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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국가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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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설명이 부족했나 봅니다.

우리는 구소련의 사회체제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적소유가 철폐되었다고 보고(논란의 여지는 좀 있습니다만) 국유화된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겁니다. 1917년의 혁명이 많은 것들을 바꾸었습니다. 임금-자본 관계를 철폐한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였습니다. 시점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상품시장과 자본, 노동시장 철폐 등이 그 내용에 포함하는데 님께서 말씀하시는 노동시장은 사실상 그 이후에 새롭게 탄생한 노동시장으로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자본주의에서의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형성에 필요한 노동시간 혹은 일상적으로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규정합니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그것을 논증합니다만 사실상 그 노동가치는 일정한 사회의 정치적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맑스가 분명히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단순하게 경제적인, 즉 시장에서만 결정되지는 않는 부분입니다.
요즈음의 학계에서의 정설이나 제 생각은 노동가치크기는 생산-착취관계, 즉 계급적 위치관계에 따라 가치를 결정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사람들은 단순히 시장가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노동시장이 소련에서 존재하였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익히 알고 계시듯이 자본은 화폐가 쌓여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본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만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본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는 노동의 포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이 프롤레타리아를 양산하고 그들의 산노동을 계속적으로 쌓아나가는 거지요.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15~18세기에 걸친 축적을 통해서 화폐시장이 만들어지고 뒤이어 노동시장도 만들어집니다.(노동시장과 화폐시장이 동시에 생겨났다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노동의 포섭과정은 봉건제와 노예제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끊임없이 부르조아적인 관계로 재편하는 역사적인 과정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소련은 이런 과정이 없습니다. 
노동을 포섭하는 것은 제도적 장치이지 자본이 아니고 노동가치를 결정하는 것 또한 제도적 장치로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련에서의 자본 대신에 군림한 제도적 장치라는 것은 국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료는 계급이 아닙니다. 통제권과 소유는 완전히 다른 거지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라고 말할 때는 굉장히 협소한 시기를 지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경제학비판 서설에서 맑스는 18세기부터라고 언급합니다만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견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3세기 정도부터도 은행이 있었고 그때부터 대부자본까지도 등장하게 됩니다.
18세기까지 엄청난 양의 자본축적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거의 전부 상업에 투자되고 18세기 중엽에 가서야 본격적이 산업자본이 탄생됩니다.

이 산업자본이 우리가 말하는 자본입니다.

아리기 같은 아날학파들은 12~14세기서부터 왈러스타인은 16세기쯤으로 자본주의의 발흥시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맑스는 18세기라고 했을까요? 맑스는 그때부터 임금-자본 관계가 확립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노동시장이 그때부터 광범위하게 생깁니다. (이에 대해 브로델은 13세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특별케이스라고 보면 됩니다)

소련에서의 노동시장이 자본주의의 노동시장과 이처럼 다른 것은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가 혁명으로 말미암아 많은 부분이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노동-자본의 고리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는 사회주의에서 금융부문의 국유화와 신용시스템의 사회적 관리를 주장하지만 화폐를 없애라고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수행은 자신의 논문에서 사회주의에서도 화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논증합니다. 노동증서가 화폐가 아니라고도 논증하지요.
맑스가 주장하는 것을 종합해보면 사회주의에서는 자본주의의 적대적 관계만 정리해도 성공하는 것입니다. 소위 노동을 포획하는 자본을 국가가 관리하는 겁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시장을 모조리 없애고 사회주의 승리선언을 하지요. 저는 이것을 과잉이라고 부르겠습니다.
13세기 노동시장 혹은 그 이전 로마의 군대에서 봉급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이 자본관계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듯이. 소련에서의 노동자들은 화폐, 노동증서 혹은 소비재 등을 받았겠지요. (사실 관계는 추후에 살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어진 자본은 당연히 생기지 않는데요. 이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자본이 실재하려면 노동의 잉여가치가 자본가에 의해 전취되고 그것이 화폐로 교환되어야 합니다만. 이러한 교환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자본가도 물론 없었지요.

