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남본 홍루몽을 읽기 시작하다 - 제1권의 번역과 편집 (지)

category 관주와 비점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7/07/19 15:05


 

* 나남본 홍루몽을 읽기 시작하다 - 제1권의 번역과 편집 (천)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190쪽 12번째 줄

허리를 끌어안으며 두 손을 잡았다

* 두 팔로 완전히 끌어안았다는 것 같은데, 정황상 가보옥에게 굽실대는 허접한 식객이 보옥의 허리를 그렇게 완전히 끌어안았을 리 없을 듯합니다. 허리춤에 매달리는 시늉을 하는 식객, 두 손을 모아 비비는 식객 등등 보옥의 주위에 모여 굽실댄다고 해야 맞을 듯합니다. 이런 게 중문학 번역에서 어려운 점이죠. 우리처럼 부사나 조사 등이 발달했다면 상황의 묘사나 행위의 주체와 대상 등이 분명할 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378쪽 7번째 줄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시동 몇 놈이 우르르 달려들어 보옥의 허리를 끌어안으며’라는 구절은 ‘시동 몇 놈이 우르르 달려들어 보옥의 허리춤에 매달리는 시늉을 하며’나 ‘시동 몇 놈이 우르르 달려들어 보옥의 허리춤을 붙잡고 늘어지며’ 정도로 번역해야 앞뒤 문장과 호응이 되면서 동시에 정확한 상황 묘사가 될 것입니다. 중국어에서 골치 아픈 것 중 또 하나가 시제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래 시제를 표현할 문법적 장치들이 사실상 없습니다. 이를테면, 275쪽 제13회 <진가경의 장례>편의 ‘왕희봉이 도와서 녕국부의 장례식을 치렀네’라는 구절은 ‘왕희봉이 도와서 녕국부의 장례식을 치르네’라고 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13회차는 진가경의 장례를 위해 왕희봉이 일을 맡기로 하는 데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문장이 주는 정보 자체가 불완전하니 문맥, 다시 말해 상황으로 대략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런 언어적 특징이 아마도 호방한(?) 기상으로 디테일에 무심한 그네들의 문화를 이루는 데 일조했을 듯합니다.

 

191쪽 6번째 줄

말〔斗〕만 한 – 말〔斗〕만한

* 287쪽 3번째 줄의 ‘그만 한 사람이 없구먼’ 역시 ‘그만한 사람이 없구먼’이 되어야 합니다. 또 338쪽의 ‘효도만 한 것’도 ‘효도만한 것’이 맞습니다. ‘만하다’는 앞에 오는 것과 띄어써야 맞는데, 아마 컴퓨터에서 한꺼번에 일괄하여 잘못 교정한 듯합니다. 한편, 288쪽 밑에서 3번째 줄의 ‘싶어 하던’은 ‘싶어하던’이 맞습니다. 위와 같이 띄어쓰기가 명백히 잘못된 곳이 꽤 많습니다.

 

192쪽 5번째 줄

오래되 – 오래돼

* ‘-되’는 어간만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되어’ 혹은 ‘-돼’의 꼴로 써야 합니다. 자잘한 문제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192쪽 9번째 줄

장밋빛과 보랏빛이 감도는 족제비털 목도리

* 중국 문화 안에도 붉은색 계열을 뜻하는 글자가 많습니다. 흔히 쓰이는 丹ㆍ紫ㆍ赤ㆍ朱ㆍ紅 등을 비롯해 여러 글자들이 있지요. 당연히 저마다 다른 빛깔, 다른 느낌인데 아마도 조설근이 어릴 적 보았을 그 목도리의 색은 그의 머릿속에 과연 어떤 색으로 남아 있었을까요? 어느 누군가에게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색과 향과 미(味)가 있을 테지만 그저 아련할 뿐이겠죠. <홍루몽>은 당대 생활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나서 민속학적 의의가 매우 크지요. 그래서 족제비털 목도리의 색에 어떤 글자를 썼는지, 실제로 족제비털에 보랏빛이 감도는지, 아니면 염색을 한 것인지까지 궁금해집니다. 이것은 번역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참고로 색깔은 문화에 따라 매우 다르게 인지됩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위키백과의 「여러 언어에서의 파랑과 초록의 구별」 항목과 나무위키의 「무지개」 항목을 참고하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또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라는 책이 있고요, <블루, 색의 역사 :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라는 책도 있습니다.

