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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기린의 이야기


 

사랑


고래 : 어느 순간부터 바다보다 네가 더 절실해져 버렸어. 그래서 바다를 떠나와 이렇게 좁은 어항 속에 간신히 나를 맡긴 채, 지금 나 네 곁에 있어. 제발 아무데도 가지 마. 바다를 떠나온 내가 살아갈 이유는 오직 너뿐이야..


기린 : 지금도 늦지 않았어. 바다로 돌아가.


고래 : 왜 그래? 왜 처음과 같지 않은 거야. 왜! 왜! 왜!

      봐, 나 바다를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어.

   사랑해! 사랑한다구!!


기린 : 의심 좀 그만해. 그저 네 눈 밖에서만 벗어나면 의심, 또 의심! 이젠 나도 지겨워! 목이 긴 내가 이렇게 숙여서 어항만 바라보고 있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니? 무리에서 떨려 나온 지도 오래야. 너만 희생했다고 생각하지 마.


그러게 왜 대책 없이 바다를 떠나왔어, 왜!

돌아가!! 가서 새로운 사랑도 찾고, 자유롭게 살아. 이젠 나도 정말 지쳤어.


고래 :  .......



이별


고래 : 처음엔 몰랐어. 바다에서 살 수 없는 너 대신, 내가 바다를 떠나 어항에서 지낸다면 우리 사이는 영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날이 갈수록 지쳐가는 네 모습이, 너의 눈물이 너의 몸짓이 자꾸만 내게 외쳐...

우린 영원할 수 없다고...


어느새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잃고, 슬픈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게 됐지.   

그래, 고래는 바다에서 춤을 추고, 기린은 하늘을 그리며 살 때 아름다운 거야.


모질던 네 모습이 아직도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난 생각해.

이제 다신 어느 누구하고도, 바다를 포기할 만큼의 열정적인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고...



기린 : 알고 있니? 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난 바다에 가있었다는 걸.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 바다가 되게 해달라고. 네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바다가 되게 해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나의 노란 몸뚱이만이 파란 바다를 닮아갈 뿐, 나는 절대로. 바다가 될 수 없어...


날이 갈수록 숨이 가빠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답답해하는 네 모습을 보며 생각했어. 내가 너의 바다가 되는 방법은, 널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뿐이라고..


녹색으로 변해버린 나는 더 이상 무리와 어울릴 수 없지만, 그래도 난 행복해.

너의 바다가 될 수 있어서..


그리고 난 생각해.

이제 다시는 어느 누구에게고 그런 사랑은 받을 수 없을 거라고...


                                                           그림 j.w 글 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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