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방법비판(方法批判)과 정치적 맥락주의(脈絡主義)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를 읽으실 독자들에게>

 

 

 

금민

 

어떤 글이든 그것은 독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점은 최소한 17세기 이후의 합의, 시민혁명이 이룩한 합의이다. 이 시기 이후로 평균적 교양시민이 읽어서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아예 수준이 없는 글로 취급되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 이전과 비교해 볼 때 하나의 거대한 변화이다. 중세에는 모든 중요한 글들이 라틴어로 쓰여졌고, 더군다나 고전 라틴어와 비교할 때 문법이 맞지 않는 속류 라틴어(Vulgata)로 쓰여졌다. 그것은 오랫동안 라틴어가 사어(死語)였고, 그저 글을 쓸 때에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말 근대 초의 저자들은 스스로 라틴어의 문법에 정통하지 못했으면서도 라틴어로 글을 썼다. 이는 그들이 글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글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저자라는 편견! 글의 주인이 독자가 되고, 좋은 글의 심판관이 독자가 된 근대는 분명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발전을 의미한다. 물론 독자 대중의 낮은 수준이 거꾸로 글에 대한 부당한 평결의 원인이 되는 현상도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현대를 수사학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고전적 체계에서는 진리, 정의, 도덕 등 - 언설(言說)의 가치가 수사(修辭)의 치졸(稚拙)에도 불구하고 인정될 수 있는 영역들 - 의 하위 분과에 불과하였던 수사학이 몇몇 현대적 이론가들로부터 심지어 고전적 학제체계에서의 상위 분과였던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영역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붕괴에 원인이 있겠지만, 독자 대중이 글의 우열을 판단하게 된 시대적 합의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시민혁명의 이상적 인간관이었던 교양이 있고 학식을 갖춘 독자 대중은 학문의 전문화와 학문 내부의 사상적 분열 때문에 모든 분야 모든 입장들에 대한 공정한 심판관으로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문분야에 언제나 작은 의미의 독자들의 사회가 형성되듯이, 하나의 사상적 운동에도 작은 의미의 독자들의 사회가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글은 잘못 쓰여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하향 평준화, 통속화를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좋은 글은 언제나 독자들이 논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어떤 장비들을 새로 갖추어야 할 것인가를 친절히 알려 주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글의 근본 내용을 훼손함이 없이 통속화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가는 그 글의 깊이를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미 전제된 {방법비판(方法批判)과 정치적 맥락주의(脈絡主義)}라는 글은 이 점에서 아직 글이 아닌 것이 게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게재된 것이 너무나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분량에 서술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은 처음부터 문제였다. 그러나 저자들이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점은 내용보다도 졸속의 문장에 있다. 저자들은 편집진에게 문장의 교열을 위촉하였으나 편집진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오자(誤字)라고 생각한 몇몇 단어만을 고쳤는데 그것은 불행히도 오자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이해의 곤란함이 잘못된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결여에 있다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의 심판관은 독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게재된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판관인 독자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이고, 설사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좋은 글은 그런 독자들이 어떻게 심판관이 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편집진은 당연히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 대하여 질문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글은 게재되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시간의 촉박이 그 이유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글을 대대적으로 재편성하든지 보충하든지 하는 것은 현재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사과하면서 몇몇 애매한 문장만은 고쳐서 올리기로 하였다.

 

                                                                                                  (필자를 대표하여 금민)

 

 

 

=======================================================================================

 

 

 

방법비판(方法批判)과 정치적 맥락주의(脈絡主義)

 

 

 

 

                                                                                                           금민/김태호

 

이 글에서는 우선 지난 세기의 비판적 전통들을 개관하고자 한다. 먼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맑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서술과 비판의 통일>을 문제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상의 서술을 통한 비판>이라는 방법의 숙명적 아포리, 대상의 사각(死角) 또는 주체의 맹점(盲點)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맹점 또는 사각이라 할 때, 그것은 <비판적 서술>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결코 서술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마치 눈(眼)이 눈 안의 맹점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비판적 서술>에 의하여 대상의 어떤 부분이 서술될 수 없는 까닭은 그 부분이 바로 대상에 대한 서술 자체가 구성되기 위한 전제, 인식 대상과 인식주체가 구성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곳, 서술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서술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비판 또는 사회비판이 단순한 인식비판, 잘못된 인식에 대한 정정을 넘어서서, 방법비판으로 나아가야 함을 암시한다.
이 글에서 맑스와 맑스의 지적 유산을 다루는 목표는, 맑스의 <비판적 서술>이 서술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따짐으로써, 즉 <비판적 서술>이 불가능한 조건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맑스의 인식비판을 방법비판적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방법비판이란, 대상 서술의 가능성의 조건들, 인식주체의 불가결한 조건에 대한 비판을 뜻한다. 이 글에서는 우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방법비판적 문제제기를 시도하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맑스를 계승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많은 시도들, 맑스를 극복하고자 했던 시도들, 맑스와 단절했음을 선포함으로써 새로운 좌파 이론을 세우고자 했던 시도들을 살펴보겠다. 우리는 여기서 그런 모든 시도가 맑스를 비속화하고 축소하였거나, 또는 맑스에게 은폐되어 있는 것과 동일한 문제를 그저 재생산하였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끝으로 맑스 및 지난 세기의 비판적 전통에 대한 방법비판적 독해가 어떠한 실천철학적 결론을 함축하고 있는가를 개략적으로 밝히도록 하겠다.

 

I. 20세기의 신조류(新潮流)들과 {자본}에 대한 '논리적 독법(讀法)'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에 입각한 사회비판은 제2차 대전 이후로 사활적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근본적인 사회비판이 가능한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사실 지난 50년간 좌파이론의 지적 자화상이란 이 질문과 이에 대한 궁색한 답변으로 가득 차 있다. 노동자운동과 맑스주의의 20세기 전반기(前半期)적 전통인 사회민주주의와 맑스․레닌주의(후주1)에 의하여 행해진 자본주의 비판이 - 그것이 기초해 있는 것이 진화론적․경제결정론적 관점이건 주의주의적․정치주의적 관점이건 간에 - 맑스의 <역사유물론>에 근거하는 어법체계에 기초하고 있었던 반면, 대전 이후의 신조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밀과 자본주의 사회의 해소에 대한 과학적 인식가능성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자신들의 어법체계를 구성한다. 물론 이 신조류는 이 의문에 대한 빈곤한 답변의 체계로서 등장한다: 50년대의 '실존주의적 또는 신학적으로 채색된 경향'[알프레드 슈미트(Alfred Schmitt)는 사르트르(J. P. Sartre),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 르페브르(Lev bre), 블로흐(Bloch) 등을 이와 같이 특징짓고 있다] 또는 60년대 독일의 '비판이론'[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Adorno)], 영국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할(S. Hall)과 톰슨(E. P. Thompson)], 이탈리아의 델라 볼페(Della Volpe)와 콜레티(L. Colletti), 그리고 오페라이스모(operaismo 노동자주의) 및 아우토노미아 운동[네그리(A. Negri), 라차라토(M. Lazzarato), 베레디(F. Beradi)], 프랑스에서는 상황주의(situationisme)[특히 드보르(G. Debord)], 70년대의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알뛰세(L. Althusser), 발리바(E. Balibar), 랑시에르(J. Ranci re)], 그리고 80년대 이후로 좌파이론의 지적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탈근대적․해체주의적․후기 구조주의적․라캉주의적 이론들[데리다, 푸코, 들뢰즈(G. Deleuze), 가타리(F. Guattari), 버틀러(J. Buthler), 지젝(S.  i ek) 등등]. 이와 같은 신조류들은 맑스의 맹점에 대한 답변의 차이들을 통하여 분류될 수 있다: 역사철학적이고 인간적인 청년 맑스와 {자본}의 맑스('경제학 비판'의 맑스)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또는 그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알뛰세)을 인정할 것인가, 또는 맑스의 체계 속에 침투해 있는 헤겔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는 특히 이들 신조류 사이의 차이들을 결정한다. 첫 번째 문제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하여 그 이외의 다른 입장들을 가르는 기준이 되며, 두 번째 문제는 비판이론적 입장과 그 이외의 입장들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은 - 그가 헤겔의 논리학을 올바로 이해했는가와 관계없이 - 분명히 헤겔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이론의 반(反)헤겔주의는 다른 입장들의 반(反)헤겔주의 - 과연 그러한 입장들이 진정으로 헤겔의 극복에 성공하였는가의 문제와 관계없이 - 와 비교할 때, 분명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신조류들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각각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맑스에 대한 체계적 독해가 68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그리고 맑스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이들 신조류들의 성립과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맑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의 분기점도 역시 1968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해는 학생운동의 해였을 뿐만 아니라 로만 로스톨스키의 저서 {맑스 '자본'의 성립사(Die Entstehungsgeschichte des Marxschen Kapital)}, 알프레드 슈미트의 저서 {'자본' 100주년(100 Jahre Kapital)}이 출판된 해이기도 하다. 이 저서들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요강(Grundrisse)}의 수용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요강}의 수용이 끼친 영향은 다음의 두 가지 점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로 {요강}은 맑스에 대한 정치적 독해를 촉발시켰다.(후주2) 둘째로, 화폐로부터 출발하는 {요강}의 체계는 상품으로부터 출발하는 {자본}의 체계와 비교되었고, {자본} 형성사에 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맑스의 가치형식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의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맑스의 가치형식(價値形式) 분석은 {자본}의 해석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 못하였고, {자본}의 비판적 핵심은 단지 잉여가치 비판 - 착취, 계급지배,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 그리고 시장의 무정부성에 대한 비판 - 으로 축소되어 이해되었다. 노동자계급은 시민적 유통관계 및 생산관계들에 대하여 파괴적인 힘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생산적 내용으로 파악되었고, 노동은 이미 객관적 성격, 그 자체로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받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당의 지도를 통하여 대자적 계급의식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국가를 통하여 사회주의적으로 일반화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되었다. 맑스의 '비판적 핵심' - 특히 '화폐의 수수께끼'와 '상품의 물신성'에 대한 인식비판적 분석 - 은 1968년 이전의 해석들에서 무시되었거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것은, 소위 '논리적 독해'의 등장이다.(후주3) '논리적 독해'는 가치형식의 논리적 전개에 실제 역사적 발전을 대응시키는 '논리역사적 독해'에 반대하여 논리의 우선성을 주장한다. '논리적 독해'는 이것을 가치형식 분석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독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논리적 독해'는 앞서 언급한 신조류들이 맑스의 {자본} 이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20세기에 맑스에 의거하여 또는 맑스를 비판하며 성립한 신조류들은 1968년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들, 맑스 연구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과들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그들이 수행한 맑스의 전화, 맑스 비판 또는 맑스주의의 극복은 그러므로 맑스의 '비판적 핵심'과의 대결이라고 볼 수 없다.

 

후주

 

1) 여기에 대해서는 {청년좌파} 42호, 신석준의 글, 10면-12면을 참조하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S. Breuer, 혁명이론의 위기, 프랑크푸르트 1977; M. Postone, 시간, 노동, 사회적 지배, 캠브리지 1996, 특히 1부를 참조하라.

 


2) {요강}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상가는 안토니오 네그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요강}에 입각하여 자본과 노동의 적대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주체적 노동과 대상화된 노동의 대립으로 규정한다.

 


3) 헬무트 라이헬트(Helmut Reichelt), {자본개념의 논리적 구조에 대하여(Zur logischen Struktur des Kapitalbegriffs}, Frankfurt/M. 1970; 한스-게오르그 바크하우스(Hans-Georg Backhaus), {가치형식의 변증법(Dialektik der Wertform. Materialien IV)}, Freiburg 1997. 그 외 H.-J. Krahl, R.-W. M ller, B. v. Greiff, E. Jacoby, C. Seel, H. Brethel, K.-D. Oetzel, D. Behrens의 저작들. 가장 최근의 문헌으로는 나디아 라코비츠(Nadja Rakowitz, {단순 상품생산(Einfache Warenproduktion)}, Freiburg 2000.

