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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노동, 노동자, 노동자운동

이 모든 '~없는 세상'을 '자본가 없는 세상'으로!

7월 23일일(토) 서울시청에서 남영역까지 시위 행진이 있었습니다.

<정리해고 철회! 노조파괴 정치탄압 중단!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의 행진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피겟, 플랭카드, 몸벽보에 다음과 같은 요구를 적어 넣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

"밤에 잠 좀 자자, 심야노동 철폐하라!"

"정리해고 없는 세상, 야간노동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불법파견 철폐하고, 파견제를 철폐하라!"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물가폭등 민생파탄, 이명박 정권 심판하자!"

 

노동자들은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야간노동 없는" 세상!

입니다.

소박하지만 절박합니다.

 

이러한 요구에 자본가들은 해외로 도피하거나, 용역깡패와 경찰들 뒤로 숨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행진을 막아선 경찰차벽 앞에 이렇게 써넣습니다.

 

"폴리스 라인, 아름다운 질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아름다운 질서?

자본가를 위한 질서겠죠.

 

그래서 이 모든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깃발에 이렇게 새겨 넣읍니다.

 

"자본가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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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희망의 버스 -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2차 희망의 버스’에 다녀와서

 

2011.7.09.(토) 19:00~7.10.(일) 15:00

 

 

희망은 ‘만남’입니다.

 

결국 85호 크레인에 있는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국에서 희망의 버스, 희망의 자전거, 희망의 비행기, 희망의 천리행군을 통해

1만 여명이 넘게 모여 폭우를 뚫고 행진했지만,

결국 경찰벽에 막혀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정리해고를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와 ‘김진숙을 살아서 내려오게 해야한다’는 바람으로 부산역에 모여, 영도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막힌 경찰벽에 몸을 던져 부딪혔지만,

결국 물대포와 최루액에 밀려 그냥 주저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벽을 뚫어 85호 크레인까지 가서 김진숙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폭우 속 부산역에서, 영도에서 ‘희망’을 만났습니다.

살고 있는 동네 아줌마들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첫째 애 친구 엄마와 둘째 애 친구 아빠도 뜻밖에 만났습니다.

20여 년전 함께 노동운동 하다가 헤어졌던 후배도 만났습니다.

고향에서 노동조합 활동하는 후배도 만났고, 지금은 조금 서먹해져버린 교수도 웃으며 만났습니다.

김진숙은 정리해고자와 생존자를 이어주는 오작교일 뿐 아니라,

이렇게 오랜 동안 헤어져 있던 사람들을 오직 가슴 하나로, 분노 하나로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살아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같은 바람과 같은 분노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이것 역시 솔찮게 반가운 ‘희망’입니다.

 

아마 다들 비슷한 심정, 비슷한 생각, 비슷한 판단이었을 겁니다.

1차 희망이 버스가 2차 희망의 버스에 1만명이 넘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면,

3차 희망의 버스는 ‘경찰벽을 실직적으로 뚫어내는’ 희망의 버스여야 한다는 그런---.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떨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김진숙이 85호 크레인 위에 여전히 있고,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의 버스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희망의 버스가 분노와 바람을 모으는데 멈추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찰벽을 뚫고, 정리해고가 당연하다는 막힌 생각들을 뚫어야 한다는 것.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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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한진중공업 강제집행 현장. 2011.6.27. 오후 3시

한진중공업 강제집행 현장. 2011.6.27. 오후 3시

 

6/27 오후3시 한진중공업 강제집행 현장 (85호 크레인앞) from plogtv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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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유성투쟁결의대회_ 야간노동 철폐! 직장폐쇄 철회! 민주노조 사수!

야간노동 철폐! 직장폐쇄 철회! 민주노조 사수!

유성기업지회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2011.6.18.(토) 15:00, 유성기업 아산공장

 

"밤에는 잠 좀 자자"

소박한 요구다.

이미 '야간노동 철폐' 2009년에 단협으로 합의한 사항이다.

이 요구에 유성기업 사측은 공격적 '직장폐쇄'로 대응했다.

그리고 경찰과 용역깡패들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내쫒고 울타리를 철망으로 둘렀다.

정문은 경찰이 막고, 공장은 용역깡패들이 지키며, 동원된 관리자들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

유성기업의 뒤에는 현대 기아자동차 자본이 버티고 있고, 노조파괴 전문가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이명박 정권의 노동정책이 있다.

