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사회

category 감놔라 배놔라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6/04/07 01:04


 

올림픽에서 우리의 강력한 라이벌 일본과 중국이 버티고 있는 어떤 종목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중국과 ‘연대’해서 그 종목에서 출전을 포기하여 중국이 일본을 수월하게 이겨서 금메달을 따도록 해주고 대신 또 다른 종목에서는 중국이 출전을 포기해서 우리가 일본을 쉽게 이겨 금메달을 따도록 해준다면, 이것은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쾌거일까요, 아니면 국제 스포츠 사상 초유의 금메달 나눠먹기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것이 시원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스포츠 정신을 훼손한 국제적인 스캔들이자 국가적 불명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정치에서는 ‘연대’를 해야 하는 걸까요? 다음의 댓글들을 보면 연대를 안 한다고 온갖 상스러운 저주와 악담, 욕설과 비방을 내뱉습니다. 그렇게도 이기고 싶다면 그냥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그 안에서 거대 단일 계파를 형성하는, 김영삼식 합당이라도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어차피 새누리당에는 제1야당과 다를 바 없는 개혁적 인사들도 일부 있고, 제1야당에는 새누리에 가야 맞거나, 혹은 그쪽 출신들, 더 나아가 국보위 대표까지 모셔왔는데 말입니다. 선거에서는 당선을 위해 연대라는 이름으로 금배지 나눠먹자는 말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왜 평소 의정 활동에서는 연대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당이야 신생 정당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정의당이나 노동당, 녹색당 등과 평소 얼마나 연대를 하며 보조를 맞췄단 말인가요?

 

야당이면 당연히(무조건) 새누리당에 반대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새누리 2중대”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지만(그 말 자체가 군부 독재 시절의 군사문화에서 유래한), 그 세 당이 연대를 한다는 것이 1위 기업을 꺾기 위해 2위와 3위, 4위 기업이 5위 이하의 기업들을 소외시키고 가격 담합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제4야당, 제5야당들의 기회를 빼앗는 정당이라면 아마도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를 묵살할 게 뻔할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마구 떠벌이는 것이 서울법대 교수의 발상이고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문화평론가인 현실, 그리고 거기에 열광하는 네티즌들을 보며 도대체 언제쯤 이 나라 사람들이 계몽이 될지 안타깝습니다. 역사적으로 계몽의 시기를 거치지 않은 탓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는 떠날 사람들 어서 탈당하라고 하더니 다시 그들을 불러들이겠다고 헛물 켜다가, 이제는 연대 안 한다고 또 발악입니다. “새누리 2중대”라고 하면서 ‘야권 연대’를 하자는데, 아니 정의당과 야권 연대를 유야무야 덮어버린 더민당은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 다음댓글러들의 글을 보면 이해가 안 됩니다. 이들의 극도로 단순화한 흑백논리와 맹목성, 자기중심성은 일베와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에, 이라크 파병에서 보인 친노라는 사람들의 행태를, FTA와 미국산 쇠고기, 강정마을 등등 모두가 그 정권에서 잉태된 문제입니다. 부동산(아파트) 문제 역시 이명박 정권 못지 않게 책임이 있는 정권이 바로 참여정부입니다. 군부 독재 국가 미얀마에게 엄청난 무기를 대주고 아웅산 수지의 민주화 운동을 발목 잡게 한 것도 바로 그들 정권 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이 왜 진보를 자처하고 거기에 국민들이 열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서민적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으니까 다른 잘못은 덮어주자는 겁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조삼모사 고사 속의 원숭이가 무엇을 은유한다고 보십니까?

 