잉여가치가 화폐로 바뀌고 그것이 은행을 통하여 투자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잉여가치, 즉 착취는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도 착취는 존재했지만 자본이 생기지 않았지요. 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소련은 봉건적 관계나 노예적 생산양식은 아닙니다. 노동자가 노예와 다른 것은 첫째 주인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즉 자유계약에 의한 노동판매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노예가 아닌 거지요. 그러므로 이것을 새로운 사회구성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사회구성체가 되기 위해선 두 가지를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가 비가역성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점점 사회주의로 발전되어 가는 생산관계의 전개, 발달과정에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도 역사적인 어느 시점부터 하나의 비가역적으로 발전하는 관계가 됩니다. 하지만 혁명을 거친 소련에서의 비가역성은 처음에는 찾아볼 수 조차 없었습니다. 더욱이 자본주의 열강과 소련내부에서 청산되지 않는 부르주아 계급이 존재하는 한 사회주의는 이제 시작한 단계로 당연히 가역반응으로 거꾸로 갈 수 있는 겁니다.
둘째는 역사 이행기에서의 변혁의 주체, 즉 노동자가 자기 해방을 완결하기 위한 계급으로 성장하였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번째 비가역성을 추동하는 유일한 동력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혹은 주체로 성장한 노동계급일 것입니다. 이 주체는 비가역반응으로서의 혁명을 완성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련과 중국이 이러한 우여곡적 끝에 다시 자본주의로 되돌아간다고 하면 그것이 과연 새로운 사회구성체라고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저의 딜레마입니다. 이러한 혁명의 지난한 과정은 착취의 철폐, 노동자의 자기해방으로 귀결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련을 (국가)사회주의라고 불러주기도 만만찬습니다. 그래서 전 기존의 토니클리프의 의지하지 않는 새로운 국가자본주의를 말했던 것입니다. 토니클리프는 자본론의 가치론 뿐만 아니라 가격과 가치의 관계 등등 무수히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국가자본주의는 토니클리프의 도로아미타불식 국가자본주의랑 전혀 다르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음의 몇 가지는 우리의 토론 과제일 듯합니다.
1. 내전과 생산력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열강의 압력이 착취를 강요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식은 아니어야 하며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레닌과 볼셰비키의 오류와 레닌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고찰해야 합니다. 
2. 더욱이 소련의 문제를 스탈린 개인의 오류에서 찾는 듯한 느낌도 완전히 정리 해야 합니다.
3. 소련은 사회주의체제를 잠시나마 유지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서구의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 즉 당시의 독일에서의 혁명이 불발로 끝났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일국 사회주의가 실패한다는 식은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각 국가마다 불균일하게 발전되며 정치적 정세나 역관계 등이 다양하므로 일국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일국사회주의론은 폐기되었다고 하는 결론은 아무도 먼저 혁명을 시도할 수 없게 만드는 반실천적인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두서가 없는데 답변이 되었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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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 사회주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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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 사회주의론 – 논쟁을 정리하며
                 
