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상급과정간담회3]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상급과정 간담회(3차)’,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언제나 출발점은 ‘애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인가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논의를 하던지, 결국 다시 되돌아오는 지점은 ‘애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겠죠.

 

1,2차 간담회를 통해 애들의 상태에 대한 얘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3차 간담회(7.09.금.20:00)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얘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애들은 ‘하나’가 아니고, 다 ‘다르기’ 때문이겠죠.

 

‘무기력한 상황?’, ‘불안?’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지금 애들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초점을 한 두마디로 정리하면, ‘무기력’과 ‘불안감’입니다.

물론 각 집안마다 사정과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

 

“우리 애는 전입생이다. 그간 발도르프 교육 받아온 아이들은 주체적인 사고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애는 안그런 것 같다. ‘여기는 시험을 안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하겠어’라고 한다. 못한다는 것인지, 안한다는 것인지 --- 전학 오면서 ‘대학’ 보다는 주체적으로 살 기 바랬는데, 주체적이지 못해 걱정이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심각한 고민이다.”

 

“애들 사이의 개별적 차이(질적인 차이들)를 학교에서 개별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 일반학교는 10명만 건지고 30명은 포기하는데, 대안학교는 한 명 한 명 다 챙기는데 --- 가능하냐? 학교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라가면, 1년 재수하면 대학 갈 수 있느냐?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고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다.”

 

“학교에 보내면 주체적으로 잘 할 거라고 전제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이다. 개별 차이는 있겠지만, 뭔가 하기 위한 동기 부여가 뭘까? 시험도 하나의 동기 부여 계기인데---. 과제를 부과하는 것과 시험보는 것은 다르다. 개별 차이가 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개별 차이를 존중하면서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경쟁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만, 뭔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상황,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 줄 것인가? 학교 분위기가 경쟁을 터부시하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동기 부여를 해 주는 것도 없는 것 아니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상황이다. 온실 속에 있는 것 같다. ‘대학’도 아니고, ‘질풍노도’도 아닌 ---.”

 

“애들이 모드 전환을 안하려고 하고, 뭘 목표로 세워 나갈 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일반학교의 경우에는 시험이나 입시 등의 목표라도 있는데 ---. 학교도 모드 전환 안한 거 아니냐?”

 

이런 불안감은 집안 내에서 엄마, 아빠간에 이견 때문에 더 커지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간에 애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엄마는 애가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여행도 하고 --- 자유롭게 커 나가길 바라는 입장이다. 근데 아빠는 공부를 시켜야 되지 않나고 얘기한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 어디서부터 이런 이견을 풀어내야 할 지 --- 가정내에서도 ‘불안정한’ 느낌이다. 엄마는 입시와 상관없이 상급과정 가자고 하지만, 아빠는 EBS 수학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확신’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다. ㅠㅠ.”

 

‘자극’, 혹은 ‘동기 부여’

 

애들 스스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부딪혀 보려 하는 ‘역동성’”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다수 엄마, 아빠들은 지금 애들이 ‘뭔가 무기력한 것 아니냐’는, 뭔가 ‘자극’이나 ‘동기 부여’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와 처방들이 있겠지만, 간담회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사고치면 다른 친구들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애들 사이에 모델케이스가 없다. 비교 대상이 없다. 옛날에는 중학교 가면서 교복 입으면, 초등학교와 차이를 느꼈다. 형식 자체가 사고를 바꾸게 한다. 지금은 뭔가 ‘닫혀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과제는 텍스트안에서 하는 것과 텍스트안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부분으로 확산시켜 내는 것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확산시켜 내는 과제가 중요하다. ‘확산적 과제’가 많아져야 한다.”

 

대다수 엄마, 아빠들의 끝모를(?) 걱정과 우려에 대해, 지난 9년간 언제나 그래왔듯이, 보이지 않게 과천자유학교의 한 가닥을 담당해 오신 선 모 아빠께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로 그런 우려들을 조금이나마 불식시켜 주셨습니다.

 

“학교 졸업 전까지 어떻게 지낼 거냐? 졸업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졸업 이후에 본인이나 부모가 원하는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 못갈 수도 있다. 어떤 진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가? 학교 다니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뭔가? 애들이 의욕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그게 긍정적 모습이긴 하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개인별 시기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애들이 무기력해져 있을 때 도와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하지만, 안 될 가능성도 많다. 닥달하다가 망칠 수도 있다. 애들이 자율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것이 나중에 힘이 될 것이다.”

