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Welt mit Protestiere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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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war, als der Abend gerade dämmerte. Da bestanden zu spät angekommenen Touristen, einige Arbeiter, die von den Touristen verdienen, und die AsylbewerberInnen, die vom Tor eine Hungerstreik machen. Der Pariser Platz erschien sehr luxuriös und der Brandenburger Tor vermochte sich als ein spezielles Symbol Berlins darzustellen. Abgesehen von den demonstrierenden AsylantInnen. Sie lehrten dort durch ihre Zelten und Transparenten, dass der Platz nicht nur eine Sehenswürdigkeit sondern auch ein historisches Ort ist. Ja, das Tor hat viele Geschichten des Kriegs, der Revolution, Gewaltherrschaft, Spaltung, Vereinigung usw. Da ist ein Ort des Ereignisses. Ich habe zwei Fotos gemacht. In einem kann man die DemonstrantInnen sehen, aber in dem anderen gibt's nur das Tor. Wir müssen uns entscheiden, ob wir die Welt mit den Protestierenden akzeptieren, oder nur die „reine“ Welt ha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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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23:35 2012/10/29 23:35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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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월세, 그리고 동네로부터의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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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 운하 강변에 산다. 이 동네 이사왔을 때부터 산책하면서 지상층 창가에 나와 있는 고양이들과 "나는 이 동네에서 살길 원한다" 같은 문구가 써 있는 창문을 계속 주목하고 있었는데 오늘 뉴스에서 다뤄주었다.

원래 사회주택으로 지어졌던 이집을 주택회사가 소유한 뒤 세입자들을 내 쫓고 건물을 개조해서 자가주택으로 팔려고 한다. 다른 세입자들은 이미 다 포기하고 나갔고, 이 할머니 혼자 남아 있다. 이 할머니 집의 동쪽 창문은 세입자에 속한 게 아니라 건물 전체의 것이라서 주택회사가 떼 갔다고 한다. 지금 이 할머니과 고양이들은 동쪽 창틀을 투명비닐로 대충 막아 놓고 살고 있다. 산책하다보면 이집 고양이들을 종종 만나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물론 베를린의 주택관계는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는만큼 세입자 친화적이고,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권리에 따라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일정 면적 이상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할머니의 경우도 많은 이들이 응원하고, 연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최근 이 집에서 또 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는 코트부서 토어의 집합주택 세입자들도 매주 토요일 데모를 벌이며 "동네에서 계속 살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여기는 베를린 도심에선 보기 드문 고층 아파트촌이 있는데 주로 6-70년대에 터키계 노동자들이 유입될 때 주거지로 지어진 사회주택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클러버들을 중심으로 소위 뜨는 곳이 되었고, 주택회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월세를 올렸다. 많은 터키계 사람들이 사실상 자신들이 나고 자라며 일구어 온 이 동네를 떠나 더 외곽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주택임대 제도는 대부분 영구입대주택제도와 비슷하게 되어 있다. 특정하게 제한된 목적으로 주인이 집을 이용해야 할 경우가 아니면 세입자는 한 번 계약으로 거의 오르지 않는 월세를 내며 계속 한 집에서 살 수 있다.(심지어 집이 낡거나 고장이 발생하면 월세가 떨어진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 '목적'을 만들어 내기란 부동산 자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테고, 특히 매각된 도심지역의 구사회주택들이 주택투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서울처럼 아예 동네 전체를 밀어버리는 식의 개발은 여기선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재개발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던 동네 바깥으로 밀려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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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06:02 2012/08/19 06:02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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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인 인생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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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의 잠정적인 인생계획을 정했다. 첫째는 물론 ‘신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는 것이다. 1918-33년 사이의 독일 사상을 폭넓게 보면서도 신학자 칼 바르트와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이시기 글들을 섬세하게 보려 한다. 물론 이런 논문을 쓰는 목적은 최근의 정치철학과 대화하기 위해서임. 내가 뭐 바이마르 오덕도 아니고... 

