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누가 그에게 완장을 채웠을까!

누가 그에게 완장을 채웠을까!


땅투기 졸부 최사장은 이곡리의 널금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어 동네 날건달 종술에게 관리권을 맡긴다. 완장을 찬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종술은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드디어 종술의 팔엔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완장이 채워지고...... 서푼짜리 '완장권력'에 도취된 종술은 낚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기합을 주고, 고기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청 업체에 근무하는 사람이면, 하청업체 사람에게 근무지시를 해도 되는 건가요?". 30대 쯤으로 돼 보이는 여성노동자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내게 따지듯 물어본다. "상식적으로요. 원청이건 하청회사건 간에 형식적으로는 다른 회사인데요. 다른 회사사람이 다른 회사에 있는 사람에게 근무지시를 하는 것은 맞지가 않지요. 당연히 근거도 없겠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현실에선 통하지 않겠지만!" 이란 단서를 달고서.

"나이도 스물 댓 정도 밖에 안돼보이는게, 지도 생산직이면서 원청업체에 근무한답시고 작업장에서 우리 같은 아줌마들한테 '이거 해라, 저거해라, 왜 농땡이 부리냐' 이런 건 일도 아니고요. '내 말 안들으면, 다 잘릴 줄 알아라!' 이런 식이에요. 거기다가 욕에 음란패설에.... 저희들이 대처할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요!"라고 그 여성노동자는 다시 되묻는다. 현장 관리자에게 항의해 보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현장관리자는 그 자리에서 못본척 하고만 있을 뿐이란다. "참, 대기업 다니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완장이라고! 맨날 우리한테 큰소리치던 반장도, 과장도... 다 똑같은 놈들이여. 지나 내나 틀린 게 뭐가 있다고!"

이 얘길 듣는 나로서도 이 대목에서 숨이 콱 막힌다. 어디 여기 뿐이랴! 청주공단에 있는 조그만 공장의 아주머니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내건 첫 번째 요구안이 '아들뻘 되는 반장들아, 제발 욕좀 하지마!' 였던 사연. 반장만 되면, 어느새 회사편이 되어 노조를 저버리는 노동자, 그걸 이용해 스무명당 반장하나에서 10명당 반장하나로 반장숫자 늘리고 그 안에 두명의 조장까지 두는 회사측의 노무관리.

다시 윤홍길의 소설 '완장'으로 돌아가 보자. '완장의 힘'만 맹신하던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까지 금지하게 되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해고에도 불구하고 종술은 완장을 간직하고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고... 결국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과도 부딪히게 되자 열세에 몰린 종술은 술집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여 완장을 버리고 저수지를 떠난다.

하청업체에 대하여, '완장'을 찼다고 착각하는 원청노동자들! 혹은 같은 생산라인에서 반장 '완장'을 찬 형님들이여! '노동자'면 '노동자'지, '노동자'가 '자본가'가! 제발 그러이좀 마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