 

Ⅱ. 인식비판과 방법비판

 

방법비판은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인식비판적 성과들에 대한 재검토, '논리적 독법'으로부터 끌어져 나오는 철학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방법비판이 비판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적유산은 알프레드 존-레텔(Alfred Sohn-Rethel)의 {상품형식과 가치형식(Warenform und Denkform)} 그리고 맑스에 대한 최근의 칸트주의적 독해들 - 특히 프랑크 쿠네(Frank Kuhne) - 이다. 그러므로 방법비판은 칸트․헤겔․맑스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며, 동시에 이들을 넘어서고자 했던 모든 신조류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들 대가들을 넘어서지 못했는가를 밝혀보고자 하는 작업이다. 아래에서는 우선 맑스의 가치형식분석의 인식비판적 수준을 살펴보고, 왜 이것이 방법비판으로 전화하여야 하는가를 가능한 한 쉽게 서술해 보고자 한다.

 

맑스의 가치형식 분석에 대한 '논리적 독해'는 <역사적 재구성>의 문제를 제기하게끔 만든다. '논리적 독해'에 따라 {자본}의 가치형식의 단계들이 논리적 발전의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고, 역사적 단계들이 아니라고 할 때, 역사적 서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존재하는 어떤 것의 기원과 성립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이미 '형성된 것, '있는 것', 즉 현재적 효력을 전제로 할 때에만 비로소 재구성될 수 있다. 어떤 것이 서술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발전과 전개가 현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이미 이 구성적 작업에 대하여 전제된 것으로서 거꾸로 현재까지의 발전 전개를 구성할 수 있게끔 하는 조건이다: '인간의 해부학은 원숭이의 해부학의 열쇠'(MEW 42, 39면)이다. 그러므로 화폐형식의 논리는 그 발전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자 할 때조차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고, 역사적 서술은 논리적 서술 이외에 별도의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 즉 논리적 서술을 벗어난 역사적 서술은 없는 것이다. 논리적 분석이 없다면 대상(자본주의․가치)의 현재적 효력수준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다면 대상의 발생과 전개를 역사적으로 기술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맑스의 가치형식 분석은 화폐(효력)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분석이며, 추상적 시간은'직관형식'(Anschauungsform)으로서 대상을 가치로서 파악하기 위하여 전제된다. 사회적 필수노동 또는 평균노동이라는 척도는 따라서 가치분석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가치분석에 의하여 척도가 무엇인가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척도가 무엇인가가 이미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치분석이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의 '역사적 가치', 즉 투하된 노동시간은 '사후적'으로만 가능한 재구성인 것이다. 투하된 노동시간, 즉 구체적이고 선형적(線型的)인 시간은 오직 유통에 의한, 화폐매개적인 사회적 종합(Synthesis)을 통해서만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후주4) 그래서 역사란 그 서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언제나 종국에 도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국과 함께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효력과 기원은 동시적으로 탄생하는 것이다.(Gleichurspr nglichkeit von Genesis und Geltung). 역사 - 화폐형식의 성립사 - 는 거꾸로 그것의 현재적 효력 - 화폐형식 - 속에서만 '깨어난다'. 그래서 맑스는 '매개하는 운동은 그 자신의 결과들 속에 소멸하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MEW 23, S. 107)라고 쓴다. '한 상품에 다른 상품들이 전면적으로 그들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비로소 화폐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같은 면)은 화폐성립의 기원에 관한 역사가 화폐라는 효력을 전제하지 않는 한에서 기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 역사에 관한 기술은 화폐, 즉 현재의 효력에 대한 순전히 논리적인 서술에 불과하다. 맑스는 '거꾸로 하나의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를 그 상품에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같은 면)라고 쓴다. 여기서 '보인다(scheinen)'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인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를 밝히는 작업은 화폐의 기원과 성립에 관한 역사적 서술을 통해서 수행될 수 없다. 그 작업은 거꾸로 화폐의 논리적 분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맑스가 가치형식의 논리적 단계에 대하여 역사적․경험적 교환형태를 대비시키는 것은, 여기에 대한 수많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서술'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 서술'이 아니기 때문이고, 논리적 전개와 관계없는 '역사적 전개'는 서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리와 역사의 동일성을 말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맑스는 자본 1권의 제2판에서 1867년 초판과 {요강}의 서술방식을 통속화하였고, 분명히 엥엘스의 집요한 설득에 따라 이를 역사화 하였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역사적 서술의 위상은 불명확하게 남겨져 있다.

 

이상에서 밝힌 바들은 좀더 날카롭게 표현될 수 있다: 역사적 전개는 현재의 효력 속으로 함몰하거나 전이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해서 현재의 효력 속에 침몰해 있을 때, 효력 속에 전이된 것으로서 존재할 때에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의 역사는 화폐의 효력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 현재만이 과거가 탄생하며 존재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은 그러나 거꾸로 현재의 효력논리에 입각한 서술, 역사가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서술이 가지고 있는 맹점(盲點), 이러한 서술 방식에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대상의 사각(死角)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효력은 비시간적인 것이 되고 역사적 기원을 가지지 않은 것이 된다: 헤겔에서 정신의 기원은 운동 속에 있듯이 자본의 기원은 재생산 속에 있다. 탄생하지 않은 것, 자신의 탄생을 오직 자신의 현재 속에서만 구성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그 자체로 비시간적인 것이 <화폐-상품-화폐'>의 시계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모순. 바로 자본에 있어서 역사와 논리의 모순은 그래서 시간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수 논리적인 것, 초시간적인 것, 그래서 시간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현상하게 된다.

 

분명히 역사와 논리의 모순은 서술의 수준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맑스의 가치형식 분석에 대한 '논리적 독해'는 역사적․발생적․기원적 수준의 서술이 독자적으로 구성될 수 없음을 밝혔다. 이러한 확인들은 맑스의 <대상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라는 방법에 대하여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발생논리적 구성이 효력논리의 재진술에 지나지 않는 한에서, 대상의 효력논리적 수준에서의 서술을 통하여 대상을 비판한다 함은 무엇을 뜻하며, 그것은 과연 진정으로 비판적인가? 맑스의 '비판'이 역사적 결정론과 목적론의 모든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것, 또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현실을 단지 설명하기만 하는 이론'도 아니면서 미래에 대한 '선형적 결정론'도 아니라면, 현실의 서술을 통한 현실의 관계들에 대한 비판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좀 더 치밀하게 전개시키기 이전에 헤겔과 맑스를 비교해보는 것은 이후의 논의를 위하여 유익할 것 같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현재의 상태'라는 역사의 종결에서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그의 {논리학}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논리적․초시간적 재구성이다. 이 점에서 맑스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점은 맑스가 절대정신이 자본이었음을 밝혔다는 데(유물론적 전도)에 있다. 그러나 나아가서 이 점만으로 그와 헤겔을 구별할 수는 없다. 양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맑스가 자본(서술대상)의 구성적 전제가 인식주체(서술자)의 구성조건과 동일한 것임을 밝혔다는 데에 있다. 그는 물신성의 분석에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관계를 물신적으로 나타나게끔 만드는 원인은, 한편으로 주체의 인식조건 - 칸트에게서 순수오성 개념처럼 모든 경험적 대상이 인식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것 - 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대상의 구성조건 - 자신의 재생산 속에서만 총체성인 자본, 스스로 초시간적이지만 오직 선형적 시간계열(화폐-상품-화폐')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본의 모순된 운동이 대상세계를 구성하는 조건이다 - 이라는 점을 밝혔다. 그래서 맑스는 물신적 인식과 그 인식의 주체․객체적 구성조건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말한다: '서로 독립된 사적 노동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은 그 사적 노동이 인간노동으로서 동등하다는 데 있고, 이 사회적 성격이 노동생산물에서 가치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은, 특수한 생산형태, 즉 상품생산에만 타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생산의 관계에 파묻힌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의 발견 이전이나 이후에나 절대적 타당성으로 나타난다.'(MEW 23, 88면) 그러나 맑스의 물신성 비판은 - 위에 인용한 구절(1권 88면)에 나타나는 통찰에도 불구하고 - 인식비판적 차원에 한정된다: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행한다'(같은 면) 이 구절은 '만약 그들이 그것을 안다면 달리 행할 것이다'를 함축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그들이 그것 - 독립적 사적 상품생산자의 사회라는 주어진 사회적 관계 하에서 상품교환은 필연적이라는 것 -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 - 상품교환 - 은 상품생산이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중지될 수 없다'라고 고쳐 쓰여져야 할 것이다.

 

맑스의 인식비판은, 그가 '틀린 인식'은 그 인식이 생성되는 사회관계하에서 필연적이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올바른 인식'이 획득된다면 '틀린 인식'을 생산해내는 관계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포함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지당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참과 거짓'의 준별, 인식과 실천의 연관 - 그것이 마치 투입-산출적, 일면적 관계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 은, 그러나 '참된 인식'이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자마자 매우 복잡한 문제로 바뀌고 만다. <대상의 서술을 통한 비판>은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서술)을 통해서 잘못된 인식(서술)을 바로잡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맑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잘못된 인식(노동가치론)을 비판하고 올바른 인식(맑스의 새로운 노동가치론)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올바른 노동가치론을 제시하기 위하여 '상품' 장을 쓰지 않았다. 맑스는 과학적 가치론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가치비판을 수행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본}의 집필 목표는 자본주의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첫째로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자연법칙처럼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고, 나아가서 자본주의적 관계들은 이 관계들의 붕괴를 촉진시킬 기제를 만들어 내며(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 이 관계들을 해소할 사회적 세력을 생산해낸다는 것(노동자계급의 궁핍화 명제, 상대적 과잉인구 생산의 법칙)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가장 최소한의 목표인 첫 번째의 것마저 그것이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여 곤란에 부딪힌다: 추상의 결과물은 구체로부터의 추상에 의하여 얻어진 것인데, 거꾸로 구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구성적 조건이 된다. 부정(Negation)은 규정(Bestimmung)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평균 개념은 평균으로 산정되기 이전의 어떤 것을 전제해야 하는데, 거꾸로 평균 개념은 평균을 포함하는 전체를 인식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물신성은 - 그것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인 한에서 - 주체에 대해서도, 주체가 오인하는 것(대상)에 대해서, 그리고 이 오인 자체에 대해서도 구성적(konstitutiv)이다. 물신적 인식은 단지 '틀린 인식'이 아니라 '필연적' 나타나는 '틀린' 인식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며, 그리고 이에 기초하는 물신적 행동과 의식, 나아가서 이 관계들을 서술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는, 물신적 방법은 모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밝히고자 하는 서술은 따라서 스스로 방법비판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지극히 우연적이며, 논리적으로 아무런 필연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의 사회 또는 그 사회의 형식원리들의 '성립의 역사'가 그 사회에 대한 논리적 분석에서 서술되지 않는 문제, 대상에 대한 서술의 사각(死角), 논리적 서술의 결여(缺如)로 나타나는 문제 자체를 비판하여야 한다. 그것은 방법 - 헤겔에 의하자면 '형식 속으로 해체된 내용의 내부' - 이 대상에 대한 서술 속에서 최후로 만족하는 곳, 대상과 최종적으로 화해하는 지점을 파괴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스스로를 세계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시도 - 마치 헤겔의 절대정신이 주체이자 세계인 것처럼 - 에 대하여 대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올바른' 방법에 대한 욕망, 즉 더 이상 주체-객체 관계 속에 물신적으로 해소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며 - 마치 십자가의 예수에게서 신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듯 - 스스로 이외에 어떠한 타자도 산출하지 않으며, 총체성을 더 이상 대립들 속에 둘로 쪼개지 않으며, 어떤 생성에 의해서도 매개되지 않으려는 욕망을 비판하는 일이다. 비판한다 함은 여기에서 이러한 욕망 - 그것은 실제로 니체가 말하는 바 '권력의지'이다 - 을 전적으로 포기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욕망으로 무장하라는 것도 아니다. 방법비판은 그러므로 절대정신과 자본의 내재성(Immanenz)으로부터, 자본의 자기구성원칙(selbstkonstitutionsprinzip)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방법은 스스로를 대상 속에, 현실의 관계들의 효력 속에 침몰된 것으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방법이 <대상의 서술을 통한 대상의 비판>이라는, 물신적 방법 이상의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는 점을 서술 또는 서술적 이론이 가지는 하나의 필연적 숙명이라고 생각한다.(후주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방법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의 이와 같은 물신적 전개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물신적 서술의 - 특정한 사회관계 하에서의 - 필연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이 물신적 성격을 반성적으로 의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비판은 맑스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내재성(또는 내재화)의 철학'에 대한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내재화의 조건적 필연성'을 인정한다.
맑스가 {자본}의 상품장에서 수행한 '인식비판'에 대한 '방법비판적 독해'의 결론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특정 유용노동들의 동등화는 독립된 사적 상품생산자들 상호간의 교환을 불변의 사회적 사실로서 이미 전제하고 있다. 맑스가 1권 1장 2절에서 설명하는 생리학적 개념의 인간노동으로의 환원은 교환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즉 이 환원은 생산과정에서 미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과정에서만 이루어진다. ② 질적 동등화는 양적인 비교와 평가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사적 상품생산자들의 사회에서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 비교는 각각의 상품의 가치크기를 계산하는 단위로서 '개별적 유용노동의 사회적 평균시간'에 의해서 수행된다. 이 사회적 '평균'의 상품가치 크기에 대한 계량 기준으로서의 역할은 상품생산 사회에서 사적 유용노동은 사회적 총노동의 일부로 수행된다는 상품생산 사회의 구성원칙에 근거한다. 즉 상품가치는 그것이 상품의 사회적 가치를 의미할 뿐인 한에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의해서만 계량될 수 있다. ③ 이 평균은 물론 사전에 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적(事前的)․선형적(線型的) 평가가 다른 구성원리를 가진 사회에서 불가능한가라는 문제는 분석수준과 관계없다. 사후적 평가라는 제도는 {자본}의 분석 대상인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사회의 구성원리이고, 이미 이 제도 자체가 분석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균'은 또한 이미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교환을 통해서 상품의 사회적 가치 크기의 평가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어서 실재적이다. ④ 사회적 평균노동 시간 또는 필수 노동시간은 '선험적' 척도(das aprionsche Ma )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교환 - 질적 동등화와 양적 비교 -을 개념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험적' 척도는 화폐상품을 통하여 '경험적인' 특수한 척도로 나타난다: '가치척도로서의 화폐가 상품들에 내재하는 가치척도, 곧 노동시간의 필연적인 현상형태'이다(MEW 23, 109면). 추상적․선험적 척도가 구체적․경험적 척도로 현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품사회의 물신적 성격으로 파악된다.(후주6) ⑤ '화폐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명은 그러므로 <추상적 척도가 구체화되는> 사회에서, 그것이 어떤 사회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가, 즉 그것이 어떤 사회적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해명이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구체화에 대한 비판, 척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어야 한다. 그래서 척도에 대한 비판은 그런 척도를 스스로의 구성적 전제로 하는 사회(상품생산 사회)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⑥ '척도'에 대한 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추상적 척도의 구체화>는 상품생산이라는 사회적 관계 하에서는 필연적이지만 자연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연적인 사실, 특수한 사회의 조직원리일 뿐이다. '인식비판'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구성원리가 인간의 전역사를 지배하는 원칙이 아니며, 그래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대상을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비판하는 작업>은 반드시 <서술 자체에 대한 비판>(방법비판)을 포함하여야 한다. 양자는 긴장관계에 서 있지만 그러나 '반성적 균형'을 배제하는 관계는 전혀 아니다.