 

유성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뒤에는 '현대 기아자동차'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

현대 기아자동차 역시 올해 '야간노동 철폐' 문제가 현안으로 놓여있다.

주야맞교대제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간 투쟁의 전초전이다.

 

'야간노동 철폐'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성기업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업장의 지역 보루 가운데 하나다.

정권과 자본은 민주노조의 주력 사업장을 계획적으로 하나하나 깨나가고 있다.

그래서 유성지회의 투쟁은 벼랑끝에 선 '민주노조 사수투쟁'이다.

 

공장에서 쫒겨난 노동자들은 공장 앞 비닐하우스를 빌려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들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주야맞교대제 투쟁의 근거를 다시 세워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지금은 용역에 빼앗긴 공장을 되찾아 '공장을 실질적으로 멈추게 하는 '이 중요하다.

 

유성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기에 노동자들과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대투쟁에 나섰다.

'쫒겨나는 노동자들', '쫒겨나는 철거민들', '쫒겨나는 학생들'이 함께 연대에 나섰다.

6월 18일 연대투쟁은 반격의 출발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결정하지 않는 그런 일을 겪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럴 때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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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희망의버스', 한밤중에 달려내려가 공장담을 넘어 85호크레인과 손잡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

6월11일(토),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85호타워크레인 농성 157일째 되던 날,

1,000여명이 한 밤중에 전국에서 출발하여 부산 영도로 달려내려가,

경찰과 용역이 막은 공장담을 뛰어넘고,

한진중공업 파업노동자와 함께 용역을 쫒아내서,

85호타워크레인 앞에서 밤새워 김진숙과 마주하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하루만에 떠나게 되서 미안합니다! 언제든지 꼭, 다시 오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과 전국의 노동자 민중 시민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되겠습니다."

 

<89호크레인에서 김진숙의 '연설문'과 함께 '희망의 버스'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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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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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전 김주익이 한 달 넘게 봉쇄된 공장이 마침내 뚫려 사람들이 이 85호 크레인 밑에 모이던날 그 소 같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을 우리는 끝내 못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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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용역들에게 공장문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걸 보면서 볼트 한가마니를 올렸습니다. 저 혼자 남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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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싶었고 애타게 기다린 만큼 만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오작교가 되어 등허리가 다 벗겨지더라도 우리 조합원들과 여러분들 꼭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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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조합원들 많이 다치고 귀때기 새파란 용역아이들한테 내동댕이 쳐지고 짓밟히는 걸 전 여기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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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을 집에도 못가고 불면의 밤들을 술로 견디며 깨진 어항에서 흘러나온 금붕어 처럼 숨을 헐떡거리던 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우리의 싸움이 정당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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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퇴거압력에 손해배상 가압류에 경찰서 몇 번씩 불려 다니고 가족들 성화까지 견뎌가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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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친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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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 버린다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수 없는 이유가 백가지도 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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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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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먹으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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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 85호 크레인을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2003년 그 모질었던 장례투쟁의 와중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현서, 다림의 애비, 고지훈, 김갑렬을 기억해주십시오. 짤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는 최승철을 기억해주십시오. 말기암으로 언제 운명하실지 모르는 아버지보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박태준을 기억해주십시오. 비해고자임에도 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한상철, 안형백을 기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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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저 사람들을... 조남호가 버리고, 언론이 버리고, 정치가 버린 저 사람들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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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박창수 동지 아버님, 박종철 동지 아버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뜨겁게 고마운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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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 아닌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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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여기까지 왔던 그 마음 그대로, 아흔 아홉 번 쓰러져도 결코 무릎 꿇을 수 없었던 그 마음 그대로, 굳건히 지켜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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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동지들이 버텨왔듯이, 쌍차동지들이, 유성동지들이 버텨가고 있듯이, 그렇게 꿋꿋히 견뎌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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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에게 감염된 인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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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6ㆍ11 희망의 버스, 당신을 초대합니다

6ㆍ11 희망의 버스, 당신을 초대합니다

 

<프레시안>2011-06-02

김여진 / 배우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반한 사람입니다.

어느 비 오는 날 , 하루 종일 방안에서 뒹굴거리며 과자부스러기 나눠 먹으며 긴 얘기 나누고픈 사람입니다.

하루로 되겠습니까, 며칠은 족히 걸릴 테지요.

그녀가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모르겠습니다.

