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게슴츠레님도 잘 지내시죠? 카페는 가입했습니다. 카페개설 취지에 동감하고 종종 들르겠습니다.^^ 글도 원문출처만 달아주시면 얼마든지 퍼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요즘 바쁜 일이 생겨서 정신이 없는데, 바쁜 일 끝나면 조만간 한 번 뵈요~ Warren Montag 글은 네이버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캐즘 님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혼자 공부를 하다가 지쳐 같이 공부할 사람들을 찾는 까페 하나(cafe.naver.com/think2wice)를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관심사가 관심사다 보니 캐즘 님의 포스트들을 몇 개 퍼가게 되는데 원문출처를 병기하고 퍼가도 괜찮을런지요? 그리고 시간되실 때 까페에도 간혹 들러 주십사 하는 부탁도 송구스럽지만 드리고 싶군요...건강 조심하시고 다시 뵙겠습니다. P.S 저도 Warren Montag의 논문 원문/번역본을 부탁드릴 수 없을까요? ㅎㅎ 얼마전 알튀세리언 분과 양자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 싶더군요.
오 설명 고마워. 역시 너도 사회학과 역대 집행부의 자랑이다 ^^ 근데 니체나 스피노자를 전혀 모르니, 네 설명을 아마 절반도 이해못할거야. 암튼... 내가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통제에 대한 프로젝트를 해야하는데... 내가 연구책임자지 ^^;;; .... 내가 주목하는 건 기본적으로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말을 잘 듣느냐?"이거든. 이걸 내 나름대로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저항하지 않고 통제에 순응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싶은게 내 욕심이야. 그리고 그 메커니즘은 예전의 병영적-관료적 통제랑은 무언가가 분명히 달라졌다는게 내 가설이고. 그런데 사실 이른바 "통치성"이라는 거에 대해선 문헌을 읽어본게 전혀 없구 이런 저런 사람들한테 줏어들은게 다라서 말이지. 그래서 혼자 생각해봤는데... 둘 다 모르긴 하지만 알티세르랑 푸코를 끌어오면 도움이 될거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두 가지가 차이가 있을 거 같긴 한데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내 주위에서 가장 똑똑한 너한테 도움을 청한 것이야. 네가 추천한 글 메일로 보내주면 고마울거 같고. 다른 글들도 좋은게 있음 추천해주렴. 글고 너도 알다시피 ... 한글이면 더 좋을 거 같아 ㅠ.ㅠ 메일 주소는 maydaycc@hanmail.net
아.. 그런 맥락이라면 굳이 저 글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좀 더 관련이 있을 만한 자료들을 보내드릴께요. 이미 아실 것 같지만, 신병현 선생님과 <문화연구 시월>이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몇 년 전부터 세미나도 하고 현장 연구도 진행한 바 있어요. 그런데 작년에 단체가 해산을 해서 홈페이지 자료실이 열리질 않네요... 일단 저한테 있는 자료들을 좀 추려서 메일로 보내드릴께요.(형 메일 주소는 잊기 힘든 주소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ㅎ)
마침 제가 장기하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찔끔했다는 건 아니고 (하지만 글을 본 타이밍이 적절하기는 했습니다 -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할 걱정없다'라고 웅얼거리고 있기만 하면 사실은 걱정이 있다는 말일 수 있으니까요:P) 다만 캐즘님의 글에서 제 자신의 어떤 은밀한 욕망을 들킨 것 같아서 좀 찔렸을 뿐이에요. 다짜고짜 짧은 댓글로 죄를 후다닥 고백(?)하고 튀어버린 것 같네요. 특히 두번째 댓글은 개인적인 맥락에서 튀어나온 듯 합니다. 아무튼 곧 뵙게 될테니 설렐 따름이네요ㅎㅎ
초다. 푸코의 생체권력이랑 알티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차이가 뭐냐?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해왔는데... 문득 곰곰히 생각해보니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 원형감옥에서 감시당하는 거랑 성당에서 기도하는거의 차이가 도대체 뭐다냐? ^^ 답을 꼭 해주셈. 길면 길수록 좋음!!