둘째는 독일, 특히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등지의 ‘언더’를 취재/연구해서 소개하는 거다. 독일의 시민운동/정치제도는 워낙 소개가 많이 되었는데,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운동권과 언더는 거의 조명되지 않았다.(사실 금민이 90년대 안티파학생운동 최전성기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라 전문가이긴 한데...) 한 사회에서 언더가 어떻게 자리잡고, 좌파 정치와 관계하는지 요리조리 알아볼 생각. 안티파, 안티도이치, 아나키, 스콰터, 학생운동, 예술운동, 지역좌파운동 등...

셋째는 기회가 닿는다면, 김진호를 중심으로 한 2000년대 이후 민중신학 작업들을 독일 신학계와 정치철학계에 번역/소개하고 싶다.

넷째 기타 번역작업... 

물론 이런 계획 따위는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바뀔 수도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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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2 05:52 2012/03/02 05:52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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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곳

 
 
젖과 꿀이 기독교에 이르러 그 물질성을 최대한 탈각한, '생명의 근원'같은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나는 이 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부르리라. 물론 그것은 다시금 저 은유에 물질성을 부여함으로써이다. 커피. 그것이야말로 나의 젖과 꿀이 아닌가. 노이쾰른(Neukölln)으로 이사와서 산책을 나갔다가, 이 가게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말 가나안복지(福地)를 발견한 것이었다. 커피콩과 땅콩과 다람쥐가 함께 그려져 있는 이 가게의 정체를 한국에서 30년 동안을 살면서 내 안에 구성된 인식범주들은 처음엔 인식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가게 안에 놓인 Probat 커피로스터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슈퍼마켓에서 한번에 1kg씩이나 사 먹어야 했던 커피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참이었다. 
 
유리창 아랍어가 써 있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이 가게는 아랍인이 운영하는 커피 및 각종 견과류/과자를 파는 곳이었다. 이곳 노이쾰른은 사실상 아랍계와 터키계 이민자들이 주류인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이곳이 게토는 아닌데(베를린은 파리와 달리 이민자들의 게토화를 매우 경계하는 편이다.) 해가 갈수록 이 지역으로 작고 대안적인 카페나 겔러리, 혹은 힙스터들이 몰려들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노이쾰른 북단에는 큰 거리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구동베를린을 회고하는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던 Sonnenallee이고, 다른 하나는 Karl-marx-Straße다.(서 베를린이었던 이 거리에 Marx의 이름이 붙은 건 아마도 이 곳이 독일 사민당의 초창기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존넨알리는 아랍인들이, 칼 막스 거리는 터키인들이 크고 작은 가게들을 열고 각각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곳이 되었다. 칼 막스 거리는 거기에 더해 지금 베를린에서 아마도 가장 싸게 옷이나 각종 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백화점이나 아케이드가 몰려 있는 곳이다.  
 
이 가게, "테드 앤 프레드"의 한켠에는 에스프레소, 혹은 터키식 커피를 위한 블렌드가 서너종,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스트레이트 커피가 대여섯 종 정도 있었고, 카운터 아래는 맥주 안주로 먹으면 좋을 각종 견과류와 과자들이 수십종 있었다. 아랍계 특유의 친절한 사장님이 아주 천천히 내가 이해할 때까지 각 커피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로스팅은 "매일" 한다는 걸 특히 강조하면서. 커피 가격이 얼마냐면, 1kg이 20유로가 조금 못 된다. 그러니까 100g을 사면 2유로(3000원) 정도 하는 셈이다. 이 가게를 발견한 덕분에 드디어, 매주, 150g씩, 그리고 아주 저렴한 신선한 커피를 사서 아침과 오후에 내려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맛은 커피 종류마다 격차가 좀 있었는데, 에스프레소 블렌드들은 입에 잘 맞지 않았고, 과테말라가 필터커피(드립)나 모카, 뭘로 내려도 맛있었고, 시다모(에티오피아 커피의 한 종) 커피는 천국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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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23:25 2011/12/17 23:25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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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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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마르티나가 우리 집에 왔다. 방년 18세의 스위스 학생인 그녀와는 지난 번 교황반대 시위를 함께 나가게 되면서 친해졌다. 

안티고네와 나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는데, 어쩌면 그녀 안에 우리가 서울에서 함께 지냈던 해방전선의 10대들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어권 스위스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마르티나는 아마도 그 때문에 '불만'을 가지는 권리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세계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또래의 친구들이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가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대학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생에게 커다란 혜택이 있고, 단 두달만 일하면 일년 학비를 벌 수 있음에도 말이다. 