그 지난했던 싸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사랑을 했었는지, 힘들 땐, 정말 힘들 땐 어떻게 견디었는지.

그녀는 웃으며 얘기할 것 같습니다.

남 일처럼 얘기할 것도 같습니다.

듣는 저만 훌쩍훌쩍 울고 있겠지요.

 

김진숙, 그녀는 신기록 보유자입니다.

까마득한 크레인 위, 혹독했던 겨울, 그 많았던 비 오는 날을 혼자, 그 공중에 매달려 150일입니다.

평생 자랑스럽게 배를 만들었던 동료들이, 한진의 가족입네, 산업역군입네 치켜 올려지다가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잘렸습니다.

먼저 가신 두 분 열사의 꽃 같은 목숨으로 간신히 받아낸 약속, '단체협약'이 휴지처럼 내팽개쳐지고, 평생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깃발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름입니다.

춥기도 더럽게 춥더니만 또 얼마나 더울까요?

그 쇳덩이 위에 있을 그녀를 전 사실 끌고 내려오고 싶습니다.

내가 대신 싸워줄테니 이리와 나 좀 안아 달라고 조르고 싶습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등록금에 , 취업난에 어깨 펴지 못하는 젊은 당신을,

아이 키우고 먹고 사느라 꿈이란 거 잊고 산지 오랜 당신을,

사람 사는 이야기, 음악, 그림을 그리고픈 당신을,

윗사람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이야기 제대로 못 써본 당신을,

와서 그녀를 만나고 얘기 나눠보라고,

궁금한 거 물어보고 얼른 내려오시라 함께 외쳐주자고, 초대합니다.

 

분명 당신 마음에도 용기와 감동이 물결칠 테니까요.

누구보다도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님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마음이 불편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여기 모두 모여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저, 사람, 내 친구,김진숙 님이 더운 여름을 저 철판 위에서 나지 않도록 당신, 입을 떼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김진숙 님의 그 꿈을 우리가 함께 꾸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광주에서, 전주에서, 순천에서도 이 '희망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또 그렇게 출발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6월 11일 모두 함께 새로운 희망을, 소통하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어 보려합니다.

이 '희망의 버스'에 올라주세요.

그녀를 만나러 함께 가요.

절망이 희망이 되게.

 

* 참여게시판: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 희망의 버스 - 서울출발 일시 :

2011년 6월 11일(토) 오후 6시 30분출발

장소 : 서울시청광장 앞 재능교육비정규직 농성장

참가비 : 30,000원

입금계좌 : 박래군(농협351-0199-8560-53)

문의 : 송경동(010-8278-3097)

* 8일까지는 참여 의사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 참여게시판 :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 희망의 버스 - 수원출발 일시 :

6월 11일 오후 6시출발

장소 : 수원 화성박물관 앞

참가비 : 30,000원

문의 : 안병주(010-2699-0817)

 

* 희망의 버스 - 광주출발 일시:

2011년 6월 11일 오후 2시(시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출발 장소: 광주 비엔날레 주차장

문의: 010-6418-8468

 

* 희망의 버스 - 전주출발 일시 :

2011년 6월 11일 오후 6시 30분출발

장소 : 전주 공설운동장정문

참가비 : 학생 - 2만원(대학생포함), 일반- 3만원

문의 : 평화바람(딸기) 010-2852-5967, peacenomad@hanmail.net

 

* 희망의 버스 - 순천출발 일시 :

2011년 6월 11일 오후 8시출발

장소 : 순천 조은프라자 앞

참가비 : 30,000원

문의 : 박정훈 010-2070-0613

 

* 현재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노나메기 재단(준)> 등과 소금꽃 김진숙을 응원하는 한겨레 신문 광고에 함께 해주셨던 분들, 쌍용자동차와 콜트콜텍 등의 해고노동자들, 촛불시민들, 그리고 다양한 분들이 마음을 모아 희망의 버스에 함께 오릅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그외 다양한 분들이 함께 희망의 버스를 만들고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 분들이 12일 오전 아침 밥, 200인분을 마련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기륭전자, 동희오토, GM대우, 홍대청소용역노동자, 쌍용차정리해고자, 재능교육비정규직 등 힘들게 투쟁하는 자리에 늘 함께 해온 '갈비연대' 분들이 11일 저녁 뒷풀이음식을 내주시기로 했습니다.

김여진 님과 함께 하는 '날라리 외부세력' 분들과,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함께 해주시는 정혜신박사, 박혜경과 레몬트리 공작단 분들도 함께 하시겠답니다.