맑스주의에서는 사회구성체를 하나의 완전한 자기완결적인 사회체제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도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있으며 동시에 봉건적인, 심지어는 노예제적인 요소도 동시에 잔존합니다. 자본주의라고 말할 때에는 사멸해가는 봉건적인 요소와 만개해나가는 자본주의적인 요소의 통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요소의 강화와 와 사회주의적인 요소의 쇠퇴 혹은 약화로 귀결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1917년의 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정치권력의 획득이 하나의 사회구성체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1917년을 시점으로 러시아가 사회구성체로서의 사회주의이다라고 규정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사회구성체의 제일 중요한 요소는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주의의 요소가 강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책에서는 일정한 시점을 사회주의 혁명의 시작이라고 기록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며 과도기의 특성상 그 시점을 잡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요소의 도입의 방법과 정치권력의 성격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그것이 진정으로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중의 자발적 참여를 담보하는 민중혁명의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민중의 자발적 참여가 정치체제의 전복 이후의 사회주의적 제 요소의 도입의 관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초기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소비에트(코뮨)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중자치제로 정의한다면 민중의 배제는 곧 자본주의적 대의제에서 한치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반면에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특징은 민주적 계획경제와 자본의 국가적 통제, 관리, 그리고 생산수단의 공유일 것입니다. 중요한 생산수단이 국유화 혹은 공공화 되겠지만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요소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인데 예를 들면 중소기업, 소상품생산 기업도 존재할 것이며 부농도 존재할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포함한 민주적 계획경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소련의 70여 년을 조금 상세히 들여다 보면 당시의 소련 사회는 사회주의적 구성요소를 많이 도입했습니다. 계획경제와 자본의 국가적 통제,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회주의적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척도로 도입 과정이 민주적인가 하는데 달려 있을 테지만 러시아는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비민주적인 방법도 자연스럽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민주적 방법으로 회기 하였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집산화가 완전하게 자발적이지 않았다는 점과 대규모의 숙청을 했다는 점이 스탈린의 최대의 실수였지만 이러한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경제는 자본주의적 무개념 경제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집산화는 부농과 빈농의 계급투쟁을 동반했고 결국 빈농을 중심으로 집산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노후연금과 같은 정책은 스탈린 시대에 도입되었습니다.  생산수단이 더 이상 상품으로 거래되지 않는다는 스탈린의 선언 또한 옳았습니다. (주1)  러시아에서 구축된 관료제에 집착해서 20년대 후반을 반혁명의 시점으로 잡는 것은 사실 사회구성체 분석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관료들을 계급에 기생하는 계층이라고 불렀던 트로츠키의 다소 격앙된 주장이 이번에는 타당하게 보입니다. 혁명시점이야 1917년이겠지만 결정적인 사회주의 요소의 획득은 스탈린과 관료들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과도기적 체제였습니다. -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겠지만 - 굉장히 불안하며 언제든 가역반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체제였습니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스탈린 체제에서 비록 스탈린의 맑스주의에 대한 조야한 이해방식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합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70여 년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불연속지점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사회주의 사회구성체로 봐 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러시아의 사회주의 체제는 결국 자본주의 요소의 강화와 사회주의적인 요소의 쇠퇴 혹은 약화로 귀결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결과였습니다. 러시아 민중이 싸워야 할 대상은 러시아 내부의 관료체제로 대변되는 반혁명적이고 비민주적인 요소와 더불어 자본주의 제 국가들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열강과의 전쟁의 위험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하나의 악성 종양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련내부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축소될 수 밖에 없으며 항상 계급투쟁의 여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사회주의화가 완료 될 때까지 적대적인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둘째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국가주도형 착취경제가 되는 것은 전쟁에 의해 피치 못할 결과이겠지만 전후복구 후에도 계속된 비민주적 사회체제와 더불어 개인숭배와 같은 것은 과도기적이라고 말하기에도 사회주의 체제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요소입니다.
지나치게 짧았던 시기에만 존속했던 사회주의 경제시스템, 여전히 남아 있는 자본주의적 제 요소, 자본주의 세계열강들. 무엇보다도 1965년 국영기업의 독립채산제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즈음부터 생산 수단의 사유화가 정책적으로 도입됩니다.(주2)  이것이 계급투쟁을 패배를 알리는 조종 이었을 겁니다.
셋째 주지하다시피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제적인 제 관계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소련이 사회주의라고 했을 때에는 그것의 경제적 제관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부구조도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치체제는 비민주적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스탈린뿐만 아니라 레닌의 혁명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대목입니다. 계급=당=국가 라는 식의 발상이나 당의 무오류성은 본질적으로 비맑스주의적입니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정치제제인 자유주의적 의회민주주의로만 다룹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제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레닌은 사회주의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이론적 연구의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소비에트에서의 삼권분립의 포기, 1인1표의 포기 등이 대표적인 레닌의 비민주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착취체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혁명과 더불어 시작한 끊임없는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후에도 여전히 러시아는 착취체제였으며 비민주국가였습니다. 전후 복구와 함께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구하지 않았던 것이 어찌보면 가장 커다란 반혁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러시아의 사회성격을 사회주의라고 부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주3)를 의미한다 면 더욱 그러합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반드시 불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것이 현재로는 이미 자본주의로의 회기에 성공한 러시아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주1.  스탈린의 정책이 일면적으로만 고찰되면 트로츠키가 마치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권력욕의 희생양이 된 것처럼 이해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회를 빌어 말하겠습니다.
주2.   이것을 코시킨 개혁이라고 하는데 만약 러시아에서 반혁명이 있었다고 한다면 직접적으로는 코시킨 개혁일 것입니다.
주3.  맑스주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곧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의미합니다. 혁명이 단지 정치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생산관계의 질적 변혁을 뜻하듯이 독재는 당의 독재가 아니라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에 대한 독재를 말하므로 그것이 사법적 체계나 민주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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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

 

금지구역은 오래전에 혜성이 떨어졌던 곳으로 거기에는 소원을 풀어주는 비밀의 방이 있다고 한다. 그 방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진정한 소원이 실현된다는 것인데 그 방을 찾았던 고슴도치라는 사내가 비밀의 방을 찾아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살하고 만다. 그가 비밀의 방을 찾은 목적은 아픈 동생을 살려 달라고 하는 소원 때문이었는데 정작 동생은 죽고 자신은 벼락부자가 된다. 그의 무의식 속의 진짜 소원은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1]

 

