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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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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생각해 보았는데

바리님의 [나도 참...] 에 관련된 글.

사실 저는 좀 다혈질입니다. 그래서 흥분도 잘하고 화도 잘내고 결정도 빨리 내리는 편이죠.

그런 자신을 잘 알기에 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때는 스스로에게 냉각기간을 두면서 그 결정을 유보하려고 노력합니다.

(남들 보기엔 그게 화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 안할 수 없었지요.

블로그 생각을 할 때마다 저절로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생각이니까.

 

1.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아저씨가 휴대폰을 붙잡고 고래고래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돈 문제가 있는 것 같았고 다급한 상황인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한 객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아저씨의 사생활을 알게 될 정도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상황,

분명 유쾌하지 않습니다. 불쾌한 사람도 있는 듯 했습니다.

"남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큰 소리로 사적인 통화를 하다니, 사람이 참 무례하네."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람이 늘 그렇기야 하겠어. 워낙 급한 상황인가 보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중년의 남성들이란 늘 전화를 붙잡고 사방팔방에 돈문제를 얘기한다니까."

왜 이런 생각은 불가능할까요?

 

편견에는, 세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1)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존재하고

2) 한 개인이 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통념을 적용하는 것.

3) 단, 그 집단은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약하거나 소수일 것. 그렇지 않을 경우엔 '편견'보다 중립적인 '고정관념'이란 표현이 더욱 적합하다.

 

"중년의 남성"이라는 데 대한 1) 사회적 통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2)와 3)도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아 이럴 수는 있지요. 제가 그렇듯이 그 "중년의 남성"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 등을 떠올리고, 그러면서 "가부장적 남성들이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니까"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편견'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중년의 남성'은 사회적으로 약하거나 소수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인 주류집단이니까요.

 

어떤 가치판단이 '편견'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은, 그 판단의 대상이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와 매우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이란" "흑인이란" "가난한 자들이란" "장애인이란" "여성이란" 이런 것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합니다.

 

즉 편견이란 중립적이지 않은, '부정적 의미'로서 사회적인 '낙인'입니다.

그리고 이 편견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차별'이 됩니다.

 

2.

 

사무실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자기 가정사를 떠들고 있습니다.

참 짜증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사람 왜 저러지"가 아니라

"엄마들이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유형화입니다.

 

그리고 그 유형화가 조건에 부합하면 편견이 됩니다.

모든 엄마들은 자기 가정사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이 엄마면 그럴 것이라는 생각, 은 편견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업무를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여성주의에 대해(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여성주의자일때) 이야기하거나,

채식주의에 대해(그 사람이 자신의 채식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면 크게 짜증나지 않았을텐데,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유독 짜증이 났다면

이는 편견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제기하는 여러 다양한 화제와 그로 표출되는 다른 존재조건들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고

유독 가정사라는 화제와 그로 표출되는 엄마라는 존재조건을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업무를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여성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것에 대해 짜증이 났는데,

이를 "그 사람이 짜증난다"고 하지 않고

"엄마들이란 짜증난다"고 말한다면

더욱 확실한 편견입니다.

그 사람의 개인적 특성을 집단의 특성으로 유형화하고 낙인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그 포스트에는 엄마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편견을 사회적으로 공표하는 행위는, 차별,이라고 또한 생각합니다. 

 

3.

 

제가 지금까지 쓴 유비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저와 전제 자체가 다른 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 1의 조건3)에 대한 문제가 여기서 나옵니다.

간단치 않은 문제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엄마란, 아니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산을 한 여성이란

사회적으로 주류인가,

아니면 종속적 존재인가.

여기에 따라서 판단이 갈릴 겁니다.

 

저는 아이를 낳고 나서,

제가 그 이전에 속해 있던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옛 친구들도,

옛 직장 동료들도,

심지어 익명의 대중 속에서 길을 걸어갈때도

저는 '애엄마'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충격이었지요.

사람이 평생 살면서 그렇게 존재조건이 변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한 존재조건이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지위가 아닌 것은 확실했습니다.

 

모성에 대한 찬사를 쳐바르는 사회문화적 생산물들은

엄마들이 주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생산이 필요한 체제가 고안한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적 행위입니다.

그 과정에 동원되는 엄마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생산 관계에 매여 있으면서 그 구조적 지위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위안을 하는 분들을 보면 좀 답답합니다.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에 동참하며 '나도 여잔데 페미들 너무 싫어'라고 끼여드는 분들 보았을때의 답답함과 비슷할 겁니다.