안티고네와 함께 마르티나에게 두리반과 명동해방전선, 그리고 희망버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가 놀란 건,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매우 빠르고 매섭게 그녀가 우리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세계에 대한 매우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결코 지역적이기만 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 그녀는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 시스템 역시 근본적으로는 대의적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 즉 '민중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는 거의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권리와 사상을 누군가한테 맡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체제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언제나 '민주화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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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1 01:36 2011/10/21 01:36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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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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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에 다녀왔다. 그동안 이 일기장을 거의 쓰지 못했기 때문에 블로그로 내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갑자기 왠 브레멘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번쯤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을 마음이 생길만큼 많은 일들을 이미 베를린에서 경험했다. 그동안 그 여러 이야기들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는 게 무척 아쉽다. 뭐, 또 그만큼 많은 일들이 앞으로 계속 있을테니...

 

브레멘에는 트윗을 통해 알게 된 정지혜 님의 초대로 이틀밤을 지혜 님의 집에서 묵으며 정말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처음 가 보는 도시에 마음이 들뜰만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혜님과, 지혜님의 파트너인 마티스의 지극한 환대 덕분에 여행의 컨셉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치 목에 걸린 담처럼 쌓여 있던 마음 속의 찌꺼기들을 털어버리는 치유 여행이 되었다. 그 내용들을 글로 옮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리라. 

 

브레멘은 '국제도시'인 베를린과는 달리 '독일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중세로부터 지금까지 각 시기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이 되어 있었고, 도시 전체가 친환경적으로 정비 된 크지 않은 도시였다. 베를린 못지 않게 재정부채가 쌓여 있는 도시라고는 하지만 베를린보다는 훨씬 깨끗했다. 아마 재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풍경인 듯 하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짜가 조용한 브레멘에 그나마 일년에 한 번 찾아오는 축제가 서는(?) 날이라 시끌벅적한 시내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축제라고 하지만 시끄럽기는 그저 베를린의 하커셔 마크트 정도? 브레멘은 오래된 자치도시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또 20세기에는 대표적인 좌익의 도시이기도 해서 역시나 도심 곳곳에 각종의 정치적 공간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앙역 한켠의 커다란 창고 건물 전체를 점거해서 자치관리하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짧은 시간은 이 정보 이상의 어떤 것을 체험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활동은 낮에 열리고, 클럽같은 경우는 한밤에 열리기 때문인지 우리가 방문했던 저녁 시간에는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창고건물 옆의 부속 건물에 자리잡은 한 갤러리(역시나 점거된 공간인 듯 했다.)에서 남아프리카 만화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보다도 '숲'이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것을 선물해 주었다. 안티고네는 오래전부터 독일의 숲을 동경하고 있었고, 마침 마티스의 취미가 버섯채집이어서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브레멘 근교의 숲으로 나가서 함께 걸으며 버섯을 땄다. 숲은 독일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와는 달리 독일은 산이 아닌 평지의 숲이 상당한 땅을 차지하고 있고, 많은 독일적인 문화는 이 숲에서 나왔다.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숲은 도시의 긴장과 피로를 풀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버섯을 따는 행위는 먹을 것을 직접 마련하는 오래된 인간의 삶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고, 동시에 숲 안에서 걸으며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은 우리가 결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 도시에서 무언가 나는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회복'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어쩌면 도시로 '다시 돌아오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일정 내내 지혜님과, 또 마티즈와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넷이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몇몇의 순간에는 대화가 너무나도 즐거워서 내가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신변잡기나 일상적 대화가 아닌 학문적인 대화를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대화 가운데서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많은 통찰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벌써 그리워지기도 해서 잠시 가슴이 벅차올라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는 아마도 1월에 베를린 영화제에서 재회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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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9 00:48 2011/10/19 00:48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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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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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이 블로그를 만들면서, 내가 겪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어떤 사물에 관한 단상이건 자주 남겨보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인터넷 사용이 너무 불편하게 되어 의욕이 아주 상실된 상황이다. 사실 아이패드 정도면 무겁지 않아서 느리지만 인터넷이 되는 어학원 도서관에 들고 다니고 있는데, iOS에서는 진보넷 블로그 글 쓰기가 앙대.....

