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안보, 아, 안보!

category 감놔라 배놔라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7/05/05 18:47


 

* 이웃 블로그 寒儒詩院과 동시에 포스팅합니다.

 

전쟁을 직접 겪어본 세대도 아니면서 입만 열면 지겹게도 안보 타령하는 사람이 있어서 참 마주치기가 거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적인 위협이 있고, 그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포와 혐오, 맹목적인 적개심에 기초해서 군비 증강을 하려는 것만이 방법인지는 곰곰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위키피디아의 「OECD 회원국 자살률 목록」 항목에 따르면 WHO의 2015년 자료에 근거하여 우리 사회의 자살자 수가 10만 명당 26.5명으로 OECD 35개국 중 1위라고 합니다. 역시 위키피디아의 「자살률에 따른 나라 목록」 항목을 보면 WHO의 올해 자료를 인용하여 한국의 자살률이 전 세계 183개국 중 10위에 올라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위부터 22위까지의 나라 중에 한국을 뺀 21개국은 한국 사람이라면 대개는 가서 살고 싶어하지 않을 만한 나라들입니다. 35위까지를 보더라도 벨기에, 일본, 핀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역시나 속물이라면 깔보기 쉬운 그런 나라들입니다.

 

나무위키의 「자살/통계」 항목에 소개된 통계청 자료를 보더라도 2006년부터 2015년까지의 자살자 수를 모두 더하면 138,506명입니다. 자살자의 남녀 비율이 대략 7 : 3 정도이기에 대충 계산해도 9만 7천 명 가까운 남성들이 자살을 한 셈이고, 그 가운데 자살 당시 전쟁에 동원 가능한 10대~30대까지를 30% 정도로만 잡더라도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간 유사시 징발 가능한 예비 병력(?)이 3만 2천 명 가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들과 40~50대의 남성들도 유사시에는 후방에서 전쟁 물자를 만드는 등 동원이 되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누가 보더라도 7~8만 명 이상의 동원 가능한 인적 자원이 손실된 셈입니다. 문제는 같은 기간 동안 북한에 의해 죽은 사람이 자살자의 수천 분의 1도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의 「대한민국군 베트남전 참전」 항목에 따르면 베트남 파병 기간 약 10년간 한국측 사망자는 실종자 포함하여 공식적으로 5,099명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지난 10년간 전쟁 못지 않은 상황 속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안보 타령입니다. 물론 북한은 현존하는 위협입니다만, 북한 때문에 한국만 위험한 것도 아니고, 우리를 위협하는 나라가 북한만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대륙간 탄도탄이 날아다니는 요새 전쟁이 거리가 가깝다고 더 위험하거나 멀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며, 21세기 들어서는 테러가 전쟁보다 더 위협이 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안보, 안보, 안보가 중요하다며 벌벌 떱니다. 전쟁이 나면 자신만 위험한 게 아니죠. 다른 사람들도 전쟁 싫고 안보 중요한 거는 다 압니다. 그럼에도 한 수 가르치겠다는 말투로 “요새 사람들”이 안보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답답해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우리 안에서 한창 공부하고 연애하고 일해야 할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가는데, 자살을 줄여야 그 자신이 그토록 걱정하는 전쟁에 대비할 수 있음에도 젊은 사람들의 자살들을 보면서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안보 타령, 보수 타령 덜 하고 살아왔겠지만요.

 

연이은 국방 비리, 군대내 자살과 사고사들에 대해서는 항의 한번 변변히 안 하고 슬그머니 외면하면서 안보를 말하니 설득력이 없죠. 엉터리 무기를 비싼 값에 사오면 그게 이적 행위이자 국부 유출이며, 군대내 가혹행위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사가 곧 병력 손실임을 잘 모르나 봅니다. 그러니 그런 자들이 말하는 안보 타령이 지겨울 밖에요. 사회 전체가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는 것 자체가 안보와 무관하지가 않을 텐데 참 희한한 사람들입니다.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서울과 지방의 삶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역시 안보와 직결됩니다. 경제가 발전해서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인력이 들어와 있으면 전쟁을 함부로 못 일으킬 것입니다. 돈을 벌어야 무기도 개발하고 사올 수 있지요. 인구와 자원이 골고루 분산해 있어야 자신들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북한 장사정포의 위험도 덜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도를 옮긴다는 것에는 다들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이상한 논리 회로에 갇혀 속는 사람들이 불쌍할 뿐죠.

 

우리가 헛돈 쓴 국방비에서 지극히 미미한 액수만이라도 길가에 가로등을 놓는 것만으로도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부모님들, 우리 자신들이 늦은 시각에 보다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줄이고, 전기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일상의 안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그렇게도 주장하는 안보임을 모릅니다.

 

전쟁이 주는 국가적인 대재앙의 이미지를 활용해야 권력 잡고 국방비 빼먹고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할 수 있으니 안보를 말하는 것이 강력범죄를 미리 예방하려 애쓰는 것보다 누군가에게는 훨씬 손쉽게 직접적으로 이문이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도 그런 논리를 참으로 열심히 내면화해서 앞장서서 나팔까지 불어주는 사람들 보면 학교 다닐 때 무지하게 공부를 잘했어야 맞을 텐데 사는 거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생판 모르는 누군가를 권력자이자 부자로 만들어 주려 애쓰고 정작 본인의 가족은 개돼지로 몰려도 치맥 매상이나 올려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깨운동 삼아 태극기 흔드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인간만큼 재밌는 존재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아니, 그렇게 무서운 땅굴, 우리는 대체 왜 안 파요? 지금쯤이면 압록강 물도 끌어올 수 있을 텐데.”

 

 

덧붙임

 

1. 재밌는 것은 보수의 안보 타령을 비웃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누군가가 지껄이는 기득권-자본가-수구-친일파-외세-이명박근혜-국제 투기자본 타령에 똑같이 속아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불신지옥-일루미너티-외계인 타령에 넘어가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자기 눈에는 분명히 들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 그래서 좀비에게는 좌우가 없다는 거 아닙니까. 입맛에 맞는 글인가 했더니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은 분들을 위해 며칠 내로 한 편 또 올리겠습니다.

 

2. 참고로, 참전 군인 중 전사자 수와 전 국민 중 자살자 수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20대 초반의 참전 군인 연인원 10만 명당 1,700명이 전사한 것과 전 연령대의 남성 10만 명당 37.5명이 자살한 것에는 비율상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100원의 10%와 1,000,000원의 10%를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합리적 이성은 공감이 주는 설득력 앞에 무력할 때가 있지요. (20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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