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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전체적으로 참으로 우울하다.

뭔가를 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라는 걸, 뭔가를 하려고 하니까 비로소 알겠다.

그 전에는 뭔가를 하려고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았으나 그것은 이미 내가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잔칫날에 20인분의 밥과 국을 해놓는 것은 힘도 들고 기술도 필요한 일이고 자발성도 필요한 일이지만

나 같은 경우 그건 그냥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청소하는 일에, 설거지하는 일에, 고양이를 돌보는 일에, 회의를 기록하고 세탁기를 고치는 일 등에

그런 식의 힘을 쏟고 마음을 쏟고 자발성을 보였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보통, 누군가 하는 것을 남들이 시기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보통은 격려되는 일들이다.

이렇다할 칭찬이 없는 경우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훈훈하고

몇몇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을, 지금껏 하지 않았던 것을 하려고 할 때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렇게나 온갖 말들을 듣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내 상태가 불안하니까 그런 말들에 휘둘리기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말들은 뺨을 찰싹 때린 것처럼 느껴지도록 화끈거리고 아프고 불쾌하다.

지친 사람들의 지쳐있는 포즈보다 활발한 사람들의 예의없음이 더 무섭다.

지친 사람들에게는 내 에너지를 나누어 함께 하자고 꼬드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예의없는 자들은 자신이 어떤 말을 뱉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의 언행이 얼마나 자라나는 희망을 무참하게 유린하고 의욕을 꺾는지

정말 본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한참동안 화가 났다가 이젠 우울해진다.

이런 일들을 다독여주는 술자리도 이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몸이 망가지고 더 이상 말로 위로받는 것도 피곤하다.

너무 많은 말이 피곤하다.

그냥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하면 서로 흩어지고 의심하고 적대하고 배척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이끌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알고 있다.

나부터. 나부터. 나부터.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나부터.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도

오해와 시기가 개입한 모든 판단에 대해서도

마음 상할 필요 없다.

부당하다고, 오해라고, 시기라고 판단하는 나의 판단도 옳지 않다.

판단은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처하는 것에 따라 옳게 되거나 틀리게 되는 것이다.

 

그냥 내게 주어진 길을 다시 생각하는 게 필요한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빈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빈집에서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온전히 나의 소유도 아닌

그렇다고 신께서 내게 내려주신 것도 아닌

그 어떤 목소리에 대해 깨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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