 

후주

 

4) 추상적 노동은 그래서 실제로 투하된 노동시간으로 계산되지 않고, '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나의 '종합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상적 노동개념은 구체적 노동의 추상 또는 생리학적 노동으로의 환원을 통해서 구성되지만, 거꾸로 구체적 노동 - 칸트적 용어법에 따르자면 경험성 - 은 추상적 노동을 전제하지 않고는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 노동은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도 아니고, 자본관계가 해소된 다음에도 영속할 생산적 활동도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 노동이라는 구성적 전제 하에서만 파악되는 자본주의적 관계 하에서의 상이한 경험적 활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 노동은 교환과 화폐 - 경험성의 영역 - 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노동으로의 환원은 교환의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기능은 거꾸로 이 개념을 통해서만 생산과정에서의 가치형성을 역사적․선형적으로 재구성하고 교환과 생산을 연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추상적 노동은 가치생산을 설명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개념이지만 그 자체로 교환을 전제하고 있다. 

 


5) 방법은 서술적인 양극성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지만, 거꾸로 이 양극성은 그 생성(werden) 속에서 이미 매개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양극성은 반드시 어떤 척도(Ma )를 통하여 - 이 척도란 구체적 대상들에 대하여 그저 후자를 확정하기 위한 하나의 임시보관소(Leerstelle)와 같은 관계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이미 상호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6) 금태환 제도가 폐지된다 하여도 화폐상품을 통한 추상적 척도의 구체화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구체화는 상품사회의 일반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태환 지폐는 불특정의 유용노동들의 총체, 또는 발행국 국민경제의 유용노동의 생산력들의 총체를 표현한다. 즉 교환에서 양적비교를 수행하는 척도가 구체적 대상으로 현상하여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구체화는 이제 특정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금이라는 특정한 구체화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맑스가 이러한 특정한 구체화의 필연성을 말한 바는 없다. 지폐가 가치척도라고 했을 때, 그것이 어떤 사용가치 형태와 결부되어 있는가가 특정되지 않은 불태환 제도 - 이 지폐와 교환될 수 있는 '사회적 사용가치'가 석유일 수도 있고, IT산업에서의 기술력일 수도 있고, 또는 또 다른 어떤 알려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제도 - 는 그러므로 전혀 <척도의 구체화>라는 상품생산 사회의 일반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Ⅲ. 20세기 신조류(新潮流)들에 대한 방법비판

 

시민사회의 내재성(Immanenz)을 혁파하려는, 맑스 이후의 시도들 중에서 ①루카치, ②알프레드 존-레텔, ③아도르노, ④데리다에 대하여 검토해보는 것은, 비판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부정(否定)의 내재화를 통하여 무비판적-옹호론적으로 종결될 수 있는가를 예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①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사회의 선험적 형식원리를 생산력, 그리고 생산적 계급과 일치시키려는 시도를 행한다. 당의 과제는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 그리하여 구체적인 노동자계급(조합주의적 계급)을 자본주의 시대 전체에 있어서 보편적인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혁명적 계급)으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본이라는 절대정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절대정신으로 대체되고, 당은 이 절대정신의 자기현현(自己顯現)의 과정에서 기껏 의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조합주의적 노동자계급의 자기의식으로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적 체계에 의지해 있는 루카치의 시도는 사실상 맑스․레닌주의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가 간과한 것은 자본의 총체성에 대한 비판의 준거점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동시에 자본이라는 절대정신의 매개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루카치가 이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곤란함을 '혁명적 비약', 현실적 상태로부터의 '결단론적 절연'을 통하여 돌파하려 한다. 이로써 그는 또한 실존주의적 맑스주의의 효시로도 이해될 수 있다. 루카치와 정반대에서의 시도는 알뛰세에게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점은, 탈(脫)역사화는 효력논리에 입각한 서술이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는 맹점(盲點)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서술의 사각(死角)을 방법적으로 문제삼지 않을 때 구조 분석은 비판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면에서 루카치와 대각을 이루는 입장은 가타리이다. 그가 시도하는 루카치와 달리 주체형성은 탈보편적․주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횡단성(transversalit )과 분자혁명 - 탈주와 '되기' - 이라는 전략은 {정신현상학}적 발전의 서열을 깨는 리비도의 경제학이다. 그런데 이 경제학은 맑스에 대한 루카치의 {정신현상학}적 독법이 {논리학}적 체계에서의 시간개념, 추상적 시간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매우 동일한 오류를 저지른다. 가타리는 맑스에게서 다양한 질의 시간이 양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동등한 물리학적 시간으로 환원되는 것, 그리고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이 추상적인 사회적 시간으로 재구성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사회의 사회적 사실이고 따라서 이 환원은 사회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자혁명} 중에서 특히 '권력구성체의 적분으로서의 자본'을 보라).

 

② 알프레드 존-레텔은 가치형식을 '선험적 주체'(Transzendentalsubjekt)로 간주하고 가치형식과 사유형식(Deukform)의 통일을 상품교환에서 일어나는 '실재적 추상'(Realabstraktion)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존-레텔은 선험적 주체는 가치형식이라고 말함으로써 맑스에 의거하여 칸트를 비판하고 유물론적 칸트주의를 재전개한다. 그러나 그의 칸트 비판은 경험적․역사적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맑스를 재해석하기 위하여 칸트로부터 끌어와야 할 중요한 유산을 간취하지 못한다. 즉 역사 형이상학의 극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존-레텔은 오성개념의 기원과 효력의 문제를 양자의 동시적 발생으로서 이해하지 않았으며, 이를 불필요하게 역사화하고 경험화했다.

 

③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ktik)은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와 실증적 종합의 현실옹호적 본질에 대한 의혹을 표현한다. '부정변증법'은 매개에 대한 부정, 동일자에 대한 부정이다. 그런데 아도르노에게 정신의 변증법(또는 자본의 변증법)을 포섭논리적으로(subsumtionslogisch) 이해되기 때문에 비동일자는 무매개적인 '어떤것'(Etwas)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비동일자가 동일자로 귀결되는 매개 속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 매개의 결과물들은 매개되는 양극성을 구성하는 전제라는 방법비판적 입장에서 판단할 때 - 사용가치 물신주의, 기원(Ursprung)의 물신주의로 파악될 수 있다. 사용가치는 가치체 이외에 '어떤 것'으로 존재할 수 없고,(후주7) 주체는 주체를 구성하는 조건인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시원은 효력 속에서만 현상하기 때문이다.(후주8)

 

④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의미생산의 문제를 '차이'(differance)라는 개념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데리다는 그래서 무엇이 무엇을 표현하는가의 문제를 어떻게 어떤 과정에 의해서 표현되는가의 문제로 전환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전환을 통하여 과연 의미생산에 대한 서술적 이론이 구성될 수 있는가이다. '총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식'에서처럼 의미표현의 무한계열이 구성된다고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다른 것들의 의미를 정해주는 척도(화폐)가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형식은 의미의 생산과 표현에 대한 완성된 이론이 될 수 없다. 데리다도 이 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differance라는 조어(造語)를 통하여 의미의 연관체계에서 화폐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도입한다. 물론 differance는 difference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지시대상(의미)을 가지지 않고 다만 의미생산에서의 기능만을 가진다. 맑스가 화폐상품론의 입장을 취하는 반면에 데리다는 매우 단호하게 반(反)실체주의적이다. 화폐상품의 가치가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교환시점에 있어서 금상품 생산에 투하되는 '사회적 필수노동시간'에 의해서 계량되는 것과는 달리 차이(differance)는 어떤 실체와도 관련되지 않으며 그저 '흔적들'의 연관에 의한 의미생산 기능만을 표시한다. 데리다는 이러한 점에서 명백히 '척도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척도 비판은 그가 해체를 의미생산에 대한 서술적 이론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한에서 본격적인 방법비판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방법비판은 화폐표지론적 척도비판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비판은 가치척도의 물신적 현상 형식으로서 화폐상품(금)의 존재가 필연적이라는 인식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이 내재화된 척도를 상대화하고 우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해체를 수행한다. 그래서 해체는 대상에 대한 서술(이론)이 아니라 서술의 해체가 되어야 한다.

 

후주

 

7) 맑스가 '가치가 되지 않으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자본} 1권 1장 1절)라고 쓸 때 그는 서문에서 약속한 '자본주의의 이념적 평균'에 대한 분석이라는 집필 목적으로부터 벗어난다.자본주의가 영역적으로 전지구화, 보편화한 시대에 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가치 물신주의는 맑스의 이와 같은 구절들에게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8) 사용가치 물신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서 안토니오 네그리를 들 수 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권력과 역능의 대립은 이러한 양극성이 오직 자본운동이라는 생성 속에 매개되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간과한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노동자주의, 노동자계급 물신주의로 귀결된다.