인간의 욕망은 이렇게 미로 그 자체이다. 자신의 숨겨진 욕망조차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디 욕망뿐이랴. 자신이 음치인지 언치인지 바보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살아왔지만 정작 그 비밀의 방에 들어가면 고슴도치처럼 벼락부자가 되고 미녀들에게 둘러 쌓인 나 자신을 발견 할지도 모른다. 이 심연과 같은 내 마음속의 욕망이 내 의식의 소원과는 한참을 멀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거 같다. 타르코프스키는 인생은 미로이며 인간의 마음 속은 더욱 더 깊은 미로라는 것을 느린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이 거리에 주목한 사람들이 꽤 있다. 프로이트와 라깡, 그리고 지젝과 같은 프로이트-맑스주의자들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이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거리는 왜 생기는가?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어떤 선배가 안기부에 끌려가서 한참을 있다가 나와서는 정신병을 앓았었다. 이 선배의 약혼자가 몇 년간을 그 선배를 보살폈는데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증이 있던 그 선배 때문에 쉴새 없이 집을 옮겨 다녀야 했다. 용하다는 의원들은 다 만났지만 그 선배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는데 훗날 그 약혼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신병은 기본적으로 불치병이야. 정신분석학이 맑스주의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정신병의 어떤 처방도 불가능한 것 같아.”

당시만 해도 라깡주의나 프로이트-맑스주의는 국내에서 소개되지도 않았던 터라 무심코 그 말을 흘려버렸고 1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금 그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라깡에 의하면 의식과 무의식간의 거리는 주체를 찾아가는 어떤 여정 같은 것이다.

무의식은 인간이 주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한다. 이 무의식이 표상체계에 의한 것이라면 결국 무의식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무의식에 침잠하고 덕분에 내가 무엇을 소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존재가 된다. 라깡을 충분히 유권 해석하면 자본주의의 허위에 기반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한 이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간극은 좁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혼녀의 진단은 정확한 것이다. 이 간극은 그 인간이 사회주의자이든 말든 노동조합 간부이든 말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여긴 예외가 없고 예외가 있다면 병리적 문제뿐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을 만드는 표상체계는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어떤 개인이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르는 것을 표상체계를 통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대중적인 표상체계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어체계나 대중적인 표상체계 등의 사회성은 무의식이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자본주의 하에서의 무의식과 의식의 간극은 혁명을 통해서만 메워질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라깡은 그리 생각 안 하겠지만 말이다. 그 선배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질병이다. 이 병은 필연적으로 혁명을 요구한다.

 

라깡은 인간의 주체화는 동일시의 결과물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 보다 더 단순하다. 기존의 질서(자본주의)는 인간들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별로 관심없어 한다. 자본주의 체제속으로 노동을 포섭하는 것은 제도장치의 도움을 받는 폭력의 묵인이기 때문이다.

 



[1]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나는 정작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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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를 보고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

감독: 대니 보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것은 온통 비극뿐이다. 어느 누군가가 백만장자이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숱한 누군가가 자말과 살림의 형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자말과 살림의 삶은 필연적이다. 자본주의에서 누군가는 백만장자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빈민가의 아이들이 된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백만장자이고 노동하는 이는 빈민이 된다. 백만장자는 노동하지 않고 자말과 살람은 노동하고 리티카처럼 거리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모든 춤 추는 자와 노동하는 자는 그렇게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판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부패함이다.

 

슬럼가에서 자라난 자말과 살림은 쓰레기를 뒤집고 살아간다. 내가 사는 용인 어디에도 항상 방학이 되면 굶는 아이들이 있다. 자말과 살림이 거쳐간 그 쓰레기장에서의 모습은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이다.

자말은 어릴 적 같이 쓰레기를 파던 소녀를 그리워하며 그 소녀를 찾기 위해 백만장자 퀴즈쇼에 나간다. 그녀가 그 퀴즈 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TM센터의 차 나르는 보조라는 자말에 대한 소개가 있자. 사람들과 사회자는 조롱한다. 몇 문제나 맞출까? 그들은 자말이 한두 문제를 풀고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말은 그의 친구들이나 형과 같이 학교를 나간 적이 없고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며 책을 읽을 시간은커녕 글자도 배우지 못했다. 가난한 그의 삶은 어머니를 잃고 형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게 만든다.

방청객이나 사회자가 볼 때 그는 현재가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다. 이 소년은 그들과 다르다. 계급적으로 다르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정규교육을 받고 빈민소굴과 쓰레기더미 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어쩌면 모르고 사는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된다. 보통의 정규교육, 아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5살짜리도 풀 수 있는 문제를 자말은 풀지 못한다.