용산에서 '끝나지 않는 미술전'을 열어주었던 파견미술가 모임분들과 '촛불방송국'을 운영해 주었던 미디어활동가들, 그리고 얼마전 인권영화제 개막작 '종로의 기적'을 올렸던 <연분홍 치마> 분들과 정지영, 김미례 감독님도 오시겠답니다.

판화가 이윤엽 님의 판화공방과, 만화가이동수님의 캐리커쳐, 노순택, 한금선 님 등 사진가 분들 오시겠다고 합니다.

지구행동네트워크분들과 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 회원분들 함께 하고, 두 차례에 걸쳐 김진숙과 한진 투쟁을 지지하는 신문광고내주었던 하종강, 박준성 선생 등이 희망의 버스 승차를 권유하고 계십니다.

김세균 선생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서 교수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등 다양한 분들이 희망의 버스에 함께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를 위해 지금도 앞장서 싸우는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발레오공조코리아, 재능교육비정규직, 기륭전자 등 노동자 분들이 함께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분들의 참여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 버스는 다만 고공농성 150일째인 김진숙씨와 한진중공업 해고자들만을 위한 버스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버스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간절한 염원의 버스입니다.

모든 정리해고자들과 비정규직들의 절망을 딛고 우리 사회가 조금은 안전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웠으면 하는 희망을 담는 버스입니다.

무엇보다 즐겁고 유쾌한 버스입니다.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연대의 문화를, 그 기쁨과 환희를 나누는 버스입니다.

이 사회는 늘 우리에게 낙담과 무거움을 강요하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 밝을 것입니다.

부디, 내가 아니라도 하지 마시고, 누구라도 먼저 희망의 버스를 제안해 주십시오.

6월 11일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저 외로운 시대의 망루 밑으로 함께 달려가는 기쁜 꿈을 꿔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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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총파업 성사와 승리를 위한 현장활동가대회(2011.5.31.)

경기지역 총파업 성사와 승리를 위한 현장활동가대회

2011.5.31.(화) 19:00, 수원역 광장

 

 

여느 노동자집회와 달리 깃발은 없었다.

참여한 현장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깃발’이었다.

‘경기지역총파업 성사와 승리를 위한 현장활동가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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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집회에서 결의한 것처럼 경기지역에서 ‘지역총파업’이 성사된다면, 이는 한국 사회 대중파업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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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지역총파업의 ‘성사’ 그 자체가 총파업의 목표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의결 절차와 지침에 따른 파업 결의가 아닌 아래로부터 현장활동가들의 결의에 따른 지역연대파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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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현장활동가들의 절박한 정세인식이 그들을 이런 결의로 이끌었을 것이다.

더 이상 무기력하게 노조의 지침을 기다릴 수 없다는 자성이 그들을 나서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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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살인이다!”(쌍용차)

“심야노동으로 골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밤에는 잠좀 자자!”(유성기업)

“살인적인 등록금 인하해라!”(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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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현장활동가들이 먼저 공장과 사무실의 담벼락을 뛰어넘어 먼저 ‘지역’으로 모였다. 그리고 ‘지역총파업’을 결의했다.

이제 현장활동가들은 이 결의를 가지고 다시 공장과 사무실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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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시 공장과 사무실 밖으로 나올 때는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깃발이 되어, 공장과 사무실의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지역’으로 넘쳐날 것이다.

총파업투쟁 속에서 ‘현장’은 ‘지역’이 되고, ‘지역’은 ‘현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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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총파업 투쟁 성사와 승리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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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20주기, 박창수 열사도 ‘함께’ 기억하고, 91년 5월 총파업도 ‘꼭’ 기억하자

4.26. 강경대 20주기!

박창수 열사도 ‘함께’ 기억하고, 91년 5월 총파업도 ‘꼭’ 기억하자!

 

4월 26일, 강경대 열사 20주기다.

<경향신문>은 ‘강경대 20주기’를 특집으로 꾸미며, “등록금 투쟁서 비롯, 정권퇴진운동으로 달궈져”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리고 1991년 이후 학생운동의 변화 과정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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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 사건은 반노태우 정권투쟁의 시발점이었다.

1991년 5월 6일 당시 한진중공업의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가 옥중에서 의문사를 당하면서, 전노협을 중심으로 총파업투쟁의 불길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5월 시위와 총파업 열기는 노태우 정권의 강경한 탄압과 공안정국의 조성으로 급속히 냉각됐다.