 

대신 어학수업에는 의욕이 좀 붙어 있다. 물론 지불한 수강료에 비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좀 재미있다. 이렇게 외국에 장기체류해본 적이 처음이라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학생들과 비록 유치원/초등학생 수준의 대화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예전에 호치민 평전을 읽으면서 호치민과 호치민 이후의 베트남 지도자들, 혹은 호치민과 김일성이 왜 그렇게 다른가를 고민해본 적이 있었는데, 뭐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단어인 '국제감각'이야말로 이들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치민에게는 국수주의적 태도라거나, 혹은 반대로 선진국에서 후진국까지를 일렬로 세우는 그런 사대주의는 전혀 없었다. 그는 강하게 민족주의를 내세울 때조차도 철저하게 국제적 시선 안에서 움직였다. 

 

베를린은 세계의 어떤 밑바닥을 보기에는 무척 좋은 장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힙스터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서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물론 그들은 매우 훌륭한 사회정책 안에서 '가난하다'. 그리고 1세계의 예술가로부터 집시 무리들까지 정말 다양한 층위의 '외국인'들이 존재한다. 이런 복잡한 풍경을 관찰하는 것은 — 비록 그것이 지금의 어학 단계에서 무척 어려운 일인게 사실이지만 —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베를린의 풍경은 어떤 '역사 이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회주의는 급격하게 망했지만, 사회민주주의 역시 천천히 죽어간다. 삶은 계속되지만 '역사'는 이제 없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아 뭐 다 됐고, 집에서 인터넷 안 되니까 어학원 숙제 말고는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ㅋ엉ㅋ

활자 중독에 정보 중독인 나에게 잘 된 일인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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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22:24 2011/09/10 22:24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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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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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 별다른 불편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편인데, 인터넷만큼은 정말 미칠 것 같다. 아이폰5가 나오기까지 프리페이드(선불제) 심카드를 쓰기로 마음을 먹고 보다폰에서 인터넷 요금이 포함된 심카드를 샀는데, 알고보니 200MB까지만 고속 인터넷을 제공하고, 초과되면 겨우 64kbyte/s 만 제공하는 요금제였다. 추가 옵션도 없고, 테더링도 불가능하다고... 

 

게다 더 큰 문제는 크리스티앙의 집에서 인터넷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온 뒤로 크리스티앙 집의 인터넷이 종종 끊기더니, 이제는 아예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크리스티앙의 고객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이 독일 아저씨는 이쪽으로는 젬병인데다가, 계약 서류까지 버려버려서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 한국에 있는 그는 도움을 요청하는 페이스북 메세지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 다른 글들은 계속 인터넷으로 올리고 있으면서 말이다!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이 기근에서 좀 헤어날 줄 알았더니, 이번엔 안테나만 뜨고, 레이턴시가 너무 높아 인터넷 속도가 64kbyte/s 보다 더 느린 게 아닌가. 며칠은 카페 등을 찾아다니면서 커피를 사 마시면서 인터넷을 썼는데, 이게 만만치 않게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어떻게든 이 느린 속도와 집에서의 internetless에 적응해보려고 노력중이다...만 짜증나는 건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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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21:29 2011/08/30 21:29
Posted by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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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버스, 널 사랑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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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지하철은 전반적으로 끔찍하다. 대부분의 역이 오래되었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 게다가 최근 몇년간 구조조정으로 인해서 서비스 수준 또한 저하되어 있다고 한다. 반면 버스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곳의 모든 버스는 저상버스이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면 자동으로 오른쪽으로 버스가 기운다. 그리고 기사는 사람들이 안전을 확보했는지를 확인하고서야 출발한다. 많은 노선이 2층 버스라서 굳이 시티투어 관광버스를 타지 않아도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다닐 수 있다.(위의 사진은 집앞의 버스를 타고 2층 맨 앞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버스와 지하철은 모두 하나의 회사에서 관리하는 것 같다. 7일짜리나, 한달짜리 티켓을 한번만 끊으면 그 기간 동안 모든 노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달짜리 티켓의 경우 75유로(약 11만원) 정도 한다. 하지만 한번만 타는 요금이 2.5유로 정도로,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비싸다는 걸 감안하면, 매우 싼 편이다. 낮에만 이용하는 월티켓도 따로 있다. 당연히 학생이나 직업훈련생은 훨씬 싼 가격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 지내는 크리스티앙 집 앞에는 M29번 버스가 다닌다. 베를린 도심을 횡단하는 노선이라서 이 버스만 타면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다. 베를린의 대부분 지역이 버스와 지하철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교통은 어디든 불편함이 별로 없는 편이다. 도로를 달리는 작고 예쁜 자동차들이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보면서 소비욕구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일단은 이 버스를 좀 더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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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9:47 2011/08/24 19:47
Posted by 김강

