 계속되는데 이것을 영고라고 한다.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중략) 그 풍속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청결한 것을 좋아한다. 또 저녁이 되면 남녀가 예고 없이 모여 무리를 지어 노래하기를 즐긴다.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모임을 여는데 이것을 동맹이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한민족의 정신은 어울려 노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숫자 3에 대한 이야기

1은 아버지, 2는 어머니, 3은 자손이다. 3은 진보와 변화 발전이고 질적 도양의 변증법적 지양이다. 하늘과 사람과 땅이라는 구조와 고구려의 삼족오도 이런 천지인 사상이 기본요소임을 보여준다.


이방원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져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더 읽고 싶은 책 : 화담 서경덕의 철학사상, 한국실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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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괴물의 탄생


우석훈 지음(출판사 개마고원)


2008년 12월 3일(수)


전주시립도서관에서 괴물의 탄생을 빌렸다. 이번에도 빌리려고 했던 책은 빌리지 못했고 신간에 꽂혀있는 우석훈의 책을 빌렸다. 그가 썼다는 4권의 경제학 시리즈 중 마지막 책이다.  괴물의 탄생에서 괴물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연상되었다고 한다. 갑옷을 입은 사람이 표지인 리바이어던은 사람이 몸을 이루어 거대한 집단이 된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석훈은 이명박이라는 괴물의 탄생을 바로 그 갑옷의 몸을 이루는 공범자로서 우리를 상정하고 있다. 3부 13강으로 구성되어있는 책은 경제학에 대한 인문교양서 정도로 읽어주길 요구하고 있다. 읽어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구어체로 쓰여 읽기도 편하고 개념도 그리 어렵지 않아 여는 경제학 책에 비해 읽기가 수월하다. 1부 세계 경제의 흐름과 경제이론의 변화에서는 대략적인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제이론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2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를 3부는 한국 경제의 대안과 3가지 과제를 서술하고 있다.


경제학에는 부자의 경제학과 노동자의 경제학이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우석훈은 나쁜 경제학과 좋은 경제학으로 경제학을 구분한다. 부르조아 경제학과 프롤레타리아 경제학이라는 구분 사이에 우석훈이 강조하는 것은 국가와 시장의 영역과 다른 제3의 경제학적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어떻게 삼성 공화국이 되었는가 그리고 급속한 경제 개발이 낳은 중앙형 시스템의 비극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흥미진진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만들어진 지역토호와 중앙토호의 유착의 문제는 지역 운동 속에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토건 전주라는 강의가 있는데 이 개념은 우석훈의 개념인지 다른 이의 개념을 가져다 썼는지 모르겠지만 통렬한 비판이다. 일곱 번째 강의에서 토지에 대한 우석훈이 이야기는 토지 문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경자유전이라는 헌법(121조) 조항에 대한 이해는 더욱 그러하다. 가진자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경자유전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석훈은 앞으로 수도권 개발을 둘러싼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누가 이기느냐 보다는 그 대결이 낳을 뼈 아픈 상처를 예고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제 3부분이 전체 경제에 10%로만 차지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와 기업 문화에 미칠 영향과 외부적 충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국가와 기업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대승적 투자를 호소하면서 책을 마무리 하였다. 우석훈은 한국과 비슷한 스위스 경제 모델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지역 경제 문제와 경제 분석 일반에 활용할 만한 인용문이 많이 있어 반가웠지만 한번 읽어서는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부터 인용할 구절이 있으며 포스트 잇을 부쳐 표시를 해놔야 겠다.


인용할 만한 통계


한국 전쟁 전 21.4%였던 도시화율이 2005년에 80.8%가 되었다.(160P)

제주도 땅 외지인 60%, 20~30% 지역토호, 나머지 30~40% 농민과 현지 거주인(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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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에세이

 동양철학 에세이


저자 : 김교빈, 이현구 그림 : 이부록

출판사 : 동녘

2008년 11월 19일(수)



아트앤스터디에서 김교빈 선생의 한국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 김교빈 선생의 책이 있기에 빌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철학에세이도 있었다. 차라리 한국철학에세이를 빌릴 걸 후회했지만 이 좋은 정보 또한 동양철학 에세이가 아니었으면 모를 뻔 했다.


머리말과 들어가는 말을 통해 동양철학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동양에는 철학이라는 용어가 없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번역한 필로소피는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동양이 사유들은 도를 깨닫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엄밀한 이미에서는 철학이 아니라 도학이라고 했어야 합니다.”


“성인은 귀이(耳)와 입구(口)와 임금 왕(王)을 합친 글자입니다. 글자 그대로 귀와 입을 가지 사람이 임금 노릇을 한다는 뜻입니다.”


