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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평화는 가라!

 

 

  평화를 한자로 쓰면 ‘平和’인데 이 뜻은 ‘누구나 공평하게(平) 곡식을(禾) 먹는(口) 것’을 의미한다. 평화의 꽃이 굶주리는 자 없는 세상에서 움튼다는 이 말은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큼 식량이 넘쳐나지만 고른 나눔의 부족으로 많은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평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들, 의식주는 물론이고 의료, 환경, 문화 그리고 교육이 특정집단의 독차지 없이 누구나 골고루 먹고, 입고, 즐기고, 배우고, 누릴 수 있을 때 그게 바로 인류의 진정한 평화라 말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너와 나 할 것 없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평화를 말하고 내세우는 요즘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더불어 살고, 나누며 살고, 서로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공존과 연대의 원리로 평화를 이해한다면 무슨 유행어처럼 쉽게 평화를 말하고 간판처럼 번지르르하게 내세우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이다. 누구나 곡식을 먹을 수 있듯이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치료 받을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세상에 다가가지 못한다면 어찌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거리의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이 진정으로 평화로운 세상이 아닐까.
 
  성공회대학교는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고 말한다. ‘열림, 나눔, 섬김’의 교육이념으로 이 사회에 ‘더불어 숲’을 만들어 가자고 말한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점점 지옥을 향해 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경쟁, 개발, 성장 이 세 가지 주문에 갇혀 살아가는 너무나 인간답지 않은 인간 세상에 인간의 가치를 내세우며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닌 열 사람의 동반자와 아시아 평화공동체 대학을 꿈꾼다고 한다. 취직과 출세를 위한 ‘스펙’ 쌓기와 간판 따기의 도구가 되어 버린 한국의 대학에서 그런 비주류적 가치들을 전면에 내걸고 당당하게 진보적 학풍을 내세우는 곳이 성공회대학교이다. 하지만 내부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성공회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평화는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지난 5월부터 관리상의 이유로 출입관리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여기서 외부인이란 비성공회대인, 즉 성공회대에서 돈을 벌거나(교수, 교직원), 돈을 내는 사람(학생)이 아닌 모든 사람을 이른다. 하지만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아도 예치금을 내면 책을 빌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돈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관계 속에 도서관이 있는 셈이다. 어찌됐든 이런 일이 한국 대학 도서관의 일반적 현상이기에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한 자기배반이고 배신이다. ‘진보의 명문’이라는 낯간지러운 광고와 인권, 평화, 열림, 나눔, 섬김, 진보, 민주주의, 공동체, 대안, 동반자, 희망, 실천, 개방, 더불어 숲 그런 말들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배움과 자기계발의 공간이고 정보와 지식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오아시스인 도서관은 그야말로 인류의 문화적 유산이고 사회의 공공재이다. 오늘날을 ‘지식정보사회’라고 일컫는데 이는 정보를 소유하므로 부를 장악하게 되고 결국에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함으로써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차이는 사라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높은 진입장벽을 만든다는 것은 정보, 지식의 불평등을 조장하여 사회경제적으로 더욱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도서관은 우리 사회 정보부분의 공공영역을 확보하고 정보의 공적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 공간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또한 인권과 평화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도서관은 학생증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여 배울 권리, 알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쫓으면서 지식과 정보를 독차지하며 배고픔과 서러움을 선사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군림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교육 시켜주었다. 이런 성공회대학교가 어떻게 평화와 인권을 말할 수 있으며, 무슨 평화공동체와 ‘더불어 숲’을 말한단 말인가. 모름지기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초심이라도 빛을 잃고 완전히 딴 것이 되고 만다. 도서관은 단언코 관리 중심 대상도 아니고 행정 편의적 발상에 좌지우지될 곳도 아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되는 곳이다. 성공회대학교가 ‘열림, 나눔, 섬김’이 아닌, ‘닫힘, 독점, 무시’의 대학으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남긴 상처에 반창고 하나 붙여 줄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중앙도서관은 출입관리시스템을 즉각 철회하라!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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