Ⅳ.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

 

방법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적 비판의 맹점(盲點)을 지적하는 것이고, 그러한 비판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확증하는 일이다. 이 확증은 그러나 서술 자체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와 같은 서술, 가능한 서술은 필연적으로 물신적일 수밖에 없고, 방법비판적 단서가 없이는 언제든지 현실옹호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서술이 요구되는 한에서 물신적 서술은 회피될 필요도 없으며 극복될 성격의 것도 아니다.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대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전통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전통 - 이 좌파적․전복적 형태로 재현된다고 본다. 그래서 방법비판은 철저히 탈형이상학적이고 반(反)실체주의적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서술을 비판적으로 전도시키는, 이론의 외재적 장치들 - 형이상학적 전제들 -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神)을 통한 현실비판을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사회의 주어진 조건하에서 그 선험적 형식원리들이 내재화하는 필연성을 인식하며, 그래서 이 원리들에 반대하는 운동들도 내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종류의 내재성의 철학 - 20세기 좌파의 철학 - 이 간과한 문제, 모든 내재화는 현실옹호적으로 끝난다는 문제를 망각하지 않는다. 모든 비판적 서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방법비판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입장들로부터 나오는 실천철학적 결론을 - 물론 성급한 시도이겠지만 - 통속적으로 써 보도록 하겠다. 그것은 정치적․실천적 맥락주의로 표현될 수 있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어떠한 실천도 주어진 구체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맥락을 떠나서는 비판적 실천이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 방법비판은 아울러 이렇게 정의된 '비판적 실천'이 보편적 비판으로 위장하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서술 불가능한 '보편적 비판'이 내재화하는 것을 부단히 경계하며, 언제나 '현실의 상태를 극복해 가는 운동' 그 자체이고자 한다. 방법비판은 그래서 '있는 것'(현실의 맥락)과 '없는 것'(현실의 효력논리의 수준에서는 서술 불가능한 대안사회) 사이의 긴장이며, 실천적․반성적 균형(equilibrium)이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현실의 맥락에서 출발하고, 현실의 운동 속에서 대안사회를 본다. 대안사회는 그래서 결코 역사의 목적론적 도달점이 아니며 현실 속에 부단히 생성되고 정정되어 가는 과정이다. 방법비판은 대안사회를 공간적으로 내재화하려는 시도(일국 사회주의)도, 또는 시간적으로 내재화(歷史內化)하려는 시도 - 목적론적 시간기획에 입각한 과학적 이행이론 - 도 철저히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부단히 이러한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진 내재화를 재파괴한다.
 


1) 여기에 대해서는 {청년좌파} 42호, 신석준의 글, 10면-12면을 참조하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S. Breuer, 혁명이론의 위기, 프랑크푸르트 1977; M. Postone, 시간, 노동, 사회적 지배, 캠브리지 1996, 특히 1부를 참조하라.

 


2) {요강}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상가는 안토니오 네그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요강}에 입각하여 자본과 노동의 적대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주체적 노동과 대상화된 노동의 대립으로 규정한다.

 


3) 헬무트 라이헬트(Helmut Reichelt), {자본개념의 논리적 구조에 대하여(Zur logischen Struktur des Kapitalbegriffs}, Frankfurt/M. 1970; 한스-게오르그 바크하우스(Hans-Georg Backhaus), {가치형식의 변증법(Dialektik der Wertform. Materialien IV)}, Freiburg 1997. 그 외 H.-J. Krahl, R.-W. M ller, B. v. Greiff, E. Jacoby, C. Seel, H. Brethel, K.-D. Oetzel, D. Behrens의 저작들. 가장 최근의 문헌으로는 나디아 라코비츠(Nadja Rakowitz, {단순 상품생산(Einfache Warenproduktion)}, Freiburg 2000.

 


4) 추상적 노동은 그래서 실제로 투하된 노동시간으로 계산되지 않고, '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나의 '종합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상적 노동개념은 구체적 노동의 추상 또는 생리학적 노동으로의 환원을 통해서 구성되지만, 거꾸로 구체적 노동 - 칸트적 용어법에 따르자면 경험성 - 은 추상적 노동을 전제하지 않고는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 노동은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도 아니고, 자본관계가 해소된 다음에도 영속할 생산적 활동도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 노동이라는 구성적 전제 하에서만 파악되는 자본주의적 관계 하에서의 상이한 경험적 활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 노동은 교환과 화폐 - 경험성의 영역 - 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노동으로의 환원은 교환의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기능은 거꾸로 이 개념을 통해서만 생산과정에서의 가치형성을 역사적․선형적으로 재구성하고 교환과 생산을 연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추상적 노동은 가치생산을 설명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개념이지만 그 자체로 교환을 전제하고 있다. 

 


5) 방법은 서술적인 양극성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지만, 거꾸로 이 양극성은 그 생성(werden) 속에서 이미 매개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양극성은 반드시 어떤 척도(Ma )를 통하여 - 이 척도란 구체적 대상들에 대하여 그저 후자를 확정하기 위한 하나의 임시보관소(Leerstelle)와 같은 관계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이미 상호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6) 금태환 제도가 폐지된다 하여도 화폐상품을 통한 추상적 척도의 구체화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구체화는 상품사회의 일반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태환 지폐는 불특정의 유용노동들의 총체, 또는 발행국 국민경제의 유용노동의 생산력들의 총체를 표현한다. 즉 교환에서 양적비교를 수행하는 척도가 구체적 대상으로 현상하여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구체화는 이제 특정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금이라는 특정한 구체화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맑스가 이러한 특정한 구체화의 필연성을 말한 바는 없다. 지폐가 가치척도라고 했을 때, 그것이 어떤 사용가치 형태와 결부되어 있는가가 특정되지 않은 불태환 제도 - 이 지폐와 교환될 수 있는 '사회적 사용가치'가 석유일 수도 있고, IT산업에서의 기술력일 수도 있고, 또는 또 다른 어떤 알려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제도 - 는 그러므로 전혀 <척도의 구체화>라는 상품생산 사회의 일반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7) 맑스가 '가치가 되지 않으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자본} 1권 1장 1절)라고 쓸 때 그는 서문에서 약속한 '자본주의의 이념적 평균'에 대한 분석이라는 집필 목적으로부터 벗어난다.자본주의가 영역적으로 전지구화, 보편화한 시대에 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가치 물신주의는 맑스의 이와 같은 구절들에게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8) 사용가치 물신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서 안토니오 네그리를 들 수 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권력과 역능의 대립은 이러한 양극성이 오직 자본운동이라는 생성 속에 매개되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간과한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노동자주의, 노동자계급 물신주의로 귀결된다.


 

2019/10/13 17:58 2019/10/13 17:58

지나간다통일좌파

統一左派

 

200291, 사회당 대통령선거기획위원회

 

 

0. 들어가며

1. 사회당의 정체성

1.1 1997년의 좌파 분열

1.2 통일좌파를 향한 사회당의 태도

1.3 사회당의 두 기치

1.4 사회당의 합법정당에 대한 인식

2. 통일좌파에 대한 구상

2.1 통일좌파의 기본 조직노선

2.2 ()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

2.3 통일좌파 노동자운동

2.4 통일좌파 학생운동

2.5 통일좌파 합법정당

 

 

0. 들어가며

 

글에 임하면서 먼저, 사회당의 많은 평당원들, 그 중에서도 사회당이 운동권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은 운동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당원 동지들께, 죄송스러운 인사를 드린다. 변변한 당원용 사회당 총론이나 개설서도 낸 적이 없으면서, 아직도 사회당원이 아닌 운동권을 주된 독자 대상으로 하여, 이와 같이 생경한 운동권 용어와 어투로 점철된 글을 내게 된 것에 대하여.

그러나, 처음에 사회당을 만들고 지금 운영하는 사회당 운동권 간부들의 자세한 생각을 궁금해 하셨다면, 그 중 많은 것들이 해소될 수 있는 기쁨도 동시에 가지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당의 진짜 주인인 일반 당원 동지들께서도 사회당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일독하실 것을 권한다. 그 속에서 당연히 사회당을 주도하는 간부들에 대한 믿음도 배가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당을 주도하는 간부들이 그렇게 대책 없는 자부심으로만 똘똘 뭉친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 사회당이야말로 좌파통일운동의 현실태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통일좌파를 실현하는 데에서 사회당이 감수하고 떠맡아야 할 몫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글의 메시지는 하나다.

 

사회당은 좌파의 통일을 강력히 원한다!

 

 

1. 사회당의 정체성

 

어떤 제안이 나오면 제안의 주체와 의도에 먼저 주목하는 것이 상식이다. 당연히 우리의 제안에 대해서도 세상은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안을 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사회당에 대하여 일정한 소개와 정리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평면적이고 나열적인 소개보다는 사회당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몇 가지 논쟁거리를 중심으로 그것들에 대하여, 오늘, 우리의 대답을 제출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넷으로 추려 정리하겠다.

우선, 왜 모든 좌파를 포괄하는 통합 좌파정당의 모습으로 사회당이 출발하지 못했는지, 사회당은 좌파 통일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자세로 생각해 왔는지를 밝히겠다. 다음에 사회당의 두 기치에 대한 설명을 보강하고, “합법정당 중시의 태도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1.1. 1997년의 좌파 분열

 

지난 97년 여름, 좌파는 오세철 교수의 소집령에 따라 정치연대(노동자민중의정치세력화진전을위한연대)로 모였다. 당시 정치연대는 오세철 교수를 필두로 한 일군의 좌파 교수들과 한청련(한국노동청년연대), 전국노련(전국노동단체연합), 노정연(노동정치연대), 노진추(노동자중심의진보정당추진위원회)4대 단체와 일부 좌파 학생 그룹들이 참가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97년에 발표한 청년정당으로(민중후보운동을 넘어 청년정당으로-국민후보운동 전면 비판,비판2)’에서 당시 정치연대에 우리가 독보적인 사명감으로 임한 예를 밝힌 바 있다. 아무튼 정치연대는 좌파의 대선 방침을 결정하자는 기구였다. 우리는 거기에서 정치연대로 모인 좌파의 합법정당 창설과 좌파의 독립적 대선 참여를 주장했다. 전국노련과 노진추의 좌장격인 동지들은 국승(국민승리21)에 참가하자고 주장했다. 중간에서 많은 동지들이 한청련의 이상적 주장이 옳다는 사실과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저 쪽에 있다현실사이에서 고뇌했다. 결론을 낸 사람은 대표였던 오세철 교수였다. 오 교수는 국민후보권영길 씨와 합의했다. 즉 그는 그 때 민주노총이 저 쪽에 있다현실에 굴복했다.

당시 우리도 같은 현실을 의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민주노총이 있는 저 쪽으로 가지 않고 남은 이유는 예의 청년정당으로에서 밝혔다. 결국 한청련은 정치연대를 탈퇴했다. 생각해 보라. 당시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후보를 내서 겨루었다. 그 판에서 어찌 좌파가 국민승리21의 조직원으로 국민후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건 못한다.

보라. 결국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전형적인 국민주의 구호까지 나왔다. 2002필승 코리아의 붉은 바다를 위한 전조이기나 했던 것처럼 그 운동은 이미 그 때 자기의 정체를 남김없이 폭로했다.

당시에 한청련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연대는 모두 국승에 들어갔다. 한청련은 결국 후보 없는 민중후보운동을 했다. 즉 한청련만이 자기의 견해를 세상에 천명하고 97년 국민후보 대선에 불참했다. 한편, 그동안 저쪽에서의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정치연대는 국승 안에서 구심력을 가진 의미 있는 블록이 되는 데 실패했다. 오세철 대표와 권영길 대표간의 합의에 대한 해석부터 달랐다. 결국 그 해석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거취도 결정되었다. 오세철 교수 본인이 제일 먼저 합의의 파기에 분노하여 국승을 탈퇴했다. “일어나라 코리아가 문제가 될 때쯤 전국노련이 뒤를 따랐으며 노정연의 일부 동지들도 국승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노진추와 인천 노정연은 국승에 남았다. 964월 사추위(사회당추진위원회) 주류의 민정련(민중정치연합)IL(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주류의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의 통합 문제를 표결할 때, 안기부에 탄원서를 쓴 IL과는 같은 지붕 밑에서 못 산다고 2, 3안을 주장하여 1표 차이로 부결시켰던 바로 그 노진추와 노정연이, 바로 그 IL이 주동하는 국민후보운동에서 일어나라 코리아라고 외칠 수 있다니. 우리는 그 때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결론은 이처럼 자명하다. 97년의 정치연대는 이렇게 국민후보운동 불참파, 참가후 탈퇴파, 잔류파, 이렇게 셋으로 두부모 잘리듯이 갈렸다. 그 때의 3자는 결국 오늘날의 사회당, 노동자의 힘, 민주노동당내 좌파, 3자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한청련 정치연대가 국승에 참가했던 것이 왜 좌파로서는 수치스런 오류였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 노정연의 일부가 얼마 후 국승에서 나와 오늘날까지 좌파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활동해 온 것은 사실이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또 학생운동에 좌파로서의 자극을 주는 데 그들의 혁혁한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함께 들어갔던 노진추와 인천 노정연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국승에 남아 민주노동당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그들도 그 안에서 좌파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했으며, 그에 따른 노력을 했다. 노진추는 평등연대(평등세상을위한노동자실천연대)의 골간을 구성했으며, 축소된 노정연의 인천 팀은 인천 민주노동당을 좌익적으로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평등연대조차 인천과 울산이 다른 그룹으로 분화했으며, 인천에서는 옛 노진추와 옛 노정연이 대립하고 있다. 옛 노진추의 대표였던 성두현 씨를 한 지구당 위원장으로 당선시킨 선거에서, 인천 평등연대는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측과 연대했고 옛 노정연 측은 IL과 동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맞든 그르든 아무튼, 좌파에게는 전국연합과 IL은 반()주사 반()개량 전선의 저편이라는 상식이 있어 왔다. 97년 정치연대 당시 그들 노진추와 노정연도 그 상식 속에서 좌파로서 하나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서로 싸우느라 어제의 정적과 각각 손잡는 그 꼴이 뭔가? 과연 97년 당시 좌파의 좌장이셨던 오세철 교수와 좌파 연대의 리딩 그룹이었던 전국노련이 이 참혹한 좌파 분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노동자의 힘이라는 모든 합법정당 노선 자체를 반대하는가장 좌익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국승에 따라 들어가지 않았던 좌파와 또 따라 나오지 않았던 좌파의 분열적 작태를 각각 견제하는 양날의 검으로서의 조직 노선을 만들면 다 된 건가?