 

“애들이 자유롭게 살고,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뭔가 마련해줘야 할 것만 해줘도 되는가? 12년 과정,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너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지 말아라’라고 해도 애들은 잔소리로 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부모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 지? 학교 프로그램 마련하게 하는 것? 학부모가 어떤 계기를 만드는 것? 기다리는 것?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

 

과천‘자유’학교에 걸맞게, 애들이 스스로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게 해야지, 너무 닦달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셨다.

그래도 저를 비롯한 대다수 소심한 ‘중생(衆生)’인 엄마, 아빠들은 어떤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볼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노력은 해야된다고 다들 느꼈을 겁니다.

 

고차방정식?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차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모아서 정리하려고 하다 보니 뭐랄까 ‘1차 방정식’이 아니라 ‘고차 방정식’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상급 과정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고차 방정식’ 수준의 문제인데, 과연 우리가 그런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가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학교 제도적인 측면, 학교 운영의 측면, 상급교육 프로그램의 측면, 입시 문제와 검정고시 문제 ---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부등켜 안고, 우리의 역량만큼 문제를 풀 수밖에 없는데 ---.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차 방정식’을 푸는 방안은 ‘수학’도 필요하지만 ‘예술’도 필요하다 ---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는 우리들이고, ‘우리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풀어갈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 헉, 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을 썼네요.

예민한 문제일지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경지, 생각과 판단이 다르더라도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수 있는 역량, 뭐 이런 게 ‘예술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서로간 신뢰’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걸 소중하게 가꾸어나가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상급과정’과 ‘진로’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가기 위해 3차 간담회에서 제안된 내용을 다시 재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안된 내용들은 애들에게 상급과정에 걸맞는 자극과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서부터 학교의 제도적, 운영적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1) ‘1~8년담임과정’ 연속으로서의 ‘상급과정?’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로서 12년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와 동시에 ‘상급과정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년제를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상급과정에 접근하는 경로’와 ‘상급과정을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12년제에 접근하는 경로’가 현실에서 부딪힐 수 있습니다.

 

“1~8학년 과정에서의 교육 목표와 상급과정의 교육 목표가 다르다. 상급과정은 애들이 ‘사회와 만날 준비’를 하고, ‘지식 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8담임제 + 상급 카테고리인데, 지금은 담임과정 연속으로서 상급과정이 아니냐?”

 

“구조 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현재 체제는 담임과정의 연속 분위기이다. 행사 등을 볼 때 담임과정의 관점에서 상급학년을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경험 많은 나라의 경험을 도입할 수 있는데, 유럽의 경험은 12년간을 편안하게 --- 미국의 경우는 12학년 때 대학 입시 준비 --- 차이가 난다. 한국의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12학년까지 학교에 믿고 맡기자고 하기에는 불안감이 든다.”

 

“가장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담임과정과 상급과정이 달라야 한다.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 그렇지 못하다는데도 동의해야 한다.”

 

“달라야 한다. 학교 운영의 측면, 교육방식의 측면에서. 결국 아이들이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전제이고, 그렇다면 만들어줘야 하느냐? 스스로 만들어나가게 해야 하느냐?”

 

“아이들이 무기력하다는 진단에는 동의가 안되지만, 상급과정과 담임과정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운영, 구조적 측면 / 커리큘럼 / 상급과정에 대한 이해 --- 고민돼야 한다.”

 

“아이들 무기력, 동기 부여가 안되고 계속 꺽기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것이 학교 구조상, 운영상 문제라면 큰 문제이다. 과연 그런가?”

 

“학교운영의 문제와 애들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2) ‘상급과정’, 변화에의 요구들?

 

여러 수위의 진단과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참석한 모두가 동의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런 저런 고민과 단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 하나가 만만한 문제들은 아닙니다.

한꺼번에 풀릴 문제도 아닙니다.

잘 모르지만, 자칫 발도르프 교육 목표와 프로그램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진단과 제안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간담회’인만큼,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또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급과정에서는 학년 체제가 느슨해져야 한다. 전체 교육 과정이 폭 넓어져야 한다.”

