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남본 홍루몽을 읽기 시작하다 - 제1권의 번역과 편집 (천)

category 관주와 비점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7/06/18 12:02


 

요즘은 중국 문학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홍루몽(紅樓夢)>을 읽고 있습니다. 1990년 예하본이 나오자 바로 읽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 시간이 나서 나남본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젊은 때여서 작품의 깊이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나,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니 자연히 작품에 대한 이해와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것에 대한 소감이 당시와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본격적인 출발을 하던 무렵과 고갯마루를 내려오는 지금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세월이 흐르다 보니 <홍루몽>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책의 1/3에 해당하는 81회부터 120회까지가 정본이 없으므로 국내 번역본들이라도 골고루 읽어볼 요량으로 일단 최용철ㆍ고민희, 두 홍학자가 옮긴 나남본을 먼저 골랐습니다. 나남본의 경우에는 전 6권 중 이제 겨우 1권 367쪽까지 읽고 있는데, 초판 후 3년 뒤 2판이 나왔음에도 번역과 편집이 만족스럽지 않아 아쉽군요. 이제까지 읽은 부분에서 발견한 것만 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27쪽 맨 아랫줄

실제로 - 소설 속

* 부질없는 돌을 “온유부귀의 고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신선의 말에 그곳이 “실제로 대관원과 이홍원을 지칭”한다는 각주를 붙였는데, 대관원과 이홍원은 인간세상의 허무함을 의미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곳입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다듬어야겠습니다.

 

45쪽 맨 아랫줄

겨우겨우 이태가량 텼지만 - 겨우겨우 이태가량 버텼지만

 

72쪽 12번째 줄과 15번째 줄

친척 – 인척

* 임여해는 가씨 집안의 사위이므로 처남들은 그의 친척이 아니라 인척이 됩니다.

 

74쪽 밑에서 4번째 줄

뒤에 따르던 할멈들도 모두 가마에서 내리더니 앞으로 왔다

* 대옥을 시중드는 할머니들까지 가마를 타고 올 것 같지는 않기에, 아무래도 원문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76쪽 밑에서 8번째 줄

나를 앞세우고 먼저 가버려 - 나를 앞서 먼저 가버려

* 가씨 집안 최연장자인 가모가 먼저 죽은 딸을 애통해 하면서 하는 말인데, 딸이 노모를 ‘앞세우고’ 먼저 죽었다고 하면 아무래도 문장이 어색하므로 윤문을 해야 할 듯합니다.

 

79쪽 13번째 줄

깨끗하고 치우고 - 깨끗하게 치우고

 

97쪽 밑에서 6번째 줄

국자감제주(國子監祭酒) – 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

* 전통적으로 관직명을 가리킬 때는 ‘좨주’라고 하여 옵니다. 물론 ‘祭’의 동사적, 또는 명사적 활용에 따른 표준 중국어의 발음 차이는 없지만, 오히려 시대와 지역 및 계층에 따라서는 글자 자체의 성조와 음이 차이를 보였음이 당연하므로 ‘좨주’라는 ‘정확한(?)’ 발음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조선 전통문화 속에서는 제에 올리는 술이나 술을 따른다는 뜻의 ‘제주’와 관직명의 ‘좨주’를 대체로 구별하였습니다. 이 글자의 발음에 대하여는 아마 역자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완고한 한학자의 계보를 잇지 않는 이상은 21세기의 젊은 독자들을 괜히 머리 아프게 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좨주’가 작품의 시대상을 살리는 데 더 어울리는 용어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품이 번역되어 우리 문화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우리 문화, 우리 상상계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祭酒’의 발음에 관해 따로 글을 쓰려다가 한 블로거가 이 글자의 발음에 대해 정리해 두었길래 그냥 링크만 하여 둡니다.

 

98쪽 14번째 줄

원고측 사람을 심문을 시작했다 - 원고측 사람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109쪽 밑에서 8번째 줄

* 설반이 사람을 죽이고 경성으로 가는 대목입니다. 경성집들을 오래 비워둬 임대료를 떼먹혔을지 모르니 청소를 해두자고 모친을 조르는데, 집을 비워둬서 임대료를 떼먹히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도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데다, 임대료 떼먹힐 가능성과 청소가 필요하다는 것은 서로 호응이 안 됩니다. 아무리 봐도 오래 비워둬 청소가 필요할 수도 있고 임대 문제를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일 텐데, 이 부분은 조설근의 원문이나 필사본, 저본 등이 치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아울러 그것을 매끄럽게 옮기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124쪽 본문 밑에서 5번째 줄

뒷면에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 뒷면의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 요즘 ‘~의’를 써야 할 자리에 ‘~에’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훌륭한 고전의 번역에도 어이없는 실수가 나오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28쪽 6번째 줄

애)fi구나 – 애닯구나

* 세상에, 이런 오류가 2판에서 잡히지 않다니!

 

156쪽 맨 아랫줄

고모 아씨

* 왕부인의 친정 조카이자 시조카 며느리인 왕희봉에게 왕부인의 먼 조카뻘인 왕구아의 장모가 ‘고모 아씨’라 호칭하고 있는데, 대갓집에 구걸하러 왔으니 아첨하는 대목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과하거니와 모순됩니다. 고모를 아씨라 부를 수도 없으며, 유노파의 입장에서는 사위인 왕구아와 희봉이 같은 항렬의 먼 친척뻘이니 신분을 감안하여 ‘젊은 마님’이나 ‘아씨’, 또는 ‘(사위의) 고모님댁 며느님’ 정도로 불러야 마땅합니다. 원문이 어지럽더라도 대중을 위한 번역이니만치 역자가 바로 잡아줬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국어의 ‘고(姑)’가 고모나 시어머니라는 뜻 말고도 (손윗)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식당 같은 데서 종업원 여성을 ‘이모’로 호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그냥 아주머니라는 뜻이지요.