그 때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이 국승에 굴복하지 않고 좌파의 자존심을 지켰다면, 오세철 교수, 전국노련, 한청련, 노정연, 노진추가 모였던 정치연대가 통일좌파의 정치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랬으면 그 때까지 정치연대에 참가하지 않았던 좌파도 더 모였다. 다른 세력들 말마따나 그 때의 한청련 혼자서 이만한 합법정당을 만들었는데, 그 정치연대가 다 함께 좌파의 자존심을 지키며 모여 있었다면 이미 좌파는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변경을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좌파정당을 구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좌파 노동자운동의 통일전선 실현에도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의 리더들이었던 동지들은 좌파 분열에 특별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물론 우리도 그 동지들이 국승에 들어갔던 잘못에 대하여 자기비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비공개로 한 자기비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지금 공개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나, 우리는 그런 것은 당연히 세상에 내놓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히려 오세철 교수와 옛 전국노련 동지들에 대한 우리의 변함 없는 신뢰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한국 좌파의 지도적 대열에 있어야 할 오세철 교수와 그 동지들이 그 때의 분열에 대하여 반성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이번에 꼭 보여줌으로써 모든 좌파 후배 활동가들로부터 마땅한 존경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1.2. 통일좌파를 향한 사회당의 태도

 

앞서 말한 97년에 300명의 한청련은 다음 해에 청년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며, 말한 대로 98년이 가기 전에 청년진보당을 창당했다. 그 청년진보당이 자라 2001년에 사회당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회당은 우선 존재 자체가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결합으로전진한 좌파통일운동의 현실태이다. 합법정당을 경시하는 좌파 동지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합법정당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좌파도 제법 많다. 그러니까 사회당이 끊임없이 성장해 온 것이다. 사회당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오면서 늘 새로운 동지들의 참가로 갱신되었다. 소위 물리적 결합이다. 그러는 동안 사회당은 밖에서 언제나 하나라고 보아 줄 만큼 통일 단결된 대오를 유지해 왔다. 즉 전에 다른 그룹이었다가도 사회당운동에 들어오면 모두 하나가 되었다. ‘화학적 결합이다. 사회당이야말로 여러 좌파가 모여 하나가 되어 온 좌파통일운동, 그것 자체이며 이 좌파통일 지향은 언제나 활성 상태이다. 그렇게 원래는 남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같은 당 안에서 적처럼 대립하는 당내 분파 투쟁 따위 없이, 하루가 지나면 당원이 늘어나는 정당으로, 어제보다 오늘이 큰 것처럼 오늘보다는 내일이 클 것이라는 믿음으로 뭉쳐 있는 것이 사회당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좌파 세상은 이미 사회당으로의 통일에 참가하여 그 안에서 녹아 버린 세력들과 이 통일에 참가하려고 지금 논의하고 있는 세력들과 아직도 그것을 유보하고 있는 세력들로 나뉜다.

98년에 우리가 사회당이 아니라 청년진보당이라는 간판을 걸었던 것은 사회당을 통일좌파의 당명으로 생각하여 아껴 두었기 때문이다. 즉 청년진보당의 진짜 뜻은 오직 미()사회당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97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 왔다. 이제는 소문이 날 만큼 났으니 말할 때도 되었다. 2001년 초, 좌파가 적극적으로 연대했던 대우자동차 파업 과정에서 모든 좌파의 합법정당으로서 사회당을 만들자는 우리의 제안이 있었다.

우리는 오세철 교수께 좌파 통합, 당명 사회당이라는 제안을, 또 노동자의 힘 내 몇몇 동지들과 노동자의 힘 중집 등에게 청년진보당과 노동자의 힘의 통합이라는 제안을 전달하였다. 그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계속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때 청년진보당과 노동자의 힘이 오세철 교수를 정점으로 통합할 수 있다면, 전체 좌파 통합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 때 우리는 청년진보당 중앙당의 간부들이 젊으니, 모두 평간사로 내려 앉을 테니, 오세철 교수가 대표를, 노동자의 힘 중앙 간부들이 사무총장, 정책위원회 의장 등 통합 정당의 모든 주요 간부직을 맡아 달라고 제안하였다. , 우리는 우리가 크고 노동자의 힘이 작으니 흡수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등한 통합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젊으니 이끌어 달라”, “중앙당을 비울 테니 맡아 달라고 가장 화끈한 형태의 통합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대답은 ()제도적 투쟁정당이었다. 그것은 거절이었다. 결국 우리 나름의 통합 준비, 통합 사회당으로의 환골탈태를 위한 내부 사전 선동은 20018월 사회당으로의 당명 개정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즉 사회당은 원래 우리 혼자 하려던 정당이 아니다. 우리는 그 때도 지금도 사회당을 우리만의 정당이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힘을 제외한 다른 좌파들을 소외시켰던 것, 다른 좌파들에게 통일좌파의 사회당을 만들자는 제안을 극히 부실하게 했던 것, 그것에 성심과 성의를 다하지 않았던 점에 대하여, 이 자리를 빌어 깊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노동자의 힘의 사회당에 대한 의도적 무시와 달리 사회당은 언제나 노동자의 힘과 다른 좌파를 의식하며 활동했다.

앞서 말한 대우자동차 파업을 지원하는 공투본(노동자생존권쟁취 구조조정분쇄 해외매각저지를위한 대우자동차공동투쟁본부)에서 현() 노동자의 힘 대표인 이종회 동지를 집행위원장으로 하는 체제가 구성되었다. 이종회 동지가 집행위원장이 된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충분한 자격을 스스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청년진보당이 이종회 집행위원장 체제를 밀어붙여 경쟁자였던 어떤 비()좌파 인사를 밀어낸 것도 사실이다. 당시 공투본에 노동자의 힘같은 좌파 리딩 그룹이 네 명을 파견할 때 청년진보당과 한국노련은 열 명 이상의 인원을 파견했고 그들이 일제히 이종회 집행위원장에 손을 들었다. 이종회 집행위원장에 청년진보당, 한국노련(한국노동자운동연대), 노동자의 힘의 활동가들로 구성된 공투본은 원래 한 조직이었던 사람들처럼 잘 맞아 돌아갔다. 우리는 그 때 이런 좌파정당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종회 동지의 변호사, 기자 동원 능력 등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분이 합법정당 사무총장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 지방 선거에서 인천, 울산 후보 선정 또한 그렇게 하면 해당 지역의 좌파가 우리와 함께 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울산의 경우는 안승천 동지가 후보로 나와 하청을 중시하는 선거 투쟁을 하면 울산 좌파가 크게 단결하는 멋진 판이 될 것이라는 다른 좌파 어떤 동지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좌파는 결국 어쨌냐고? 우리는 특별히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일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그도 그들도 마음으로는 우리를 도왔다는 것을 안다.

사회당은 2002년 지방 선거에서 다른 좌파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다른 좌파의 호감을 얻기 위하여 노력했다. 우리는 결국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용도 없는 사회주의자로서 커밍아웃한 것이 전부인 채로 참패했다. 준비 부족을 스스로 잘 아는 우리가 그렇게 과격하게 나아갔던 것은 오직 좌파 일반에게, 부족하고 미숙하고 졸렬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붉은 마음만은 믿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당도 합법정당이며 선거주의자들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회당은 진정 표를 구걸하기 위하여 훼절하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다른 좌파를 무시하지 않고 의식한다는 것은, 사회당을 우리만의 합법정당이 아니라, ‘좌파 전체의 합법정당이라고 생각한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이다. 나아가 우리가 사회당의 지방 선거 부진에는 다른 좌파들의 책임도 많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우리가 사회당을 우리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김영규 교수께서 대표권한대행을 수락하시면서, “좌파 통합의 견인차가 되어 달라는 요구라고 이해하신 것 또한 사회당 안에서 좌파 통합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조각되어 있는가를 말해 주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싱겁고 유쾌한 자랑 하나 하겠다. 사회당의 주요 간부 상당수가 중앙당을 떠나 지구당을 개척하러 지역으로 갔다. 즉 사회당의 중앙당 간부 대오는 대폭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8월 중순에 사회당 중앙당은 한국정치의 중심 무대인 여의도로 공간을 넓혀 이사했다. 보증금이 1억 원에 육박하고 월세, 관리비만 1,000만 원이 넘는 번듯한 공간이다. 누구나 그 의도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좌파로 향하는 대선을 다른 좌파 동지들과 함께 치르기 위하여 준비한 중앙본부 사무실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사회당 중앙당은 이미 관록 있는 좌파 운동가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부디, 그동안 사회당의 합법정당적 작풍이 성에 안 찼던 훌륭한 좌파 동지들이 사회당 중앙당에 참가하여, 사회당을 더욱 전투적인 사회주의 정당, 내용이 풍부한 정책정당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도 비어 있는 지역구들도 많이 있으며,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지구당을 주동적으로 창당하며 참가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모든 좌파 동지들! 이 당은 동지들의 당이다. 사회당은 통일좌파 모두의 합법정당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좌파 동지들이 그래도 안 된다면, 통일좌파의 합법정당을 위하여 우리가 더 버릴 것이 있다면, 버리겠다.

 

 

1.3. 사회당의 두 기치

 

20028월에, 자본주의 반대와 조선노동당 반대라는 사회당의 두 기치를 소재로 삼아, 김일성주의를 신념 체계로 삼는다는 최성원동지대오라는 곳에서 장문의 비판 논문을 발표했다. 김일성주의에 따른 인터넷 정치 기구로 보이는 통일여명 편집국이 그 논문을 높이 칭찬하며 연구를 권하고 있다. 이 글의 작성을 준비하는 중에 그 글이 나와서 웬만하면 그 글에 대한 반()비판을 담을까도 했는데, , 별로 할 말이 없다. 도대체가 사고의 체계가 너무 달라, 한 쪽은 다른 쪽을 수령교의 광신도들로 또 한 쪽은 다른 쪽을 미제의 간첩으로 보니 뭘 말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같은 사고 체계를 가진 동지들, 즉 좌파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회당의 이론가들이 그 기치를 설명한 적은 있으나, 사회당 안의 조직가들이 그 기치를 이해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된 적이 없으니, 이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반대와 조선노동당 반대라는, 추상 수준이 다른, 소위 수위가 다른기치가 왜 나란히 걸렸는가? 그것은 일종의 중의법이다.