(물론 그렇게 쓰는 분들 가운데 사실은 여자가 아닌 분이 많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논쟁에 참여할때 저도 80% 정도는 남성 정체성을 표방하니까요. 그래도 그런 분들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에쵸티와 군대 문제, 군가산점 논란이 불붙었던 나우누리 유머방에서도 실명 아이디로 종종 저런 여성들 글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들의 이중적이면서 모순적인 사회적 지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엄마만 해도 "에그 내 신세야"를 입에 달고 사시니까요.

그러나 신세한탄만 하면서 살일은 아니지요.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굴레가 있을때, 그 굴레를 벗어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길은

즉자적 관계에서 자신을 고양시켜 대자적 관계 속에 맥락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자신의 존재조건을 재해석하고 그 존재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의 일환이 되는 것이지요.

생태운동하는 엄마들, 교육운동하는 엄마들, 성폭력근절운동하는 엄마들, 생협과 같은 유통운동을 하는 엄마들...

엄마라는 존재조건 속에서 그 정체성을 급진적으로 해석하며 실천하는 이들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유모차 부대가 여기 속할지에 대해선 좀 고민입니다. 유모차 부대 = 엄마도 나왔다 = 가장 소시민적인 집단도 나왔다 = 전국민 관심사 란 정치적 담론화 과정 속에서 호출된 정체성이니까요. 그래도 자기 존재조건 속에서 실천하고 싶은 엄마가 있을때, 자기 집에 광우병 반대 플랙카드를 걸거나 유모차를 끌고 거리에 나온다면 그것은 최선의 실천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다양한 경우가 있겠습니다만, 그 어떤 경우도 자신이 엄마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엄마인데 엄마라는 정체성을 감추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수많은 워킹맘들은 엄마라는 정체성을 감추려고 하고, 감출 것을 요구당합니다. 탈성화하고 탈엄마화해서 명예남성이 되도록 강제받고 있고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려는, 생산 영역과 재생산 영역을 구분하려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습입니다.

저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서술이 길어졌는데, 3의 앞부분을 다시 상기해 주십시오.

"엄마"란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권력관계에 속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엄마"라는 집단의 유형화가, 편견인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모성에 대한 칭송들 속에서도 대개의 엄마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주류의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속에서 결혼 제도 속으로 들어간 여성이 기득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혼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특히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혐오감을 감추지 않습니다.

 

확실히 결혼 제도 속에서 재생산이라는 의무를 다한 여성과 비교하면

비혼 여성은 사회적으로 더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더 열악한 조건 속에 있지요.

 

그러나 두 여성들 모두 남들이 규정한 똑같은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여성은 재생산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숙제를 해서 칭찬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 숙제로 인하여 끝없이 밀려드는 또다른 숙제에 허덕이면서

자신의 다른 정체성은 포기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 형국이라면요.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

즉 이성애적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제도 안에 들어오고 출산함으로써 가부장적 재생산에 일조하는 행위는,

정치적인 선택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정치적인 비판이 가능할 수는 있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의 존재조건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 생이 다할때까지 아이 목숨을 자기 목숨과 세트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지요.

 

엄마란, 그런 존재조건인 겁니다.

네네, 얘기 안해주셔도 저희가 가장 슬픕니다. 다른 정체성들이 다 떠나가고 엄마라는 정체성만 남은 것이.

 

(요즘 제가 바쁜척 해서 섭섭한 분들 계시지요...

아이만 보는 주말을 제외하면 주5일을 일하는데 쓸수 있는데 근무시간을 어린이집 시간과 맞춰야 합니다.

주중 야근을 하거나 회의에 참석하려고 해도 제가 아이를 찾는 화,수,금요일을 제외한 월,목요일에만 저녁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 저녁에 아이를 찾는 당번을 아빠와 교대로 주 2회 / 주 3회를 나누고 있거든요.

그래서 7월부터 저녁시간 회의 참석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피같은 주2회 저녁을 두문불출하고 업무만 보아도 빠듯해서요.

ㅂ... 당신에게 제일 미안해... 엄마라서 바쁘다,가 정답인데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지겨웠어. 그래도 해명하고 싶었어 ㅠㅠ )

 

4.

 

잠시 휴업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 '생각'이 "엄마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불진탑화면에 보였을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공격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제가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원래 소수자 정체성이란 피해의식과 분리할 수 없는 거거든요.

저더러 대범해지라고 하신다면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소수자가 자신의 존재조건에 대하여 저렇게 공격적인 어휘로 공개적으로 비판받는다면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장애인들에게 고함"

"채식주의자들에게 고함"

이라고 불진탑화면에 올랐을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음... 두 경우는 좀 다르겠군요.

