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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1
    체벌
    고양아

체벌

 

 

 

체벌 [體罰]

 

고통을 줌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억제하려는 것이지만,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한 행위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선택이 그 행위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여부에 의하여 좌우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체벌은 아동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적극적인 행위를 유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벌을 가한 사람과의 사이에 좋지 않은 인간관계를 만들 우려가 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체벌도구로서 회초리 등을 널리 사용하였다. 반면에 체벌에 대한 비판도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J.A.코메니우스, J.J.루소, J.F.헤르바르트 등은 체벌에 반대한 사람들이다. 19∼20세기에 이르러서는 체벌에 대한 비판·반대론이 일반화되어 많은 나라에서 법률적으로 체벌을 금지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는 1979년에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미국 대부분의 주()와 영국 등에서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체벌이 용인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표적인 체벌은 달초() 또는 초달이라고 하는 회초리 매이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전날 배운 학과를 다음날 학우들이 열좌한 가운데 책을 덮거나 등지고 앉은 채로 배강()하는데, 이를 못하면 목침 위에 서서 훈장으로부터 달초를 받았다. 이것은 서당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체벌이었으며, 가정에서도 자녀의 잘잘못을 일깨워 주는 교육적인 기능으로 존재하여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선생으로부터 달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체벌을 경험하면서 무서운 학교를 다녔으나, 광복 후 체벌이 민주주의 교육에 어긋난다 하여 금지되었다. 최근에는 학부모의 자녀 과잉보호에 따른 비뚤어진 교육관에 대하여 학교에서 사랑의 매로 체벌을 실시해야 한다는 체벌타당론도 대두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1.

곽노현 서울 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뭐... 어떤 멍청이들은 곽노현씨가 1~2시간 만에 급조한 거라고 비난하는데, 1년 10개월 정도 걸릴 줄 알았나.... '체벌'에 대해 백과사전은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가가 궁금해서 네이버 검색창에 '체벌'이라고 쳤는데, 카페 항목 첫 번째부터 애국우익, 바른우익, 자유우익의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어떤 카페가 곽노현 교육감이 사고 제대로 쳤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글의 논지를 보면 아, 이게 보수의 머릿속이구나...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글이 긴 편도 아니고, 간단 명료한 비난글이라 딱히 이해 못할 부분도 없다. 

 

그 글에서는 체벌 전면 금지가 이념적으로 평등주의적 사고에 기반한다고 하는데, 진보의 입장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뭐... 진보식으로 똑같이 말해주자면 '그럼 학생들을 능력으로 줄 세워야하냐'고 해야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알아먹지 못할 것 같아서.... (체벌이 '열등한 학생'의 불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인정할 수 없는 일이라니, 대체 그 '열등한 학생'의 기준은 누가 부여하는건지.)

 

그리고 진보가 빈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고, 개인의 능력차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글쎄... 인정을 안한다고 말하는 게 과연 맞는 표현인가? 나는 오히려 개인마다 능력차가 존재하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걸 인정하기 싫다기보다, 능력에도 종류별로,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왜 획일적인 기준으로 통일되어야 하는가를 문제삼고 싶은건데.

 

2.

사실 대학에 들어와서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가 매번 느낀 것은, '폭력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라는 전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이다. 어떤 동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명 맞아야 할 애들이 있다'라고 했었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표현이었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어떤 종류의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더 놀라운 건, '그래도 폭력으로 그러면 안되지'라는 주장에 '그럼 그걸 가만히 둬?'라고 되묻는다는거다.

 

방법은 오직, 오직 체벌 뿐인가? 위에 소개한 카페에서도 '대화로 될 아이라면 체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데, '대화로 될 아이'는 당췌 어떤 아이인가? 우리는 선천적으로 엉덩이에 대화로 될 아이와 대화로 안될 아이의 꼬리를 달고 태어나는걸까?  

 

교사들이 가하는 체벌에 대하여 나는 학생들의 탈선과 비행에 대한 해법이 아닌 자위적 절충안에 불과하다고 느끼며, 절충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민망함을 표방하는 바이다. 그건 단지 폭력에 대한 합리화에 불과하다. 또한, 이것은 교사의 온갖 노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진정 보수가 말하듯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노동자와 소비자가 아닌 진정 스승과 제자의 개념으로 칭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진정한  스승은 학생을 '대화로 안된다'고 해서 폭력으로 다스리는 사람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가?

 

물론 개인의 능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마당에, 교사 개인의 능력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스승으로써의 교사이든 노동자로써의 교사이든 어쨌든 기본적으로 학생보다 성숙한 존재가 아닌가? 먼저 태어난 존재로써.   

 

3.

또한 보수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교실안에서 체벌이라는 '제재'와(진보의 입장에서는 '폭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지만.), 사회 내부에서 법이라는 '제재'는,  비슷한 맥락에서 작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체벌과 규칙을 서로 다르지 않게 인식하고, 그건 오직 '교실 안의 정의'와 '사회 정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만 같게 인식하는 것으로,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 발단과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 제기도 없이, 오직 결과적인 측면에서의 체벌에만 주목하고, 결국 그들에게 있어 학생들이 규칙을 이행하게 만드는 방법론이란 규칙 그 자체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신뢰하는 질서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려주는 반증이 아닌가. 체벌이 아니면 지켜질 수 없는 규칙이라니, 얼마나 무능력한가.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제대로 고백하는 규칙이다. 그런데도 체벌을 정당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문제 그 자체를 보아야 하는 건가? 

 

지난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법이나 규칙 자체의 문제는 간과한 채 단지 그러한 문제점을 '선량한 다수에 침투되어 있는 소수의 탈선과 비행'  때문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물론 항상 탈선하고 배덕하는 인간들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 문제를 간과한 채 오직 체벌이라는 폭력의 방법론으로 불완전한 규칙 속에 학생들을 밀어넣는 것은 얼마나 곱절로 부당한 처사인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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