“도는 걸어가면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도는 생각과 실천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사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옳은 길을 실천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도를 깨치는 것에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수양을 통한 덕임을 말하면서 동양철학은 지혜로운 사람보다 어진 사람을 높였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양철학이 오늘날 전성기를 누리고 있으나 대부분 상품화된 도덕과 신비주의로 나타나는데 문제를 지적하며 동양철학의 신비적 해석도 시대를 넘어선 보편적 가치의 부여도 거부하며 그 사상의 시대적 한계와 의미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까지 살펴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했다. 공자, 노자, 묵자, 장자, 맹자, 순자, 법가, 명가, 농가, 주역의 순으로 해설을 해논 동양철학 에세이는 다양한 동양 사상에 대한 소개이다.


춘추 전국 시대 제가백가의 사상을 다룬 동양철학 에세이는 각 사상의 핵심을 원문을 통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어 보기에 막힘이 없다. 어떤 사상이 맞는가 보다는 어떤 사상이 왜 그시기에 특별히 채택이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더욱 감칠 맛 난다. 중국의 격변기에 나타난 다양한 사상들. 도덕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듯 한 비도덕적인 현실에서 공자는.......


어떤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그 시대의 역사적 특징을 이해함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20대에는 묵자처럼 치열하게 살다가 30-40대에는 한비자처럼 영악하게 살고, 50-60대에는 공자나 맹자처럼 근엄하게 살다가 70-80대에는 노자나 장자처럼 유유자적하며 살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도 때로는 공자처럼 그리고 때로는 노장처럼 살기를 원하기도 한다.


20대에는 사회변혁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쇠약해저 버린 내 몸 둥아리를 붙잡고 얼마나 많이 울었으며 참회했던가? 그 순간 참회를 도와준 불교의 경전과 노장의 글들이 얼마나 새로웠던가를 떠올려본다. 한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유물론 철학이 아니면 모두가 쓰레기라는 생각이 지배하던 젊은 시절이 얼마나 철이 없던 것인지?


노장 사상 말고라도 다양한 사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기쁘다. 특히 묵자나 명가, 농가는 새롭기도 하거니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어느 면에서 보면 공자는 플라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쓰임과 덕의 강조, 그리고 중국과 그리스의 시대적 배경이 닮은 꼴이다.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기도 한 걸 보면 인류사 속에 어디가 더 잘 난 것도 더 못 난 것 도 없지 않은가?


지금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성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때를 모르면 철부지라고 하였다고 한다. 어린이는 추운데도 반팔을 입고 나가려하고 더운데도 긴팔을 입고 나가려 하여 철부지라고 한단다. 옛 사람들은 절기를 모르면 철부지락 했단다.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입춘, 청명, 하지, 동지 등 24절기는 이름부터가 생활 밀착형이다. 철을 들게하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킨다. 그러나 지금 달력은 어떤가? 일요일은 쉬는 날, 말 일은 세금 내는 날.

과연 현대인은 철들 수 있는가? 기독문명의 천지창조 신화로부터 시작된 그레고리력에 대한 인간의 비합리성을 꼬집는 저자의 들어가는 말은 동양철학은 비합리적이라고 왜곡하는 서양철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동양철학 에세이를 반납하고 한국철학 에세이를 대여해야 겠다.

한국철학 에세이로 새롭게 만나게 될 사상과 사람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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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혁명

 주권혁명


저자 : 손석춘

출판사 : 시대의 창


2008년 11월 8일(일요일)


비폭력 교과서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들렀다. 아직도 김민기 책은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두 권 빌렸는데 한 권은 동양철학에세이고 한권은 주권혁명이다. 촛불 까페의 사람들이 요즘 읽고 있다기에 빌려보았다.


손석춘 교수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원장이다. 최근 들어 정세에 대해서 책을 많이 쓰는 연구소이다. 촛불 이후 쓰여 진 책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특히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니체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마르크스와 니체의 결합이라는 주제가 책속에 포함되어 있어 더욱 궁금했다.


책은 단숨에 읽었다.

그러나 읽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방법과 니체에 대한 의견이 그리고 대안들이 상당 부분 나와 해석이 다르다.