채식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선택하는, 순수하게 정치적인 규정이기 때문에

저런 선포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얼마전 여기 진보 불로그에서는 채식주의에 대한 토론이 한바탕 벌어진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장애인이라는 조건은 자신의 존재조건이자 자신이 피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닙니다.

그런 조건에 대하여 낙인찍고 공개적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공격입니다.

 

'엄마'라는 정체성은 그 두가지의 경계에 있을 듯 합니다.

다시 3.의 문제로 돌아가는군요. 

 

확실한 것은 이겁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존재조건을 함부로 비웃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떤 정치적 올바름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목을 보고 충격받고,

내용을 보고도 충격받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댓글들 속에 있었습니다.

 

노골적인 조롱의 대상, 이더군요, 엄마란.

그 한가지 경우로 국한하여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의견이 아니라

"속시원한 이야기였어, 엄마들이란 그렇지"란 반응들에서 깨달은건 말이지요.

 

지난주부터 이 블로그에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는 '육아'를 주제로,

제 신변에 있는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육아와 엄마 정체성에 특화하려고 개설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간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자기 검열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블로그가 사적인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사회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앞으로 의식하게 될 시선은 늘, 엄마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시선일 것 같습니다.

그건 '엄마'라는 이 블로그에서 가장 못견딜 일일 것 같습니다.

  

제 결정이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트하는 꿋꿋한 다른 엄마 블로거들의 의욕을 꺾지 않길 바랍니다.

그렇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요.

이건 그냥 개인적인 정리가 필요한 사안인지도 모릅니다.

 

2년 전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의 정치적 입장을 한번 정리해보겠다고 했던 것을

이렇게 정리해 본 겁니다.

 

가장 큰 갈등은 제 내면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계속 생각할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거에요.

그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글을 올릴 수 있을 거에요.

어쩌면 영영 문을 닫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휴업'입니다.

 

아이 사진을 내리고 싶은데 (그런 시선에 노출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경이 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분들 생각에 일단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생각해보고, 다른 결론에 이른다면 사진을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럴때는 너무 섭섭해하지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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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내 생각에 촛불집회에서 남성이 예비군으로서의 정체성이 호출되는 것만큼
여성이 모성으로 호출되는 것이 빌어먹을 주류는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모성은 이데올로기일때만 숭고한 것이고
원래는 비천한 재생산 종족이거든.

하지만 확실히 내가 비혼일 때는
아줌마들 때문에 늘 짜증 만땅이었던 게 사실인거라.
이제 내가 애 낳고 키우는 입장이 되니까 그걸 깜빡 한다니까.

내가 하루하루를 꽁지가 빠져라 사느라
불쑥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몰라몰라... 힘들어 이렇게 된다.

여성을 모성으로만 호출하는 그네들에게 기가 질리면서도
어떻게 할까... 나는 사실이 엄마인걸.
여성이고 활동가인것처럼 그것도 내 정체성 중의 하나이고.

내 생각엔 그랬다.
이렇게 애키우는 일에 대한 블로그까지 만들어 놓고
애 키우는 얘기하는데 위축되지 말자
명예남성의 함정에 속지 말자
재생산 노동이 공으로 이루어지는거 아니라는 거 세세하게 보여주자
뭐 이딴식으로 합리화했다.

다른 활동가들 만나면 부러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그럼 평소엔 그런 얘기에 검열하며 살던 어떤 이들은 반갑다,고도 했고.
사람은 이렇게 자기 입장 속에서 살게 되는 것 같다. 자기 스탠드포인드. 자기 레벨. 자기 뷰포인트.
그게 당연한 거겠지.

다만 바라는게 있다면,
낙인찍는 일은 없었으면.

그냥 그 사람이 짜증난다고 했으면.
아줌마들이 짜증난다고 범주화하고 쉽게 낙인찍지 말았으면.
나는 그런 유형에 속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고 있고,
그렇게 범주화되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아줌마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범주화와 낙인에 거부하고
활동가에 대한 범주화와 낙인에 거부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다.

이렇게 말해놓고도
참 기분이 비참한 건 어쩔수 없다.
내가 남에게 이렇게 짜증나는 존재였구나.

새삼 생각해보는 것이, 이 블로그만 해도 그렇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소리만 가득하지 않은가.
자기 연민은, 떳떳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역시 추하다.
남들보기에 참 짜증날테지.

멋지게 늙고 싶다고 평생 생각해 왔는데
어느쪽 방향에서 쳐다봐도 비천하기 짝이 없는 밥풀떼기다.
애를 싸질러 놓은 처지에 어차피 남은 선택은 명예남성이 아니면 아줌마 뿐이다.
그렇다고 무성적인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으니 선택지는 둘중 하나뿐이렷다.
이 딜렘마.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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