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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15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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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4/09/15
    석간 조선일보, 노란색 조선일보를 보지 맙시다
    too lazy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자

 * '일일문화정책동향'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자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ptrevo@jinbo.net


문화연대에서 알게 된 친구가 연극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와~ 대단한데...” 음악을 전공한 친구라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극에 쓰이는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한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친구가 연극에 참여하면서 계약(?)한 방식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건너건너 알게된 음악감독을 소개받고’ 프로젝트와 같은 형식으로 참여하게 되었단다. 이른바 ‘도급계약’이 아닌가. 물론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을 것이고,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인 만큼 생각보다 적은 돈을 받고 매일 저녁 피아노를 칠 것이다. 그래도 연극이 다음달 말까지 계속한다 그러고, 게다가 연극이 재밌다고 하니깐 꼭 한 번 보러가리라 마음은 먹고 있다.


얼마 전에 ‘부당사례 고발과 그 해결이 있는 곳!’이라는 부제의 <영화인신문고> 사이트가 개설되었다. 4부 조수협회(한국영화조감독협회, 한국영화제작부협회, 촬영조수협의회, 조명조수협의회)와 필름메이커스, 비둘기둥지 등은 <영화인신문고> 사이트(http://210.118.195.55/union/)를 만들고 영화제작과정에서 스탭들이 겪는 불이익과 부당한 처우에 대한 신고를 받고 있다. 사이트에는 현재 근로기준법, 최저임금에 대한 질의부터 영화사, PD 등을 고발한다는 내용까지 다양한 내용의 50여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영화스탭의 경우, 영화제작기간이나 노동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작품당 계약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급계약, 통계약 등의 방식으로 계약을 하다고 한다. 이러한 계약조건은 영화스탭들을 만성적인 저임금으로 내몰고 있으며, 흥행성적을 이유로 혹은 스탭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무기로 잔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심지어 제대로 계약도 하지 못한 채 무급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영화스탭의 고용과 임금계약방식의 현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고정급제를 받는 스탭은 전체 1.3%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계약직으로 개별계약(40.1%)하거나 도급계약으로 직급별 분배(40.8%)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임금지급방법도 1회 지급은 10.3%인데 반해, 2회 분할지급이 65.2%로 조사되었다.


‘실미도’와 ‘태극기를~’이 한국영화 천만 관객시대를 여는 동안, 그리고 영화제작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동안에도 영화스탭들의 고용구조나 임금은 크게 개선된 것이 없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스크린쿼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2000년 : 32.6%, 2001년 : 46.1%, 2002년 : 45.0%, 2003년 : 49.4%), 영화스탭들은 임금과 관련한 피해를 경험한 사례가 72%가 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스탭의 임금 수준을 보면, 연봉 300만원 미만이 15.7%, 300만원~600만원이 40.9%, 600만원~900만원이 14.2%로 평균연봉 634만원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영화의 성공은 현장 스탭들을 착취하면서 이루어 낸 고통과 눈물의 결과라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현실에서 진행 중인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이 영화계, 문화계 전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투쟁의 영역과 과제가 영화현장으로, 영화계 내부로 더욱 심화될 필요가 있다. 예술영화,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 - 마이너리티 쿼터 도입, 전용관 건립 등 - 과 열악한 현장의 영화스텝들의 처우 개선 등 이른바 한국영화 대박신화의 ‘그늘’로 이야기되는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노력과 요구가 없다면,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현실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부 조수연합의 활동은, 따라서 스크린쿼터 투쟁을 적극적으로 확장해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다. 이제 ‘다시 한 번’ 촉발된 스크린쿼터 논쟁을 문화다양성 수호를 위한 (확장된) 사회적 발언으로 심화시켜야 한다.


