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보호주의 씨에게 보내는 결투장

2009/03/13 15:13

 

청소년보호주의 씨에게 보내는 결투장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안녕하십니까, 청소년보호주의 씨. 앞으로 이름이 기니까 “청보 씨”로 부르겠습니다. 아참, 세상에 “청소년보호주의”라고 불리는 동명이주의(同名異主義)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제가 보내는 이 결투장이 잘못 배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가 결투를 신청하려는 ‘청소년보호주의 씨’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둬야 할 것 같군요.
  제가 결투를 신청하려는 당신은, 대략 두 개 정도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바로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술, 담배, PC방, 노래방, 야한 것 등을 금지시키고 규제하는 것(청보 씨 ①)입니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만 아주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눈망울이 아주 초롱초롱하게 눈에 잘 띄는 얼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을 미성숙하거나 능력이 없는 약자로 간주하고 청소년들을 일방적인 시혜의 대상,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청보 씨 ②)입니다. 편의상, 두 사람(사실은 한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걸지도 모릅니다.)을 그냥 한 사람, 한 팀인 걸로 보고 얘기하겠습니다.



결투를 신청하는 이유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청보 씨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청보 씨가 청소년들의 인권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입니다.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라거나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식의, 청소년들에 대한 현재의 차별과 인권제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런 차별과 인권제한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죠. 또한 당신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보호’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청소년들의 경제적 문화적 권리를 제약하고 청소년들을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당신은 청소년들에게만 특별한 보호를 제공한다고 하면서, 비청소년들(어른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비청소년들을 차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대 만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서, 근로기준법은 만19세 이상의 비청소년보다 더 짧은 노동시간 제한을 규정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갱도(굴) 안 노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보호’들은, (특히 노동시간이 더럽게 긴 편인 한국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청보 씨 당신은 이런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청소년들에게만 ‘특별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청보 씨 당신은 매우 발이 넓고 권세도 제법 있어서, 뭇 사람들은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신을 옹호하거나 당신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도 이 결투가 정당한 것임을, 당신이 얼마나 불의하고 반인권적인 존재인지를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 이 결투장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저는 당신의 잘못을 좀 더 시시콜콜 지적해드리려 합니다.

  먼저,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의 밤 10시 이후 PC방, 노래방, 찜질방 출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직접 청소년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사례지요. 당신은 그 이유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이 잠을 잘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의 가출을 막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청소년들의 자기 생활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PC방을 예로 들어볼까요? 청소년들이 밤 10시 이후에 PC방에 있을지, 잠을 잘지는 청소년들이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충고나 권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게임 중독이나 PC방에서 게임하다가 죽는 사건 등은 청소년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도 아닐뿐더러, 밤 10시 이후에 PC방만 못 가게 하면 게임 중독이 치료되는 겁니까? 무엇보다도, 게임 중독에 빠지게 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게임 외의 현실이 살기가 어렵다는 것일 터인데, 청보 씨 당신은 이런 현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지 청소년들의 ‘도피’만을 강제로 막으려 들고 있습니다.
  찜질방만 해도 그렇습니다. 밤 10시 이후 찜질방 출입금지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종종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과연 ‘가정’이 청소년들에게 행복한 공간인지, 혹은 반드시 청소년들은 ‘가정’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없이 ‘가정’ 밖으로 나오는 걸 봉쇄하려 하고 있습니다. 찜질방에서 “청소년 유해환경”이 조성된다는, 청보 씨 당신이 오랜 로비 활동을 통해 꼬드긴 정부와 법원의 주장도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일 뿐이지요. 청보 씨가 생각하는 “유해환경”은 대체 그 실체가 뭡니까?