정략적 계산으로 선거구 획정을 조작하여 민심을 교란, 권력이 원하는 후보자를 당선시키는 것을 게리 맨더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0대 총선 직전 선거구 획정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기한을 넘긴 것이 사실상 게리 맨더링과 다를 바 없었음을 우리는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소수 의견 무시하고 국민의 선택권을 짓밟으며 금배지 나눠먹기를 하자고 합니다. 요새 툭하면 ‘국민’과 ‘2.0’을 붙이는 게 유행이던데, 이쯤되면 ‘국민 맨더링 2.0’이라고 불러야 할 거 같습니다. ‘연대’를 거부하면 새누리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하는 논리와 삼성을 비판하면 나라 망한다고 걱정하는 것은 그 논리 구조가 똑같습니다. 그러면서 허구헌날 ‘친일파’ 탓합니다. 저들이 허구헌날 공산당 타령을 하는 것과 빼박았습니다. 그렇게 미운 새누리를, 쥐와 닭을 왜 뽑아줬는지, 그 심판을 받을 대상은 대중들 자신입니다. 아파트값 올려준다고 좋다고 찍어댔잖습니까. 아파트값이 오르면 제 아파트값만 오릅니까? 원숭이가 따로 없죠. 그들이 바로 “이게 다 노무현 탓이야”라는 댓글놀이를 하던 바로 그 ‘대중’이라는 괴물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과 제1야당이 무슨 구세주도 아닙니다. 지금 사는 세상을 만든 장본인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폈거나 그게 뭔지도 몰랐던, 그것에 올라타 아예 기득권화한 사람들이 그들인데, 그들이 무슨 미륵이라도 되는 것으로 맹목적 지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문미륵님 가시는 길에 훼방을 놓는 사람이라며 좌익효수급 막말을 퍼붓습니다. 그렇게도 연대를 잘 하시는 당이, 그렇게도 연대를 원하시는 댓글러님들이 진보정당들에게 빌려간 표는 왜 안 갚는지, 또 왜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그렇게도 원한 원내교섭단체 요건 완화 요구는 무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10% 남짓한 수도권 유권자들은 연대하면 자동적으로 제1야당을 찍게 되는 거수기로만 보이나 봅니다. 유권자는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숫자일 뿐인 거죠. 연대론자들은 여론조사가 새누리당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된 것이라 아예 믿지 말자면서도, 국민의당이 얻는 지지율이 실제로는 여론조사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체감으로는 30% 정도?)은 아예 생각도 안 합니다. 그리고 조작됐다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조작해댄다는 전화 조사로 연대를 하자는 말에 열광하니 이성적 사고가 안 되는 대중들 자신이 바로 개혁의 대상인 것입니다.

 

운동 선수가 금메달 따려는 욕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장사를 시작했다면 당연히 부자가 되려는 목표가 있을 것이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은 당연히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어 권력의 핵심이 되어 세상을 이끌고 싶어 합니다. 하다 못해 시민단체들도 뒤에서 정치하느라 바쁘고 금배지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데, 유일하게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 안철수의원인가 봅니다. 양보하면 “또철수” 라고 비아냥거리고, 양보 안 하면 “새누리당 2중대”라고 욕합니다. 안 의원이 혁신위원장 제안을 거부하고 문재인 전 대표에게 딴지 걸었다며 비난을 퍼붓습니다만, 안철수가 혁신위원장을 안 맡은 이유는 바로 뉴스를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김상곤 혁신위가 6개월 전에 만든 혁신안에 담긴 부정부패로 인한 재보궐 선거 유발시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헌신짝처럼 뒤집어지고 있잖습니까. 그게 제1야당이요, 진보라 불리는 친노요, 더민당인 것입니다.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책은 읽기 싫고, 욕은 해야겠는데 대상은 없고, 만만한 게 정치인이나 공인입니다. 그걸 가장 잘 알고 집단광기, 집단폭력을 행사하는 게 대중인 것입니다. 그들을 일러 “좀비”라고 하는 게 틀린 말 아닙니다. 좀비 영화에서 좀비가 은유하는 것은 사고도 할 수 없고, 영혼도 없는, 그저 숫자만 많아서 꾸역꾸역 오는, 무비판적 삶이라는 전염병을 전파시키는 대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민당에 친노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버려야 할 집단적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친노가 아니라 노무현을 파는 ‘매노’라고 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아니, 역사교과서 바꾸겠다고 그렇게 난리치더니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원샷법 반대한다더니 왜 갑자기 원샷에 통과시켜 줍니까? 내로남불도 유분수죠, 자당 시의원이 살인교사를 했는데도 시민들에게 석고대죄 안 했던 당이 엉뚱하게 비례대표 수집가에게는 기호 2번 당연히 드려야 한다며 석고대죄하러 달려갑니다. 지난 대선에서 양보했던 사람은 주저앉히기 위해 비례로 나가라며 당내에서 핍박하더니, 국보위 출신 구원투수에게는 굽신거립니다. 그냥 원칙도 없이 상황따라 제멋대로입니다.

