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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여자도 군대가자"_최후의 성역을 어떻게 열까

최후의 성역을 어떻게 열까

여성주의자 김재희·권인숙·정희진씨의 삼인삼색 처방
“실천적 선택” “효과는 의문” “해프닝으로 끝날 것”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여자들이 가는 것 외에는 군 안팎을 바꿀 합리적인 답이 안 나온다.”(김재희 <이프> 편집인)

“여자는 안 가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지만, 효과는 의문이다.”(권인숙 여성학자)

“남성화되는 게 평등인가? ‘미션 임파서블’일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정희진 서강대 강사)

군사시스템 재검토 등 준비가 필요하다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군복무에 대해 삼인삼색의 견해를 내놓았다. ‘남성성 획득’의 수단이자 ‘남성연대 공고화’ 시스템인 군대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유할 때가 됐다는 데에는 동의했으나, 저마다 처방은 달랐다.

정희진씨는 “여성의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삼중의 노동은 가시화되지 않고 남성들의 군복무는 지나치게 가시화되는 이런 상태에서 여성들에게 군복무까지 하라고?”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나라의 하나인데, 군축이나 군대 문화를 바꾸고 군을 현대화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권인숙씨는 “남성성을 기반으로 한 군대를 ‘극복’하겠다는 논리를 반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여성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겪는 차별이 해소되리라는 확신은 못하겠다”고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다. “남성들의 희생 논리는 줄어들 수 있지만 여성성이 남성성에 먹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느 날 남녀가 딱 50 대 50이 된다면 또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과 이념의 변화, 이를 소화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논의를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 군대와 군사 문화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여성주의자들. 왼쪽부터 김재희, 권인숙, 정희진씨.

김재희씨는 “사회가 균형을 잡아가기 위한 실천적 선택”이라면서 적극 찬성했다. 그는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50년 뒤의 그림을 그려보자고 주문했다. “모든 섹터에서 남녀가 조화롭게 있는데, 군대만 유독 비정상적인 구조로 남아 있다고 상상하면 불안하고 불길하다. 병력 수급부터 국방의 개념까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여성을 배제하고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군대는 사람 죽이는 걸 배우는 곳이라기보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기르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모두가 리더가 돼야 한다. 과연 우리 딸들이 계속 그 기회를 박탈당해야 할까.”

남녀 공동 복무를 내세우는 이스라엘 군대는 ‘성별 분업’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병이 아니면 군인이 아니라고 여기고, 국가적으로 여성의 ‘모성적 의무’가 ‘군대식’으로 강요되기 때문이다. 권씨는 “‘준비 없는 공동 복무’는 성별 분업을 더 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자는 전투하고 여자는 뒤치다꺼리하는 게 의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권씨는 여성의 군복무 논의가 “군사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고, 사병 계급 문화, 대체복무 활성화 같은 징병제의 대안을 찾는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는 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여성에게 아무런 정책 결정권이 없을 때 이런 논의가 현실화되면 해프닝으로 끝날수 있고, 책임은 무겁다”고 말했다.

독일 녹색당 여성들의 ‘이중행보’

독일 녹색당 여성의원들은 군축을 주장하면서도 전투병과 여성 배제를 반대하는 ‘이중 행보’를 해왔다. 김씨는 “‘군대 없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것과 군대를 바꾸는 것은 같이 가야 하고, 어쩔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다”면서 ‘원칙주의’를 경계했다.

군 경험은 남성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인 동시에 ‘우월한 지위’를 얻는 수단이다. ‘군필’은 온전한 ‘시민권’의 필수조건이다. 유사 이래 평등해지려면 군대 가야 한다는 말이 힘을 가진 것도, 다민족 국가에서 소수민족이 기를 쓰고 군대에 가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민족에게는 문이 열려도 여성에게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치를 필두로 남성 권력자들이 여성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기는 했지만, 예외적이었다. 그만큼 군대는 남성들만의 ‘특혜’ 공간이었다.

세명의 여성주의자는 “궁극적으로 여성의 의무복무를 반대할 집단은 남성들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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