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기고]"더 이상 모욕하지 마라"

2009/09/20 01:41

 

 

"더 이상 모욕하지 마라"

[기고] 김옥신 씨의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내정에 부쳐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 바라보는 인권활동가들의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지난해 초에는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화를 시도하더니 이게 여의치 않자 구조조정을 통해 인권위 조직을 반 토막 냈습니다. 더불어 인권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인권위 요직에 앉히기 위한 인사가 강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에는 장애인시설에서 반인권적 행위를 일삼던 김양원이라는 사람이 비상임위원에 취임하더니 지난 7월에는 인권 현장에서 듣도 보도 못한 현병철이라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에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늘 사이에는 김옥신이라는 사람이 사무총장에 내정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김양원 목사. 인권위 비상임위원인 그가 신망애복지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비리와 횡포를 저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지난 18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원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나서는 것을 금하고 있다.

저는 감히 이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어디에 계셨냐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 문제에 관하여

전문

적 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해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국가인권위원장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식은 물론이고 이에 비춰봤을 때 이에 맞는 인사가 인권위원이 되어야하는데, 저는 지난 세월 이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뿐만 아닙니다. 20년 넘게 현장에 있었던 인권운동의 선배들도, 민주화운동부터 자리를 지켜왔던 어머님 아버님들도 이들의 얼굴은 고사하고

이름

한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인권현장이라는 것이 워낙 넓고 넓어 일일이 다 알 수 없고, 한걸음 더 물러나 현장에는 없었다하더라도 삶의 소신으로 자신들이 서있던 곳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인권현장이 아닌 반인권적 현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비상임위원이 된 김양원이라는 사람은 신망애 복지재단설립

해 운영하며 보조금을 횡령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시설의 장애인들을 결혼시키는 조건으로 강제 불임시술을 시키는가 하면, 불임시술이 잘못되어 임신한 장애여성을 강제 낙태시키는 행위를 일삼던 사람입니다.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그의 종증조부인 현준호는 호남은행을 세운 대부호로 일제시대에 전남 참사, 전남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현 위원장이 친일파 후손이며,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아왔다는 점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현 위원장은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또 지난 7월 위원장으로 취임한 현병철 씨는 인권현장에 문외한 일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것을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사무총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김옥신 씨 역시 선배들의 이력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는 1999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시절, '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란 청년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 회원 7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는

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들이 무슨 염치로 장애인의 인권을 부르짖고, 도대체 무슨 염치로 인권의 기본 중 기본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할 수 있을까요.

 

인 권활동가이기에 과거의 행적으로 오늘을 낙인찍는 일은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한다고 되뇌면서도, 차마 입을 다물 수 없는 건 이들이 지난 세월 힘없는 한 개인으로 살아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삼시 세끼를 걱정하고, 자식들 성히 키우기에 급급해 소신을 접고, 비굴하게 살아야했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 명은 시설장으로 장애인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왔고, 또 한 명은 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목에 힘주며 살아왔으며, 또 한 명은 판사란 직위에서 누구에게 죄 있고, 없다를 판결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킨 것은 목숨이나 가족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이었고 권좌였으며 부였고 안락이었기에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인권위의 수장으로 적합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 의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있는데, 청춘을 감옥에 빼앗긴 양심수들이 있는데,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는 고사하고 권좌만 탐하는 이들을 어떻게 인권위 수장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법에 갇힌 인권, 법률에 갇힌 피해자들

▲ 김옥신 변호사. 그는 최근 인권위 사무총장으로 내정됐다. 그 역시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그는 주로 기업 자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판사 시절, 그는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훗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어져서 무죄로 판명났다.

법률가 중심의 인사 또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의 반대에도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현병철 씨는 물론이고, 현 인권위 10명의 상임 및 비상임 위원 중 6명이 법률가 출신입니다.

