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디에 있을까 -

언젠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스개로, 학생위원장(학생 단위에서 뭔가 장을 맡거나 한다는 의미의 고약한 말이었는데, 30이 되도록 학교에 남아 뭔가를 맡을 수도 있다는 상황 자체가 비극이다,) 하지 - 그랬었는데, 설마 그 때까지 학교에 남아있진 않겠지만,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와의 인연이 길어지고는 있다. 다른 블로그에서, 전망 없다는 말을 쉽게 던지는 것에 대한 타박을 읽은 적 있는데, 난 이곳의 활동이 전망 없다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주위에 던졌던 기억이 있다. 빨리 정리를 하고, 다른 활동에 전념하는 게 의미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지금도 상황과 그에 대한 판단이 그리 달라진 건 아니고, 억지로,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건데, 달라진게 있다면 전망이 있든 없든 버티는 것 자체가의미를 많이 가진다고 생각하게 된 점이다. 이건 계속 헷갈리는데, 내가 냉철하지 못해 계속 여지를 남겨두면서 주위 사람들의 역량까지 소모시키는 게 아닌지, 아니면 너무 쉽게 가능성을 봉쇄하면서 기권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닌지. 나의 활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거기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 활동을 정리하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전망이 없다는 생각을 되뇌이는 건 아닌지.

 

이번에 임성규씨의 후보사퇴글에서 마지막 10분을 버티지 못했다는 말에 쿵 내려앉았는데, 그건 내가 자주 경험하는, 내 이야기다. 어떤 판단은 이루어져 있지만, 마지막 몇 분 사이에 마음이 흔들려 만들어 놓았던 결정을 뒤집곤 한다. 나도 이게 어느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남길지 모르는 모지라고 위험한 모습이란 걸 안다. 그런 사람이다 보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나의 우유부단함을 변수에 추가해 계산을 하는데, 그건 정말 값을 정할 수 없는 변수라, 애초에 답을 구하지 못하는 계산이 되고 만다.

 

그래서, 아예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닥치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길을 제시해주거나, 그런게 편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는 것 같지만, 나의 그릇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에는 내가 너무 오만하다는 건데, 나의 셈법을 스스로 못미더워 하는 것 만치, 다른 이의 셈법도 의심하고, 오히려 내 셈법만 못하다고 여긴다. 물론, 차분히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그것을 깨닫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아무튼 이러다 보니 나를 상황속에 던져놓곤 하는데, 그게 나를 아끼는 방식은 아니어서 언제나 무리를 하게 만든다. 2-3년 전에는 되도록 빨리 정리하고, 다른 길을 찾자는 게 생각이었지만, 어느 새 상황에 몰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자고 되뇐다. 정리하는 것도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지금은 정리다운 정리도 안될 것이고, 흐지부지라는 표현대로 될 것이다. 흐지부지는 원치 않아서 버티는 것이기도 한데, 버틴다고 정리가 안될 것 같지 않으니 그게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런 마음을 갖고 하는 것 자체가 될 일도 안되게 하는 것 같고. 물론, 가능성을 아예 보지 않는다면 하지 않았겠지. 은근히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건데, 그 기대가 실현되리라는 상상을 하기가 참 어렵다. 이미 학교에서 활동을 해온 기간 내내 끊임없이 패배의 기억이 축적되어 왔고, 평상시에는 거기에 크게 매여있진 않지만, 내 삶을 돌아볼 때면, 무력감에 젖곤한다.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건, 활동에서의 기억 뿐만 아니라 내 신변의 일들 때문이기도 한데,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크게 느껴지긴 하겠으나, 어떤 척도가 있어 재본다면, 분명 내 삶의 곡선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고, 그 상처들은 내가 항상 의식하진 않더라도 곳곳에 새겨져 있다. 내가 들어가는 모든 조직이 다 망한다고 놀림받곤 하면서, 내가 검은 구름과 재앙을 몰고 다니는, 판타지 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있었다. 내가 속한 모임들이 하나 둘 씩 망하는 걸 지켜보는 게 참 씁쓸하다.(아예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 단체 들어가볼까?) 꼭 내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내가, 그럴 곳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흑, 어쨋든. 아냐, 내 문제도 꽤 크지.

 

이게 단순하지는 않은데, 망하는 곳을 보면,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어서 깊게 계산 안하고 붙어있기도 하는거고, 이런 내 기질 때문에 평생 남에게 폐끼치지 않을까 싶다. 이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타고난 어떤 기질인건지, 냉장고 안에서 꿈틀거리는 바지락을 못 지나치듯이,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별로 가능성이 없어보여도 붙어있을 수 있는 거다. 아마 난, 그게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미적미적 손을 못떼고 부여잡느라, 내 가랑이도 찢어지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폐끼치고. 내가 어떤 이기적 동인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훨씬 냉철해져야 한다. 그게 참 안된다.

 

너무 비관적으로만 말이 나왔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같이 계획 세우고 실행할 사람도 있고, 올해엔 학사일정이 없으니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고. 나 편하려고 생각하는 건 좀 자제해야지만, 어쨋든 이렇게 사는 게 편해서 그러는 거니, 괜찮다.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