“교사들의 상급과정에 대한 의식, 구조적 운영적 측면, 두 측면 다 있다. 상급과정 준비에서 커리큘럼 준비 수준에 한정된 것 같다. 상급과정에서 대학 가느냐 안가느냐는 부차적이다. 20살 이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태도, 방법, 경험을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에포크도 듣고 싶은 것 선택해야 한다.”

 

“상급 교사의 정체성도 구조적으로 분명하게 전환해야 한다.”

“저학년 시각으로 고학년을 규정하는 것은 안맞다. 담임과정과 상급과정이 달라야 한다. 9학년 담임이 12학년까지 가는 것은 담임과정의 연속이다. 상급과정은 멘토선생님 하면 된다.”

“상급과정 교사회는 교육 관련해서 독자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져야 한다. 자칫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무기력해질 수 있다.”

“운영, 구조상의 문제는 이미 분리되어 있는데 --- 담임과정이 상급과정 아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분한가?”

“담임선생이 상급과정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즉 담임과정으로는 상급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사회 회의록을 보니, 교사회에서 상급교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급 분과만 있을 뿐이다. 상급만 전담하는 교사도 일부분이라고 나와 있다.”

 

“전체학부모회 운영에서 한 달 두 번의 회의 중에서 한 번은 상급학부모회로 했으면 한다.”

“상급과정 반별 반모임은 없어져야 한다. 상급과정 전체 모임으로 해야 한다.”

 

“‘사회와 호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교사에게 제안했을 때, 교사가 학생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기다려야 한다. 너무나 받아먹어만 와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지켜보면 아이들이 때가 되면 성장하는가?”

“답답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제공해야 하는데 ---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

 

3) 입시문제,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입시문제에 대해 한 아빠가 ‘장독 뚜껑’을 열고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아빠는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것과 ‘장독 뚜껑을 열고’ 얘기하는 걸 참으로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대학 입시, 부모 각 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 아닌가? 학교와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일이 학교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학교가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접근 가능하다. 어느 애가 대학을 가려고 하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학 가야 하는데 --- 공부가 부족하다면 --- 공부하고 싶어할 때 어떻게 지도해줘야 하는가?”

 

“애들이 꿈도 희망도 없는 경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애가 의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 공부를 요청해서 관련 학부모와 의논해 봤는데, 기초를 잘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교에 미술 방과후 프로그램을 요구했는데, 안되면 개인적으로 선택해도 좋은지 물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해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애가 답답해 했다. ‘왜 절차가 복잡하냐? 자기는 급한데---엄마 맞어?’”

 

“과제를 내주는데 선생님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애들이 뭔가 과제를 집에서 계속 한다. 선생님에 대한 평가에서, 숙제에 대해 엄격하게 하면 ‘선생님답다’고 평가한다.”

 

“대학 입시 시험 보는 시기는? 대학을 선택하는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 12학년 마치고 바로 대학입시하면 애들이 힘들 것이다. 입시 문제, 한 번 더 논의해 보자. ‘장독 뚜껑 열고’ 논의해 보자.”

“검정고시 보는 시기와 12+1제 등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

 

“검정교시에 대한 학교 규정이 무너졌다. 그 다음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입시도 개별적 선택 가능성이 있다. 동의서 백번 써도 마찬가지다. 문서상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들이 ‘발도르프 교육 완성해 보자’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규정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8학년에서 상급과정 진학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역시 입시 문제는 ‘장독 뚜껑’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마냥 뚜껑을 닫아 둘 수만도 없습니다.

그러면 ‘개별의 선택’문제로 강제됩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이 있었습니다.

 

“입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얘기하자!”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애들 진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제안도 있었습니다.

 

“애들이 꿈과 열정을 못갖는 것은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부모들이 다양한 직업 정보를 애들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애들의 관심도 구체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간디학교의 경우, 한 학기에 1번 정도 특정 지역을 찾아가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 과천자유학교는 내부적인 커리큘럼 중심인 것 같다.”

 

“학부모들이 일일강사 풀을 만들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학부모들이 자기 직업 경험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자. 이에 대해서는 학교와 협의가 가능하지 않나?”

