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역설을 보다 ~ 송두율교수의 <경계도시 2 >를 보고

 

딴지일보에서 보내 준 초대권으로 <경계도시 2> 영화를 봤습니다.

2003년 9월 재독 철학자 송두율교수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37년 만에 귀국을 감행합니다. 그의 부인 정정희씨와 장성한 두 아들을 데리고 그리던 고국이기에 이번에야말로 작심한듯 찾아옵니다. 그러나 송두율교수는 귀국 후 꼭 열흘만에 해방이후 최고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귀국 차 탄 비행기 안에서, 미리 보낸 송교수의 귀국위원회가 보낸 변호사는 얘기합니다.

아마 큰 일은 없을 거라고요. 통과의례 쯤으로, 찾잔의 태풍? 그쯤해서 끝날 거라고요.......

 

<경계도시 1> <경계도시 2>는 저예산 독립영화입니다.

감독은 홍형숙이아는 여자감독입니다. 그동안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가,

7년 만에 6년의 편집작업을 거쳐서 완성된 영화입니다.

 

2009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초대를 받아 상영된 이후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입니다. 촬영기사도 많아서인지 놓지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잘 찍었더군요.

 

 

                                                                

앞서 말한대로 송두율교수는 2003년도 가을에 와서 8개월 동안 곤혹을 치루고 집행유예로 겨우 풀려나서 독일로 내쫒기듯이 돌아가고 맙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정권 때 모든 기득권을 빼앗겼었다고 생각했는지, 보수 쪽의 반격은 놀랍고 집요했습니다. 광기에 가까운 역공에 시달리며 수갑을 찬 송두율 교수의 모습에 할 말이 별로 없더군요.

 

북한 노동당, 김철수였잖느냐고 공격하며 몰아치는 통에 37년 만에 귀국한 고국에서의 영어생활?

 

10여차례 자진출두로 시작하여 통과의례처럼 선처를 받는 선에서 모든 타향살이를 끝내려고 작정을 하고 온 것이, 그분의 실수였지 않나 느껴지더군요. 정말 웬만하면 고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노교수의 타국살이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성한 두 아들과 처를 데리고, 모든 분단의 아품과, 이 21c의 조국에서 벌어진 광기의 시절을 순화시키며 이제는 자신이 이룬 학문이며, 인간적 교류와 공감대를 다른 곳에서가 아닌 바로 조국의 땅에서 펼쳐보고, 국제미아로 떠도는 일을 마감하고 이제는 그만 그 외로움일랑 내려놓고 쉬고 싶은, 고향의 품에 안기고 싶은 애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독일국적도 포기하고, 반성 비슷한 기자회견도 2번이나 하는.....기존의 입장을 많이 양보하는 모습,1993년 인가요? 김일성이 죽은 게? 그때 김일성 장례식에 와달라는 초대를 받았답니다. 가고 싶지 않아서 못간다고 했는데 간곡하게 청하더랍니다.

 

왜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경축할 일이나, 국가 장례식에 될 수 있음 많은 국빈이 와주길 바라는 마음요. 북한에서야 오죽했겠어요? 자기네 김일성이 죽었으니..... 성대하게 치뤄야 어버이 수령 가는 길을 서운치 않게 대접한 것 같을테고, 살아있는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신도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가게 되었는데, 북한에 가서야 자기 이름 옆에 김철수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걸 보게 되었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미국에 가면 걔네들이 부르기 좋게 미국식 이름으로 고치는 사람있지요?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졸개들의 충성심에서 북한 사람 아닌 사람에게 어거지로

'김'가 성을 붙여서 한 건 했다는 식으로 그런 유치 우국추성심 경쟁 하나봐요. 이런 장난에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가 뭐가 그리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받았겠어요?

 

보수진영에서 한 껀 했다 이거지요.

어마어마한 토픽 감으로 신문과 방송을 대문짝 만하게 장식합니다.

진보진영에서도 아연실색하며 모두가 입을 다물고 침묵 모드로 전환합니다.