 

: 인도의 국가의 문양에는 세 마리의 사자가 있습니다. 그 아래 적힌 구절은 무엇일까요?

A: 진실의 승리 B: 거짓의 승리 C: 유행의 승리 D: 돈의 승리

 

다른 어려운 문제들은 잘 풀면서 이 문제의 답은 모른다. 그의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진실이 승리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을는지도 모른다. 자말은 챤스를 사용해서 간신이 그 문제를 통과한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자본주의는 결코 해피엔딩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도의 자말이 있기 전에 한국은 난지도가 있었다. 19세기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에 하루 18시간씩 일하는 12살짜리 아이들이 있었고 지금 이 시간의 아프리카나 남미의 19세기 형의 가혹노동이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자본주의는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는 그런 세계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랜 만에 괜찮은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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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에서의 ‘소외’의 개념에 대하여

맑스주의에서의 소외의 개념에 대하여

 

소외(Entfremdung)라는 개념은 자주 다양합니다. 소외는 개인을 대상을 삼을 수도 보편적 인간을 대상을 삼을 수도 있으며 감정적이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용어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맑스, 헤겔 이외에 포이에르바하, 루소나 베버, 하이데거, 싸르트르, 루카치도 에리히 프롬 등과 더불어 까뮈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대부분 뻔질나게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소외가 담고 있는 의미의 폭은 무척이나 넓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헤겔은 소외라는 개념보다는 외화(Entnaußerung)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의미적으로는 비슷합니다. 단지 소외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의미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맑스는 소외라는 개념을 초기저작에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지극히 헤겔적인 어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상품들을 보다 많이 창조하면 창조할수록 더욱더 값싼 상품으로 된다. 사물 세계의 가치 증식에 인간 세계의 가치 절하가 정비례한다. () 노동의 생산물은 하나의 대상 속에 고정된, 사물화된 노동인바, 이는 노동의 대상화이다. () 대상화는 대상의 상실과 대상에 대한 예속으로서, 전유는 소외로서외화로서 나타난다. () 대상의 전유는 너무나 심하게 소외로 나타나서, 노동자는 대상들을 보다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더욱더 적게 되며, 더욱더 그의 생산물의, 즉 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 노동자가 더 힘을 들여 노동하면 할수록, 그가 자신에게 대립되도록 창조한 낯선 대상적 세계는 더욱더 강력해지며, 그 자신, 즉 그의 내적 세계는 더욱더 가난해지며, 그에게 그 자신의 것으로 귀속되는 것은 더욱더 적어진다.

() 국민 경제학은 노동자와 생산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고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의 본질 내부의 소외를 은폐한다. 틀림없다.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그것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움막집을 생산한다. () 노동의 외화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 노동은 어떤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그의 노동 바깥에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 외적 노동, 즉 그 속에서 인간이 외화되는 노동은 자기 희생의 노동, 고행의 노동이다.’[1]

 

 

인간은 자연 속의 존재입니다. 동시에 인간 자신의 외부세계, 자연을 대상으로 노동하여 무엇인가를 생산합니다. 헤겔은 인간이 자연을 대상으로 생산물을 생산하는 이 과정을 외화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사용(투영)하는 것, 즉 내 힘을 바깥으로 내미는 것을 외화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생산물(대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에게 속한 것입니다. 생산자는 자신의 생산물, 즉 대상이 나에게 낯선 대상입니다. 여기에서 소외가 발생합니다.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은 이렇듯 소외된 노동입니다. 사적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원인입니다. 즉 소외는 역사성을 가진 개념입니다.

 

<경철초고>1941년에 쓴 맑스의 박사 학위논문인 <데모크리토스롸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제외하면 맑스의 가장 젊은 시절의 단행본이었습니다. 맑스는 약관의 나이로 경철소고를 집필하면서 이 원고에 전혀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유물론적 변증법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이 원고는 헤겔에게 대단히 의존적입니다. 맑스는 이 원고를 끝까지 완성조차 하지 않았고 1932년에야 출판되는 원고입니다. 다시 말해서 출판되기를 꺼려했다는 거지요. 맑스도 사람인 이상 인식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터인데 일부 맑스를 절대시하거나 맑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은 <경철초고>의 개념, 특히 소외론을 절대시합니다. 소외론은 맑스주의 철학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잘 드러내 주는 개념임에는 틀림없으나 소외론을 전개한 <경철초고>에서의 소외론은 헤겔의 사변적인 방법을 그 전개에 도입하므로 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소외론의 좋은 측면의 의미를 반감시킵니다.