 

이 는 최근의 유별난 일이 아닙니다. 인권위 설립초기부터 지난 8년간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은 법조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인권위의 상임 및 비상임 위원 역시 대부분 법률가들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법률가들이 지난 세월 민주화와 인권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과 입을 닫고 살아야했을 때,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법률가들이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인권현장에서 수많은 법률가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권위가 법률가들로 넘쳐나는 것은, 또 한 명의 법률가가 인권위 요직에 앉는 것은 불편하기만 합니다. 아니 반대합니다.

 

법은 인권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많은 법률가들이 지적하듯이 법은 시대적 타협의 산물이며, 인권을 침해받은 이들의 편이기 보단 권력자들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집시법도 그러하고 미디어법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법의 잣대로 인권이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법의 논리로 인권침해행위가 판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 행법에 따르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에 불과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그들은 어떤 권리도 제한을 받으면 안 되는 존엄한 존재입니다.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행법에 따르면 병역법 위반자에 불과하지만 평생을 지고 가야 할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는 고결한 사람들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법의 명문화 여부와 경제적 효율성에 따라 좌우되지만 장애인에게 있어서는 인간으로 존엄하게 살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조치에 불과합니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법밖에 서 있고 이들의 인권일수록 더욱 더 침해당하고 위협당할 가능성이 크기에 인권위는 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인권을 사고하고 신장시킬 책임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인권위를 좌우하는 것은 법률가들입니다. 그리하여 인권위에서 나오는 결정과 보고서는 종종 법안에 안주해있으며, 인권위의 결정문을 읽다보면 마치 법원의 판결문을 읽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가져야할 존엄성 속에서 고민되어야 할 인권이, 바로 그 인권의 상상력이 법적 사고와 틀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저는 최근 사회 곳곳에서는 터져 나오는 인권에 대한 호소를 '법치'란 미명으로 억압하려는 시도들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형국에서 인권위가 법률가들로 재편되는 것은 더 끔직한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앉히면 좋겠냐고.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보기 좋은 학벌도, 사회적 이름도 없지만 인권 현장에서 인권지킴이로 지난 세월을 살아왔던 수많은 인권 현장의 선배들이 있다고.

 

물론 이것이 욕심이라, 아직 그럴 만큼 인권지킴이들이 여물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부족함이려니 하고 소망정도로 남겨놓겠습니다.

 

하지만 물러서고 또 물러서도 양보할 수 없는 건 민법 전공자인 인권위원장에 이어 상법 전공으로 잘 나가는 회사의 법률고문을 해왔던 전문가가 사무총장에 내정됐다는 사실입니다.

 

"상법은 기업에 관한 법으로, 일정한 계획에 따라 계속적 의도로써 자본적(資本的) 계산방법에 의하여 영리(營利)를 실현하는 독립된 경제적 조직체인 기업에 관한 법"이라는 지식사전의 검색결과가 눈에 들어옵니다.

 

법을 전공한 사람도, 기업에 몸담고 있지도 않으니 무슨 말인지 종체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명백한 것은 상법에서 다루는 것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 기업간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상법을 전공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 하시겠지만, 그것을 30년 넘게 사물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았던 전문가이기에 전공은 단순한 전공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물을, 관계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듯, 남성이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읽지 못하듯, 회사 사장이 노동자들의 주머니 걱정보단 회사의 손익을 앞에 내세우듯, 경제적 영리에 따라 기업의 관계를 조언했던 지식은, 경제적 효율성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인권을 고민함에 있어 독이 될 위험성이 아주 높습니다.

 

▲ 인권활동가들이 지난 7월 현병철 인권위원장 취임식장에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막았다. ⓒ뉴시스


피난처와 희망터이어야 할 국가인권위

1999년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래 제가 처음으로 했던 일은 감옥에 있는 일반 수인들을 만나던 활동이었습니다.

절도범인, 사기범인 때로는 살인범인 수인들을 만나면서 선량하게 살면서도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사람들의 인권까지 보장해달라고 외칠 만큼 한가한 때인가라는 고민도 많았습니다.