4부 조수연합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이들의 활동이 문화예술운동의 현장성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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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 조선일보, 노란색 조선일보를 보지 맙시다

* '일일문화정책동향'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석간 조선일보, 노란색 조선일보를 보지 맙시다

: 문화일보 절독운동을 제안하며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ptrevo@jinbo.net

 

 

명색이 운동단체의 정책실장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정보 수집에 ‘매우(!)’ 둔감한 편이다. 그나마 꼭꼭 챙겨보던 한겨레신문도 요즘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스포츠 소식을 접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문제가 심각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주변에 워낙 정보에 밝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래저래 귀동냥으로 얻는 정보만으로 그나마 심하게 뒤처지지는 않게 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무실에 꼬박꼬박 배달되어 오던 문화일보에 별다른 눈길을 보내지 않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가끔 크게 이슈가 되는 일이 있거나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만 - 석간의 장점이다 - 꼼꼼히 살펴봤을 뿐, 평소에는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소식을 보거나 내일의 운세를 보는 정도였다. 그렇게 ‘문화’일보라는 이름만으로 여전히 다른 신문보다 후한 점수를 받으며 사무실에 문화일보가 하나 둘 씩 쌓여가고 있었다.


9월 1일 문화일보, 분노가 폭발하다


9월 1일자 문화일보다. 늦은 점심을 분식집에서 먹으며 신문을 뒤적이다가 정말 먹던 라면이 솟구쳐 오를 정도로 열받는 글을 읽게 되었다. 문화일보에는 <시론>이라는 꼭지가 있는데, 이 꼭지에는 논설위원이나 외부 전문가 등이 칼럼과 같은 글을 싣게 된다. 이 날 문화일보 <시론>에 이신우라는 인간이 지율 스님의 단식에 대한 글을 실었다.


... 지율 스님과 시민단체가 ‘천성산 도롱뇽’ 명의로 고속철도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신청을 울산지법에 낸 것은 2003년 10월. 울산 지법은 이 소송에 대해 “도롱뇽과 사찰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며 지난 4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공사가 간신히 진행되려던 판이었는데 최근에 다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과 함께 중단되고 말았다.

법의 허가를 받아놓고도 여승의 습관적 ‘단식 소동’ 앞에서 청와대가 사실상 무릎을 꿇은 것이다. 청와대라면 대통령을 의미하고, 대통령이야말로 취임식장에서 온 국민 앞에 이 나라의 국법을 준수하겠다고 엄숙히 선언한 제1 공직자 아닌가....

- 이신우, ‘헌법 위에 단식투쟁 있나’ 中


“여승의 습관적 ‘단식 소동’이라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생명과 환경, 생태의 중요성을 몸소 말하고 계시는 지율 스님의 단식을 ‘여승의 습관적 단식 소동’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정말 놀라서 까무러칠 뻔 했다. 아무리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보수/우익/꼴통’ 등 어떠한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이신우라는 인간의 표현에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글 전체의 맥락 또한 천성산 고속철 터널 공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앞뒤 맥락은 모두 생략한 채 ‘당장에 공사를 중단함으로서 드는 사회적 비용은 어쩔 것이냐’는 주장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우리 모두 인정하다시피 개발과 환경파괴를 중단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효과는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어떻게 일간지 칼럼에 그런 ‘인격 모독적인’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정말 그 잘난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문화일보 절독운동으로


이번 사건을 겪으며 문화연대에서는 문화일보를 끊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이달 말까지는 보라는 신문배달원과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사실 그 동안 문화연대에서는 문화일보가 최고경영자, 편집장 교체 이후 조선일보보다 더 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체적인 기사의 논조도 없고, 신문의 특색도 없이 다만 ‘오후에 나온다’는 이유로 문화연대가 문화일보 구독을 선택한 것에 대한 내부 반성도 진행하였다. 이렇게 내부에서 문화일보를 둘러싼 말들이 오가는 동안, 누군가 문화일보를 ‘석간 조선일보’라고 표현하였다. 오후에 나오는 조선일보! 노란색 조선일보! 최근 문화일보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보다 심하다”고 충분히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화일보를 ‘석간 조선일보’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혹여나 문화일보를 보고 계신다면, 절독을 권유하는 바이다. 절독의 이유를 찾으시려면... 문화일보 사이트에서 9월 1일자 <시론> 글을 한 번 읽어보시라. 확실하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이나 쉽게 흥분하는 분들의 경우 읽으실 때 극히 조심해야 할 정도라고 확신한다. 나의 경우, 그 글을 읽고난 후 환경운동연합의 아는 사람들에게 바로 전화해서 “같이 문화일보 절독운동을 진행하자”고 제안했을 정도였으니... 지율 스님의 건강과 천성산 터널 공사의 중단을 기원하며, 열화와 같은 ‘문화일보 절독운동’으로 불량언론에 일침을 가할 수 있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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