 

헤겔은 소외를 외화, 대상화와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논리를 전개합니다. 부정이라는 개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외 개념은 외화, 대상화 같은 몰시간적 개념이 아니며 반대로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무차별적으로 사용합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자연(대상)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형시키며 자연을 지배하는[2] 존재입니다. 이러한 동물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노동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단지 삶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필연적으로 소외된 노동이며 소외된 노동은 인간이 단지 생존을 위해서만 노동하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소외된 노동은 (1) 인간으로부터 자연을 소외시키고 (2) 자기 자신, 즉 인간 자신의 활동 기능, 생명활동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므로 이 노동은 유()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킨다. ……(3)…… 소외된 노동은 인간으로부터 자신의 육체, 외적 자연, 인간의 정신적 생활 그리고 인간적인 삶을 소외시킨다. …… (4) 결국 인간이 자기 노동의 산물, 자기 생명활동, 자기의 유적 생활로부터 소외되는 데서 초래되는 직접적인 결과는 인간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이다. ……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유적 생활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명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그리고 또 양자가 다같이 인간 생활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자기 자신과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모든 자기소외는 인간이 타인과 자기 자신, 그리고 자연 사이에서 가정하는 관계에서 나타난다[3]

맑스주의에서의 소외는 이와 같이 역사적인 소유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맑스는 헤겔처럼 대부분 외화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4]

예컨대

인간은 상품, 화폐, 자본의 형식으로 자신의 경제적 행위의 산물들을 소외시키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 법률, 사회제도 등의 형식으로 자신의 사회활동에서 얻어진 산물들을 소외시킨다’.

라고 쓰면서 소외를 헤겔처럼 외화라는 개념과 동일시 합니다.  

 

맑스는 <경철초고>에서 소외라는 단어를 일관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헤겔적 의미로만 사용하며 극히 일부분은 심리적인고 감정적인 상태를 일컫는 의미로도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맑스는 <경철초고>에서 인간의 노동과 그것의 소외를 역사적으로 파악한다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노동 그 자체의 성격으로 파악하기도 하는데 즉 인간의 본성에 의해 노동은 자신의 생산물을 소외(생산)시킨다는 헤겔식[5]의 표현이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미에 사적소유가 인간노동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호작용하기도 한다라고 적어놓기도 합니다.[6] 알튀세르가 <경철초고>의 서평에서 맑즈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맑스라고 평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맑스가 사적소유가 필연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대상화시키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노동 자체의 본성에 의해서 탄생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철초고의 앞의 여러 장에서와 문맥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앞의 여러 장들의 국민경제학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의식[7] 때문에 각 개념들간의 연관을 철학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맑스는 소외개념이 이 문제를 푸는 단초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옳았습니다만 헤겔을 차용하는 바람에 논리적 오류에 빠져버리고 말게 됩니다.[8]

<경철초고>는 헤겔의 언어로 그 문제의식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실패하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원고를 적다 말고 처박아 두었는데 나중에 발굴(!)된 거지요.

 

<경철초고>에서 결론적으로 맑스는 소외 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결과적으로 그 문제 의식을 해결하는 데는 실패한다고 보는 것이 맞으며 따라서 소외라는 단어는 맑스의 후기 저작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소외라는 개념을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같은 실존주의의 공세를 거쳐간 곳에서의 소외의 개념은 실존주의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충분한 맑스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 소외에 대한 개념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실존주의자들은 맑스의 소외개념을 싸르트르나 하이데거에서 잘못 배워 개인적인 심리상태로 만들어버립니다.

인간의 실존은 소외되었으므로 해서 신에게 반항을 하자 혹은 열심히 살자^와 같은 개인적인 수준의 결론을 내는데 소외론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외론은 인간주의을 부르짖게 됩니다. 소외론은 인간주의의 이론적 근거입니다. 싸르트르의 <공산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차라리 건강한 인간주의입니다. 이처럼 맑스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심리적인 어법의 소외론으로 맑스주의를 해석하면서 인간주의적인 맑스주의의 근거로 소외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소외개념이 비맑스적인 개념이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적 본질에 대하여

 

포이에르바하가 헤겔의 절대정신이라는 관념성에 대한 비판을 위하여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인간의 구체성입니다. 즉 인간은 현실적이며 감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적 원리는 헤겔의 하늘로 올려놓은 인간과 자연을 복권시키는데 있었으며 그것을 위하여 인간을 유적존재라고 규정합니다.