이후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내에서는 ‘노선 전환’이 휩쓸고 지났다.

‘전민항쟁’ 노선은 팽겨쳐졌고, 선거 참여를 중심으로 한 ‘개혁’ 노선이 등장했다.

그리고 1991년 말과 1992년초에 걸쳐 ‘노동운동 위기논쟁’이 진행됐다.

위기 논쟁의 타겟은 1990년~1991년 두차례에 걸쳐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던 전노협의 ‘전투적 조합주의’였다.

1991년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노동자민중운동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1991년은 ‘청산’되고 ‘해체’됐을 뿐, 여전히 역사적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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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내용 가운데 1991년 상황을 정리한 내용이 있어서 덧붙힌다.(박성인,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95년 민주노총’ 출범까지 - 민주노조운동의 이념·노선의 역사적 형성 과정 ->,1995.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강경대 20주기, 박창수 열사도 ‘함께’ 기억하고, 91년 5월 총파업도 ‘꼭’ 기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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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5~6월 총파업투쟁과 92년 총선, 대선”

 

91년 들어 독점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더욱 심화되고, 그 부담이 노동자·민중에게 물가폭등, 집값폭등 등으로 고스란히 전가됨으로써 노동자·민중들의 생존권에 대한 위기의식은 더욱 고조되었고, 의원 외유비리, 수서비리, 페놀 방류 등 잇달은 부정부패와 맛물려 폭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총자본진영은 이러한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91년 상반기 노동자들의 임투를 계기로 폭발될 때 가져 올 정치적 위기를 직감하면서, 91년 초 페르시아만 전쟁을 기화로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총자본진영은 90년 5월 골리앗투쟁과 전국적 총파업투쟁의 경험으로부터,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노협의 정치적, 조직적 지도력과 결합되는 것을 저지하여 투쟁 전선을 교란시켜내야 할 필요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술적인 구도하에 그 탄압과 공세의 초점은 90년 하반기 대공장 노조민주화의 성과를 모아 ’90년 12월 9일에 결성된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조회의」에 맞춰졌다.

 

노태우 정권은 91년 2월 10일, 의정부 다락원에서 대우조선투쟁 지지방안과 91년 공동임투 성사를 위한 모임을 마치고 나오던 한진중공업 박창수 위원장을 비롯한 전노협, 연대회의 위원장들을 대거 연행, 구속하였다.

민주노조 지도부에 대한 사전 연행 및 구속이 91년 상반기 임투에 대한 탄압의 시작이라고 인식한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대우자동차, 한진중공업, 퍼시픽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운동탄압분쇄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91년 상반기 임투의 전초전은 투쟁을 촉발했던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단위사업장의 경제적 요구만을 가지고 타협적으로 끝내버림으로써, 전국적인 노동운동탄압 분쇄투쟁 전선을 형성해내지 못한 채 좌초하고 말았다.

이후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전열을 정비하여 전노협과 연대회의를 중심으로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여 상반기 공동임투를 준비해 나갔으나, 4월 26일 강경대 열사의 살해로 인한 계급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노동자계급을 다시 한번 전국적인 정치적 총파업투쟁의 불길로 이끌어 갔다.

 

강경대 학생 살해를 계기로 형성된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민주주의투쟁 전선’에 노동자계급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옥중 살해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그 분노는 단지 ‘도덕적인 분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분노는 87년 이후 누적되어 온 노동자계급의 ‘계급적인 분노’였고, 투쟁을 통해 축적해 온 ‘초보적인 정치의식’의 표출이었다.

노동운동진영은 5월 6일, 전노협과 업종회의 그리고 노동운동단체를 중심으로 「고 박창수 위원장 옥중살인 규탄 및 노동운동 탄압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대책위위원회」를 신속하게 결성하여, 안양,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노동자들의 규탄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업장투쟁으로부터 지역투쟁으로, 전국총파업투쟁으로 나아갔으며, “옥중 살인 진상규명”, “노동운동탄압분쇄”요구로부터 “노태우 정권 퇴진”을 넘어 비록 구호의 수준이긴 하지만 “민주정부 수립”, “민중권력 쟁취”를 요구하는 투쟁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또한 가두에서 현장으로, 현장에서 다시 가두로, 노동자의 독자적인 집회로부터 국민대회로,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시민들의 참여와 맞물리면서 노태우정권을 압박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반노태우 민주주의 투쟁 전선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기층 근로민중들의 투쟁을 자극하여, 교사들의 시국선언, 농민들의 군단위 투쟁을 촉발해 내면서, 민주주의 투쟁 전선의 계급적인 내용을 강화시켜 나갔다.