우선, 첫 번째 이유, 표면적 이유는 그렇게 수위가 다른 양 상대방이 한국의 정통 이념 운동에 대한 태도에서는 똑같다는 것, 그 점에 대한 인식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미국이 주도하는 UN과 소련, 중국이 밀었던 인민공화국이 전쟁을 끝낼 때, 휴전선은 정하고 포로는 교환하기로 정했는데, 지리산 일대에 남아 있던 수천 명 빨치산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었나? 미제는 그렇다 치고, 조선노동당의 주인인 김일성 계는 왜 그랬나? 그들의 영웅적 평양 개선과 그렇게 강화될 남로당 세력이 그다지도 거북했나? 아니 정말 그렇게 미웠나? 그런 것도 동지인가? 빨치산은 결국 눈 속의 토끼처럼 몰려 다 토벌되었다. 그리고 남로당 계는 미제의 간첩으로 타도되었다. 미제가 그들이 말살되기를 원했듯이, 그들의 북쪽 동지들도 그랬다. 8586년에 발행되어 한국 주사파의 시원이 된 논문의 제목은 하필 왜 박헌영은 왜 미제의 간첩이 되었는가인가? 한국의 좌파가 미미할 때는 자본주의 측도 조선노동당 측도 좌파를 무시한다. 그러나 좌파가 힘을 갖게 되면, 즉 고개를 쳐들면, 둘 다 그것의 절멸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그 절멸의 대상이 몸을 일으킬 때 그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양자를 동시 겨냥하는 것은 한 인식 주체로서 극히 기본적인 소양에 속하는 문제이다. 자기를 절멸하려는 주체에게 적대의식을 가지는 것은 한 현존재가 갖는 가장 기본적인 자존심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 기치가 뜻하는 것은, 그 양자가 절멸하고자 했던 정통이, 그 양자가 숨통을 확실히 끊어 심장에 철심을 박아 무저갱에 던져 버렸다고 믿었던 유령,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모습의 옷을 입고 부활했다는 신앙고백이다.

두 번째 이유는 2000년대 한국의 운동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 정치적 태도에 있다. 그 양대 기치는 통합좌파를 향한 일종의 서원(誓願)’이다. 우리는 당시 한국의 좌파가 주사파에 대해서는 명확히 분리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 운동권의 3대 세력 범위 중 또 하나, ‘개량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그러한 인식과 의지를 분명하고 철저하게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불분명함과 불철저함이 좌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이미 앞의 <1.1. 1997년의 좌파 분열>에서 그런 인식의 불철저함이 초래한 사태, 정치연대의 분열과 좌파의 세 갈래 분리 상태를 말했다. 그것은 정치운동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사태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영역에서도 현장파라는 이름 아래 분열되어 존재하는 좌파는 국민파에 대항하여 중앙 권력을 지키려는 중앙파가 번차례(番次例)로 동원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즉 그 양대 기치의 이면적 함의는, 주사-국민파에게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의 중앙파에게도 의탁하지 말고, 분열 상태를 통일하여 자존심을 가진, 의연하고 떳떳한 좌파로 서자는 피맺힌 호소이다.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는데, 사족을 하나 달겠다. 하나의 반성이다. 다른 좌파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사회당 대오는 특히 종종 미제보다 주사파를 더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일단 미제라는 역사적인 용어, 강고한 민족해방투쟁의 과정에서 확립된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용어를 기피하는 잘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최성원동지대오의 말이 맞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정점은 미제이며,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미제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불철저하다면 틀린 것이다. 청년진보당 시절 주한미군철수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싸웠던 사회당이, 작년 9.11 사건을 빌미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세계인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설정할 미국의 의도를 제일 먼저 경계하여 미대사관을 항의 방문했던 사회당이, 미군의 장갑차에 여중생 둘이 깔려 죽은 참혹한 사건에 대하여 오불관언(吾不關焉)했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4. 사회당의 합법정당에 대한 인식

 

사회당의 탄생과 구성에 대한 의문과 구원(舊怨)의 꺼풀이 벗겨진 상태에서 남는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그것은 첫째, 노동자운동을 상대적으로 경시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합법정당을 전략적 단위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둘 다 뭔가 좌파답지 않게 합법정당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후자의 문제는 좌파 통합 문제와 직접 닿아 있는 것이므로 따로 떼어 <2.2. ()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에서 다루겠다. 여기서는 전자, 사회당이 노동자운동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동지적 불만에 대하여 말하겠다.

사회당을 구성한 사람들도 좌파이다. 그것도 스스로 더 이상 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붉은 좌파이다. 당연히 제1 대중운동은 노동자운동이라는 좌파의 상식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당은 그런 혐의를 받기도 하는가?

그것은 우선,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동당 내 좌파 동지들을 제외한다면 좌파 중에서 우리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합법정당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좌파 동지들이 합법정당을 함께 하지 않는 조건에서 합법정당이 합법정당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대적 역량이라는 것이 있고, 부족한 세력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상대적으로 다수의 역량이 합법정당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합법정당이라는 형식의 유효성 덕분에 사회당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우리에게 나중에 가담하는 동지들도 합법정당 영역에서 많을 수밖에 없었고 합법정당 영역에서의 일들도 많아졌다.

다음으로, 우리는 좌파 노동자운동이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의 부족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그 학출 활동가들의 학연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좌파 노동자들이 그들의 배후에 있는 학출 활동가들의 인연이라는 사슬, 노동자들 본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연의 사슬을 무시하고, 기업별, 산업별, 지역별 한계를 넘어 직접 만나, 스스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데에 문제의 해결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학출 활동가를 노동자운동에 대거 투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운동에 쓸 만한 학출이 얼마나 있는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한다면, 우리도 노동자운동에 다른 좌파 못지 않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정열을 가지고 있다. 지금 지구당을 운영하거나 개척하고 있는 동지들 중에도 많은 동지들이 노동자운동에 전념하기를, 또는 노동자운동으로 돌아가기를, 또는 노동자운동에 투신하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이 이미 상대적으로 과도한 역량이 합법정당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우리가 볼 때 다른 좌파 동지들의 그룹은 합법정당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동지들조차 불필요하게 노동, 노동자가 이름에 들어가 있는 조직형식에 묶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그룹 회원 중 학생운동 출신 상당수가 실제로는 노동자운동을 수행하지 않는 생활인들 아닌가? 그들이 자기의 일터와 삶터에서 매일 보는 사람을 붙잡고 상대가 들어 본 적도 없는 무슨 ○○노동○○연대에 들자고 권하는 것보다는 사회당에 들자고 권하는 것이 쉽고도 정당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일 아닌가?

오히려 우리는 다른 좌파 동지들도 통일좌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를 원한다. 다른 좌파 동지들이 합법정당을 필요 이상으로 경시하고 노동자운동을 물신화하는 관점을 시정하는 것과 사회당 동지들이 합법정당에 과하게 몰려 있는 상태를 시정하는 것은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 좌파 동지들! 우리, 통일좌파를 형성함으로써 각각의 그룹별로 지나치게 한 영역에 편중되어 있는 상태를 시정하자. 현대 한국에서 농민은 기본 대중임에도 불구하고 좌파가 특히 조직적으로는 농민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소그룹으로서는 우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운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일좌파가 형성된다면, 그리하여 특정 영역, 특정 지역에 중복 배치된 상태가 시정되고 전반적으로 고르게 재편된다면, 좌파의 대중운동은 더욱 능률적으로 될 것이다. 농민운동은 물론 교사운동 등에도 의욕적으로 진출하는 동지들이 생길 것이다. 통일좌파는 그런 것이다.

아무튼, 다른 좌파 그룹들이 자기 조직대중 전체에게 오직 노동자운동만을 제시하고 합법정당 쪽으로는 전혀 길을 제시하지 않을 때에도 청년진보당에게는 한국노련이라는 형제조직이 있었고, 또 지금은 사회당의 자매조직이라고 말하는 전노회(전국노동자회())가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이 제기되는 현실에 대하여 우리도 반성하겠다. 우리도 노동자운동에 대하여 배전(倍前)의 성의를 기울임으로써 다른 좌파 동지들의 애정 어린 비판을 수용하겠다.

 

 

2. 통일좌파에 대한 구상

 

중국공산당의 당원이었다가 소련군으로 입국하였으면서도 국내의 정통 조직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았던 자기 종교의 창도자처럼, 1987김대중 비판적 지지로 운동권 분열의 역사를 열어 놓고 그 후 15년 동안 좌파를 분열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91년에는 사회주의자는 경멸해도 좋은 등신들이니까 안심하고 살려 달라고 노태우의 안기부에게 탄원했으며, 96년에는 개혁신당이라는 보수정당 노선에까지 쫓아갔다가 급기야 꼬마 민주당에서 공천 신청까지 하고, ‘민중운동권에 국민후보 노선까지 도입했던 사람들이 있다. 마치 전노협의 부활이나 되는 것처럼 선동하여 몰아붙인 단일금속노조를 저런 칠삭둥이로 낳아 놓고도, 200242, 총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지도부가 항복하는 처참하고 치욕스런 꼴에 이르도록 민주노총을 타락시켜 놓고도, 악착같이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의 중앙권력만은 움켜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힘을 합쳐 시동을 걸어 만든 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면서, 유신 시대에 <서울신문>의 기자가 되고 관공서가 일괄 구매하여 유지시켜 주던 그 신문에서 전두환 정권 임기 내내 하필 모든 외신 기자들이 선망하는 빠리 특파원을 했던 사람을 벌써 두 번씩이나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있다.

저들은 그렇게 다르면서도 또 그렇게 같다. 저들은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서로 봐 주며 서로 협력하여 주류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는 어떤가? 좌파는 입만 열면 사회주의, “비타협적 투쟁이고, 아무리 곤궁해도 원칙에서 한 발짝만 비켜나면 벼락 맞아 죽을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러나 좌파는 분열되어 있고 심지어 일부는 그 주류 연합의 품 안에 있다.

 

! 좌파! 너는 자존심도 없는가?”

 

좌파는 정말 그렇게 같으면서도 그렇게 달라야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유가 없는데,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우리끼리 갈려 지리멸렬해야만 하는가? 좌파여, 자존심을 회복하자. 그러려면 다른 것 없다. 좌파는 우선 모여서 하나가 되어야만, 저 주사-국민파, 개량-중앙파를 밀어내고 공식적 대중권력이 됨으로써 대중을 분기시켜 이 더러운 체제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

 

 

2.1. 통일좌파의 기본 조직노선

 

2002년 현재 백기완 선생 연세가 일흔이다. 언제 가실지 모르는 연세이다. 한국의 모든 좌파에게, 92년 민중후보 투쟁 때부터 원했던 그림을 10년만에 이 글로 제안한다.

 

백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백 선생님을 영수로 하는 통일좌파를 실현하자

 

이것을 위하여, 노동자운동, 학생운동, 합법정당운동의 3개 메이저 운동과 여성운동, 보건의료운동, 환경운동, 이론운동 등등의 영역별로 좌파는 모두 헤쳐 모여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자. 이름하여,

 

1영역 1조직.

 

그렇게 각 영역의 통일좌파 대오를 표현하는 조직들을 이번 대선 투쟁 과정에서, 또 대선과 직접 상관없이도 올해 하반기 동안 형성해 가자. 그리고 내년에는 선두에서 위용있게 전진하는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둘러싼 투쟁 대오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통일좌파 연대체를 만들자. 각 영역 조직을 대표하는 대표자회의로 시작될 모임을 상설공동투쟁체로, 또 그것을 넘어 조직대중의 규모와 가중치를 감안하여 각 영역 조직이 파견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 통일좌파회의, 빠르게 발전시키자. 백기완 선생님같은 통일좌파의 상징 인격을 통일좌파회의의 주석에 앉혀 통일좌파의 확고한 권력 의지를 민중에게 표명하자.

사실은 짧은 이 절로 이 글의 결론은 제시되었다. 다만, 주장의 구체성을 더하기 위하여, 노동자운동, 학생운동, 합법정당운동에 관해서만 약간 상론하도록 하겠는데, 좌파 통합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는 하나의 문제 제기를 먼저 짚고 시작하겠다.

 

 

2.2. ()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

 

20028월에 7개 좌파 단체 열성 회원들의 수련회가 있었다. 노동자의 힘이 주동하여, 전노회, 민주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전북의 현장연대(노동의미래를여는현장연대), 부산의 투쟁연대(부산노동자민중투쟁연대), 광주의 실천연대(민중실천연대)가 모였다. 노동자의 힘에 대한 우리의 길고 긴 짝사랑과 구애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사회당과 노동자의 힘의 통합은 조직형식상 부적절해 보이니 사회당과 친한 전노회가 노동자의 힘과 합치는 것이 어떠냐는 힌트가 있었다. 그 와중에 노동자의 힘이 자기 해소까지 시사하며 좌파 모이자고 하니 전노회는 거기에 참가했다.