그는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제대로 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면서 고독과 유적존재를 대비합니다. 고독은 유한이며 제한이고 사회성은 무한이며 자유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개별자로 존재할 때는 참으로 보잘것없지만 사회적으로 존재할 대는 신적인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 포이에르바하는 현실적입니다 독일고전철학에 있어서의 인간개념은 비로소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포이에르바하의 유적존재라는 개념을 차용해서 맑스는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의미보다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인식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포이에르바하를 조금 뒤튼 것이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확장한 것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헤겔적 방법으로 되돌아간 것이기도 합니다.

 

<경철초고>에서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의 용어인 유적본질이라는 말이 난무하는데 이 용어가 포이에르바하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공허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유적본질이란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인간으로서의 본질이라는 뜻이므로 참으로 공허하고 동어반복적인 말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맑스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 즉 종차는 무엇일까?

 

인간은 자신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하나이다. 동물은 자신의 생활활동과 구별되지 않는다. 동물은 자신의 생활 활동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활동 자체를 자신의 의지와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은 의식적 생활활동을 가진다. ……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유적 존재인 것이다. …… 동물은 일면적으로 생산하지만 인간은 보편적으로 생산한다.’[9]

 

인간이 유적 존재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노동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존재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인간이 자기자신을 재생산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자연, 타자)을 상대로 자기의 전유물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0]

 

인간의 보편성은 실제적으로 전자연을 자기의 비유기적 신체로 만드는 보편성으로 나타난다. 인간이 다른 존재자들, 즉 타자와의 구별, 대립 속에서 자기자신으로만 머물러 있기만 하면……그는 개별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그와 대립되어 있는 타자, 즉 자연을 자연의 전 대상물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자신과 타자의 통일, 즉 다른 개별자들과의 종합을 이루기 때문에 인간은 보편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보편적인 것은 인간만이 타자(자연)를 노동을 통해 전유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현실에서의 소외된 노동은 인간의 원래의 노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소외된 노동을 극복하고 인간을 유적존재로 실현하는 것[11]을 공산주의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숙기의 맑스라면 어떻게 인간의 본질을 표현할까?

 

한마디로 동물은 외계의 자연을 단지 이용할 뿐이며, 동물이 일으키는 자연변화는 단지 그 공물의 존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인간은 그가 일으키는 변화를 통해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형시키며, 자연을 지배한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동물 간의 최후의 본질적인 차이이며, 이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은 다시 노동이다.’[12]

 

비록 맑스는 아니지만 1876년의 엥겔스의 표현은 헤겔의 군더더기를 완전히 제거한 세련되고 과학적인 문장으로 완전히 대체됩니다. 인간이 보편적이라는 언명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철학에서 과학으로의 전화

 

많은 논자들이 수고에서 나타난 헤겔주의적인 변증법을 비판하고 자본론의 성숙기의 맑스와 구별합니다. 맑스의 이론적 발전과정은 결국 인간주의, 헤겔주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의 발전과정입니다. 인간주의/헤겔주의는 결국 유토피아주의이며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맑스는 결국 과학으로 철학을 재구성합니다. 『자본』이 그 재구성의 실증적인 결과물이며 젊은 시절의 <경철수고>에서 나타난 비과학적인 것, 헤겔주의적인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경철초고>의 철학적 미숙함은 발표 이후에 맑스주의를 표방한 인간주의적 맑스주의자들에게 지겹도록 이용당합니다.

 

맑스의 열망은 헤겔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이고 유토피아주의적인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로 전화시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경철수고>와 『독일이데올로기』가 철학적 고찰이었다면 그 이후의 저작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저술들입니다. 그것의 결론적 서술이 『자본』입니다.

 

인간주의는 역사적으로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도출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스탈린의 맑스주의의 도식적, 기계적 맑시즘과 전체주의적 사회체제로부터 논의를 진행시켜왔습니다. 때문에 스탈린 시대의 만들어진 것들을 일단 거부하고 보자는 식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경철초고>의 소외론은 인간주의자에게 괜찮은 교재였던 것입니다.