 

문제는 그걸 보면서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일부 외골수들입니다. 그런 맹목적 인간들은 새누리당 지지층에도 있습니다. 아직 국민의당 지지자층에는 그런 눈 먼 자들이 훨씬 적어보입니다만, 여기도 조만간 그런 외곬으러운 사람들이 생겨나겠지요. 이 글은 그런 맹목성을 지적하는 글이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비판하는 글이 아닙니다. 사실 안철수가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바램은 운동권-재야-야당 정치인들로 살아온 그들 사이에서 선배-동료-후배라는 범주 어디에도 구분할 수 없는 위치에 안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족보’에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근친상간 금기가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가 친족 관계를 어그러뜨리기 때문입니다. 즉, 자식인지, 조카인지 혹은 자식인지 손주인지 분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로, 안철수는 ‘매노’ 야당 기득권 세력의 질서 의식으로는 위치를 규정할 수 없기에, 무엇보다 그 질서를 고치겠다고 하기에 문재인을 미륵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인 것입니다. 기득권의 질서를 고치겠다면 당연히 그 질서에 포함이 안 된 사람일 텐데 제도 안에서는 포함되어 있기에 분류가 모호해지고 당연히(?) 없애야 할 존재인 것이지요.

 

사람들의 표를 얻어서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의원이 되려는 본인들이 쉴새없이 공부해서 정책을 잘 만들고, 필요없는 법을 부지런히 폐기하고, 국가 예산을 잘 수립하며 동시에 감사를 잘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평소에 지역민들과 열심히 소통을 해야 합니다. 자기 컨텐츠가 없이 선거공학적 연대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바라는 정치가 아니라 그저 이권을 탐하는 야합일 뿐입니다. 당선을 위한 연대가 아니라, 의정 활동을 위한 연대를 모색해야 맞습니다. 그리고 유권자 개개인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려면 유권자들부터 치맥과 아파트값 말고 사회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정치인을 욕하는 것이야말로 구태입니다. 자기는 잘못 없고 모든 건 친일파와 새누리당 탓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은 다 빨갱이 탓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국민의당의 등장은 호남의 전략적 선택과 제3정당의 필요성에 의한 것입니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란 지지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을 밝힘으로서 제1야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호남의 기득권 세력을 교체함과 동시에 지역 발전을 꾀하는 것입니다. 제3정당을 바라는 요구는 두 가지 흐름에 기초한 것인데, 첫째는 전국정당론에 대항하여 중도정당론으로 맞서서 집권의 비전을 제시하는 흐름과 양대 정당에 지친 유권자들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 나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국민의당의 출현은 합리적 보수의 등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고, 이는 우리 정치사에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습니다. 새누리의 몰락과 진보 정치의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합리적 보수의 탄생인데, 그것을 선거공학적 연대로 망가뜨리는 바보짓을 하면 안 되겠지요.

 

 

덧붙임

 

* 이 글은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 혹은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 그들을 평하는 대중의 태도에서 보이는 맹목성을 지적하는 글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선거 전인 4월 7일에 써뒀지만 선거 후에 공개합니다. 이번 20대 총선의 결과가 제1야당의 승리로 끝났고, 그동안 제기되었던 수도권 연대 불발로 인한 야당 필패론은 기우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수도권과 영남의 정당 지지율 등을 분석해 보면 새누리당의 지지가 상당 정도 국민의 당으로 이동했음이 분명합니다. 진중권, 조국 교수 등등 오피니언 리더들과 키워님들, 제2야당이 베스트라고 생각하시는 이베님들은 여기에 대해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에게 사과해야 마땅합니다. 혹시 국민의당을 편드는 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의 정치 방식에 대해서도 조만간 나름의 평을 올릴 예정임을 밝힙니다.(2016-4-16)

 

* 참고로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52석을, 민주통합당은 그 좋아하시는 연대를 하셔서 127석을 얻었습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23석, 여권 무소속이 7~8석, 더민당이 123석, 야권 무소속이 2~3명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더민당은 4년 전에 비해 손해 본 것도 없지만 결코 이겼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장기간의 여론조사를 통해 알려졌듯이 25%~30%의 고정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감안해서 말입니다. ‘낯설게 보기(defamiliarization)’를 하자면, 그들은 국민의당에게는 “새누리 2중대”라고 하면서 국민의당에게 몰표를 안긴 호남 유권자들에게는 무릎 꿇고 용서를 간청하는 이상한, 진짜 이상한(antilogous) 행동을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새누리당을 마지못해 지지한 층이 국민의당으로 가서 야권의 지평을 넓힌 것인데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정권교체를 정말로 하고 싶다면(그게 레토릭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만), 당연히 호남과 중도 유권자 모두에게 다가가야 함에도 여전히 전국정당론만을 고집하는 걸 보면 확실히 뭔가 있긴 있다고 봐야겠습니다.(2016-4-1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