 

192쪽 14번째 줄

눈은 물빛 살구만 같았다

* 물빛 살구가 어떤 색의 살구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눈이 살구 같이 크다는 뜻인지, 아니면 눈빛이 물빛이라는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살구처럼 크고 맑은 눈동자’ 로 번역하고 원문을 첨부했다면 어땠을까요?

 

198쪽 7번째 줄

거위 발과 오리 혓바닥 요리

* 칼국수에 칼 없고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정말로 오리 혓바닥 요리인지, 그냥 음식 이름일 뿐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은 국한문 병용 처리를 해주는 게 더 좋았을 듯합니다.

 

207쪽 각주 3번째 줄

공명(功名)의 축원하는 의미를 - 공명(功名)을 축원하는 의미를

 

236쪽 8번째 줄

가련 삼촌네 - 가련 아저씨네

* 따지고 보면 가련은 가용의 9촌 아저씨이므로 가용의 입장에서 가련을 부르려면 삼종백부(三從伯父)나 삼종숙부(三從叔父)가 될 것인데, 그보다는 ‘아저씨’쯤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작품 이해에도 더 좋을 듯합니다.

 

248쪽 10번째 줄

용 서방님 – 용 조카님

* 왕희봉에게 가용은 한 항렬 아래입니다. 따라서 가용의 모친이자 왕희봉의 8촌 동서인 우씨 앞에서 희봉이 가용을 서방님으로 지칭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씨 앞이므로 이름을 불러도 괜찮고, 이름을 빼고 조카라고 해도 되며, 나이가 비슷하니 가리키든 부르든 조카님 정도로 하는 게 제일 좋겠지요. 아무튼 서방님은 아닙니다. 255쪽 2번째 줄의 “오라버니”도 왕희봉의 고모부의 재종질, 즉 고모부의 7촌 조카(재종질)이자 희봉의 남편인 가련과 8촌 형제인 가진이 됩니다. 따라서 시아주버님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작품의 내용이 큰 가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므로 등장 인물들의 항렬과 나이 차이 등을 어느 정도 고려하면서 읽어야 작품의 배경이나 분위기 등을 충실히 이해할 수 있으므로 번역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읽으면서 주의가 필요하기에 지적해 둡니다. 가진과 희봉이 같이 자랐다는 구절을 본 것도 같은데, 그걸 고려하더라도 고민이 필요한 번역입니다.

 

248쪽 14번째 줄

아픈 사람한데 - 아픈 사람한테

 

275쪽 밑에서 3번째 줄

바라다 주지 – 바래다주지

 

285쪽 5번째 줄

각종 집기와 문서에도 오품의 직함에 맞도록 바꾸었다 - 각종 집기와 문서도 오품의 직함에 맞도록 바꾸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97쪽 10, 11번째 줄

* 문장이 이상합니다. 얼핏 보면 아무 문제 없지요? 잘 읽어보세요. 명도로 가는 길이 어두우니 그 길을 밝히는 의식인 전등조망을 해서 명도를 밝힌다는 겁니다. 여기서 명도는 글자 그대로 저승길이라는 뜻입니다. 번역대로라면 ‘저승 가는 길로 가는 길’을 밝혀서 ‘저승 가는 길’을 밝힌다는 이상한 얘기가 됩니다. 중국의 민간도교에서는 저승에 가기 위한 노정(명도)이 꽤나 다양하게 전해 오지만 ‘명도 가는 길’이라는 것은 없고, 마치 ‘서울역전 앞’처럼 그 자체로 이미 모순이 되는 말입니다.