 

교육위원회에서는 그간 담임과정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해 왔는데, 2학기부터는 상급과정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라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급과정 간담회와 학부모회간 관계는 뭐냐는 제기에 상급과정 간담회는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간담회’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7.18.(일) 10:00, 학교 강당에서 젠녹 선생님과 상급과정에 대한 간담회가 있고, 이어서 14:00에 상급교사 대표의 제안으로 상급교사와 상급학부모간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상급과정 모꼬지’를 갖기로 했습니다.

일단 7월 25일(일) 14:00에 학교강당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1박2일로 야외에 나가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일정을 잡기가 만만치 않아서 이렇게 잡혔습니다.

 

3차 간담회 내용을 정리하면서 슬슬 걱정이 됩니다.

1~3차 간담회에서 쏟아져 나온 이야기들을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담아갈 것인지?

혹 이런 정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는 하지 않을지?

자칫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의 생각들이 전체 상급과정 학부모들의 생각으로 오해되지는 않을지?

아마 7월25일 모꼬지(?) 간담회에서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매듭짓는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간담회의 결론으로 ‘제안’할 수 있는 내용들을 걸러내는 것.

앞으로 어떤 절차와 경로를 따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불행히도

제가 다음번 사회를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ㅠ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과천자유학교 상급과정 두번째 학부모 간담회

‘상급과정 간담회(2차)’

 

회의 중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음 상급과정 간담회(7.9.금.20:00) 사회를 떠맡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허를 찔린 셈(?)이죠.

사실 7월9일에 선약이 있는데, ㅠㅠ --- 참석해서 사회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간담회에서는 1,2차 간담회의 연장선에서 계속 논의를 하자고 해서, 사회를 맡은 본인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지난 1,2차 간담회의 내용에 대해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간담회 내용은 메모를 못해서, 2차 간담회(6.25.금) 때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해 봤습니다.

 

1. 9~10학년 아이들의 상태

 

우리 애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상태에 대한 진단은 우려와 걱정이 다수였습니다. 물론 낙관하는 얘기들도 있었지만 ---.

 

“천방지축이다.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한다.”

“막연해 한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고민도 없고 ---”

“무언가 ‘힘’이 없음을 답답해 하는 상황이다.”

 

아직은 판단하기 조금 이르고 “11학년(고2)이 되야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시기”니 초조해 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안심’ 혹은 ‘확신’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들이 다수인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말이 조금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클 때를 되돌아보라.”

 

이런 말을 들으면 사실 뜨끔해지지만, 엄마, 아빠들의 마음이라는 게 그래도 자신들보다는 자식들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지라 ---

 

 

2. 9~10학년 학부모들의 판단과 태도, 바람

 

애들을 걱정하지만 결국 아이들보다는 애들에 대한 부모들의 판단과 태도, 욕심, 바람 등에 대해 어떻게 바라 볼 것인지가 더 문제입니다.

 

결국 부모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간담회 때 이런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애들은 자기 속도대로 간다.”

“애는 내버려두면 잘 크는 건데 ---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10년 뒤에 애한테 무슨 말을 들을까가 걱정된다.”

“자기 밥벌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애들에 대한 실날같이 가느다란(?) 믿음 역시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확신한다’고 하는데 그건 ‘확신’하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 생각해봅니다.

 

“애들이 안개가 걷히는 경험을 하게 될 거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바람도 있었습니다.

 

“미래를 두고 애들과 부딪혔으면 좋겠다.”

 

근데 애들은 알죠. 미래를 두고 부모들과 부딪혔을 때, 많은 경우 결국 부모 뜻대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 그래서 감추거나 피하거나 얼버무리거나 ---- 헉, 이건 제 경험이었습니다.

최 모 아빠 같은 경우는 본인이 자랄 때 결코 이렇지 않았을 거라 맹세코 확신합니다.

 

한 엄마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이런 얘기도 하셨네요.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3.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결국 본론은, 간담회를 하는 취지는, 애들의 ‘진로’ 문제와 ‘대학 입학’ 문제입니다.

여기서 조금은 예민한 문제가 있다는 걸, 그날 간담회에서 느꼈습니다.

‘진로 문제’=‘대학 입시’라고 생각하는 것.

