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묘역엘 갔다. 넓디넓은 동작동 국립현충원, 아주아주 후미진 한쪽 귀퉁이, 그러나 가보면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솔 향기 가득하고 정말정말 아늑하고 양지 바른 곳이다. 

DJ 묘역은 언제 가봐도 작고 소박해서 몇 걸음만 거닐어도 내 집 안마당처럼 품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규모다. 그래서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해서 좋다. 묘역에서 내려다 보면 언덕 아래로는 이름 없는 무명용사들의 묘가 보인다. 그렇다. DJ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이들은 어김없는 무명용사들이다.

생전에는 충성스런 동지들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던 선생이었다. 지금은 잠들어 있는 선생의 유택으로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손님들을 늘 반갑게 맞아주던 인심 좋은 주인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DJ, 오늘도 여전히 넓고 푸근한 가슴으로 사람들을 맞아주고 있다. 

묘소에 닿기 직전, 길 한쪽에서 조그만 쉼터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예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면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바로 앞 조그만 언덕이 디제이 묘소다. 먼저 온 사람들의 말소리가 낮게 깔리며 인기척이 전해오는 지점이다. 조신한 몸가짐들이 가을 빛과 어우러지며 신선한 실루엣을 만둘어 준다.

그들을 보며 묘소 입구에 들어서면 소나무가 아치대형을 이루면서 푸른 낯빛으로 반긴다. DJ를 찾는 방문객들은이라면 사양치 말고 그 호의를 마음껏 누릴 일이다. DJ여! 도란도란 건네는 지지자들의 존경과 환호를 거침없이 받으시라.

이곳 DJ 묘역은, DJ가 생전에 보인 불굴의 의지와 민족에 대한 헌신을 못잊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와 그에 대한 충정과 자부심을 발현하는 곳이다. 대통령께 대한 경례와 묵념 그리고 향을 사르는 간단한 의식으로 모임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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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대중 대통령님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오늘 방문은 내심 "디제이가 이 시대에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찾았다. 디제이 묘역을 거닐며 선생이 내게 건네는 기운을 받고 싶어서이다.

디제이는 불굴의 투지와 평생 멈출 줄 모르는 학구열로 민주주의와 남북문제 그리고 나라 안팎의 경제 등에서 해박한 천착의 결과물을 많이 내놨다. 책이다. 이책을 통해서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여간 믿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책을 통해서 디제이를 만나고 있기에 그렇다. 읽다보니 나의 지식의 용량과 소화력으로는 단기간에 다 따 담을 수 없는 비전과 지혜가 담겨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박사학위 너 댓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디제이 앞에서 큰소리를 못 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룬 것들은 최소 수십년을 앞서간 선구적인 주장과 지론으로 차있어서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려면 맨발로 좇아가도 모자랄 부분이 너무 많을 것이다.

누가, 어느 누가? DJ처럼 정직하고 한결 같이 남들은 가지 않은 길을 가면서 길을 냈으며, 이론으로나 행동으로나 선구적인 토대를 세웠는가. 교수들이? 학자들이? 없다. 아니다. 그들은 김대중 선생처럼 선행적으로 학문적인 자주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선도한 적도 없고 주장한 적도 없고 학문적인 자존심을 가진 적도 없다.

남북문제나 통일에 관한 문제나 민족의 앞날에 관해서 선도적인 주장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10년 20년 30년 40년 아니 70년 긴긴 세월이 다 가도록 입 닫고 귀 막고 눈 가린 학문적인 불구자들이었다. 옹색하고 비굴하게 살면서 면피용 말마디와 역사적으로나 정신사상사 측면에서 청맹과니로 살아온 사람들이 행세만 하려고 혈안이었다.

우리 모두는 김대중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옥에 갇혀 자유를 제약당하면서까지 한땀한땀 이루고 쌓아온 고난의 행군 덕분에 오늘 날 우리는 자유와 풍요를 구가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독재에 대해 항의할 줄 모르고 군부독재에 제대로 된 항거도 못하고 있을 때 김대중은 5번 죽을 고비에 6년 동안의 옥살이에 55번의 가택연금으로 민족의 한을 품어 안으며 모진 고난, 갖은 모욕, 치졸하고도 악랄한 핍박과 음해를 이기며 오로지 자신을 응원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을 위안 삼아으며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옹골찬 업적들은 그가 디딘 걸음마다에 단단하게 맺혀 있다.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생에 대한 고결한 성실과 천착이 있었기에 이루게 된 그의 성공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까지 보폭을 넓혀 그만의 콘텐츠로 되살아나 응집돼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남북문제 등에 유무형의 유산을 풍성하게 남기게 됐다.

이곳 DJ묘역은 DJ가 생전에 보인 불굴의 의지와 민족에 대한 한없는 헌신을 못잊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와 순수한 충정과 자부심을 발현하는 곳이다. 대통령님께 대한 경례와 묵념 그리고 향을 사르는 간단한 의식으로 끝난다.

사진 한 장을 곁들인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오랜 수행비서였던 김종선 선생님이 찍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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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18:02 2017/10/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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