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2005/09/16 11:56

이행강령 1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

노동계급의 지도력이 역사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정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노동계급 혁명을 위한 경제적 조건은 자본주의 체제가 허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에 이미 도달했다. 인류의 생산력은 현재 정체하고 있다. 새로운 발명과 개선 조치들도 물질적 수준을 더 이상 높이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온갖 위기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 결과 대중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가혹한 궁핍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높아만 가는 실업률은 결과적으로 금융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통화체제를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파시스트 정권들 뿐 아니라 소위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들조차 연이어 발생하는 파산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자본가 계급은 이 상태에서 벗어날 길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파시즘에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국가의 경우자본가 계급은 이제 눈을 감은 채 경제적 군사적 파국을 향하여 급속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자본가 계급은 어느 기간까지는 나라의 물질적 축적을 희생시키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치를 누릴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적 특권에도 불구하고 기존 자본가 정당들은 통치 의지가 마비될 정도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자본가 계급은 처음에 단호한 허세를 부리면서 `뉴딜(New Deal)'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가 계급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나라가 실시할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갈팡지팡 정책일 뿐이다. 현재의 위기는 끝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위기는 프랑스의 인민전선(Popular Front) 정책이나 미국의 `뉴딜' 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국제관계도 전망이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의 붕괴를 재촉하는 위기가 증대되면서 제국주의 세력들 사이의 적대관계가 난관에 처해 있다. 이 난관의 절정에서 이디오피아, 스페인, 극동, 중부 유럽 등에서 각각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유혈사태는 불가피하게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가 계급은 새로운 전쟁이 자신의 지배질서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은 제 1차 세계대전 전야의 경우보다 훨씬 부족하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역사적 조건이 아직도 `무르익지' 않았다는 요지의 모든 언사는 무지나 의식적 기만일 뿐이다. 노동계급 혁명을 위한 객관적 조건은 `무르익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물러 터져 썩어가기 시작하였다. 바로 다음 시기에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인류문화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 그리고 특히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위가 나설 차례이다. 인류의 역사적 위기는 혁명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된다.

노동계급과 그 지도부

자본가 계급의 경제, 국가, 정치, 국제관계는 사회 위기에 의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다. 이것이 준혁명 상황(pre-revolutionary state of society)의 특징이다. 준혁명이 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가장 주요한 장애물은 노동계급 지도부의 기회주의이다. 즉 노동 대중의 지도자들은 대자본가에게 겁먹는 소자본가의 비겁을 드러내며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 한가운데에서 대자본가와 유착한다.

모든 나라에서 노동계급은 깊은 불만에 차 있다. 수많은 대중은 다시 또다시 혁명의 길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매번 이들은 자기 조직의 보수적 관료기구에 의해서 가로막히고 있다.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페인의 노동계급은 1931년 4월 이후 영웅적으로 투쟁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정당들(사회민주주의 정당, 스탈린주의 정당, 무정부주의 정당,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대중의 혁명적 진출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파시스트 프랑코 장군의 승리를 도왔다.

특히 1936년 6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공장 점거' 파업(sit-down strike)의 거대한 물결은 노동계급이 진정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인민전선이라는 미명으로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 조합주의 주요 조직들은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혁명적 파도를 저지하였다.

미국에서도 사상 유례없는 공장 점거 파업의 물결과 놀랄 정도로 급성장한 산업별 노동조합운동이 대륙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 현상은 역사적 과업을 완수하려는 미국 노동자들의 본능적 열망을 논란의 여지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도 새로 조직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onference of Industrial Organizations)를 비롯한 주요 정치조직들이 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고 마비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고 있다.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은 이제 자본가 계급의 편으로 확실히 넘어갔다. 전세계 특히 스페인, 프랑스, 미국, 그리고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코민테른은 냉소를 머금으며 반혁명을 수행하였다. 이 결과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은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났다. `인민전선'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깃발을 흔드는 척하면서 자본가 계급과 화해하고 있다. 결국 노동계급의 투쟁은 거세되고 파시즘이 등장하였다.

한편으로는 `인민전선' 또 한편으로는 파시즘을 이용하여 제국주의 세력은 노동계급 혁명을 침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두 도구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주의 프랑스에서든 나찌 독일에서든 자본주의는 계속 썩어 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세계 자본가 계급의 타도 이외에 인류를 구원할 길은 없다.

대중의 정치적 진로는 무엇보다도 썩어 들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상황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기존 노동계급 조직들의 배신적 정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물론 첫 요인이 가장 결정적이다. 역사 법칙의 힘은 관료기구의 힘보다 더 강력하다. 레옹 블룸의 프랑스 인민전선이 주창한 `사회' 입법이나 스탈린이 조작한 모스크바 재판 등 사회주의를 가장한 배신자들의 방법들이 아무리 다양해도 노동계급의 혁명 의지를 꺽지 못한다. 노동계급 지도력의 위기는 인류 문명의 위기이며 이 위기는 오직 제 4 인터내셔널만 해결할 수 있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배신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은 이 사실을 더욱더 명확히 인식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9/16 11:56 2005/09/16 11:56
http://blog.jinbo.net/choyul/trackback/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