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19세기의 맑스주의 망령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마르크스가 서술한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법칙에 대한 총론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어떻게 발전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와 본질을 깨달고 운동의 법칙을 설명하는데 아주 좋은 책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대한 책이지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은 생산을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통제하기에 생산을 한 사람들은 또 하나의 소비의 주체이지만 어떠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오로지 생산된 상품에 대해서만 소비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가장 첨예화된 사회다. 이런 모순을 부시고 새로운 사회의 주체가 되고자한다면 생산주의적 결정이 아닌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하나가되어 결정되어야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산주의적 방식의 결정의 대미는 중앙집중계획경제라고 알려져 있다. 주로 스탈린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자본주의적 경제의 문제는 대량생산으로 인한 피해라고 결정짓고 생산의 통제에 주력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극복된다고 주장하는데 있다. 또 하나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 동전의 뒷면에선 시장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마치 생산된 것의 원할한 분배를 위해선 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통해서만 소비의 주체를 제대로 내세울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노동이 사회화된 사회에선 이것은 일부가 맞는 주장이다. 나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생산, 판매를 하기 위한 생산이 일단 중심이 되어야하고 – 일단 시장이 형성이 되기 위해선 팔고자 하는 상품이 존재해야한다 – 그런 생산에 맞게 소비의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적소유가 존재한다면 – 사회주의 사회는 사적소유가 철폐되어진 사회가 아니다. 다만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폐지가 전제가 된다. 공동체사회만이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시장을 통한 부의 집중은 막을 수가 없다. 원시공동체사회에서 계급사회로의 변화의 주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잉여생산물의 유통에 대한 사적 독점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시장사회주의 계획경제 또는 유고 했던 노동자자주관리 등등의 모습은 사회주의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관료주의로 빠져 나가는데 일조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생산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가, 아니면 생산된 품목을 어떻게 해야 공황이 오지 않게 판매가 될 수 있는가라는 방식을 가지고 표현된 내용일 뿐이다. 소비의 주체가 생산을 하지 않고 생산의 주체가 생산을 하기 때문에 소비와 생산 간의 모순은 통일을 위한 발전이 아니라 현상유지 또는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은 계급사회의 기본모순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존재의 의미는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하나가 되기 위한 발판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완전히 철폐된 사회가 아니다. 그 이유는 생산되는 지역과 소비가 되는 지역적인 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 예를 들면 도시와 농어촌, 광물의 산출지역과 산업단지간의 거리차이 등등 – 분업화되어 있는 산업시설, 서비스 산업과 생산산업간의 차이 등등으로 인해서 이 모순의 해결을 위한 사회구성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식의 모습이 나올 수는 있는 것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형식에 대한 답은 정확하게 어떤것이라고 단정을 못 짓는 것이다. 본인이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을, 그리고 그 주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을, 그러한 청사진으로 대중에게 제시를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산주의적 오류, 이제 20세기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운동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생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언제나 관료주의, 형식주의로 빠져 들어 간다. 그 이상의 변화는 자신들의 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19c의 유령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유령과 함께 떠나라. 지금은 21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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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09:00 2013/10/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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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  | 2013/10/20 11:14
중앙집중계획경제는 생산주의적 방식의 결정의 대미고 그것은 주로 스탈린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것은 레닌의 독특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1917년 2월 27일 후 두마의 권력과 쏘비에뜨의 권력이라는 이중권력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볼쉐비끼의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볼셰비끼는 처음부터 소수세력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뜨로쯔끼주의자 그룹, 멘쉐비끼, 사회혁명당이 쏘비에뜨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4월에 레닌이 귀국하면서 4월 테제를 발표합니다. 그 내용 중에는 쏘비에뜨에서 볼셰비끼당이 절대 소수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쏘비에뜨가 유일하게 가능한 혁명정부의 형태라는 점을 대중에게 설명할 것, 우리가 소수파인 동안에는 모든 국가권력이 쏘비에뜨로 이전되어야 할 필연성을 선전하면서, 대중의 실수들을 해명하고 비판할 것 등이 있습니다.

1918년 레닌은 "토지는 사회화되어 있고 공장들은 모두 국유화되어 있는 사회 전체를 조합이 장악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이다"라고 했습니다.

1920년 말, 인민경제의 물질적, 기술적 토대를 발전시키기 위한 첫 번째 장기계획인 고엘로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공산주의 - 그것은 쏘비에뜨 권력 더하기 온 나라의 전기화이다" 이것이 레닌의 명제입니다. 레닌은 발전된 공업 없이는, "사회화되고 기계화된 대규모 농업" 없이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면서 "그것을 망각하는 자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제11차 당대회에서 쁘레오브라줸스끼가 당 중앙위원회에 세 개의 국, 즉 정치국, 조직국, 경제국을 구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레닌의 생각은 정치란 응축된 경제였고 정치로부터 경제문제는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당대회가 폐막된 직후, 레닌은 서기국 내에 서기장 직책을 신설한 뒤 그 자리에 스딸린을 임명했습니다. 레닌이 정치국을 장악하고 있는 한, 서기국은 레닌의 비서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몽  | 2013/10/20 11:26
님의 말을 빌리면 "권력에 대한 욕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19c의 유령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지금은 21c입니다." 레닌은 우리처럼 권력을 좋아하는 보잘것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았고, 우린 그러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