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촛불시위가 '잘못하다가는' 광범위한 소비자 운동으로 귀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어요(하나의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는데도 시위현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 주위에 활력 넘치는 지인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답니다. 모두가 네그리를 읽은 것도 아닐 텐데요......(^-^;)). 왠지 캐즘님의 '독한 버전 비밀글'을 보면, 속이 좀 풀릴 것 같기도 합니다. 흐흐흐.
김강/오랜만이에요. 김강님. 두부는 드셨어요?:-) 김강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이 이번 촛불집회를 둘러싼 담론들에 제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소비자 주권과 민주주의의 기표가 그토록 손쉽게 결합해 이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경제화된 정치의 최종적 완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농담이지만 68과 마케팅 담론에 대한 김강님의 설명이 일종의 변증법적 정-반-합처럼 느껴지는군요.:-)
물론 저의 불만의 초점은 일단은 촛불 집회를 둘러싼 담론들이고, 촛불 집회에서 드러난 욕망들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죠. 말씀하신 주제는 상당히 재미있는데, 신학도라고 못할 것 있나요?ㅎ
euzi/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글에는 자기 검열이 있기 마련이라서:-) 그리고 일단은 섣부른 판단은 유보해야한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기도 하구요.(실은 촛불 집회 초기에 써놓은 독한 버전이 있긴 한데, 나중에 상황이 마무리된 후에 다시 정리해보려구요.;;)
말씀하신 촛불집회를 둘러싼 호들갑스러운 찬사들은,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반드시 제기되어야 하고 고민되어야 하는 주제들을 유야무야 덮어버리는 효과를 가져서 약간 분노스럽네요. 게다가 그런 일방적 찬사 속에 담긴 몇몇 전제들은 제가 볼 때는 위험한(?) 생각들도 상당수인지라..
반가운 글이군요. 왠지 비교적 완곡히 쓰신 것 같은데 단지 제 착각일지도^^;; 일단 중요한 사건은 사건인것 같아요. 일상이라는 물밑에서 진행되어 왔던 것이 와르르 가시화되는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또는 '정치적 저항'의 의미가 새롭게 규정되고 있는 것을 주시해야하겠지만, 그 범위가 더욱더 협소해지는 것은 역시 찝찝한 일인듯 해요. 개인적으로 특히 아연실색하게되는 것은 소위 혹은 자칭 진보, 좌파라는 분들의 촛불에 대한 호들갑스런 찬사들인 것 같은데, 그동안의 흐름 속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캐즘님의 해석이 정확한것 같군요. 사실은 저도 요즘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고는 있는데 정리가 안되는 상황에서 뒷담화식 덧글만 될듯 하구요....중요한건 오늘 첫시간이었는데 서동진샘 강의는 이와 관련해서건 여러면에서 왠지 통쾌한 공간이 될 듯 하네요 ㅎㅎㅎ
누군가 "왜 신상녀와 된장녀가 시위를 주도하게 되었을까?"를 묻길래 그런 대답을 한 적이 있었죠. "지금까지 자본의 마케팅은 끊임없이 우리가 자유롭다고, 무엇(상품)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해왔죠. 어쩌면 그네들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그동안 68의 구호가 자본의 구호로 바뀌어 우리를 지배해왔다면, 이번엔 그 자본의 구호를 뒤집어 저항의 구호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ㅎ
농담처럼 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후기자본주의의 마케팅과 저항 사이의 연관관계를 탐색해볼만 하지 않을까 해요. 뭐, 저같은 신학도가 할 일은 아니고.ㅋ
개인적으로 일본 문화(예술이)나 정치사상사에 관심이 있는 편인데, 코제브의 각주 전체를 읽어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동물/속물론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특히나 일본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캐즘님께서 언급하신) 니시다 기타로를 포함한 교토학파 그리고 (특별히) 1940년대의 일본에서의 근대초극론에 관한 공부를 조금은 깊이 있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번역해주신 각주는 다시 차차 뜯어 읽어 보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동수님. 오랜만이네요.:-)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론은 아무래도 소비 형태의 변화에 대해 좀 더 중점을 둔 논의이니까요.(하긴 그런 점을 염두에 둔다해도 그의 논의가 과감한 만큼 약점도 많은 주장이긴 하지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본 TV 쇼프로그램을 자주 보게되는 편인데요, 보면 볼 때마다 텅 빈 형식을 추구하는 일본 문화의 뿌리깊은 속물성이 정말 흥미로워요. 패턴과 형식의 반복에 기반한 만담이나 만화, 아니메같은 장르들이 일본의 고유한 문화 영역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코제브의 동물/속물론'의 한국 근거지가 드디어 만들어졌군요 :)
<덧>의 '반농담'이 인상적입니다.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일본의 포르노그라피 역시 미국화, 혹은 동물화 해야할텐데 제가 볼 때 그런 경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라작의 '동물원'과 같은 리얼리티 포르노그라피가 점차 늘어가는 느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