 

5월 7일 ~ 8일, 각 지역별 농성투쟁!

5월 9일, 98개 노조, 48,000여 노동자 동시다발 시한부 파업투쟁!,

360개 노조, 18만여 노동자 중식집회, 잔업거부, 동시퇴근!

5월 11일, 5만여 노동자, 옥중살인규탄 및 노정권퇴진 결의대회!

5월 18일, 16개 지역, 42개 노조, 16,200여 노동자 파업!,

20개 노조, 45,800여 노동자, 옥중살인 규탄 및 노정권 분쇄 2차

국민대회 참여!

 

5월 9일부터 5월 18일로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총파업투쟁은 학생 중심의 노태우정권 퇴진투쟁의 내용을 심화시키고, 전선을 확대시켰으며, 민주주의 투쟁 전선에 계급적인 숨결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5월 18일 강경대열사의 장례식을 계기로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는 「공안통치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로 전환되어 명동성당을 근거지로 투쟁을 계속해 나갔지만, 학생들의 급속한 전선 이탈로 명동성당 농성은 87년 6월의 명동성당 농성을 재현해내지 못한 채 고립되어 버렸다.

이후 박창수 위원장의 옥중살해 진상규명과 노동운동탄압분쇄를 요구하는 노동자투쟁만이 전선을 계속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전선마저도 6월 2일, 수도권, 영남권 노동자대회가 「전대협」 발족식에 묻혀 버리고, 기만적인 내각개편에 뒤이은 노태우정권의 반격과 파업사업장에 대한 대대적인 공권력 침탈 (대우정밀, 태평양화학, 세원, 인천의 동신공업, 부산의 제일교통, 대구의 파티마 병원 등)로 급속히 위축되어 갔다.

민주노조운동진영은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공권력 침탈 사업장의 상경투쟁을 통해 다시한번 투쟁 전선의 구축을 시도했으나, 6월 16일 ‘수도권 노동자규탄대회’의 조직화에 실패하면서 6월 24일 ‘상설연합 건설을 위한 민중운동 일선 대표자회의’, 6월 29일 국민대회, 6월 30일 ‘박창수 위원장 장례투쟁’을 마지막으로 ’91년 5~6월투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강경대 학생 살해를 계기로 형성되었던 ‘공안정국 종식, 노태우 정권 퇴진 범국민 민주주의투쟁 전선’은 강경대, 박창수, 김귀정, 김기설 열사의 죽음의 대가로 ‘노재봉 총리의 퇴진’이라는 정치적인 성과만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노태우 정권의 도덕적, 정치적 정당성은 크게 훼손되었고, 내각제 개헌 음모을 통한 장기집권 구도는 정치적인 타격을 받아 좌절되었다.

적어도 현상적인 결과는 그러하다.

그러나 91년 5~6월 투쟁은 그 내용에서 질적으로 심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단위현장에서의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의 개선 등의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매개로 하지 않더라도, 특정한 정세하에서는 타계급·계층과 더불어 민주주의투쟁 전선의 전면에 나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있고, 전노협, 업종회의, 노동운동단체가 결합한 「고 박창수 위원장 옥중살인 규탄 및 노동운동 탄압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대책위위원회」의 결성에서 보듯이, 조직적인 선진 대중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91년 5~6월투쟁을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90년 골리앗투쟁에 이은 전국적 총파업투쟁과 구별시켜 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91년 5~6월투쟁은 다음의 사실도 폭로해주고 있다.

민주주의 투쟁 전선에서의 노동자계급은 아직 ‘노동운동탄압분쇄투쟁’을 넘는 ‘노태우정권타도’투쟁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그 선진부분에서의 정치적인 지도력과 영향력이 광범위한 미조직대중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분의 지도력은 민주주의 투쟁 전선에서 기층 근로민중의 투쟁을 촉발시켜 낼 수 있지만, 그 투쟁 전선에서 정치적인 지도력과 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91년 5~6월의 정치적 경험은 노동자계급에게 두 가지 과제를 남겨주었다.

