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퇴진운동과 보편적 복지에 대하여

인간적인 삶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를 말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억압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평등과자유가 존재하는 사회를 말한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존재하지만 그거와 함께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 살아가는 사회.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인간이 인간으로서 조재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이것은 환상인가? 유토피아인가? 낙원인가? 천국, 판타지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상상의 세계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개척하고 만들어 가야하는 현실이며, 존재하게 할 의무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 가야하는 사회는 어떠한 모습인가? 일단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은 무상으로 공급한다. 교육과 보육, 보건, 의료 등등의 것들이며, 최소한도로 부담을 하는 것으로 가스 전기 상하수도 교통 등등의 것들이 있다. 전자는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후자는 조건부 즉 경제적 능력이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일정의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누구나 자신이 생활하는 최소한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가지기를 원할 것이다. 현재는 이런 사회가 아니지만 우리가 존재하고 만들어가는 사회는 현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사회상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중의 기초적인 모습의 하나가 박근혜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런데 박근혜정권은 대통령의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내세운 공약의 대부분을 철회 했다. 자신이 내세운 공약을 지킬 수 없다. 왜? 대선에 당선을 목적으로 모든 것을 걸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선을 위해서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이명박 정권이 도와주었던 관계없이 오로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대중들을 현혹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실천으로 공약을 내세웠던 것이다. 공약은 재로 흩날리고 대중은 기만당했으며, 부정선거와 더불어서 박정권의 존립을 흔드는 근거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의 침체 – 혹자는 세계적인 공황이라고 한다. - 의 여파 속에서 한국의 경기도 불안한 항해를 하고 있다. 국가부채와 민간부채의 증가는 앞으로 경제의 먹구름을 암시하고 있다. 늘어나는 실업자, 줄어드는 취업률의 모습에서, 갈수록 황폐해지는 대중들의 주머니, 자살자 수의 증가 등등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사람으로서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자본 증식의 도구로서 기계로서의 삶만 강요당한다. 현재의 비통한 사회의 모습을 바꾸고자 우리의 박근헤정권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확대시키고, 자본의 논리로 공공기업 및 시설들을 구매의사가 있는 부르주아들에게 판매하고자 한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 중 대부분은 이윤의 논리에 의해서 이미 사회의 구조 속에 정착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적자를 핑계로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공공요금, 등록금, 수업료 등등을 인상하면서 대중들이 살아 숨 쉬는 것조차도 힘들게 하고 있다. 의료보험의 수가를 인상시키기 위한 의사들의 푸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대중과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는 작자조차도 이러한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고 민영(사유)하의 반대만을 외칠 뿐이다. 결국 부르주아들의 논리에 스스로 자신들의 피를 헌혈하고 있다.

 

이미 사회는 개인과 사람과의 피 터지는 싸움의 장으로 만들어져 모든 책임은 개인으로 돌리고 있다. 개인들 간의 피 터지는 전쟁은 이만 중지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기위한 하나의 터전을 만들어 가야한다. 사회는 개인들의 존립을 보장해야한다.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 이윤의 논리를 부셔야 한다. 보편적인 복지를 위한 우리들만의 전쟁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픈 우리들은 현실에서의 모순을 깨부수고 나가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박근혜를 퇴진 시켜야 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가장기본적인 내용을 가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를 다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가능하다. 이번의 225의 국민 총파업을 통한, 노동자대중을 중심으로 생산의 일정을 추후로 미루고, 자신들의 파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파업은 지도부가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니다. 파업이 이루어지려면 대중들의 의사진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열의를 하나의 행동으로 표출해 나가는 것, 이것이 파업이다. 파업은 현장의 내용과 밖의 내용을 연결시키기에는 힘들지만, 현장의 내용에선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담아내고, 노동자 전체의 뜻으로 정치파업을 전개해야한다. 이것이 정치파업을 확산시키는 방법이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투쟁도 하나로 모이면 정치투쟁이며, 보편적 복지투쟁도 정치투쟁이며, 박근혜퇴진 투쟁도 정치투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투쟁은 여러 가지이며 이것은 현재의 역사를 바꾸기 위한 열려지는 하나의 공간이다. 결코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기계적인 분리는 개량주의 산물이다.

 

일부 지도라인에서 춘투를 하려면 지금 역량을 소모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지금 춘투를 같이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부르주아들이 정해준 밥상에서 밥을 먹어야한다고 누가 정했는가? 지금 춘투를 시작하면 된다. 87년의 노동자 투쟁도 날짜를 따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짜와 시간이 아니며, 오로지 하겠다는 열정과 민주주의적 대중의 결집이다. 총파업이 그렇게 나가지 못한다면 언제나 대중들은 들러리로 밀려나며, 오늘보다 좋은 미래는 없어 보인다.

 

우리에겐 미래를 위한 투쟁을, 미래가 다가오는 투쟁을 해야 하다. 노동자 대중과 인민대중의의 부활의 날개를 펼쳐야한다. 우리에겐 희망의 날개를 접을 때가 아니다. 비록 대중들의 자발전인 내용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파업의 모습은 아니지만. 뻥파업의 조짐이 보이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하나의 희망은 지도부가 아닌 대중에게 보인다. 대중의 힘이 지도부를 강제할 수 있다. 이미 철도노조의 파업에서 그 효과를 증명되었다. 더 이상 지도부에 끌려 다니는 투쟁은 효과는 없다. 대중은 자신의 힘으로 역사를 강제해야 한다.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위해서.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 가리우며 

멸망의 공포가 지배하는 이곳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었나 

대지는 죽음에 물들어 검은 태양만이 아직 눈물 흘리뿐 

마지막 한줄기 강물도 말라 버린 후에 남은건 포기뿐인가~ 

(후렴)강철의 심장 천공의 날개펴고

결단의 칼을 높이든자여 

복수의 이빨 증오의 발톱으로

우리의 봄을 되돌려다오 

이미 예언된 미래조차 지킬 의지 없이

허공에 흩어지는가~ 

(후렴)강철의 심장 천공의 날개펴고

결단의 칼을 높이든자여 

복수의 이빨 증오의 발톱으로

우리의 봄을 되돌려다오 (신해철의 라젠카 save us 노래 중에서) http://blog.naver.com/daisy5838?Redirect=Log&logNo=200998562&jumpingVid=DFA6174DA8B1C03AA80D7E788E22A210D8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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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2:34 2014/02/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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