 

298쪽 11번째 줄

하얀 소복을 한 노복들이 - 하얀 소복 차림을 한 노복들이, 또는 하얀 소복을 입은 노복들이

 

297쪽 본문 밑에서 2번째 줄

동시에 연주되기 시작되었다 - 동시에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305쪽 밑에서 3번째 줄

일체의 손님접대는 희봉 혼자서 맡아 응대하고 있었다 - 일체의 손님을 희봉 혼자서 맡아 응대하고 있었다

* 얼핏 볼 때는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손님 접대를 응대한다는 이상한 문장입니다. 좋게 봐주자면 ‘응대하고’ 앞에 ‘손님들을’이 생략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문장 안에 ‘손님’이 반복되어 역시 이상하게 됩니다.

 

308쪽 10번째 줄

가서와 가정을 모시고 - 가사와 가정을 모시고

* 진가경 운구 대목인데, 이 대목 이전에 가서는 풍월보감에 놀라 이미 죽었습니다. 몇 줄 아래에 보면 가사가 감사를 표한다고 되어 있어므로 내용상 가사가 분명합니다.

 

333쪽부터 335쪽

* 가련과 왕희봉의 대화에서 “이모”가 언급되나 여기서 이모는 누구의 이모인지 불분명합니다. 문맥상 설부인을 의미하는데, 왕희봉에게 설부인은 친고모가 됩니다. 책 맨 뒤의 가계도에도 나오지요. 남편인 가련에게는 숙모의 친정 여동생이므로 사돈댁 아주머니가 되며, 겹사돈 관계이므로 아내의 고모이기도 합니다. 설부인은 주인공 가보옥에게는 이모가 맞는데, 가련과 왕희봉이 보옥과는 무관한 대화를 하므로 이모로 호칭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본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저본이 틀릴 수 있으므로 번역을 잘 했어야 합니다. 물론 가씨를 중심으로 결연(혼인으로 동맹을 한, alliance)한 여러 씨족들 자체가 한 가족일 수 있고, 실제 민간의 개념도 그러했을 수 있으며, 또 작품에서 가계와 촌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천계의 인연이 땅에 이어짐을 보이기 위해 원작자인 조설근이 고모 이모 구분없이 아주머니에 해당하는 정도로 대충 써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큰 의미가 없더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냥 대충 한 가족이고 다 먼 친척이고, 결국 인생무상의 주제만 알면 되겠거니 하는 자세로 읽으면 큰 상관은 없지만 말입니다. 이런 오류가 문화적 차이인지, 조설근의 원문이 그런 것인지, 번역을 제대로 안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후자라면, 아무래도 대학원생들 시켜서 조각조각 번역한 것을 합치고 감수만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랑야방>의 단순한 근친인척 관계조차 어렵다고 머리 싸매는 세대들을 감안해서 새로 교열 윤문해야 할 듯합니다.

 

340쪽 밑에서 9번째 줄

* 죄과가석을 ‘죄가 너무나 애석함’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석(惜)에는 두렵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려울 정도로 죄가 크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렇게 해석해야 진씨 일가가 죄과가석이라는 말에 개의치 않고 황궁의 돈을 빼돌려 그 돈으로 위세를 떨었다는, 즉 죄의식조차 없이 부정축재를 했다는 문맥이 비로소 통하게 됩니다.

 

355쪽 9번째 줄

“금장〔錦嶂 : 비단 같은 묏부리〕라 해야” - “금장〔錦嶂 : 비단 같은 묏부리〕이라 해야”

* 꺾쇠 기호는 역자 주이므로 “금장이라 해야”와 같이 전후가 이어져야 합니다. 반대로 355쪽 10번째 줄의 “새향로〔賽香爐 : 향로봉에 버금가는 곳〕이라고도”는 “새향로〔賽香爐 : 향로봉에 버금가는 곳〕라고도”라고 해야 합니다. 방대한 소설이니 이런 초보적인 교정 실수가 일부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을 내고도 계속해서 교정교열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사람한테 돈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359쪽 각주 2

(각주 2의 내용은 문장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므로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 이 대목이 어떻게 임대옥의 문학적 재능과 연결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더 자세하게 풀어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대관원 곳곳의 이름을 짓는 대목에서 보옥의 말투가 전 회차와는 다르게 갑자기 어른스러워지는데, 이런 부분도 더 매끄럽게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나남본 홍루몽을 읽기 시작하다 - 제1권의 번역과 편집 (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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