  아주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술, 담배 이야기도 해봅시다. 흔히 청보 씨 당신과 당신의 지지세력들은 술과 담배를 청소년에게 금지하는 이유로 청소년의 건강 이야기를 합니다. 청소년기에 술, 담배를 섭취하는 것이 몸에 더욱 해롭다는 거지요. 하지만 술과 담배는 청소년이냐 청소년이 아니냐를 떠나서 해롭습니다. 특히 담배는 어떻게 이야기하건 건강에 해롭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법률이나 사회통념상으로는, 당신의 활약 덕에, 비청소년의 경우에는 담배가 거의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담배가 거의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것이 비례에 맞는 정당한 조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술, 담배 등은 비청소년에게는 거의 해롭지 않고, 청소년에게는 매우 해로운 것이란 겁니까?
  당신이 술, 담배를 금지하는 그 배경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을 것입니다. 비청소년들은 스스로 판단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금연 캠페인이나 절주 캠페인 같은 걸 통해서 알아서 덜 하도록 할 수밖에 없지만,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판단력이 없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금지해야 한다는 차별적 인식 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과 친한 친구인 ‘국가주의’ 씨를 위해서 청소년들의 삶을 통제하고 쓸 만한 도구(노동력, 인적자원 등)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마 건강에 해로울 것입니다. 술과 담배는 사실 서로 그 작용이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이 많이 다르므로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청소년이냐 비청소년이냐를 가리지 않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습니다. 청소년의 경우에도 절주나 금연을 하도록 캠페인을 하고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담배나 술의 해악에 대해서 교육하고 그것을 절제하도록 하는 게 맞습니다. 아니, 담배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정책을 만들던가 하자는 이야기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보편적 정책이 아니라 청소년에 대해서만 술, 담배를 금지하겠다는 청보 씨 당신의 발상은, 청소년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차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흔히 영상물이나 게임물에 7세, 12세, 15세, 19세 등으로 나이 등급을 매기는 ‘검열’도 청보 씨 당신의 주된 업무 중 하나지요. 당신이 들이대는 주된 기준은, “선정성”(얼마나 야하거나 성(性)적인가)과 “폭력성”(얼마나 치고 부수고 죽이는가)입니다. (*야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기에 생략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종종 그 내용이나 맥락이 성폭력적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인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인지, 인권침해적인지 같은 걸 판단하지 않고, 단순히 특정 장면에 사람의 벗은 몸이 얼마나 나오는가, 라거나 얼마나 피가 많이 튀는가 등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고 등급 딱지를 붙이고 있죠. 그렇게 나이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등급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라거나 가치관이라거나 성격이 변화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이없기까지 합니다. 당신의 이러한 규제는 부당하게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영상 등을 통해 자주 접하거나 하면 폭력에 무뎌지고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게/사용하게 된다든가, 성폭력적인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되면 강간이나 성폭력에 관대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청소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느니 판단력이 미숙하다느니 청소년들에게만 그것을 금지하는 이유를 이것저것 이야기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정도의 차이가 청소년들에게는 그것을 금지하고 비청소년에게는 그것을 허용할 기준이 되는 걸까요? 그럼 제가 한국의 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대다수의 남성들이 성폭력에 관대하거나 무감각한 이유로 군대(징병제)와 더불어 성폭력적/폭력적 영상물에 무제한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특히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것들로부터 ‘보호’한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을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위험한 존재로 은연중에 규정짓고 있진 않습니까? 그러니까 청소년들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이어서 폭력적이거나 성폭력적인 것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고 보고 있지는 않냐는 겁니다. 실제 범죄율 통계를 봐도 청소년 집단의 범죄율은 비청소년보다 훨씬 낮고, 또한 어느 집단이 통계적으로 범죄율이 높다거나 낮다거나, 그런 것이 그 집단 전체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의 근거가 될 수 없음에도 말입니다.
  성폭력적/폭력적 영상물이나 게임물은 그 생산을 규제하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그것을 위해 인권교육을 보급하고 성평등적/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들어감으로써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몇 세 이하 관람불가 하는 식으로 딱지를 붙일 문제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청보 씨?

  마지막으로,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면서 청소년들을 오히려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약자’니까 보호해준다면서, 청소년들이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하고, 정치적으로 발언할 권리를 침해하고, 경제적으로 돈을 벌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청소년들을 계속해서 ‘약자’로 만드는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노동의 문제가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에 따라붙은 여러 제약들 중에서도 친권자(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하다든가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제한해둔 것 등은 청소년들이 알바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청보 씨 당신이 부추긴 청소년들의 노동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걸림돌이 되지요.
  청소년들을 노동착취 같은 것으로부터 보호한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마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입니다. 아, 물론 청보 씨 입장에서는 청소년들이 경제력을 행사하게 되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으로부터도 청소년들을 ‘보호’해서 청소년들이 돈을 자유롭게 못 쓰게 해야겠죠.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기보다는, 청소년들의 권리나 자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약자인 청소년들을 규제하는 쪽이 훨씬 편할 테니까요.
  물론, 청소년들의 노동을 제한하는 제도 등은 자본주의 초기에 아동들에게 가해지던 심각한 노동 착취를 제한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허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와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는 생활이 어려운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 청소년들의 노동 그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청소년들을 경제적 약자로 만들고 청소년들이 가정이나 친권자에 종속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거나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거나 노동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는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인데, 청보 씨 당신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청소년노동에 대해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곤 합니다. 청보 씨의 영향력이 큰 탓이지요. 하지만 청소년노동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이 사회의 노동 전반에서 일어나는 착취 등을 없애려 노력하고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존재를 걸고 당신을 부정하겠습니다

  청보 씨 당신의 죄를 낱낱이 열거하자면 이보다 더 끝이 없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에서 줄이고자 합니다. 결투를 신청하는 이 글이 너무 길어지면 이상할 테니까요.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을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들고,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심지어는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한다는 몇몇 사람들조차도 청소년들을 약자로 생각하고 뭘 베풀려고 하고 차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일 뿐 아니라 바로 ‘현재’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지요.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여러 ‘보호’들이 단지 청소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죠.
  청소년이건 비청소년이건 범죄 위험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특정한 삶의 시기에서, 다양한 ‘첫 경험’들이 있을 수 있기에 그에 대해서는 몇몇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을 차별하고 규제하는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 ‘유해환경’(이 또한 그 실체가 모호하기도 하지만)이 있다면 그 ‘유해환경’을 없애거나 바꾸려고 해야 하지, 청소년들을 그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답시고 가둬두는 것은 이상한 발상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사회경제적 약자인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지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교육, 정당한 대우와 경험, 기회 등입니다.
  저는 청보 씨 당신에게 맞서 싸울 것을 이 결투장을 빌어 선언하는 바이며, 저와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도 ‘청소년 보호주의’를 없애고 새로운 청소년인권을 만들어내기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청소년인권을 요구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선도보호"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청소년보호주의가 없어질 때까지 그 존재를 걸고 당신을 부정할 것입니다. 결투 시일은 오늘부터 당신이 없어질 때까지이며, 결투 장소는 청보 씨 당신이 있는 곳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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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장, 아수나로북, 청소년 보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