즉 진로 문제를 대학 입시와 등치시키는 것에 대한 경계, 조심스러움 등이 표현됐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는 아니지만, ‘진로’ 문제와 ‘대학 입시’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날 나온 얘기를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별개이기 하지만 그래도 입시도 중요한데’라는 생각을 그동안 남몰래, 속으로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진로 문제와 대학 입학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진로문제는 삶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이고, 자기 삶의 힘을 길러 가는 문제이다.”

 

‘진로’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들이 조금 더 진전됐습니다.

 

“진로에는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뭘 할까?’이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킬까?, 즉 방식과 경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애들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애들이 ‘뭘 할까’를 결정해 나가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만이 아니라, 애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까지 고민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최 모 아빠로부터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라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목표만이 아니라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 경로 등 ----.

 

 

4. 방안들

 

간담회에 참가한 엄마, 아빠들이 모두 동의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과 판단들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애들의 ‘진로’ 문제와 관련하여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지금 정리한 것은 그 날 나온 이야기를 그냥 제 생각대로 재구성해 본 것입니다.

 

1) 내적인 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견디게 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체력’이 필요하고, 또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게 하는 에너지(힘)’가 필요하다.”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풍부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애들이 꿈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애들이 스스로 선택을 할 때, 잘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힘, 시련을 극복해 내는 힘. 이 힘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생활과 교육과 운동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생활이 몸에 베는 것, 현미와 채소 위주의 식사 습관을 갖는 것, 악기를 다룰 수 있고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장기전을 할 수 있는 베이스가 된다.”

 

아! 이렇게 정리해 보니, 그날 간담회에 참여한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이 애들의 지금 상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끝 모를 걱정을 하는 지도 ---.

소극적으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련을 견디고 극복해 내는 힘’, 좀 더 적극적으로는 ‘꿈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아이들이 상급과정에 가져주길 바라는, 그리고 그를 위해 엄마, 아빠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학교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엄마, 아빠들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은 낙관적일 수도 있고, 또 조금은 더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봅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2) 학습, 혹은 지성을 갖추는 일

 

상급과정에 들어오면서 엄마, 아빠들이 애들의 성장, 진로와 관련하여 가장 관심을 갖는 지점이 ‘학습’ 혹은 ‘지성을 갖추는 일’일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진단과 방안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9~10학년은 지성이 깨어나는 시기이다.”

“애들이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저학년 때의 감성적 교육 중심이 고학년 때도 그대로 지속되는 분위기가 문제다. ‘열심히 공부해야 돼’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지적인 깨우침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은 모든 부모님들이 바람일 것입니다. 아마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바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제는 학벌사회인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대학 입시’라는 족쇄가 우리를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실 ‘지성’을 갖추는 것과 ‘대학 입시’는 별개의 문제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민들도 이야기됐습니다.

 

“비행기가 뜨려면 활주로를 달려야 한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 영, 수는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근데 이런 생각은 학교의 교육방침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수학은 뒤처지면 힘들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시경쟁이 모든 교육을 규정하는 이 현실에서.

입시에서 성공과 실패가 아이들의 삶과 미래를 규정하는 이 ‘학벌사회’에서.

결국 우리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맞딱뜨리고 넘어서야 하는가?

상급과정 간담회는 그런 모색을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개별적이 아닌, 통으로 ‘함께’ 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3) 방안들, 단상들, 제안들

 

몇 가지, 이런저런 방안들이 제안됐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을 가지고 3차 간담회에서는 좀 더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어디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제안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찾지 말고 학교시스템 내에서 내용을 밀도 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에서 외부교육 필요한가? 학교의 학습에 충실하면 전환할 때 힘이 생긴다.”

“학습 내용은 학교 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충실히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 메꿀 수 있는 방안으로 학교에서 방안을 마련하는 것, 학부모들이 학습도우미 등을 만드는 방안, 애들끼리 함께 풀어낼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

“일반 학교와 비교했을 때 과천자유학교에서 교과과정이 빠지는 것은 없다. 문제는 일반학교의 경우에 고2까지 진도를 마치고 고3때는 시험 보는 스킬을 훈련시킨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

“더딘 아이들에 대해서는 ‘배려’가 필요하고, 문제 아이들에 대해서는 치료교육이 필요하다.”

