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4/10/22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22
    <시국선언展> 스케치: 아주 타당한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too lazy
  2. 2004/10/22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1)
    too lazy

<시국선언展> 스케치: 아주 타당한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국보법은 비단 표현을 업으로 삼는 우리 미술인 뿐 아니라, 오만가지 표현에 의존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한 오늘날, 그 의사소통의 근거인 ‘표현’과 ‘자유’를 범법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현행법으로 존속하는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이번 전시의 성격은 국보법이 우리 삶의 ‘안전을 위태하게 한다고’ 느낄 뿐 아니라, ‘우리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느껴서, 그 위기감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생존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결성한 일종의 ‘시국선언’임을 밝힌다.” - 반이정 (전시기획자)

지난 10월 15일부터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전시실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작가 12명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시국선언展>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는, 법조문을 넘어서 개인과 공동체의 ‘타당한 자유와 권리(표현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 인권 등)’를 억압하는 상징체계로 자리잡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작가들의 기억과 고민을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참여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국가보안법에 대한 자신의 상상력을 펼칠 수도 있다.

전시장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재료로 한 작가 12인의 재기발랄하면서도 솔직한 표현과 상상력을 접할 수 있다. 어렸을 적 한두 번은 받아봤음직한 ‘반공그리기대회’ 상장을 소재로 한 김태현의 작품 <개같은 내인생>, “이념은 색칠하기 나름이라”며 국가보안법의 ‘색깔씌우기’를 비판하고 있는 노순택의 작품 외에도 옥정호, 최경태, 조습, 반이정, 김학량, 김형석, 이제, 최진욱 등 작가들 모두가 국가보안법과 국가보안법이 상징하는 한국 사회의 억압을 비틀고 또 반문하고 있다.

이 중 ‘학교사수단’과 김형석의 작품은,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으로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교과서 제목을 고치던 학창시절을 기억을 되살려 준 ‘학교사수단’의 작품 <굼벵이의 보행법>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논’ 중학생들의 상상력을 접함과 동시에 직접 표현할 수 있게 해 준다. “국가보안법”이 “곰~결혼하자”나 “즐겨라 본드의 향긋한 냄새를”로 바뀌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김형석의 작품 <모두 함께 주술을 풀어나가요>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술을 푸는 ‘대못’을 국가보안법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대못을 박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번 주 토요일(23일)이면 전시가 끝나게 된다. 늦었지만 전시장에 꼭 들러 12명 작가들의 상상력을 확인하기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ptrevo@jinbo.net


얘기는 이렇다. 1948년 제정된 이래 56년 동안이나 전국민을 억압해 온 악법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눈앞에 와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폐지’를 언급한 것이 계기가 되었으되, 그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온 수많은 민주세력과 국민적 여론이 그 결정적 배경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한켠으로 치우기 위한 여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0월 4일 시청앞 광장에 모인 10만의 인파로 증명된, 국가보안법 사수를 위해 몸부림치는 세력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 빨갱이 천국 => 나라 망함’이라는 논리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고, 그들을 거리로 나서게 하는데 성공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길거리에 인공기를 들고 뛰어다녀도 잡아들일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사람들의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고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가보안법 폐지를 ‘현실적 조건’에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성 싶다. 요약하자면 ‘폐지를 전제로 한 유연한 대처(?)’라고나 할까. 어쨌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유와 목적이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 쪽으로 당론의 가닥을 잡아가는 것과도 유사하다. 열우당은, 우익들의 극렬한 반발을 고려함과 동시에 ‘실질적 폐지’라고 주장할 수 있는 만큼의 성과를 거둠으로써 정치적으로 승리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그리고 별 것 아닌) 내 경험에 근거해볼 때, 국가보안법은 ‘그냥 없어져야할’ 법일 뿐이다. 국제적인 흐름이나 유엔의 권고 등 국가보안법 폐지의 근거로 제기되는 수많은 사실들을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유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만 접속해보자. 인터넷 사이트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른바 ‘이적표현물’은 널려있다. 마음만 먹으면 북한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고, 그들의 주장을 접할 수도 있다. 요컨대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국가보안법은 오히려 ‘악법이기보다 현실적으로 유효성이 없는 법’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절대 사수를 외치는 우익의 주장을 고려하여 대체입법, 형법보완 등을 검토하는 것 또한 나에게는 ‘현실성 없는 모색’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은 존재 자체가 넌센스인 법일 뿐이다.


또 같은 이유로 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라는 주장 또한 이번 싸움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과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말의 의미는 대략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국가보안법이 가지고 있던 내용을 형법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일텐데,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으로 야기된 억압과 탄압을 인정, 지속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형법으로 대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런 이유라기보다는 우익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 수사라고는 믿고 있지만, 이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그 법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이데올로기를 모두 소멸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번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은, 당장에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의 명칭을 없애는데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공기를 들고 뛰어다니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그게 뭐 어때서?’라고 이야기하고 논쟁하자는 말이다.


국가보안법의 실질적, 실천적인 폐지를 위한 싸움. 당당하게 ‘완전 폐지’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하자.


<참고 : “국가보안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국가보안법 폐지 문화주간 삐이라’에서 발췌)


- 수학적이지 못한 법이군요 : 피타고라스

- 그 법 좀 저리 치워주시겠소? : 디오게네스

- 국가가 병들만한 법입니다 : 히포크라테스

- 지옥에 온 기분입니다 : 단테

- 나비의 법입니까, 인간의 법입니까? : 노자

-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이군요 : 비트겐슈타인

- 입체적인 법은 아니군요 : 피카소

- 외계인의 음모입니다 : 멀더

- 박제가 되어버린 법을 아시오? : 이상

- 상상할 수 없는 법이군요 : 존 레논

 

* 이 글은 민예총 일일문화정책동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