어떤 식으로든 좌파가 모이고 통합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는 한데, 한편 우리는 걱정이다. 그것의 결론이, ‘비제도적 투쟁정당으로서 사회당과의 통합을 거절하며 대립했던 노동자의 힘의 연장이 될까 봐. 아니, 오히려 어떤 결론도 빨리 내지 않은 채 합법정당과 노동자운동으로의 좌파의 분화 발전을 가로막을까 봐. 그 흐름에 대한 노동자의 힘 측의 기대는 노동자의 힘의 확대 재편이라는 관측이 이미 세간에 파다하다.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그 미발아(未發芽) 상태를 빨리 청산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자신들의 진로를 정치조직인지 노동자운동조직인지 분명히 정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정말 사회당과 통합할 조직인지 전노회와 통합할 조직인지 분명히 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좌파의 노동자 통일전선에 힘을 싣고, 일부 유력한 40대 동지들은 통일좌파 합법정당의 지도부에 참가하는 모습으로 분화하기를 바란다.

이 참에 우리는 일부 좌파의 막연한 합법정당 비토(veto) 노선,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다. 마치 반()합법 미()분화 상태가 자동적으로 전략적 지위에 자리 잡고 있는 듯이 암시하는 태도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비능률적인 반합법 단체로서 합법정당이 해야 할 역할과 노동자대중운동이 해야 할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미분화 노선은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8,90년대 정파운동이 비공개 비합법이라는 조직 형식 자체로서 소위 전략단위를 자임했던 풍습의 잔재는, 합법정당과 합법 총연맹의 시대에는 반합법 정도의 자세로서도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고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특정 대중운동 영역에 편중된 수백 명의 반합법 회원단체와 전략적 지위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 연관이 없다.

어떤 조직이 소위 전략적 지위에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둘 중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질을 중심으로 따진다면, 그것은 가장 질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강철의 규율이 유지되는 조직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높은 문턱을 가진다. 즉 그것은 노동자의 힘처럼, 지지하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회원단체일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를 포괄하는 양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각각의 운동 영역별로 우선 분화하고각 영역의 좌파를 모두 포괄한 조직들이 다시 모여’, 상향적 통합으로서 그 위에 만든 조직이라면 그것은 좌파의 전략조직일 수 있다.

여기서 소위 전략당, 전술당 문제에 대한 사회당의 태도를 밝히겠다. 그런 용어가 별로 과학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따로 시비하지 않겠다.

사회당은 얼마든지 통일좌파의 전술당이 될 용의가 있다. 다만, 사회당을 전술당으로 편성할 수 있는 전략 주체가 있어야 사회당도 전술당이 될 수 있다.

만약, 한 반합법 정치단체 또는 그런 것들 세 개가 모여, 회원수가 사회당의 1/10에 불과한 조직력으로 자기를 전략 단위라면서 사회당은 그 밑에서 전술당 하라면 곤란하다. 반합법이니까 합법보다 무조건 위라면, 그 반합법, 합법 모두 혁명적 사회주의자 일동따위의 문서를 내는 비합법 소그룹의 전술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도 될 것이다.

1영역 1조직 노선에 기초하여 각 영역에 통일좌파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모여 그 위에 편성한 전략조직, 즉 위에 말한 통일좌파회의가 만들어진다면 사회당은 얼마든지 전술당하겠다. 그런데, 그 때는 통일좌파 노동자운동조직도, 또 통일좌파 학생운동조직도 그것의 전술 단위이다.

합법정당에 비하여 반합법 단체가 얼마나 비능률적인 조직노선인지는 이미 존재 그것 자체로 밝혀졌다. 한청련은 청년진보당을 거쳐 사회당이 됨으로써 스무 배로 커졌다. 그런데, 청년회 따위가 감히 어깨를 맞댈 수 없었던 전국 노동자운동 단체들의 연합, 전국노련이 일부 교수들과 일부 노정연과 함께 만든 노동자의 힘이 같은 기간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까? 지명도는 또 어떻고? 사회당을 들어 본 국민이 노동자의 힘을 들어 본 국민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면 증명 안 된다고 반박할까? 비난자들이 말하길 사회당은 어린애들의 조직이란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면 노동자의 힘은 정말 기라성같은 맹장들의 조직이다. 그런데? 그래서? 사회당이 그렇게 성장하고 이런저런 일을 한 3년 동안 노동자의 힘은 무얼 했나? 거기에 있는 동지들 각각이 현장에서 한 일 말고, 그렇게 모여 노동자의 힘으로서 무얼 했냐는 말이다. 사회당 당원들이 노동자의 힘 회원들보다 우수한 사람들이라고는 우리도 생각 안 한다. 그러나 사회당이 노동자의 힘보다 능률적인 조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합법 정치단체는 합법정당에 비하여 극도로 비능률적인 조직노선이다.

노동자의 힘이 전국노련에 비하여 노동자운동의 장악력에서도 별로 개선되지 못한 것은 진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 안의 노동자운동가들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출 노동자운동가들이 또는 그들의 공개조직이 공장 밖에서 공장 안의 현장조직을 벨트로 조합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노선은, 스스로의 세력을 구성하지 않음으로써 중앙권력을 유지하는 노선보다도 노동자운동 장악력이 열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장파임을 자각했던 활동가가 중앙파임을 자각했던 활동가에 비하여 훨씬 많았고 훨씬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파는 언제나 대()국민파 전선에서 중앙파의 하위 파트너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노동자의 힘의 조직노선상의 문제는 없었을까?

총괄적으로 볼 때,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통일좌파를 향한 염원이 담고 있는 조직노선으로서의 결론, 통일좌파의 전략조직을 대신하겠다는, 터무니없이 오만한 노선이다. 하나가 아니라 세 개가 모인다고 해도 질의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거니와 양의 문제도 전략조직과는 거리가 멀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또한, 합법정당과 노동자대중운동으로 원활하게 구별 정립하면 좋을 사람들을 심지어 학생운동과 이론운동을 향해야 할 사람들까지 미분화 상태의 무거운 불활성 조직에 묶어 두는, 즉 매우 비능률적인 노선이다. 대중은 노동자로서 학생으로서 여성으로서 유권자로서 존재한다.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과 여성운동과 합법정당운동에는 고유의 대중이 있다. 그런데, 반합법 정치단체의 대중이 어디에 무엇으로 있는가?

좌파가 금과옥조로 받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 정치는 선진노동자들과 학출 노동자운동가들이 그것을 표방하는 정치단체로 모여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여 있을 뿐 그것으로서는 활동할 수 없다면, 계급 정치도 실종된다. 노동자계급의 계급 정치는 사회주의 합법정당을 통하여 제도권 정치투쟁의 영역에서, 또 노동자대중운동이 숨쉬는 노동 현장의 투쟁으로, 또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략조직, ‘통일좌파회의같은 것의 지휘에 의하여, 구현된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이미 실패가 증명되었다.

 

 

2.3. 통일좌파 노동자운동

 

이 부분에 대한 서술에서는 다른 운동 영역에 대한 서술과 달리 분명한 주체, 대상의 명칭을 적시하지 않겠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노동자운동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있는 동지라면 누구나, 아무리 노골적으로 서술한 이와 같은 글에서라도 여기서는 이렇게 가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전혀 감이 없는 동지들을 위하여 주체, 대상의 정치적 스펙트럼의 범위는 이 글 <1.1. 1997년의 좌파 분열>에서 거론한 세 갈래 좌파의 영역에 다 걸치며, 어느 정도 중간(‘중앙이 아닌)에까지 걸친다는 점만 말해 둔다.

200242. 민주노총은 완전히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민주노총만이 아니다. 그 때, 현장파, 혹은 좌파도 쓰러졌다. 왜냐고? 민주노총 권력을 쥐었던 것은 국민파고 중앙파인데 그 때 왜 현장파가 쓰러졌냐고? 어떤 좌파가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들은 아마 그 때 중앙파 물러나라고 주장하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도전하자고 토론했을 것이다. 42일 직후가 좌파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만약 그래서 덜컥 중앙파가 물러났다 하자. 그렇다면 현장파는 민주노총이나 금속연맹을 운영할 능력이 있나? 천만의 말씀이다. 주요 대공장의 조합 집행부에 현장파가 많으면 그게 그렇게 저절로 되나? 그 현장들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데도? 민주노총의 다수파로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민주노총을 우경화하려 한 국민파보다, 선진노동자들의 굴복과 타락의 후과를 끌어 안으며 끊임없이 중앙권력을 향해 힘을 모아 온 중앙파보다, 42일의 사태로 현장파가 훨씬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 때는 어느 정도의 긍정성을 인정받아 붙여졌던 이름 현장파이다. 그러나 현장들이 이미 참혹하게 무너져 있었다. 구조조정의 태풍이 처참하게 할퀴고 지나간 대공장에는 언제 잘릴지 모르니 회사 잘 나갈 때 벌어 두자는 노동자들의 개별적 생존권 투쟁이 처절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잔업과 철야에 나서고 1년 중 363일을 일하다 과로사하는 무절제한 정열로 4~5,000만 원의 연봉을 수령하는 살벌한 생존권 투쟁 말이다. 노동자는 단결하여 하나일 때 위대한 것이지, 그렇게 원자화되어 개별적으로 자기 생존에 몰두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간신히 전열을 정비하여 총파업 대오를 편성했는데, 42일의 비극이 있었다. 민주노총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했다. 그것은 민주노총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떤 파에 대한 불만에 그칠 수가 없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것이다. 그것은 민주노총이라는 질서 자체에 대한 절망이다. 결국 그것은 민주노총의 근원이었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절망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총결로서 조직된 것이었다. 그 민주노조운동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했다.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근본적 수준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한다면, 투쟁하는 계급대중이 있어야만 자기로서 존재할 수 있는 좌파는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싸우는 계급대중이 없다면 좌파도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파가 또 중앙파가 왜 그렇게 탁월한 정치노선이며 조직노선인지를 알 수 있다.

주요 대공장에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정규직 투쟁에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총연맹과 각급 연맹에서 허구한 날 총파업을 주장하고 영원한 불평불만자로서만 기능하거나, 분열된 상태로 때마다 개별적으로 중앙파에 포섭됨으로써 중앙파가 국민파를 견제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 덤비는, 구차한 신세를 청산하자. 이제 현장파 그만 하자. ‘중앙에 대하여 현장이라는 하위 파트너로서의 이름을 벗어 던지자. 우리, 좌파가 되자. 노동자운동의 통일좌파가 편성된다면 그것은 실제로 총파업의 주력 부대를 책임지는 힘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한번 더 저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경계한다. 우리는 ‘1영역 1조직노선이 가장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할 영역이 바로 노동자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이 합법정당의 통일좌파 형성을 방해하는 것도 어느 정도 문제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드러나므로오히려 좀 쉬운 문제이다. 더욱 중요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그것이 2002년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하나의 통일좌파 조직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일부 좌파 단체를 흡수 통합하여 노동자의 힘을 확대 재편하고 거기에 노동위원회를 두면 노동자운동의 통일좌파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노동자의 힘이 원래 그런 취지로 제출된 조직노선이었다. 그렇게 3년을 실험해서 안 된 것을 똑같은 주체가 똑같은 노선을 통하여 실현할 수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는가? 노동자의 힘보다 힘이 모자라는 좌파 노동자운동 단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를 수 없다.

 

주체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장파는 각각 해체되어야 한다. 한동안 마치 민주노조의 기관차처럼 인식되어 왔던 현장조직 자체가 이미 자본의 노무관리에 확실하게 포섭된 민주노조(?)의 한계에 철저하게 갇힌 채로 노조집행부 쟁탈 선본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사업장 밖에 존재하면서 해당 현장조직의 배후로서 그것을 자기 재산이라고 인식하던 학출 활동가들과, 어쩔 수 없이 현장의 사령관일 수밖에 없는 최() 선진 노동자들의 지위는 90년대를 거치면서 역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운동 관계가 새로운 운동력의 형성을 가로 막고 있다. 각각의 학출 대오의 인연에 따라 나뉘어 있는 범 현장파를 각각의 수준에서 해체해야 한다. 현장의 사령관들이 직접 만나야 한다. 그렇게 현장의 좌파 노동자들끼리 직접 모이고, 또 그렇게 전체 좌파의 노동자운동 통일전선이 구축되어야 한다. 특별한 소명의식으로 장기간 활동한 안목과 노하우를 가진 학출 활동가들은 그 대오를 지지, 엄호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옳다.

