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2005/09/16 12:03

이행강령 9

파시스트 국가에서의 이행 요구 강령

코민테른의 전략가들은 한때 히틀러의 승리를 텔만(Thaelmann,역주: 독일 공산당 지도자)의 승리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선언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180도나 바뀌었다. 텔만이 히틀러의 감옥에 갇힌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무쏠리니는 이미 16년 이상 이탈리아를 파시즘의 쇠사슬에 묶어 놓고 있다. 이 기간동안 제 2 인터내셔널과 제 3 인터내셔널 정당들은 대중운동이나 짜르 시대 러시아 혁명정당들과 어느 정도라도 비슷한 진지한 지하 조직을 건설하지 못했다.

이 실패가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무쏠리니는 어떤 종류의 이데올로기도 제시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이데올로기'가 노동자들을 진지하게 획득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한때 파시즘에 취했던 중간계급은 술에서 깰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개신교 및 카톨릭 교회의 일부 분파들만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파시즘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인종', `피'와 같은 반(半)미치광이 반(半)돌팔이 약장수 이론인 파시즘의 힘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코민테른 등의 이데올로기가 노동계급 운동을 끔찍하게 파산시켰기 때문에 파시즘이 그나마 힘을 발휘한 것뿐이다. 이 사실만이 그간의 사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빠리의 꼬뮌 봉기가 학살로 끝난 후 거의 8년 동안 암흑의 반동기가 지속되었다. 1905년 러시아혁명의 패배 이후 근로인민 대중은 거의 비슷한 시기 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모두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른 물리적인 패배였을 뿐이다. 더욱이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이 생성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당시 볼셰비키 분파는 생긴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독일의 경우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노동계급의 지도부는 강력한 노동계급 정당들에서 나왔다. 어떤 당은 탄생한 지 70년이나 되었고 다른 당은 거의 15년이나 되었다. 이 두 정당 모두 수백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는데 히틀러와 싸우기도 전에 이미 도덕적으로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고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한 채 항복하였다. 이것은 역사에 없었던 대재앙이었다. 독일 노동계급은 싸움 끝에 적에게 분쇄 당하지 않았다. 자기 정당 지도부의 비겁, 저속함, 배신에 의해서 압살 당했다. 따라서 독일 노동계급이 거의 3세대 동안 믿어왔던 신념을 모두 잃어버린 것은 당연하다. 한편 히틀러의 승리는 무쏠리니에게 더 없는 힘이 되었다.

스페인과 독일 혁명이 연이어 실패한 이유는 오직 사회민주주의와 코민테른의 범죄적 정치 때문이었다. 지하활동은 대중의 공감 뿐 아니라 선진 대중의 의식적 열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파산한 조직들로부터 열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망명 지도자들 대부분은 철저하게 사기가 죽어 있거나 크렘린궁과 소련 비밀경찰의 첩자들뿐이다. 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출신 전직 관료들이다. 이들은 기적이 일어나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과거의 지위로 되돌려 놓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 신사 양반들이 미래 `반파시스트' 혁명운동의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순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오스트리아 노동계급의 전멸, 스페인 혁명의 실패, 소련 국가기구의 퇴보 등 세계적 차원의 사건들 역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혁명적 분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정세를 파악하는데 라디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반동집단의 거짓말, 멍청함, 건방짐을 내용으로 한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이 전체주의 나라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 있어서도 스탈린은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의 부관에 불과하다.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온 계급투쟁은 동시에 파시즘 체제 내에 계속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이 체제를 서서히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대중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만에 가득하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노동자들은 희생정신으로 무장하여 두더지의 일과 같은 힘든 혁명사업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전통과 높은 기대가 산산조각이 난 끔찍한 경험이 없는 신세대가 투쟁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이 전체주의 체제의 비석 아래서 조금씩 자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숨겨진 혁명적 힘이 공공연한 반란으로 폭발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전위부대가 새로운 전망, 새로운 강령, 더럽혀지지 않은 새로운 깃발을 가져야 한다.

바로 여기에 가장 커다란 약점이 존재한다. 파시스트 체제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강령을 선택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강령은 경험에 의해 그 내용이 확인된다. 전체주의 국가에 없는 것이 바로 이 경험이다. 파시스트 체제의 혁명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이 진정으로 성공해야 한다. 금융체제의 붕괴나 군사적 패배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래에 대대적인 영향을 미칠 주로 선전적인 준비작업이 이 나라들에서 수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것이 있다. 즉 일단 일어나면 파시스트 체제의 혁명적 파도는 즉시 거대한 물결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체에 어느 정도 숨을 불어넣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시작될 지점까지 노동계급의 공세가 진전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제 4 인터내셔널과 정치적 파산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는 기존 노동계급 정당들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나타난다. 망명인사들의 `인민전선'은 모든 가능한 인민전선들 중에서 가장 냄새가 고약하며 가장 배신적인 부류이다. 이 정치노선은 존재하지도 않는 자유 부르주아지와 연합을 무기력하게 꿈꾸고 있다. 이 정치가 성공했다면 스페인 노동계급이 당한 것과 같은 새로운 패배들이 단순히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인민전선'의 이론과 실천을 가차없이 폭로하는 것이 반파시즘 혁명투쟁의 첫 번째 조건이다.

반파시즘 투쟁에 대중을 결집시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구호들을 수단으로 삼는 것을 제 4 인터내셔널은 물론 거부하지 않는다. 이 구호들은 특정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등과 같은 민주주의 요구들은 독립적 노동자 운동의 일회적이며 일시적인 구호일 뿐이며 부르주아 계급의 하수인들이 스페인에서처럼 노동계급의 목에 거는 민주주의 올가미가 결코 아니다. 혁명운동이 대중적 성격을 보이자마자 민주주의 구호들은 이행 구호들과 결합될 것이다. 과거 노동조합 관료였던 자들이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려고 서두르기도 전에 공장위원회가 등장할 것이다. 바이마르에 새로운 제헌의회가 소집되기도 전에 소비에트가 독일을 뒤덮을 것이다. 이 상황은 이탈리아와 기타 전체주의 및 반(半)전체주의 나라들에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파시즘은 이 나라들을 정치적 야만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의 사회적 구조가 바뀌지는 않았다. 파시즘은 봉건지주가 아니라 금융자본의 손에 쥐어진 도구이다. 혁명 강령은 겁에 질린 정치적 파산자들의 심리가 아니라 파시스트 국가에 반드시 존재할 계급투쟁의 변증법에 기초해야 한다. 제 4 인터내셔널은 과거 `제 3기'의 영웅인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치적 가면무도회를 혐오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카톨릭교, 개신교, 유태인, 독일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의 가면을 쓰고 순서대로 등장한다. 이런 쇼는 매력 없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모든 곳에서 항상 자신의 깃발을 들고 등장한다. 그리고 파시스트 국가에서 노동계급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강령을 제안한다. 오직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도력을 통해서만 무쏠리니, 히틀러, 이들의 하수인과 모방꾼들을 타도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전세계 선진 노동자들은 이미 굳게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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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6 12:03 2005/09/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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