둘 간의 유사/차이 관계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생권력의 차이는 "주체성을 생산하는 권력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라는 공통의 질문에 대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장치" 등등의 맑스주의적 용어를 사용해 개념화했고, 푸코는 니체적 사고 속에서 개념화한 데서 온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용어의 차이는 아니고, 몇 가지 개념의 위상학적 쟁점과 정치적 쟁점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죠. 예컨대, 이데올로기/담론, 호명/규율의 테크놀로지, 국가기구/장치, 계급투쟁/저항 같은...(그런데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의 "물질성"과 "기구"개념을 강조하면서, 둘이 사용하는 개념 간의 거리는 많이 줄어들어요.)
그래서인지 예전에 이 둘 간의 차이가 "필요 이상" 강조되는 추세였다면, 얼마 전부터 이 둘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에 주목하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형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아진 듯.ㅎㅎ) 제 생각에 여기에는 두 가지 추가적인 배경이 있는 것 같아요. 1.알튀세르 해석에 있어서 맑스주의적 계기보다 스피노자적 계기가 강조되는 분위기, 2.푸코의 통치성에 대한 연구가 소개되면서 그의 미시권력론이 국가 이론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고되기 시작했다는 점.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규율 장치 간의 유사성과 잠재적 쟁점에 대해서는 제가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Warren Montag이 쓴 "The Soul is the Prison of the Body: Althusser and Foucault"라는 논문을 참고하시면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거에요. 원문과 한글 초벌 번역본이 저한테 있으니 필요하시면 보내드릴께요.(원문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인터넷으로는 한글 번역본이 검색이 안되네요. 나는 대체 이 번역본을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유?
이 글은 굳이 따지자면, 장기하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평하려는 게 아니라 그 아이콘이 순환되는 맥락 속에서 이런 것도 읽을 수 있지 않겠냐하는 글인데요. 글에서도 밝혔지만, 한 음악에 대한 선호를 사회적 의미체계로 환원시킬 생각은 없거든요.(물론 그게 한 요소는 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사실 글에서 이야기한 욕망들은 당연히 제 자신의 은밀한 욕망이기도 합니다.(저도 아직 C세대라는 증거?^^) 그런 욕망에 대해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글로 쓰려는 건, 그런 자신의 욕망과 붙잡고 씨름하는 제 나름의 방식이구요. 사람마다 그렇게 자기의 은밀한 부분과 싸우는 나름의 방식이 있는 거겠죠. Neopool님의 댓글이 마치 죄를 고백하는 것같다는 느낌이.... 다음에 만나면 술 한 잔 기울여보죠.:-)
게슴츠레/ 바디우의 글은 아직 안 읽어봐서 세번째 시퀀스의 가능성을 어디서 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함 읽어봐야 겠어요:-) 굳이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세계체제 중심부 좌파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공통감각이 있다면 파국의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파국이 구원이나 혁명으로 연결될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함께.. 대표적으로 상당히 낙관적 입장에 서 있는 네그리의 주장마저 새로운 희망과 선전포고의 느낌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종말론적인 느낌을 주죠. 주로 유럽의 우파 혹은 보수파 사상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서구 문명의) 종말론적 색채가 좌파에 전유된 배경을 추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체제적 관점에서 보면 맑스의 양극화 테제는 여전히 유효하고, 얼마 안 있어 결정적인 위기가 올 거라는 월러스틴 옹의 주장을 꼬깃꼬깃 접어 마음 한 켠에 담아두고 있는지라;;;;
우물/이런 식으로 제 학번이 밝혀지는군요.ㅎㅎ
namunnib/최근에 "루저의 문화사회학"같은 글을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본쪽에선 이런 논의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 경쟁의 담론이 확산될수록 루저의 문화 역시 확산될 건 확실해 보이지만, 이런 문화의 확산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는 것 같아요. 1.상호 경쟁의 압박이 심할 것 2.하지만 궁극적인 안전이 보장될 것. 즉 이 경쟁이 초월을 위한 진지한 "투쟁"이라기보다는 투명화될 수 있는 차이의 "게임"으로 인식될 것 3."치료의 문화" 혹은 "위안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경쟁에 대한 보충물의 존재. 아마도 대학생들 위주로 루저 문화가 소비되는 건, 경쟁에 대한 공포와 함께 아직 이들이 경쟁의 궁극적 탈락자라기보다는 준비자라는 조건이 결합한 결과겠죠.
namunnib 말씀대로 계급적 관점에서 읽어낼 여지도 충분하구요. 저는 공고와 함께 붙어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졸업하자마자 공장쪽에 취업한 그 친구들은 20대에 무려 "성인나이트"를 출입하더군요;;; 중립적인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 "청년문화"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계급적인(혹은 특권적인) 전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