“잘 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애들에 대해서도 배려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는데 만약 학교의 현실이 그것을 채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일차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학교 내적으로 이 문제를 얼마만큼 밀도 있게 방안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가입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 ‘학교 내적’이라고 하면,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서로 어떻게 맞물려가면서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점과 관련하여 이런 고민도 표현됐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분위기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인데, 불필요한 ‘오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제안들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철학을 독자적인 과목으로 가르쳤으면 한다.”

“책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문법, 문장구성, 논리 등.”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상급과정과 담임과정이 분리되어야 한다. ‘따로 또 같이’가 필요하다.”

 

 

5. 마무리하며

 

3차 간담회 사회를 맡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간담회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언뜻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괜히 그날 나온 이야기의 풍부함을 제약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가?

다른 엄마, 아빠들은 걱정이 안되는데, 특히 최 모 아빠가 걱정이 됐습니다.

시시각각 호시탐탐 시비를 걸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이런 정리가 그 빌미를 주는 건 아닌지 이 글을 정리하면서도 계속 걱정이 됐습니다.

 

다음으로 우려가 되는 것은 고백하건데 제가 발도르프 상급과정에 대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걱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런 건 이미 책에 다 나와 있다며 ‘공부 좀 해라’고 할 때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어느 뒷풀이 자리에서 최 모 아빠로부터 ‘공부 안한다’는 핀찬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 마음이 조금은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정리하면서 이런 각오도 새롭게 해봅니다.

 

“상급관련 책도 빠른 시일 내에 꼭 봐야지.”

 

그럼 9,10학년 엄마, 아빠들, 금요일(7.09.) 오후 8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0.7.01.

9학년 현이 아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어릴 적 제사나 명절 때마다 어른들이 숨죽이며 증언했던 4.3을 떠올렸다.

80년대 초반, 선후배⋅동료들과 4.3에 관련한 자료를 구해 토론하고, 연구하고, 분노했던 4.3이 다시 기억 저편으로부터 생경하게 떠올랐다.

지난 5월16일, 모친의 49제를 마치고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공원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다가 온 것은 과거의 ‘기억’이었다.

그것은 ‘다랑쉬굴에서의 학살’에 대한 기억이었고, ‘숨막힘’과 ‘공포’의 기억이었고, ‘분노’와 ‘절망’의 기억이었다.

4.3은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고, 셋아버지의 ‘행방불명’이었고, 아버지의 ‘가난’이었고, 우리 모두의 ‘숨죽임’이었다.

 

 

사실 90년대 초반 이후, 나는 4.3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어둡고 끔찍한 기억이 싫었고, 숨막힘이 싫었고, 그 고통과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90년대 후반쯤이라고 기억한다.

4.3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이 한창일 때, 학술토론회를 마친 뒷풀이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4.3은 더 이상 학살과 주검이 돼서는 안된다. 4.3이 더 이상 패배의 기억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4.3은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의 진전만큼 밝혀질 것이다. 역사의 진전만큼만 4.3은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서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 그림’ 가운데, 한라산을 배경으로 제주도민들이 밝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림을 가장 좋아했다.

해방 직후 제주도민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신들의 힘으로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꿈이었을 거다.

진정으로 ‘해방’된 세상을 스스로 직접 만들어 가야하고 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거다.

 

 

어쨌든 한 매듭이 지어졌다.

2003년 ‘4.3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했으며, 방대한 4.3평화공원이 만들어짐으로써 한 매듭 지어졌다.

50여 년간 ‘없었던 역사’, ‘억울한 죽음의 역사’는 이제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한 매듭됐다.

 

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위령제단에서 13,000여개가 넘는 4.3희생자 명패 가운데 할아버지와 셋아버지의 명패도 있었다.

이제 모두 ‘학살’과 ‘공포’의 기억을 잊고 편히들 쉬시라.

 

 

4.3평화공원을 나서면서 지난 20여 년간 제주를 잊고 제주를 떠나고자 했던 나의 ‘의지’도 그곳에 묻고 나왔다.

4.3 당시 ‘해방’을 꿈꾸었던, 당시 제주도민들의 꿈, 그 해방을 향한 열망만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나섰다.

그리고 4.3평화공원을 뒤로 하고 달리는 자동차에서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며, 이런 상념이 언뜻 스쳐간다.

 

“제주도는 자연이 역사를 압도하고, 그 자연을 거대자본이 장악해 가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