 

맑스주의에서는 분명히 인간주의적 관점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굳이 소외론이 아니더라도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물음을 끝없이 던지고 그것이 맑스주의의 낙관론 혹은 진리관을 구축해왔습니다. 우리가 인간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인간주의자들이 맑스주의를 인간주의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혹은 휴머니즘을 위해, 지옥 같은 현실을 거부하고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인간만이 의미적 존재이며 특별하므로 역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주의는 결국 맑스주의의 과학성 대신에 이데올로기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맑스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만 기능합니다. 당연히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맑스주의에서 과학성을 포기하면 이데올로기만 남는데 그것은 결국 맑스주의의 핵심과는 더욱 멀어지기만 합니다. 모든 학문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계급적 관점에 따라 진리는 바뀐다는 식의 상대주의도 인간주의의 결과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학문 개별 과학까지도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별로 무리없는 말입니다. 실제로 개별과학에서 관찰자과 그 대상의 관계에 의해 물리적 법칙이 바뀌는 현상[13]들이 증명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과학성을 포기하는 근거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찰자가 개별과학의 대상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객관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역사가 우연성을 매개로 필연성이 관철되듯이 모든 과학은 상대성 속에서 절대적 진리가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주의는 맑스주의 속류화로 귀결됩니다.

 

맑스주의에서 소외, 유적생활, 유적 행위, 유적 본질이라는 헤겔적인 개념들은 그것이 과학성과 구체성을 획득할 때만 가치있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맑스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연구의 필요를 자신의 철학적 견해로부터 도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경철초고>, 『독일 이데올로기』와 같은 다소 철학적인 저작이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으로부터 과학을 재구축하는데 성공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자본주의라는 분석의 대상이 실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아직 그 대상이 우리 인식의 바깥에 맴돌고 있을 뿐이며 따라서 사회주의이론은 또다시 철학의 방법을 빌려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철학이라는 이름의 과학이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2003, pp. 72-75

[2] 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 있어서 노동의 역할>, 중원문화 『자연변증법』 p176

[3] 맑스, 같은 책.  p 78~80

[4] 맑스, 같은 책.  p 82를 보라.

[5] 헤겔은 소외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고 주로 외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외화는 대상화이기도 하고 동시에 무언가의 부정이기도 합니다. 헤겔에게는 소외=외화=대상화 인 것입니다.

[6] ‘…… 그러므로 사적 소유란 외화된 노동, 자연과 자신에 대한 노동자의 외적인 관계의 생산물, 결과, 필연적인 귀결이다. 따라서 사적 소유는 외화된 노동, 즉 외화된 인간, 소외된 노동, 소외된 생활, 소외된 인간의 개념으로부터 분석에 의해 생겨난다. 우리는 물론 외화된 노동(외화된 생활)의 개념을 사적소유의 운동으로부터의 결과로서, 국민경제학으로부터 획득하였다. 그렇지만 이 개념을 분석하면, 사적 소유가 외화된 노동의 근거, 원인으로 나타날 때에, 사적 소유란 오히려 외화된 노동의 귀결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데, 이것은 신들이 본래 인간지성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관계가 뒤에 가서는 상호작용으로 바뀐다.’ 맑스, 같은 책, p 82

[7]국민경제학은 운동의 연관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바, …… 우리는 사적 소유와, 소유욕과 노동. 자본. 토지 소유의 분리 사이의 본질적인 연관, 교환과 경쟁의, …… 이러한 소외 전체와 화폐 제도 사이의 본질적인 연관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맑스, 같은 책, p 74

[8]이제 물론 마르크스에 의해 제시된 분석으로부터 사적 소유가 외화된 노동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라는 주장을 끌어내었다. …… 이러한 추론은 분명히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해명되지 않은 전체에 의해 어떤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오류)이다. …… 어떻게 마르크스가 외화된 노동의 우선권을 받아들이게 되는가? 논리적인 추론으로서는 그의 명제는 근거가 없다. 또한 그것을 어떤 역사적인 언급을 통해서 증명하려는 시도도 없다. ……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언제 인간의 자연 형성의 특정한 수준이, ‘이후에’(!) 사적소유를 결과한다고 하는 인간의 소외를 내포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소외이론 내부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채 남아 있다.’ 하인이히 포핏츠, <사적유물론의 철학적 기초> p129

[9] 맑스, 같은 책.  p 78~79

[10]  사실 이 부분은 지극히 헤겔적입니다. 사변적이기까지 합니다.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인간이 개별성과 보편성의 통일이라는 것 또한 공허한 동어반복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11]자유로이 연합된 연합된 개인들’, 혹은 직접적인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결사라는 유명한 구절은 개별성을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보편성의 획득을 의미하며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을 전인적으로 실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2] 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 있어서 노동의 역할>, 중원문화 『자연변증법』 p176

[13]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러하고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석의 원리도 관찰자와 객관적 실제와의 관계가 개별과학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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