크리스티앙, 어쩌면 과거를 살고 싶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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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은 우리에게 집을 빌려준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월월세로 빌려준 건데, 갑을병에서 나는 병인 셈. 그를 알게 된 건 조약골 덕분이었다.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어학원의 숙소를 사용할 수 없다고 걱정하자 조약골이 베를린에 사는 크리스티앙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내내 한국에서 지내면서 각종 좌파운동에 개입했다고 했다. 그리고 추ㅋ방ㅋ

 

아무튼 추방된지 5년이 지나서 그는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잠시 한국에 온 크리스티앙은 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지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좁은 집이긴 하지만 월세가 싸고, 장기체류가 가능하다고. 그 때는 그저 감사하게 받아들였는데, 뭐랄까 혼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의 특징인 건지... 영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추위에 떨면서 또 고양이들을 걱정하고 있는데, 그는 한사코 창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자기는 답답하고, 또 뭐가 춥냐는 식이었다.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것은 부르주아적인 보호주의라고 우겼고.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양이들이 새로운 집을 갖게 되면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네들은 옷장이나 이불 속 등 어둡고 좁은 곳을 찾게 된다. 그것을 크리스티앙은 우리가 고양이들을 가둔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불안한 상태의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문을 여전히 열려 있고, 고양이들의 습속에 관해서는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주의를 주었지만 외출할 때마다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뭐 어쨌던 나는 을도 아닌 병이고...

 

이런 일만 없다면, 크리스티앙 자체는 무척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는 베를린에 대해 때론 우리보다도 모른다. 그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진짜다!), 그저 하루에 두 팩의 화이트와인을 마신다. 그의 집에는 아무 것도 없다. 책상, 낡은 메트릭스, 의자, 토스터, 약간의 식기, 티비, 싸구려 컴퓨터가 전부다. 독일에서는 전등을 직접 사서 들고 다니는 게 일반적인데, 크리스티앙의 집에는 스탠드 두개가 있을 뿐 어느 방에도 전등이 없다. 예전에 그는 지금보다 세배 정도 넓은 집에서 온갖 것을 갖춰놓고 살았다고 한다. 가족까지도. 하지만 한국에 가기 전에 모든 것을 처분했고,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삶에 만족하면서 산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사회운동이 재밌다고 한다. 그러니까, 독일에서는 더 이상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인권운동이나 철거민 운동은 그 개념조차 없어졌고, 안티-파시스트 운동이나 반핵 운동 정도가 남아 있는 운동의 전부라고. 70-80년대에 동독에서 민주화운동 - 물론 그것은 자유주의를 요구한 게 아니라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주장한 운동이었다 - 을 했던 그에게 한국은 어쩌면 그 때의 삶을 계속 살게 하는 곳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건 그는 바로 그 운동경력 덕분에 돈을 벌지 않고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아서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암튼 24일이면 그는 한국으로 떠나고, 25일이면 그는 명동에 도착할 듯 하다. 명동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그는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명동 소식을 영어로 옮겨서 뿌릴 계획이라고 한다. 크리스티앙은 꽤나 옛날 사람이라서 최근 미디어 환경이 SNS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 그에게 익숙한 것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프로파간다를 하는 홈페이지나 블로그지, 상호간 대화를 통해 운동이 조직되는 SNS가 아닌 것이다. 뭐, 이것은 그의 성격탓이 대부분이라고 나는 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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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0 20:40 2011/08/20 20:40
Posted by 김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