진보진영에서도 그렇게 몰아가는 상황에서 송두율 교수는 더 현실감도 상실한 것 같고

 

내 조국 내 맘대로 드나들고 싶고, 더이상은 외국에만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그런 상황을

이번에는 웬만하면 종지부를 찍으려던 것이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보수들의 역습이 이일을 기회로 삼아 벌떼처럼 역습을 했으니까요.

 

왜 우리도 갑자기 잘 가던 길도 특수한 상황에서 밤길에 방향감각 상실하면 삽시간에 뭐가 뭔지 모르고 아무 것도 인지하지 못하잖아요. 밤새 왔던 길 또 가고 뱅뱅 돈 경험 그런 거요.

 

환영준비위원을 꾸렸다고 하는 자칭 송두율교수를 위한 위원회라는 진보진영의 어떤 사람은 아예 일방적으로 남한에 왔으니까, 여기 방식대로 전향서도 쓰고 뭐하고 뭐하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더라고요. 진보의 탈을 쓰고 보수쪽에서 밀명을 받아 전향서 받아내는 특명을 받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은 점잖은 사람도 아니었어요. 맨발에 천박한 모습으로 무지하게 닥달을 해제쳤습니다.

 

송두율교수는 아연실색 해서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굳게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남도 북도 아닌, 경계인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37년 동안 살았다는 분.

할말을 잃고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하도 넋나간 사람처럼 보이기조차 해서

저분 정말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세계적인 철학자 맞아? 의심이 갔으나

 

기자회견장에서나, 학술세미나에서는 말도 빠르고 정확한 언어구사에 분명한 발음을 하는 것을 보고

아! 지성이 살아있고 언어력도 대단한 분이구나, 겨우 안심이 되더군요.

 

하기사, 정말이지, 강한 악센트  하면 끝내주는 독일어를 37년이나 사용하며 가르치는 직업으로 강단에 선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국말 벌써 잊었다 해도 이의가 없을 정도로 언어라는게 어려운건데.....성명서 읽을 때나, 2차례의 포럼에서 하는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고는 대단하구나! 느껴지더군요.

 

이 나라의 뿌리 깊은 레드콤플렉스? 보수의 반격? 색깔론? 여전히 유효하며 정권이 궁지에 몰리 때마다 노인들 동원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최후의 싸가지 방법 잘도 써먹습니다. 법원 앞에 피켓 들고 나와 "송두율을 사형시켜라!" 여전히 어디서 동원되어 나타나서 그러는지 악을 쓰더군요.

 

여기서 역설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반공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여전히 죽이고 있구나. 하여 저 악을 쓰며 사형시키라는 모습을 보니 그 역설에서 역설을 느끼겠구나! 우리나라 저런 증오심으로 무장한 세력 판치고 있으면 21C 글로벌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분단의 족쇄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송두율 교수를 보며

"그대 다시 고국을 떠나가리!!" 하는 구절을 한마디 입에 담아 읊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내쫒기듯이 송두율교수 일가족은 그렇게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갑니다.

 

이래서야 우리에게 어찌 진정한 자유가 있을까 싶고, 성숙한 비젼이 있을까 싶고, 우리의 미래세대들과 북한의 자라나는 젊은 세대와 동포들 모두다 냉전의 희생자라는 생각입니다.

 

아, 대한민국이여, 어찌하여 너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국가로 남았느냐?

아, 대한민국의 미래세대여, 자식세대여, 너희들은 이 갇힌 틀에서 깨어나와야할텐데.....

 

<경계도시 2>~ 우리의 역설을 잘 보여주는 독립영화였습니다.

경계도시를 통하여, 우리의 이중적인 면, 역설의 역설을 보고 다시 한번 전율했습니다.

강고하게 자리 잡은 꼴통들의 독소가 우리민족의 번영에 치명적인 흉기가 되고 있음을요.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송두율교수는 대부분의 혐의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송교수와 그 가족들의 상처는 8개월 동안 어김없이 도매금으로 유린되고도 남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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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20:49 2010/03/1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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