저자는 서문에서 신자유주의 착취 체제가 노골적인 이유를 세 가지 들었다. 1. 수탈과 침략체제에서 이익을 누리는 세력이 민중에게 진실을 조직적으로 숨기거나 속이고 있기 때문이고 2. 실존사회주의의 몰락과 진보세력이 무능이고 3. 진실을 외면하려는 민중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안했으며 저자는 민주주의를 생명체로 볼 때, 민주주의의 탄생(자유주의) -> 성장(사회주의) -> 위기(신자유주의) -> 성숙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발전 이론을 제안하였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중을 행방하는 주권혁명으로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민주경제론과 분단체제의 대안으로 통일민족경제와 새로운 세계를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글을 읽는 와중에 내가 느낀 것은 새로운 촛불운동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감지한 저자의 감흥과 전혀 새로운 것 없는 저자의 철학이 만났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전 이론은 그야 말로 논리가 이해하기 힘들고 억지스럽다. 역사를 발전사관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인류사를 보면 인간은 점차적으로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어온 것은 맞지만 현재의 위기를 성숙으로 가기 위한 이행 정도로 도식화시킨다면 이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진실에 대한 조직적 은폐라는 전제 조건도 이데올로기가 그저 허위의식에 불구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 선동으로 허위의식을 걷어 내면 혁명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회 체제는 그 시대를 유지하고 재생산해내는 주체의 재생산을 전재로 하고 주체의 재생산은 진실의 은폐로서가 아니라 그 주체의 동의를 전제한다는 현대의 주체화 양식을 너무 가볍게 보는 전제이다. 말 그대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발전 단계로 보자면 사회주의의 몰락과 진보의 무능도 역사적 단계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전제 조건은 공허함 그 자체이다.


특히 계보학의 선구자인 니체 철학에 대한 분석은 납득하기 힘들다. 사회구조와 주체성이라는 문제를 혼합해보려는 시도는 이미 있어왔지만 수직적 나무구조에 초극하는 주체를 결합하는 것은 변증법이 아니다. 니체는 인간이라는 초극의 주체가 어떻게 수동화되어가는가를 서양 역사를 냉혹하게 분석하여 죽어간 주체를 살리기 위해 그리스 시대 주체화양식과 주체의 역능을 복원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니체의 계보학적 관점을 버리고 니체의 문제의식을 가져다 쓰는 것은 니체를 왜곡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과연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인가? 오히려 나무의 성장을 위해 뽑혀온 무수한 잡초들의 제거가 바로 물질문명에 바쳐진 민주주의의 피는 아닐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조직화 양식이 꼭 나무형 일 필요가 있는가? 주권혁명이 제시하는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주체의 탄생은 정말 절실하지만 그 방법과 절차는 너무나 빈곤하다. 경제 발전론의 단계에도 한 말이 만치만 더 이상이야기 해야 무슨 소용인가? 결론을 위해 서론이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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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교과서

 

비폭력 교과서


2008년 10월


오랜 만에 시립도서관에 갔다. 김민기의 책을 빌리기 위해서이다. 28,000원이나 하는 책을 사기에는 고민이 많이 된다. 도서관을 이용하라는 보리 누나의 조언으로 도서관에 갔으나 김민기의 책은 도서관에 없었다. 읽고 싶은 책으로 신청을 해놓고서는 책 쇼핑을 했다. 언제나 책 쇼핑은 즐겁다. 비폭력 교과서라는 제목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을 넘기니 비폭력 저항운동에 대해 이런 저런 그림과 사례들이 소개되어있다. 폭력과 비폭력 논쟁이 많았던 촛불을 떠올리며 빌렸다. 폭력과 비폭력 논쟁에서 항상 아쉬웠던 것은 그것이 불의에 대한 불복종의 의미가 퇴색된 채 형식 논리로 되어버린 경우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나 사회의 권위주의적 형태에는 무관심한 채 시위대의 폭력 행위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되는 폭력과 비폭력 논쟁은 정말이지 답답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호를 외치는 것 이외에 물리력으로 한번 해보려는 한탕주의나 상상력의 빈곤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현실이다.


비폭력 교과서는 비폭력운동의 사례를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방법의 비폭력 행동을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고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고 비폭력 행동을 실현하는 조직들이 원칙과 규율도 소개하고 있어 눈에 잘 들어오고 재미있기도 하다. 필리핀의 아키노는 독재 정권에 맞서는 시민들의 비폭력 행동으로 총파업, 수업거부, 가두행동, 국영티비와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신문의 구매 및 광고 게제 거부, 공공요금 납부 거부, 불매운동, 정부계 은행에서 예금 인출 등을 호소하였다고 한다. 이정도면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비폭력 교과서는 대안적 삶과 운동으로서의 자기 혁신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듯하다. 비폭력적 삶의 자세와 단체의 규율은 새겨볼 만한 게 많다.


간디의 자서전을 잃으면서 비폭력 운동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비폭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무저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진이 금지된 곳에서 행진을 시도하고 노동자의 파업을 호소함과 동시에 물레를 돌려 투쟁하는 사람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정성이 놀라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간디와 같은 비폭력을 바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생사가 오가는 처절한 자본과 권력의 폭력 앞에 비폭력만이 대안이라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쉽게 동이하기가 힘들다. 샤파티스타의 무장 투쟁도 총을 들었지만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총보다 더 무서운 말과 민주주의가 샤파티스타의 무기임은 확실하다.


우리의 상상력이 다양함을 요구하고 비폭력의 정신이 불의에 대한 불복종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비폭력 교과서는 읽고 토론할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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