노동운동탄압분쇄라는 방어적인 수준을 뛰어 넘는 정치적인 전망과 지도력을 어떻게 획득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미조직 대중에 대한 정치적, 조직적 영향력을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가가 그것이다.

동시에 91년 5~6월 투쟁은 두 가지의조직적인 성과를 남겼다.

91년 10월, 전노협과 업종회의, 노동운동단체가 결합한 「ILO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의 결성과 91년 12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전국연합」의 결성이 그것이다.

 

92년 1월 현대자동차 상여금투쟁의 패배를 계기로, 노동운동위기론을 둘러 싼 광범위한 논쟁이 촉발되어,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조직, 투쟁노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전환이 주장되었다.

그 초점은 ‘전투적 조합주의’에 맞추어 졌으며,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진보적 노동조합운동론’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민주노조운동은 사회적 책임을 담보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민주노노운동은 여전히 ‘총액임금제’라는 새로운 임금억제정책과 고용불안, 그리고 노동악법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통일의 문제 - 계급적 단결의 문제-가 보다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92년 상반기에는 고도화되는 자본의 제도적, 정책적 탄압에 맞서 420여개 노조가 함께 「총액임금제 분쇄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투쟁 전선을 전국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그러나 92년 상반기 투쟁과정에서 모색된 노동자계급 내부의 통일·단결 투쟁의 기조는 대선투쟁 과정에서 무너져 버렸다.

변혁적 노동운동진영은 92년 11월, 전국 16개 지역의 50개 단체 대표자들이 모여 「노동법 개정과 민주대개혁을 위한 노동운동단체 공동실천위원회」를 결성하고, 민주대개혁을 위한 천만 노동자의 20대 요구와 정책을 제시하는 등 대선 시기의 공동실천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대통령 후보 지지운동을 중심으로 ‘비판적 지지론’과 ‘제한적 독자 후보론’, 그리고 ‘독자 후보론’ 등으로 분열하여 끝내 대선에 대한 통일된 방침을 세워내지 못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무능력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변혁적 노동운동세력은 민주대개혁에 대한 요구와 정책을 정치 쟁점화시키고 이를 중심으로 노동자대중을 결집시켜 가면서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지 못한 채, 후보 지지운동·득표운동에 매몰되거나 보수야당의 정치적 영향력 속에서 계속 동요·견인되어 결국 선거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을 분열시키고, 정치적으로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대선의 패배는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축적해 왔던 정치적 노동운동의 귀중한 성과를 한꺼번에 갉아 먹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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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이 크레인에 오른 까닭은?

김진숙이 크레인에 오른 까닭은?

 

'위(크레인)'로 오른 것은 '아래(노동자)'를 향한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지만, 그 '살인적 해고' 앞에서도 산자와 죽은자로 나뉘는 노동자들을 향한 것이다.

더 이상 '산자'와 '죽은자'로 갈라지거나 찢겨지지 말자고,

함께 살아남고 함께 싸워나가자고,

그래서 정리해고를 더 이상 용납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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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에 오른 지 벌써 100일이 됐다.

김진숙이 부른 '직녀에게'의 가사처럼,

김진숙은 '산자'와 '죽은자'를 온 몸으로 이어주는 오작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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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21세기 대한민국의 '눈물'-고 장자연(이동수 '만화사랑방')

21세기 대한민국의 '눈물'

 

이동수 '만화사랑방'

인권오름 제 241 호( 2011년 03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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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의혹과 자극적인 관심이 넘쳐나다가 사라졌던

한 여성 연예인의 죽음이

그녀의 편지들과 함께 다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시 알려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

혹자는 MB의 레임덕을 알리는 징조라는 둥,

그 반대로 그것을 막는 어용언론 압박용이라는 둥,

종편탈락한 방송사의 저항이라는 둥,

이런저런 음모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

극악스럽고 더러운 우리 사회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감춰진 모습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권을 희롱당하며 먹고 살기 위해 눈 질끈 감고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앞다퉈 뛰어가는 사회.

비정규노동자, 청소노동자, 해고노동자, 노예계약에 휘둘리는 연예인 노동자들...

그렇게 보면 그들은 모두 하나입니다.

 

언제까지 뒷담화로나 위로하며

'일용할 양식'에 안주하면서 달려가야만 할까요?

 

부디 고인의 죽음이 권력자들의 썩은 삶들을 도려내고

그들의 '행복하지 못한 눈물'을 닦아주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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