하 지만 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466일 동안 계구에 묶여 똥 한번 제 손으로 닦지 못한 이들을 만나면서, 맹장염에 목숨을 잃어야했던 이의 가족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 교소도와 유치장, 군대와 복지시설과 같은 곳일수록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인권침해가 많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향하지 않았던 이유로 40년을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던 장기수의 삶이 너무나 처절해서 이런 반인권적 제도들을 청산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법원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경찰은 우군이기보단 가해자인 현실에서 인권침해를 당해도 찾아갈 곳이 없이 없는 사람들,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인권을 보장해줄 기관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이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겨울 20년 만에 몰아닥쳤다는 한파와 폭설에도 불구하고 13박 14일을 밥 한끼 넘기지 못하고, 천막조차 치지 못한 채 맨바닥에 침낭을 끼고 잠들면서도 인권위를 설립하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 렇게 만든 인권위가 빠르게 관료화되고 독선적으로 변화되는 걸 지켜보면서 괜히 만들었나 자책하고 인권위와의 협력을 거부하며 쓴 술잔도 수없이 넘겼더랬습니다. 악연인지, 모진 인연인지 지난해에는 인권위를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시도에 맞서 다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촛불을 들어야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12년을 보냈습니다.

노름판에 달려가는 자식 바지가랑이 를 붙잡는 어미 맘이 이러했을까요? 정화수 떠놓고 빈 지 몇 해만에 하늘이 노래지고 뼈가 뒤틀리는 산고를 통해 얻은 아이. 자식이 어미 맘처럼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노릇은 하겠지 하며 때론 혼도 내고, 때론 달래가며 청춘 바쳐 키웠는데, 무엇에 미쳤는지 노름판으로 달려 나가 농사밑천도 모자라 집문서까지 잡히고 오는 자식.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다며 모자지간 천륜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미를 담보삼아 노름을 하라고 허할 수도 없는 어미 맘이 이러했을까요?

조금의 과장이 섞였을지 모르겠지만 인권위를 바라보는 제 맘이, 인권활동가들의 맘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인권위의 결정과 보고서가 휴지통에 처박히고, 인권에 문외한을 넘어 반인권적인 인사들이 인권위원이라 명함을 내밀고, 정권을 향해 짖어야할 인권위가 꼬랑지를 내리고 아양을 떠는 것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도 노름에 미친 자식을 부모가 내던지지 못하는 것처럼,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위를 붙잡고 미련을 떱니다.

인 권활동가들이라고 끊어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국가인권위가 모든 것을 해줄 수도, 그러할 수도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인권위가 있어 '피난처'를 얻은 이들이 있고, 더디지만 한걸음씩 진전해왔음을 알기에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인권위를 올곧게 세워야한다 악을 쓰고, 몸을 내던집니다.

이 땅엔 아직 힘없고 소외받고 차별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에, 장애인들이 넘을 수 없는 턱이 있고, 병역거부자들과 양심수들이 있는 감옥이 있고, 비정규직들이 올라가야할 철탑이 있고, 일제고사를 반대한 교사들이 쫒겨난 학교가 있고,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하는 현실이 있기에, 반인권적인 당신들이, 일신의 영달을 꾀하기 위해 권좌나 탐하는 당신들이 앉을 자리가 아니라고 이렇게 또 부르짖습니다.

모욕은 지금으로서 족하다

서글픔만 가득한 시대에 저는 참담한 마음으로 당신들께 부탁드립니다. 인권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당신들의 다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인권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은 아주 많습니다.

다만 그 선택에서 인권위의 요직에 앉아 인권위의 업무를 관장하겠다는 것만 빼주십시오.

그 것은 지금까지 인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던 인권활동가들을 비웃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능욕했던 그 인권의 침해자들을 또 한번 욕되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 수많은 인권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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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김양원, 김옥신, 사무총장, 인권, 인권연구소 창, 인권위, 현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