 

157쪽 13번째 줄

왕소군 망토를 걸치고

* 망토(manteau)는 원래 프랑스어로서, 이 작품과는 안 어울리는 번역입니다. 춘향이 스커트를 입고 있다고 하면 어울립니까? 307쪽 7번째 줄의 ‘기라성’이라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일본식 한자어여서 198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방송과 언론을 통해 쓰지 말자고 했고(그것도 웃기는 짓이지만), 그래서인지 1990년대 이후부터는 잘 안 쓰이게 됐습니다. 아무튼 문언과 백화 모두에 없는 표현임은 분명하므로 좀 더 다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157쪽 밑에서 8번째 줄

고개 숙인 않은 채 - 고개 숙인 채

 

162쪽 밑에서 9번째 줄

우리 할아버님하고 같은 관청에서 – 우리 아버님하고 같은 관청에서

* 주서댁이 왕부인의 말을 전하는 대목인데, 왕구아의 조부가 왕부인의 부친과 왕래하며 조카 행세를 했다는 말이 147쪽에 나오므로 ‘우리 할아버님’이 아니라 ‘우리 아버님’이라야 내용상 호응이 됩니다. 원문 자체의 불일치인지, 번역이나 편집상의 실수인지 잘 모르겠군요.

 

179쪽 2번째 줄

이 아이가 워낙 – 처남이 워낙

* 비록 가용의 처가가 가씨 집안에는 미치지 못 하더라도 처남을 그렇게 칭할 수는 없습니다. 또, 186쪽에도 희봉이 보옥에게 “너”라며 반말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희봉과 보옥이 형수와 사촌 시동생 관계 이전에 고종사촌과 외사촌 사이임을 고려하더라도 좀 막나가는 듯합니다. 비록 청대의 친족 관계가 우리와 같지 않아서 원문이 위와 같더라도 작품 분위기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번역에 대한 고민은 독자도 함께 해야 합니다. 예컨대, ‘대감’이나 ‘마님’, ‘서방님’, ‘도련님’, ‘나리’처럼 기왕에 우리 식에 맞게 고친 표현들로 번역을 했으니만큼 다른 부분들도 우리 식에 맞춰 번역하는 게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희봉과 보옥과 둘이서만 있는 자리에서나 그렇게 부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둘만 있는 자리인지가 소설 속에서 분명치도 않습니다. 번역은 단순히 문장과 단어의 1차적인 뜻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서 매개해 주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어떤 번역이 더 어울리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독자들이 함께 해주는 것이 힘들게 번역하신 분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이라 봅니다.

 

183쪽 13번째 줄

자네의 가진 오라버니 - 자네의 가진 아주버님

* 가진의 부인 우씨가 팔촌 동서인 희봉에게 자신의 남편을 지칭한 말이므로, 원본에서 뭐라 쓰였던 우리 말에 맞게 아주버님으로 바꿔야 어울리는 번역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모부네 집안, 즉 사돈 집안의(소설에서는 왕희봉의 남편 집안이기도 한) 팔촌뻘 손윗남자를 친족에 포함하여 오라버니라고 부르도록 한 셈이 되는데, 이런 부분은 주석을 달아서 오해가 없도록 해줘야 합니다. 한국은 같은 한자문화권으로 조선 시대부터 중국 고대의 친족 관념을 정통으로 생각해 오며, 그래서 오늘날에도 한중의 친족 문화가 유사하리라 우리 멋대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실제의 친족 문화는 상당히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오빠도 ‘꺼거(哥哥)’, 형도 ‘꺼거’인 것만 봐도 그렇고 상속의 방식이나 혼인 및 친인척 맺는 방식, 종법 질서 등등 모든 면에서 다르기에 원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주석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계촌법이나 때와 경우에 맞는 지칭과 호칭을 몰라 헷갈려 하는데, 번역하면서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과거 중국에서는 형, 오빠에 부친까지도 ‘꺼거’라고도 했었다고 합니다. 아예 고대로 올라가면 족내혼(endogamy)의 하나인 교차사촌혼(cross cousin marriage)을 하던 문화여서 지금도 한자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요. 이를테면 332쪽 4번째 줄에 여동생이 황제의 후궁이 된 가련에게 희봉이 국구(國舅)라고 부르는 대목이 나옵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황제나 임금의 장인으로 알고 있고, 적어도 우리쪽 사전을 보면 죄다 그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에서는 시아버지, 외삼촌, 장인, 처남 등의 뜻이 있습니다. 요 몇 년 전에 인기를 끈 TV 드라마 <랑야방 : 권력의 기록>에서도 언궐이 여동생을 황제에게 시집 보내 언 국구라 불리는데, 많은 분들이 어리둥절해 했지요. 중국이 교차사촌혼을 하던 사회임이 글자에서도 드러나는 셈인데, 이미 설명했듯이 시어머니와 고모를 뜻하는 글자가 같고, 시아버지와 외삼촌, 장인이 같은 글자라면 교차사촌혼 집단이 분명하겠죠?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에 소개하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국의 친족 체계

주진촌시(朱陳村詩 )

 

* 나남본 홍루몽을 읽기 시작하다 - 제1권의 번역과 편집 (지)로 이어집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