이미 상황은 낙관적이다. 저 끔찍했던 42일을 경험한 좌파는 민주노총과 각급 연맹에서 철수했거나 태업하고 있다. 이번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서도 저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제외한 전체 좌파가 그 선거에 대하여 대화도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선거에 불참하고 있다. 좌파가 움직일 수 있는 전체 노동자 대오의 제2노총 철수가 임박한 듯한 형국이라고 농을 해도 될 정도의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좌파 노동자운동가들은 이면에서 일제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모두 조직적 과제이다. 그것이 비록 아직은 산업별로 지역별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으며, 또 일부 핵심들에게 국한되어 있지만, 그 논의는 결국 여러 산업 부문을 포괄하여 전국적으로 통합되고 대중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사실 이 움직임이야말로 통일좌파를 향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발걸음이다.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2002년의 이 기운이 희망적인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우선, 활동가들이 흔히 쓰는 속된 말로 논의에 임하는 활동가들이 자기 재산 지키기에 연연하는 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을 평가해야 하겠다. 실로 예전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마다 노동자운동에 투신한 지 수 년, 십수 년을 헤아리는 베테랑들이 그 세월의 자기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관계들에 대하여 자기 것이라는 오래된 무의식들을 포기할 태세이다. “자기를 버리고,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통일하여 하나의 사회주의 노동자운동 대오를 편성하자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의 전투적 노동자운동에서 전통적으로 중심이었던 부분에서부터 변방이었다가 최근에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층위에서 토론이 전개되고 조직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형식적 통일 대오의 편성은 이미 합의된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그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논의의 수준은 진지하고 심층적이다. 현장을 추스르는 데에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묘책에 이르기까지, 조합과 현장조직에서 합법정당, 전략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제한 없이 펼쳐지고 있으면서도 중심에 대한 집중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흔쾌한 자세, 광범위한 참여, 펼쳐져 있는 논의 구조가 뭐가 잘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해도 아무리 해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반성이다. 진짜 뼈가 깎이고 살이 저며지는 느낌 속에서 이러한 반성의 전반적 기운이 저절로 합의된 것과 다름없다.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지금도 굴욕스런 저임금과 고통스런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장의 조합원들은 개별적 생존권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대의원, 소위원들의 조직 사업이라는 것은 조합원들의 일탈적 요구에 대한 민원 챙기기 수준이다. 그러는 동안 자본은 작은 권력과 돈 맛을 알게 된 상층 간부들을 각종의 희한한 수단으로 얽어매 놓고 있다. 속칭 쥐약이 현장의 곳곳에 살포되어 있다. 모두 상식으로 아는 것처럼 임금인상 투쟁 아무리 해 봐야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고취할 수 없다. 또한 총자본이 일체가 되어 개별 공장들을 하나씩 박살내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기업별로 고립된 노동자들의 저지 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러한 심층적반성의 결론은 결국,

 

현장의 주체 재형성이다.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변혁적 계급의식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예컨대 임단투라면 내 공장의 임금을 올리라는 저열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력재생산비용을 낮추라는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단결하여 싸울 수 있는 현장 주체로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반드시 과격하고 전투적인 인상을 풍기는 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 대오에 동참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자기 투쟁의 요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개별 사업장, 개별 산업 부문의 요구가 다시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로 되는, 그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재형성되는 현장 주체의 이념은 결국 이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하나다.

 

동지들! 힘을 내자. 우리도 천만 노동자계급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2.4. 통일좌파 학생운동

 

학생운동의 전학협(전국학생회협의회), 연대회의(전국학생연대회의), 전학대협(전국학생대표자협의회), 행동연대(학생행동연대) 등 모든 그룹을 해산하고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자. 뜻 맞지 않는 민주노동당 안에서 불편해 하는 다함께까지 포함하여 모든 좌파를 하나로 만들자.

90년대 초반에 좌파 학생운동을 전대협에서 분리시키자는 주장은 일부의 호응에 그쳐 전국학생연대(학생연대)라는 또 하나의 학생 그룹이 탄생하는 데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학생연대-전학협과 대장정(대장정 학생연합)-연대회의 등은 좌파 학생운동의 패권을 놓고 경합해 왔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치고받는 학생운동이지만, 그 학생운동이야말로 자기 영역의 한계를 넘어 전체 운동의 운명을 염려하는 성숙한 사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하여 이 점에서 좌파 학생운동은 그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좌파 노동자운동보다 열 배는 낫다. 이미 한총련과의 분리는 각각의 좌파 학생 그룹 수준에서 실현되어 있으므로 조건은 10년 전과 다르다. 사회운동에서도 좌파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학생운동에서의 좌파 분열 상태가 특별한 이슈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좌파 학생운동의 분열 상태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다른 영역처럼 분열이 자체로서 대중 활동에 결정적인 장애 요소라는 문제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학생운동의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학생운동의 분열 상태가 사회운동의 분열 구조를 계속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우리 솔직하게 말하자. 학생연대와 대장정으로 나뉘어 싸우던 감정의 앙금이 사회당과 사회진보연대의 실무자들 사이를 여전히 서먹서먹하게 유지시키는 첫 번째 이유 아닌가? 또 그렇게 선배들이 나뉘어 있으니, 후배들은 여전히 전학협과 연대회의로 나뉘어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제발 그만! 하자.

동지들! 힘을 내자. 다 훌훌 털고 우리도 백만 학생대중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2.5. 통일좌파 합법정당

 

대선 국면을 맞이하여 노동자의 힘 내 일부 동지들은 무소속 좌파 후보 노선을 제기하기도 한다. 설마 합법정당인 사회당이 그것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일부러 사회당이 못 받을 안을 내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거의 불발탄이 될 모양이지만, 저 범추(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도 범추의 대선 후보를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시키자고 합의했었다. 전국연합도 민주노총도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도 한총련도 아는 것을 왜 정치조직인 노동자의 힘에 속한 동지가 모르는지 딱하다. 비제도적 투쟁정당노선에 서 있는 동지가 말이다.

어쨌든 현재의 사회당이 독자적으로 내세우는 대선 후보를 무조건 지지할 수 없다는 정치 현실이 문제라면, 에둘러 표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좌파가 흔쾌히 지지할 수 있는 대선 후보를 만들어 내자.

물론, 첫 번째 원칙은 투쟁 속에서 치러지는 대선, 대선을 통한 좌파 대단결의 대중 투쟁이다. 이 원칙에 반대할 좌파는 없으므로 이것은 논란거리가 못된다.

문제는 합법정당이라는 형식과 사회당이라는 현존재에 대한 감성이다. 한국의 좌파에게는 일부, 합법정당이 선거에 부합하는 조직형식이라는 상식조차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현존재가 합법정당이 아니라고 해서, 현재의 사회당 주류를 안 좋아 한다고 해서, 상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당위조차 부정한다는 것은 비겁하다. 왜 선학(先學)과학의 입구에서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했겠는가?

모든 좌파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당이 문제라는 것 아닌가? 그것이 핵심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좌파를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합법정당을 만들자.

그것을 위해서라면, 사회당은 무엇이든지 양보하겠다. 아니, 사회당 자체를 통째로 좌파의 공기(公器)로 내놓겠다. 다만, 사회당이 사회당인 이유, 그것이 부정되는 것만은 안 된다. 좌파의 합법정당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92년부터 노력해 왔다. 이 미숙한 사회주의 합법정당도 우리가 10년 세월, 한 발짝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피땀을 흘려 이룩한 것이다.

 

무소속 대선 후보는 안 된다.

 

노동자운동이나 학생운동과는 달리, 합법정당운동 영역에서는 다른 합법정당을 편성하고 있는 좌파 대오가 없다. 이러한 조건은 통일좌파가 이루어진다면 자동적으로 현재의 사회당이 그대로 통일좌파의 합법정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사회당의 주인이듯이 아직 사회당의 바깥에 있는 좌파 동지들도 사회당의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당은 아직도 미()사회당이다. 825일로 예정되었던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무려 두 달씩 늦춘 이유도 통일좌파에 대한 염원 때문이다.

다른 좌파의 지도적 동지들이 사회당과 어떻게 잘 해보고자 해도 자기 조직대중 일반의 사회당 비토(veto) 정서 때문에 행보가 쉽지 않은 것과 똑같은 상황이 사회당 안에도 있다. 사회당 안에 이미, “다른 좌파에게 기대할 것이 적으니 사회당이 독자적으로 대선을 돌파하겠다는 결의를 조기에 밝히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 주장의 요체는 대선을 대선답게 충분히 준비하여 치르자는 것이었다. 8월로 예정했던 전당대회를 10월로 연기한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동지들도 통일좌파를 원하는 마음에서 똑같고 또 현재의 당 지도부가 통일좌파를 추진하는 것에 대하여 믿고 기다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래 8월 전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모였다가 그것을 연기한 7월의 중앙위원회였다.

결국 사회당의 대표,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20021020()에 열린다. 전당대회는 아주 많은 준비가 필요한 행사이다. 그만한 행사를 위한 장소 섭외부터가 만만치 않다. 사회당은 915일 중앙위원회에서 그 전당대회의 골격을 정한다. 말하자면, 사회당이 이번 대선을 다른 좌파와 함께 할 것인가, 즉 그것을 통하여 통일좌파 합법정당이 탄생할 것인가, 또는 사회당 혼자 이번 대선을 치를 것인가, 그 결과 이 지루한 좌파 분열 상태가 더 연장될 것인가가 915일에 정해진다.

사회당이 1020일 전당대회를 통합 좌파정당의 창당대회로 정할지, 지금까지의 사회당 대오로 대선을 돌파하는 결의대회로 정할지는 다른 좌파 동지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후자가 된다면 현재의 당헌상 사회당은 그 중앙위원회에서 즉각 당내 대선후보 등록을 공고하고 한 달 여의 대선후보 선출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좌파 동지들! 915일 전에 무언가 보여 달라. 915일 전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 우리도 할 수 없다. 현 사회당의 대표권한대행 체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는 좌파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힘 동지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포기하라. 좌파의 리딩 그룹답게 통일좌파 합법정당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해 달라. 이번 8월의 수련회에 참가한 모든 좌파 동지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과 절연하라. 동지들의 전반적 대오는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향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동지들 중에도 통일좌파 합법정당이 만들어지면 거기서 일해야 할 동지들이 있다.

경향 각지의 좌파 동지들! 통합 좌파정당을 이번 대선 국면에서 만들자.

 

사회당도 그 중 하나가 되겠다.

 

민주노동당 내 인천 좌파 동지들과 평등연대 등 민주노동당에 있는 좌파 동지들에게 말한다. 동지들, 좌파답게 자기 인식에 충실하자. 민주노동당을 개혁할 수 있다는, 안 되는 희망은, 이제 버리자. 동지들! 결단하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라. 지금이 때이다. 언제까지나 황당무계한 일들 속에서 울분을 삭이며 남의 집에서 곁방살이 할 것인가? 거기가 왜 남의 집인지 동지들이 잘 알지 않는가? 그것을 우리가 설명해야만 아는가? 통합 좌파정당이 동지들의 집이다. 자기 식구가 사는 곳이 자기 집 아닌가?

노동자대중이 거기 있다고? 민주노총이 그 당을 지지한다고? 우리, 그런 정치 현실 자체를 바꾸자. 좌파가 완벽하게 구별 독립한 통합 좌파정당을 구성하고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구축하자. 그 힘으로,

 

2003년에 민주노총을 재편하고,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 방침 자체를 바꾸자.

 

좌파여, 희망을 갖자. 이 정도로 희망적인 상황에서도 결단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언제 좌파가 지긋지긋한 주변, 비주류의 신세를 청산하고, 운동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이 제안에 관심이 있는 동지라면 궁금해 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사회당의 기득권 포기 의사를 요약하여 밝히며 글을 맺겠다.

 

좌파의 대선 투쟁도 통합 좌파정당에서 논의하자. 후보도 거기서 선출하자.

 

동지들! 힘을 내자. 우리도 민중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통일좌파.hwp (59.70 KB) 다운받기]

 

2019/10/13 17:53 2019/10/13 17:53

지나간다단절, 그리고 새로운 출발

'사회당'인가?

단절, 그리고 새로운 출발

 

신석준 당 기관지 위원장

 

 

나는 우리당의 명칭으로 사회당을 주장해왔다. 나는 그 동안 당내의 토론과정에서 이 명칭과 관련하여 잘못된 우려뿐만 아니라 기대도 제기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려이든 기대이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겠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사회당. 사람들이 이 명칭을 듣는다면 이 정당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당이라는 이 명칭은 사회주의라는 말처럼 낡은 것이다. 그것은 낡은 전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먼저 설명해야 할 점은, 우리 당이 이 낡은 전통들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10/13 17:46 2019/10/13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